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부(무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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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 무인시대 정중부 소개 사진(900x1500).png

이름
정중부
(鄭仲夫)
주무기
[1]
등장회차
1화 ~ 76화[2]
배우
김흥기
1. 개요
2. 배우
3. 특징
4. 극중 행적
5. 여담



1. 개요[편집]


네이놈 한뢰야! 네놈이 어찌 황상 폐하를 호위하는 대장군을 욕보이느냐?! 네놈 짓거리가 황상 폐하의 권위를 짓밟고 훼손시키는 일임을 네 어찌 모르느냐! 이소응이 개보다 못한 무반이라면 네놈은 개도 안 물어가는 환관놈이 아니더냐? 네놈이 황상 폐하의 총애만 믿고 안하무인, 방약무도한 짓거리를 일삼는 것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일! 이곳이 어전만 아니었다면 내 칼로 네놈의 목을 쳤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상장군들과 대장군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조정 신료들을 모두 도륙낸 연후에 자네 혼자서 중방 회의를 하든 조정을 틀어잡고 독판을 치든 어디 마음대로 해보란 말이야!


내 손으로 황제를 옹립을 했거늘, 그 공덕도 모르고 감히 우리 해주 가문에 도전을 하겠다? 지금 당장 군부와 조정 대신들은 물론 미관말직들까지 황궁으로 들라 기별을 넣어라!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의 등장인물이자 두 번째 주인공. 배우 김흥기가 맡았다.

노회한 노장군다운 노련함과 간교함을 동시에 갖춘 정중부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주 무기는 의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장검.[3] 다만 노회한 지휘관이란 컨셉 때문인지 칼보다는 위 스틸컷에도 나오는 전투 지휘용 부채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이의방을 대표로 하는 소장파 장교들과 대립할 때 이 검을 빼들며 이의방과 대치하는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이의방의 저돌적인 행동력에 밀려 겉으로 볼 때 별다른 활약은 없었지만, 물밑으로 아들 정균과 함께 이의방이고, 채원을 이간질하고 이의방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술수를 보인다. 그리고 이고와 채원이 죽고 난 후 이의방 정권 내내 이의방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대치세력으로 부각되며, 이의방과 따로 군사력을 쥐고 서로 견제하며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 이의방이 직접 거느린 병력은 소수지만, 최정예부대임과 동시에 황궁을 장악하고 있기에 황제와 황실을 인질로 삼아 숫자가 10배 이상 많은 정중부측에게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4] 그러나 이의방으로서도 정중부가 황도밖에서 거느린 수천의 병력을 경계했는데, 그가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공격해올 경우 위험했고 의종 시해건 때문에 정치적으로 고립된지라 중방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어느 정도 타협해야 했고 화친과 동시에 정중부와 부자인연을 맺는다.[5]


2. 배우[편집]


배우 김흥기는 이전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식렴을 맡는 등 연기력이 높은 중견 배우였지만, 그에게 <무인시대>의 정중부 역이 마지막 TV 출연작이 되었다.

정중부의 마지막 등장 편인 98화가 촬영된 것이 2004년 1월 초, 방영된 것이 1월 11일이었으며 이후 김흥기는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 중 1월 30일, 뇌출혈로 쓰러져[6]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투병 5년 후인 2009년 3월 6일향년 64세로 별세하였다.

때문에 무인시대 마지막화 에필로그 겸 총집편에서 이의방에서 최충헌에 이르기까지 무신 집권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모두 출연하였지만, 정중부 측 인물[7]들은 등장하지 못 하였다.

3. 특징[편집]


나이 70에 가까운 노장이기 때문에 무인으로서 모습보다는 노회한 정객으로서 모습이 두드러진다. 문벌귀족들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정치행태를 철저하게 벤치마킹한 듯 노련하게 국정을 주도하는 모습이 정치 9단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처음엔 의종 폐위에 반대하지만 찬성으로 돌아선 후에는 바로 폐위에 필요한 조치를 지시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정변 초기에는 본인이 얼굴마담이고 실질적으로 사병들을 장악한 소장파 장수들에 밀려 은연자중하는 척하지만, 세치 혀로 이고채원 등을 이간해 반목을 조장하기도 하며 그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의방이 농간을 눈치채고 철퇴로 다 때려 죽이겠다고 일갈하자 우리 다 죽이면 누구를 데리고 정국을 운영할 것이냐고 해볼 테면 해보라며 배짱을 부려 결국 이의방과 연합정권을 결성하게 된다. 이 와중에 실권을 뺏긴 노장들과 살아남은 문신들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지지기반을 만든 것은 덤.[8]

이의방을 참살하고 이의방 정권의 잔당들을 흡수하거나 처단한 후 단독정권을 수립할 때부터 그 노회함이 더욱 부각된다. 명종에 맞서 철저하게 조정 여론과 정세를 조정해 정권을 휘두르는 포스가 후덜덜하다. 대표적인 예가 망이 형제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인데, 명종은 명학소 봉기를 관대하게 처분해 자신의 덕을 내보이고 무신들이 없어도 정국 운영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이려 했고 정중부는 무신으로 하여금 난을 무자비하게 진압해서 무신의 지위를 더 공고히 하려고 한다. 정중부는 겉으로는 왕을 존중하는 척하며 망이를 붙잡아 두고는 뒤로는 명학소 주민을 학살한 후 망이 형제를 고향으로 보내주는데 분노한 망이 형제가 다시 봉기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다시 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다른 주요 관료들을 모두 사직하게 하고, 아직까지 군부에 몸을 담고 있던 정균을 시켜 일부러 진압군이 반란군에게 연전연패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결국 반란을 진압하고 말고 하는 것조차 정중부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명종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사과하고, 그의 뜻에 따라 강경책으로 난을 진압했다.

