샤흐툐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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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샤흐툐르스크는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광업 도시로,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4만 8천 명이다.
2. 역사[편집]
1764년, 알렉세이 오를로프 백작의 이름을 딴 알렉세예보-오를롭카라는 이름으로 정착지가 건설되었다. 1801년 기준 인구는 950명이었다. 1865년 두 개의 광산이 설립되었고 당시 인구는 거주인 6,795명, 비거주인 671명이었다. 1900년 근처에 상인 아브람 카티크의 광산이 설립되었고 1905년 카티크 마을이 형성되었다.
1938년, 알렉세예보-오를롭카가 도시형 정착지로 승격되었다. 1953년 8월, 알렉세예보-오를롭카를 제외한 카티크 및 주변 마을들이 통합되면서 도시명이 샤흐툐르스크로 변경되었다.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약 11개의 새로운 광산이 건설되었고, 제9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3,130만 톤의 석탄이 생산되었다. 1962년 알렉세예보-오를롭카가 샤흐툐르스크에 편입되었다. 소련 시절 석탄 산업과 의류 산업을 바탕으로 번성해 7만 3천 명 이상의 인구를 기록했으나,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섬유 공장 등이 파산해 인구가 감소했다.
2014년 4월 15일, 2천명 규모의 대규모 친러시아 시위가 발생했고 알렉산드르 나우모비치 시장이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밝힌 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국기를 게양한 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측의 사무실을 개업했다. # 2014년 7월 27일에 우크라이나군이 도시에 진입했고 7월 31일까지 도시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격퇴되었다.
2022년, 극동 연방관구가 대대적으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도시 재건에 참여했다. 사할린주에서 샤흐툐르스크시를, 하바롭스크 지방에서 데발체보시를, 프리모리예 지방에서 토레즈시를 재건할 예정이다. #
3. 여담[편집]
도시 상징은 2003년 도시 지위 5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상징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시기 좌측 상단에 도네츠크주 깃발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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