이러한 노회함이 다른 집권자들과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으로, 문극겸이나 두경승 같은 소수파의 반대의견도 논리적이고 타당하다면 무작정 우리 숫자가 많다며 목소리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해 주는 척하면서 뒤에서 여론과 상황을 조작해 상대의 입을 막아버린다. 덕분에 명종은 정중부를 불편해 하면서도 그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지는 않고 정중부 또한 시의적절하게 명종에게 뇌물을 바치고 좋은 말을 하여 정균과 공주의 혼인을 허락받기도 한다. 이는 훨씬 이후에 집권했음에도 조원정이나 이의민이 오로지 다수라는 것을 믿고는 "우리 뜻을 따라 주십시오"로 왕의 어의를 강제로 꺾은 뒤 완전히 신임을 잃은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다만 정치력은 L급이라지만 아무래도 나이를 먹은 노장이다 보니 전투에 관련해서는 먼치킨 이의방보다 한단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망이 망소이가 일으킨 망이·망소이의 난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쩔절매다가 반란군의 수장인 망이 망소이가 황실을 질타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명종은 대놓고 이의방이 대역죄인이긴 해도 살아있었으면 황실의 권위가 이렇게 짓밟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면박을 주거나 반란이 진압되기 전까지는 정중부를 면대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한다.

아무튼 노회함을 바탕으로 여론을 능수능란하게 주도하며 황실과의 혼사까지 허락받는등 승승장구 하는듯 보였다.그런데 이렇게 치밀하고 능수능란하게 여론을 주도해온 정중부도 단 한 번 신료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어의를 꺾게 되는데, 정균이 명종의 어머니 공예태후를 면전에서 겁박하다 명종에게 걸려 삭탈관직당한 이후이다.[9]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식의 잘못에 조정 신료 전부를 동원해 황제를 겁박한 후 공예태후의 약점을 잡고 물고늘어져 명종의 어의를 꺾은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중부 부자의 모습을 본 경대승이 거병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경대승은 정중부 부자의 횡포에 분개하며 대립하면서도 거병에는 회의적인 입장[10]이었는데, 신료를 동원해 사실상 황제처럼 군림하는 정중부의 모습을 보고 이 나라의 황제는 누구인가 분노해 거병을 결심한다. 하지만 정중부는 정균이 복귀하는 것을 보고는 이제 됐다면서 안심하고 물러날 수 있겠다며 은퇴하였으니 자식을 잘못 본 탓에 단 한 번 실수로 멸문을 당한 셈이다.


이 나라 군부는 대의로써 해주 가문(정중부 일족)을 추종하는 것이 아닐세.

재물에 매수되었거나 일신의 부귀공명 때문에 야합된 것이니 정중부를 처단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충성 맹세는 일거에 무너지게 될 것이야.

거사 직전에 작전을 세우며 정중부 정권의 약점을 평가하는 경대승


정중부에게는 또다른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정중부가 조정, 군부, 황실 사이의 관계를 능수능란하고 안정적으로 조정하면서 권력 기반을 넓혀왔던 것에 비해 자신이 구축한 정권 내부의 결속력과 유대감은 굉장히 취약했다. 실제로 극중 다른 주연 캐릭터들과 비교해보더라도 정중부 세력의 주요인사들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신의에 대한 묘사는 가장 빈약한 편이다.[11] 있다고 해도 혈연, 인척 관계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의방 정권의 이의방과 이의민처럼 의리 같은 것으로 묶여있는게 아니라 정중부를 위시하여 정균, 송유인 등의 정권 실세들은 사방에서 자기 편을 끌어들이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철저하게 이용대상으로만 바라봤다. 정중부 정권에 줄을 댄 이들 역시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출세하고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정중부 정권에 붙었을뿐 정중부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낀건 결코 아니라서 정중부 정권이 경대승의 거병으로 몰락하자 하루아침에 등을 돌려버린다. 심지어 핵심인사인 송유인은 경대승의 거병이 발생하자 처남인 정균과 장인인 정중부를 걱정하기는 커녕 그와중에 재산을 들고 혼자서 도망을 친다. 결국 정중부는 허망하고 외롭게, 그러나 치욕스럽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12] 물론 다른 주조연 캐릭터들도 타락하거나 실패하는 과정에서 인심을 잃고 고립되기는 하지만 외로이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도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는 이도 없고 그 시신조차 수습해주는 이 없이 남겨진 경우는 정중부가 유일하다. 이고는 자신을 믿고 따른 충의군과 수혜 현소와 죽음을 함께하였고 자신의 마지막을 친구인 이의방이 깔끔하게 장식해주고 자신의 죽음에 크게 분노해준 채원이 있었다. 채원의 경우 비록 이의방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품고서 죽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인망을 잃진 않아서 조원정 등이 그에게 항복을 권유하거나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를 따르는 순검군이 마지막까지 그의 명령을 충실히 받들다 죽었다. 이의방은 자신이 기습당할 때 목숨을 걸고 막아준 이 부관과 더불어 자신의 죽음을 애도한 무비와 이의민이 있었고[13] 경대승은 도방 장사들과 두경승, 이의민은 부루, 최부, 부용, 전 김사미의 수하 및 병사들 등등 각각 믿고 의지해온 이들과 마지막을 함께하거나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있거나 마지막까지 그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등 적어도 최후만큼은 비장하게 마무리하였으며, 최충헌은 권력을 끝까지 쥔 채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하고 최후를 맞이한 것과는 참 대조적이다.사실 극 초반부에 정중부가 정균에게 신의나 신뢰, 의리, 충성 같은게 아닌 모략이나 표리부동을 가르쳤던 점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심지어 궁지에 몰려 거병을 시도하다 역관광 당하고 참수 당한 조원정조차 석린이나 선사 처럼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며 최충수가 반역죄로 참수될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조원정의 대의에 합세한것과 비교해보면 마지막에 쓸쓸하게 참수당한 정중부의 최후는 너무도 허망하다고 할만하다.[14] 다만 애증의 관계였던 공예태후만큼은 정중부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찾아가 함께 지난날의 회상을 하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묘사가 있었기 때문에 위의 서술이 100% 맞다고 보긴 힘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권력을 잃었을 때 자기 편이었던 자들 모두가 배신한 가운데 그나마 그를 비호해준 건 문극겸과 염신약, 그리고 정변의 주인공인 경대승이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해준 인물은 공예태후 뿐이라는 점, 즉 하나같이 자신의 정적들 뿐이라는 점이 정중부 정권 인사들의 약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또다른 특징은 작중에서 유일하게 민란을 뒤통수까지 쳐가며 강경책으로 진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물론 경대승을 제외한 다른 정권이라고 민란이나 반란이 없는건 아니였지만 그때도 그냥 강경하게 진압을하거나 이의방이 조위총의 난을 직접 진압하러 갔을때 항복하면 백성들의 목숨만은 구명한다고 한것처럼 대부분 항복을 받아주거나 회유책을 썼지 앞으로는 회유하고 달래는척 하면서 뒤에서는 술수를 부려 반란을 유도해 반란을 진압하는 치졸한 짓을 벌인건 정중부가 유일하다.작중에서 소인배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 조원정조차 김보당의 난을 제압하러 가서 투항을 권유하고 항복하는자는 구명해 준다고 했는데 말이다.[15]

4. 극중 행적[편집]


파일:정중부1.jpg
파일:external/img.kbs.co.kr/b_0077.jpg

이의방 정권 당시에는 이의방의 무력 횡포를 두려워하던 명종공예태후와 달리 정중부를 이의방보다 좋게 봤는데 정중부는 일단 조정신료들을 도륙내는 이의방 패거리와 달리 그런 학살을 벌이는 이의방에게 당장 그만둘 것을 요구하며 군사적 대치를 벌였고 군사력으로 명종을 압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의방에게 살해위협을 느낀 명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중부 쪽이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고, 조정 신료들도 살아남기 위해 정중부 쪽에 더 우호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16] 그리고 이것은 이의방이 빠르게 몰락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17]

다만 공예태후나 문극겸 등은 오히려 이의방을 더 좋게 보았는데, 그럴만도 한게 정중부 등은 원래 대령후를 생각하던 공예태후를 의종에게 보낸 편지를 빌미로 겁박하여 장차 자신들이 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게 유약한 명종을 추대하기로 한데 비하여 이의방은 비록 무력을 휘두를 망정 강성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대령후를 보위에 올리려고 했으며, 정치 모략 등으로 움직이던 정중부 일파와 달리 공예태후에게 강성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건 대령후라고 직언을 올리고 의종에게 빌붙어 무인들을 핍박한 조정 신료들이
또다시 권력을 쥐기 위해 유약한 익양후를 옹립하기로 한 결의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거나 무인들이 차별받는 것에 대해 연설을 하여 병사들의 신망을 얻었고 문극겸 같은 충직한 조정신료는 살려주는 융통성도 보여주는등 무작정 살육만 저지르는게 아니라 초창기에는 좀 과격하긴 해도 정말로 나라를 위한 충성심이 있었으며 이때문에 공예태후는 물론 정중부가 익양후를 옹립하려 하자 드센 무부들의 등쌀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탄하던 문극겸도 이의방을 좋게 봤다.[18]

집권 후 실권은 주로 정균이나 사위 송유인이 행사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아들이 혈기를 앞세워 급히 일을 하려 하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그를 꾸짖거나 달래며 치밀하게 술책을 쓰는 노회함을 보인다. 그 탓에 정균은 항상 정중부에게 뒤쳐지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 또한 두경승과 반목하는 정균에게 두경승은 사사로운 야심이 없는 자이니 적을 늘릴 필요가 없다며 두경승을 적대할 것을 만류하기도 하고,[19] 조정 신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려 드는 정균에게 그들이 없으면 무슨 수로 정국을 이끌어나가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의방이 무력으로 짓누르는 식의 통치를 했다면 이의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방식으로 통치를 하며, 태자비의 폐위 때도 자신의 마음대로 명종에게 조정의 뜻이라며 이의방의 딸인 사평왕후를 폐위시키라고 한 일로 문극겸과 염신약이 반발하자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며 달래면서 불만을 잠재운다.

중방의 수장 출신으로 일단 무인 집권자이기는 하지만 정중부 정권에서는 무인보다는 상대적으로 노회한 정치가의 면모가 계속 많이 부각된다. 당장 정중부 정권 내에서는 문극겸과 염신약도 명분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항상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20] 정중부의 노회한 면모에 압도되어 반발을 하다가도 막힌다.[21] 그러다보니 문극겸은 정중부가 사직하고 뒤를 이어서 사위 송유인과 아들 정균이 정권을 잡자, 저들은 정중부와 같은 노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에 희망을 품고 역습의 기회를 꿈꾸기도 했으며 경대승도 이 틈을 노려 해주 가문을 쳤다.

보통 다른 무인 집권자들은 거사를 일으키는 순간에는 나름의 대의를 가졌다가 권력의 단맛에 취해 타락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정중부 일가는 처음부터 그냥 탐욕스러운 권력자로 그려진다. 다만 처음부터 탐욕스러운 난신적자는 아니었고 처음 보현원 거사 당시 시점에선 이의방, 이고의 권유를 마다하고 있다가 한뢰의 만행을 보고 나서야 결행에 옮겼고 그 뒤로도 의종을 폐위시킬 생각까지는 없어 해묵은 원한이 많았던 문신들만 축출하고 혼란한 난국을 수습하려는 정도의 동기에 그쳤던 듯 싶으나 도중 몇 가지 오해가 겹치고 폐위를 결정한 이후는 거침이 없어진 듯하다. 이는 그가 무신정변 당시 이미 60세를 넘긴 노인이었던 점도 한 몫한 듯 하며, 정중부와 김돈중의 수염 태우기 일화나[22] 정중부의 최후 이전 태후와의 대담에선 그도 젊은 시절에는 나름 왕실에 충성하는 혈기왕성한 장수였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비록 정중부 뿐 아니라 경진 역시도 과거에 충성심이 강한 혈기 넘치는 장수였던 것처럼 노장파들 역시 나이를 먹고 변했을 뿐, 과거에는 다들 충의로 가득찬 젊고 혈기 넘치는 장수들이었다.[23]

이의방 사후 절대권력을 차지한 권신으로서의 모습은 대체로 역사와 비슷하다. 역사를 따라가는 만큼 권력의 정점에 선 이후 극중 비중도 정중부보다 아들 정균에게 더 쏠리게 된다. 작중 정중부 정권에 대한 묘사는 전형적인 부패정권의 모습이다. 다른 신하들을 조종해 명종이 정중부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대놓고 벼슬팔이를 하며, 정균은 대놓고 안하무인적 행패를 부리는 등 전형적인 난신적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비록 갈수록 타락하고 부패한 권신으로 변하기는 했으나 전술했듯 정치적 안목이나 상황판단력은 나이를 먹었어도 후대의 집권자 최충헌보다도 뛰어나기에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러 출전하겠다는 정균을 뜯어말리거나[24] 어차피 사직할 건데 뭐하러 이의방의 암살을 시도했냐고 크게 꾸짖는 등[25] 아들인 정균보다 상황판단이 뛰어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아들인 정균임씨부인의 일로 차츰 타락해가며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버지인 정중부조차 권력투쟁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면서 갈등을 빚게 되는데,[26] 정균은 정중부에게 자신이 이의방을 도모할 때 아버지는 무엇을 했냐, 자신이 이의방을 도모하지 않았으면 아버지는 계속 이의방의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고 있었을 거라고 하며 본인 덕에 아버지가 조정의 영수자리에 올랐고 본인 덕에 궤장을 하사받고 치사를 면한 건데 왜 자신의 앞길을 막냐고 폭언을 날리거나 아예 나중에 가서는 본인이 아버지의 명망을 넘는 게 두렵냐는 말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정중부가 기껏 하사받은 궤장까지 박살내며 자신이 정균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걸 알려주자 서로 화해하며 갈등은 일단락된다.[27]

어쨌든 어찌저찌 아들과도 극적으로 화해하고 아들인 정균이 수안공주와 사돈을 맺게 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였으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권력의 정점에서 곤두박질치고 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다름아닌 자신의 사직과 정균의 혼례로 정중부 일파가 방심한 틈을 타 경대승의 거사가 일어난 것이다. 경대승의 거사가 일어나자 본인은 일단 황도를 탈출했는데 자신의 부하가 정균과 송유인이 황도를 빠져 나갔다고 보고하자 자신의 아들과 사위도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피한 후 날이 밝으면 조원정을 비롯한 군부를 동원해 경대승을 없애버리려고 했으나 정작 사위인 송유인과 아들인 정균은 크게 방심하여[28] 황궁에서 술을 퍼마시다가 기습당해 둘 다 비참하게 도망치다가 참살당하고 명종의 황명을 받은 경대승이 정중부와 친하게 지내던 자들의 죄를 묻지 않는 대신 정중부에게 협력하면 목을 벤다고 일갈하여 순식간에 군부까지 장악해버리게 되고 아들과 사위가 모두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아들과 사위가 죽었는데 어찌 권토중래를 도모해 후일을 기약할 수 있겠냐며 모든 것을 체념한 후 무인으로서 갑주를 차려 입고는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황궁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때 자신을 가로막는 경대승에게 나는 황제를 옹립한 벽상공신으로 황제를 만나러 온 것이니 길을 비키라 하지만 경대승이 난신적자의 수괴를 대전에 들일 수 없다고 일갈하자 자신은 경대승의 부친 경진과 수십년동안 막연한 벗이었는데 난신적자라는 말을 써 선친의 얼굴에 먹칠을 하냐고 일갈하는데 경대승은 황실에 충성할뿐 해주 가문과 사사로운 원한은 없다고 받아치고 이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던 정중부는[29] 해주 가문이 문을 닫기 전에 황제에게 청을 넣을 것이 있어 온 것이라고 말해 경대승이 명종을 설득하였고 결국 명종이 직접 친국을 하여 정중부의 죄를 심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처음에 그는 국문장에서 명종에게 자신은 명종을 옹립한 벽상공신이고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왜 대역죄를 물으려 하냐고 항변해 보지만[30] 명종은 극대노하여 이후 정중부의 죄를 고할 것을 지시하고 이광정, 조원정, 조 환관, 마지막으로 순주가 정중부의 죄를 고함에 따라 그는 반역죄인이 되어버렸다. 이후엔 무인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자결하는 것을 윤허해달라고 청하나 명종은 그것을 거절한다.[31] 이때 정중부를 따르던 오랜 동료들과 수하들은 정중부를 모함하기 바빴지만[A] 정중부를 위로해주거나 정중부의 편을 들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중부를 따르지 않고 정중부의 정적에 속하던 문극겸과 염신약, 그리고 정중부와 대립하던 공예태후뿐이었다.[32]

오랜 동료들과 수하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던 정중부도 정작 자신을 옹호해주는 사람이 문극겸과 염신약뿐이라는 사실을 황당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반역죄를 저지른 것이 없어 문극겸의 변호가 통하나 싶었지만 토사구팽했던 순주[33]의 복수로[34] 반역자의 누명을 써버리게 되어 결국 '난신적자'라고 써붙인 패를 가슴에 단 채 조리돌림을 당한다.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며 처형장에 꿇어 앉은 정중부는 "천하 권세가 덧없고, 덧없고, 참으로 덧없도다..."라는 유언과 함께[35] 마치 배우의 전작인 용의 눈물삼봉 정도전의 자조시를 떠오르게 하는 자조 섞인 웃음을 남긴 채 망나니의 도끼질에 참수된다.

작중에서 공예태후와는 정중부가 '천추태후처럼 나라를 망치고 싶은가'라고 폭언할만큼 계속 대립해온 관계였지만 정중부가 인종의 총애를 받았던 사서의 기록을 반영한 듯, 끝에서는 공예태후가 감옥에 있는 정중부를 찾아가 죽음을 앞둔 그를 위로하기도 했다. 권력을 두고 원수처럼 대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회상, 참회, 안타까움이 담긴 오랜 인연의 끝을 정리하려는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무인시대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17:00부터

정 : (형옥에 들어온 공예태후를 보고 놀라 일어나 목례를 한 후) 태후폐하. 폐하께오서 어찌 이 험악한 형옥까지 발걸음을 하셨사옵니까?

공 : 어찌 참수당할 것을 알면서도 황궁에 돌아오신 것이오이까.

정 : 신이 황상폐하를 믿는 충정이 과했나 보옵니다.

공 : 문하시중...

정 : 태후폐하. 문하시중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신은 참수를 기다리고 있는 대역죄인일 뿐이옵니다.[36]

공 : 이 늙은이가 문하시중을 처음 보았을 때가 인종황제의 세번째 황후로 간택이 되어 황궁에 들어왔을 때였으니, 벌써 반백년이 흘렀구려. 문하시중, 그 시절이 기억이 나시오이까?

정 : 예. 당시 입궁을 하시던 태후폐하의 존안을 생생히 기억을 하고 있사옵니다. 경국지색의 화려한 미색을 지니시어 젊은 견룡들의 가슴속에서 북소리를 울리게 하셨던 태후폐하를, 신이 어찌 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공 : ...[37]

정 : 그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 것이거늘, 어느덧 태후폐하와 신의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았사옵니다.

공 : 인종황제께오서는 견룡 중에서 문하시중을 총애하시어 장차 고려 황실을 보위할 버팀목이 될 것이라 하셨소이다.

정 : 신 또한...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공 : (한스럽다는 듯 원망 섞인 목소리로) 헌데 그리도 충성스러웠던 문하시중이... 어찌,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이오이까? 어찌요! 내 문하시중이 참으로 원망스럽소이다.

정 : 태후폐하. 신, 선황제께오서 베풀어주신 성총에 보답지 못하고 대역부도의 죄인이 됐사옵니다. 죽어서도... 죽어서도 이 불충을 씻지 못할 것이옵니다. 신, 참수된 연후에 목없는 혼령으로 떠돌지라도 이 나라 황실과 사직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칠 것이옵니다.

공 : (정중부의 손을 잡고) 문하시중, 나중에 보십시다.

정 : 신, 태후폐하의 성총을 결코...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후 큰절) 폐하...

공 : (눈물을 훔치고 형옥을 나선다)

정 : 폐, 폐하...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참수된 정중부의 모습은 경대승에게도 크나큰 충격이었는데, 정중부가 마지막에 무인으로서 자결을 청함에도 그를 무시하고 누명을 씌워서 잔혹하게 죽이는 명종의 모습에 경대승은 아무리 정중부가 난신적자라고 하지만 명종 자신을 황제로 옹립시켜준 데다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했는데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충격을 먹어서 자신도 저렇게 명종에게 토사구팽을 당할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게 되며 실제로도 경대승 사후 경대승의 수하들은 명종의 손에 의해 잔인하게 도륙당한다. 심지어 조원정이 손석과 김자격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면 경대승의 가문도 정중부의 가문처럼 잔인하게 도륙되었을 테니, 정중부의 죽음을 기점으로 명종의 본격적인 잔인한 숙청과 토사구팽이 시작되는 셈.

물론 서로 좋은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 반란까지 계획하거나 황제의 면전에서 대놓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이고나 이의방, 명종 앞에서도 대놓고 횡포를 부린 아들 정균, 아예 명종 앞에서 투구를 집어던진 석린처럼 대놓고 막나간 게 아니다뿐이지 대놓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명종을 무시했으며 신하들을 조종하며 명종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입으로는 충성이나 대의를 외치지만 실상은 그저 부패한 권신일 뿐이고 명종 역시 이러한 정중부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단지 이의방까지 죽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정중부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고 대부분이 정중부의 편이거나 정중부의 수하인 상황에서 염신약, 문극겸, 두경승 등의 의견은 소수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군부쪽인 두경승의 경우는 나름 입지가 있다지만 기껏해야 대장군과 상장군 몇몇을 선동해서 "중방이 조정(정중부)의 뜻에 끌려다니면 우리 무인들의 위상도 다시 땅바닥에 떨어진다."거나, 이의민이 폐주를 끔살시킨건 이의방과 황실의 명을 따른 것 뿐인데[38] 그를 군부에서 축출하거나 처형하는건 불합리하다라는 것을 명분으로 훼방을 놓는 것이 한계였다.[39] 명종 역시 그들을 누를 만한 힘이 없었기에 참고 있었을 뿐이다.

단 정중부가 처세를 잘해서 뇌물을 바치면서 몸을 낮추기도 하다보니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사돈관계도 어느 정도는 좋게 생각할 정도로 일단 표면적으론 좋은 관계에 가깝게 유지되기도 했다. 이는 대놓고 자신이 황제로 만들어줬으니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하는 공예태후의 태도에 대한 반감도 포함되기도 했는데,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최고 권력자인 정중부도 일단 자신을 황제로 대하며 평상시 명종 앞에서는 몸을 낮추는 판국에 대놓고 명령을 하는 공예태후의 태도에 "지금 이 나라의 황제는 소자입니다!"라고 반발심리를 품게 된 것인데, 사실 작중에서 공예태후는 명종에게 옳은 조언을 해주었으며 말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틀린 말이 별로 없고 대부분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비하여[40] 명종은 그 반대인 데다 갈수록 암군으로 타락해가기에 딱히 명종에게 동정심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더 찌질해 보인다.

그렇게 76화에서 퇴장했다가, 98화에서 사경을 헤매는 경대승의 환상 속에서 재등장했다. 왜 자신을 불렀느냐는 경대승의 질문에 정중부는 정변 이전으로 고려를 되돌리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자네를 위로하고자" 왔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에 경대승이 자신의 대의를 피력하며 강변하자, 정중부는 파안대소하면서 그러고자 했다면 저 유약하고 의심많은 황제를 시해하고 자네가 황제가 되었어야 했다고 조롱한다. 그리고 그렇게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왜 백성들을 왕위에 올리지 않았느냐며 너 또한 천하를 쥐려는 난신적자에 불과하다고 일갈하고 칼을 휘둘러 경대승을 내리친다.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난 경대승은 나는 무인일 뿐이라고 되뇌이면서 오열한다. 이 부분은 사실 고려사 경대승 열전에서 경대승이 죽기 전 꿈에 정중부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꿈을 꾸고 병을 얻어 죽었다는 서술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인데, 이 서술을 바탕으로 해서 본 작품에서 등장하는 무신 집권자들은 죽기 전에 꿈에서 자신이 죽인 자들에게 비웃음과 냉소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단 정중부와 이의민, 최충헌은 예외인데 정중부는 이의방과 박존위의 복수를 외치는 이의민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꾸었으며, 이의민은 자신을 반역자라 질타하는 두경승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꾸었다. 최충헌은 살해당하진 않았지만, 임종 직전에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이 늙어 죽어가는 자신에게 날리는 팩트폭력에 정신적 대미지를 크게 입으며 눈물을 흘린 뒤 그대로 세상을 떠난다.


5. 여담[편집]


  • 70대에 가까운 노인이며, 또한 캐릭터 특성 자체가 노회한 지략가이다 보니, 극 초반부 김돈중을 참수하는 것 외에 무력을 보인 적은 별로 없었다. 대신 작중 정중부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작중 전개상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할 경우 정중부가 검무를 추며 무술을 연습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했다. 다만 무비가 정중부도 젊은시절에는 역발산기개새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고 언급하는 것을 보아 설정상 젊었을 때의 전투력은 작중 탑클래스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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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술하겠지만 지휘용 부채도 쓴다.[2] 경대승의 꿈으로 98회에 재등장한다.[3] 작중에서는 보검이라고 칭하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보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4] 만약 정중부측에서 공격해온다면 꼼짝없이 반역죄를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5] 실제 역사에서도 이의방은 노장파로 이뤄진 중방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정중부와 부자인연을 맺었다. 물론 이건 서로 화친한다는 표면적 제스처이지 서로를 진짜 부자처럼 생각한 것은 아니다.[6] 알런을 돕는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를 연기했는데, 이날 커튼콜을 끝낸 후 무대에서 내려와 연습실에서 쓰러졌다. 당시 알런을 연기했던 조재현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흥기 씨는 고혈압에 시달려 혈압약을 복용하였지만,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없다.' 하여 약을 끊고 우황청심원을 줄곧 마셔 뇌출혈로 쓰러진 것 같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편, 본래 마틴 다이사트 배역에 김갑수에 먼저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최충헌 배역 제의로 고사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작품에 하차한 뒤라 김흥기 씨가 캐스팅되었다. 훗날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 김갑수 씨는 본의 아니게 자신 때문에 그리되신 것 같아 상당히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심정을 밝혔다.[7] 정균을 연기한 이민우 역시 촬영을 마친 뒤 얼마 후 군 입대를 했기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중부 일가를 연기한 두 분이 개인 사정으로 등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보다 비중이 적은 송유인을 연기한 김진태 혼자 등장하기에는 무리수였을 것이다.[8] 특히 김보당의 난 때 이의방이 문신들을 상대로 대학살을 벌인 것과 달리 정중부는 문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덮어두려고 했던 행적이 있었다. 김보당의 난이 진압되고 처벌 직전에 조정 대신들이 혹시나 휘말릴까봐 두려움에 떨던 내용이 있었는데, 이런 잇달은 대학살에 공포를 느낀 문신들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중부 세력에 붙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9] 정중부가 명종을 세웠다보니 명종과 정면으로 척을 지는 것은 상당한 부담행위였다. 정균이 명종에게 반항조차 못하고 삭탈관직을 당할 정도로 공생관계였던 것인데 정중부가 정균의 일로 상당한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고, 경대승은 이 일로 정중부 일파를 확실히 척결하겠다고 확고하게 마음을 정한다.[10] 대의랍시고 거병했다가 타락하여 파멸한 이의방이라는 예시가 제대로 각인되었기에 당연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11] 최충헌과 그 핵심 인사들의 경우 워낙 서로 인척관계, 혈연관계 및 동일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던 데다 최충헌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매우 치밀한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동생과 생질이 반기를 들다 진압된 이후에도 정권 내부의 결속력은 크게 해를 입지 않았다.[12] 작 중에서 정권 수반을 차지했던 5명 중, 유일하게 난신적자로 조리돌림 당하며 마지막에는 참수형으로 처형된 뒤에 저잣거리에 효수된다. 이의방, 이의민은 그래도 무인답게 적들과 맞서 싸우다 사망했으며 경대승은 병으로 인한 요절, 최충헌은 천수를 누리면서 정권을 아들에게 넘겨준 것에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13] 이의민은 늦게나마 이의방의 영전으로 달려와 눈물을 뿌리며 명복을 빌고 복수를 다짐했다.[14] 다른 무인 집권자들은 처음에는 나름대로 대의를 품고 집권한 것에 비해 정중부는 처음부터 대의보다는 권력을 탐한 집권자라는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무인 집권자들은 대의에 공감한 이들이 곁에 있어 마지막을 함께 하거나 추모해준 반면에 정중부에게는 대의란 없고 권력만 탐할 뿐이니 주변 인물로 그런 인물 뿐이라 권력이 사라지니 모두 흩어진 것이다.[15] 다만 김보당의 난 당시의 조원정은 아주 용렬한 자는 아니었다. 조원정이 본격적으로 타락하고 치졸해지는 건 이의방이 죽은 직후 부터다.[16] 실제로 문벌귀족들은 정중부 세력과 결탁해서 자신들의 권세를 이어갔다. 이전과는 달리 독점하지 못할뿐 여전히 무신들보다 많은 수의 문신들이 관직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무신들과 친분이 있거나 환관들과 적대적이던 문신들은 무신정변에서 살아남았으며 정중부 역시 이들을 통해서 정권유지를 해야하는 만큼 우대했고, 무신들과 문신들은 혼인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문신들 중에서는 아예 대장군, 상장군 같은 무반직들을 겸하는 경우도 생겨났다.[17] 문신들만이 아니라 황제인 명종의 옆에 붙어있는 조환관 역시 정중부에게 우호적이었는데, 정중부는 환관들에게 재물을 뿌려대면서 회유를 하는 반면 이의방은 자신을 죽이려 한 환관들 외에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환관들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마구 휘둘러댔기 때문. 그 때문에 이의방 일파를 보는 조환관의 눈에 증오의 빛이 가득하며, 대놓고 이의방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분을 참는 모습을 보인다.[18] 다만 작중 묘사에 따르면 대령후가 황제에 올랐다면 자신을 귀양보낸 이들은 물론이고 이의방 일파조차 토사구팽시켰을 거라고 한다.[19] 정중부나 경진 같은 원로 무신들은 탐욕스러운 권신으로 타락한 후에도 두경승을 보면서 무반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자라며 호의적으로 평가했으며, 선배로서 이런 후배가 존재한다는 것이 기특하다는 시선을 보내곤 했다. 무반으로서 정규직을 거친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이유. 그러나 송유인과 정균은 초창기에는 충성심이나 무인으로써의 자부심이 남아있던 정중부 등과는 달리 정규적이지 않은 길을 걸었고 처음부터 충성심이나 무인으로써의 자부심 같은건 있지도 않았기에 정중부나 경진 등과는 생각이 달랐고 두경승을 그저 거슬리는 자로만 여겼다.[20] 조정을 다루려면 재물과 힘만으로는 안 되고 명분이 중요하다고 정균에게 가르치기도 하는 등 항상 명분을 활용했다. 이것이 문극겸과 염신약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으로 만들어버리고 둘의 반발도 조정의 공론에 반발하는 소수의 의견으로 만들어버리는 교활한 책략의 근원이었다.[21] 당장 정중부는 멋대로 막나가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조정의 뜻을 종합시켜서 내세우는 식으로 나섰다. 정균의 경우는 조정신료들을 그냥 다 죽이고 막나가려 하지만, 정중부는 저들이 없이 어떻게 조정을 운영하냐고 화를 내는 등 조정신료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식으로 표면적으로는 조정의 뜻으로 내세우는 방식을 택한다. 태자비의 폐위 때 자신의 뜻을 멋대로 조정의 뜻인양 왜곡했다고 반발하던 문극겸과 염신약도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실상 사죄를 표한 정중부의 태도에 반발이 저지되고, 다음부터는 조정의 여론을 모아서 내세우다보니 둘의 의견은 소수의 의견이 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22] 그냥 때렸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는 역사서의 기록에서 한층 더 나아가 김돈중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내던져 잔치상을 박살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23] 이 때문에 정중부나 경진은 두경승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들이 생각난다고 기특한 후배로 보았는데, 이들과의 차이점은 두경승은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24] 작중 표현을 그대로 적자면 김보당군은 정중부가 혼자서 출전해도 진압할 수 있다고 장담할 만큼 그 세력은 별거없으나 폐위된 의종의 복위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의종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황제를 핍박한 만고의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인데 공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에 상황판단을 못하고 무작정 출전하겠다는 정균을 보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25] 사실 이의방은 서경 반란이 진압되는 대로 거병할 생각이었고, 이게 성공한다면 고려가 멸망하거나 황제의 아버지가 된 이의방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을 판이니, 정균의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정균이 이의방의 의중을 알고 행동한 건 아니다.[26] 사소한 것에서도 갈등을 보이는데 순주를 황궁에 심는 것도 여자를 믿지 못한다고 반대하는 정균을 설득해보려고 하지만, 정균은 "소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무시하듯이 답하면서 자리를 나가서 임씨부인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임씨부인의 건을 그저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던 정중부는 아들에게 평생 마음의 상처가 될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감정적인 아들의 마음을 여자에 빠져서 야심도 버린 한심한 놈이라고 질책하는 등 아버지로서 잘 헤아려주지 못하는 등 냉정하게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서만 여겼지 아들을 상냥하게 대해주지 못했다.[27] 이 때 정중부가 상냥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서 원망에 물들어있던 정균의 마음을 무너뜨린 것도 있다.[28] 물론 정균도 아예 생각이 없던건 아니고 견룡군 대신 해주 가문의 병사들로 황궁을 지키도록 하고 나중에 허승을 죽이려고 하는등 나름대로 대비는 했으나 문제는 정균과 송유인은 술에 취해 있느라 손을 쓸 수가 없었고 해주 가문의 병사들에겐 아직 허승이 아군으로 인식되었다. 더욱이 황궁 내에 있던 정균의 부하 상당수는 자체 부하가 아닌, 허승이 정균에게 바친 비밀 계원들 내지는 견룡군이었던 것이 문제다.[29] 물론 본작에서 경대승을 많이 띄워주긴 하지만 경대승도 사람이라 당연히 희로애락이나 감정이 드러나는 만큼 아버지나 자신이 당한 치욕에 대한 원한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중부 입장에서는 당장에 벼슬을 떼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었던걸 어찌됐든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버렸으니 경대승에 대한 분노가 컸을 것이다.[30] 정중부가 원한건 조정의 영수 자리와 더불어 본인의 아들과 사위가 권력의 핵심에 서서 해주 가문을 고려 제일의 가문으로 만들어주길 바랬던거지 역성혁명을 일으키려던게 아니었다.[31] 정중부와는 반대로 훗날 이의민은 최충헌에게 자결을 허락받았음에도 자결을 거부하고 최충헌에게 참수당하는 것을 선택한다.[A] 물론 말이 좋아 동료와 수하지, 이의방과 이의민, 이의민과 박존위처럼 서로 신뢰하는 관계도 아니고, 경진의 경우처럼 수틀리면 언제든지 내쳐버리고 정중부 일가가 권력을 장악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쫒아내거나 죽여버리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정중부의 말에 찬성하는 것밖에는 없었고 죄다 이익으로 매수한 관계였으니 수틀리면 배신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32] 물론 문극겸과 염신약의 주장은 단순한 옹호가 아니라 원칙주의에 입각한 변호였다. 정중부가 권력을 휘두른 난신적자인 것은 맞지만 반역을 저지른 증거가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도 정중부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권신이기는 했지만, 황위를 찬탈하려는 욕심에서 반역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중부가 노리던 것도 고려 제일의 명문가였고, 마지막 사직하기 전에도 정균송유인에게 고려 제일의 명문가로 이끌어 달라는 것이었지 황제가 되라고 하지는 않았다.[33] 가공인물은 아니고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무인시대에서는 정중부가 해주 가문에서 불러왔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권력이 극한으로 치닫자 쓸모없어져 내치려고 하고 있었고 무릎꿇고 사정해도 무시했던 상황.[34] 이전에 순주가 자신을 토사구팽한 정중부를 향해 복수하겠다고 할 때 정중부는 "감히 네 년 따위가?" 하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다.[35] 원래 대본에는 '내가 거병을 하지 않았더라면 편안히 천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내용의 대사가 몇 줄 더 있었지만 유언치고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뒷부분 대사는 전부 쳐냈다.[36] 앞서 언급했듯이 정중부는 권신이었을뿐, 반역을 꾀하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부정하지 않는다. 정중부가 모든 것을 체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 다른 죄로 혹은 정치판에서 파워 게임에 밀려서 사형을 받는 것과 대역죄로 사형을 받는 것은 명예가 목숨과도 같은 대신(大臣)에겐 엄청난 차이다.[37] 이때 공예태후의 표정 연기도 대단한데, 화내지도 웃지도 못한 슬픈 표정으로 정중부를 바라봄으로써 마치 옛 추억과 회한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38] 물론 이의민에게 대놓고 명을 내린건 이의방이지만 그에게 뒤에서 사주한건 궁예태후였기에 이의방과 황실의 합작이라고 봐야 옳다.[39] 실제로 이의방 살아 생전엔 이의방의 일갈 한방으로 정중부와 경진을 비롯한 노장파 인물들 상당수가 데꿀멍한건 물론 이의민을 처형할 것을 주장하는 무인들 상당수가 이의방에게 빌붙어서 하하호호 하며 따를뿐 잠시나마 대놓고 이의민을 적대한 두경승이나, 이의민을 역적이라고 일갈하며 죽이려한 조위총과는 달리 한마디 불평의 말도 없다가, 이의방 사후에서야 모든 책임을, 서경에서 반군과 죽기살기로 싸우느라 바빠 자신을 방어할 발언의 기회조차 없는 이의민에게 덮어씌워 군부에서 축출하고 처형시키자는 결의를 모으는건 속이 뻔히 보이는 의도며, 이같은 두경승의 말을 듣고 오광척 같은 깨어있는 일부 장군들이 반성하고 조원정의 뜻에 반발함에 따라 이의민은 대장군 자리를 유지할수 있었다.[40] 금나라 황제의 의도를 간파한다던가 순주가 정중부의 간자노릇을 하고 있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던지 등. 그러나 정중부 정권 당시 초반부터 꼬이게 만든 것은 공예태후의 잘못이 컸다. 애초 정중부가 아무리 노회하다고 한들 그렇기에 타협할 여지가 있으며 69세라 은퇴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아 오히려 젊은 이의방보다 훨씬 이용하고 상대하기 쉽다는 것을 간과한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