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계획 (r5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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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attan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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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위치
3. 과정
4. 영향
4.1. 일본 제국의 항복
4.2. 공포 위의 평화
5. 이후
6. 기타
7. 관련 문서
8. 같이 보기
9. 창작물에서의 등장
9.2. 만화책
9.2.1. 등장 국가
9.2.2. 등장 인물
9.2.2.1. 미국
9.2.2.2. 독일
9.2.2.3. 소련
9.2.2.4. 일본



1. 개요[편집]


"이제 우린 다 개새끼들이야.(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

케네스 베인브리지. 첫 원폭실험 후 자괴감에 휩싸이며 한 말.


if I had foreseen Hiroshima and Nagasaki, I would have torn up my formula in 1905.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We knew the world would not be the same. Few people laughed, few people cried, most people were silent. I remembered the line from the Hindu scripture, the Bhagavad-Gita. Vishnu is trying to persuade the Prince that he should do his duty and to impress him takes on his multi-armed form and says,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1]

I suppose we all thought that, one way or another."

"우리는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나아갈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지만,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다. 난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비슈뉴는 왕자가 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여러 팔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파괴의 신이 되었도다."[원문]

[2] 아마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녹화 영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서 주도하고, 영국, 캐나다가 함께한 극비로 개발된 무기개발 프로젝트[3]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만들어냈다.

참여한 학자들만 보더라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20세기 물리학 올스타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맨해튼 계획의 총 책임자는 미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 프로젝트 시작시점에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프로젝트 진행중에 소장을 달았다. 이 때문에 많은 문헌에는 그로브스 소장으로 등장한다.

2. 위치[편집]


맨해튼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기밀이었으며 약 30군데의 시설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중추적인 곳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이 있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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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크리지 - 테네시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맨해튼 게획의 본부였다.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었고, 현재는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ORNL)가 자리해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ORNL은 로스 앨러모스와 더불어 도시의 중대한 밥줄이다.
  • 리치랜드 핸포드 - 최초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 현재는 폐로 중.
  • 로스 앨러모스 - 핵무기 설계 및 연구시설로 뉴멕시코 주에 있다. 좀 유명하다 싶은 과학자들이 꽤 많이 몰려서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론 리처드 파인만 같은 사람들. 리처드 파인만의 경우엔 이론팀에서 근무했다.
  • 버클리 - 핵개발을 실질화 하기 위한 이론적 장소. 1939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 버클리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한 어니스트 로렌스 주도하에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곳에서 로렌스는 "입자 가속기" , "핵에너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나이" 라고 불리었다. 로렌스가 개발한 입자 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은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및 핵분열에 필요한 새로운 입자 발견에 사용되었다. 덧붙여 UC버클리에서 플루토늄, 버클륨, 로렌슘, 캘리포늄 등, 원소 주기율표의 92번째인 우라늄부터 106번째인 시보귬까지 발견되었다.

3. 과정[편집]


1939년 레오 실라드가 주장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에 의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자그마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13만 명 규모까지 성장했고,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4], 2017년 기준으로 따지면 255억 2천만 달러(대한민국 원으로 따지자면 약 29조 3,480억 원, 2010년경 한국 국방예산과 맞먹는다.)가 들어간 거대 공학 프로젝트이다. 특히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시작으로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을 모두 여기에 동원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우라늄의 유통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히틀러를 필두로 한 이 광기의 집단이 핵무기의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이 작전을 허가하였고[5], 루스벨트 사망 후 대통령이 된 해리 S. 트루먼은 이 프로젝트를 알자마자[6] 최대한 빨리 핵폭탄 개발을 완료할 것을 촉구했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인 미국과 유럽을 지키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예산이 무한정 지원되는 크고 아름다운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류 학자들 수천 명이 수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 그 가능성은 점점 실체화되었다.

결국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종료되며, 이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의 이름이 트리니티고 사용된 폭탄의 이름은 가젯(gadget)이었다.

맨해튼 계획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군사작전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알려진 것처럼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R. Groves Jr.) 미 육군 소장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총 책임자가 아니라 로스 앨러모스의 연구소 소장 신분이었다. 물론 핵폭탄 자체를 개발하는 이론-기술 분야 전반에 대해선 오펜하이머가 사실상 총책임자가 맞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총괄 지휘, 즉 인력 확충이나 예산 반영, 부지 및 원료의 계약 부분 등은 그로브스가 맡았다.

그로브스는 미 육군 공병단 소속으로 대령 시절 미국 국방부 신청사(사람들이 보통 펜타곤이라 부르는 그 건물)를 6개월이라는 가공할 속도로 완벽하게 건설해냄으로써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공로로 준장에 진급하고, "펜타곤 잘 만드는 솜씨를 보니 원자폭탄도 잘 만들겠군?"이라는 상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관료주의의 벽을 깨고 기라성 같은 수많은 과학자들을 이끌면서 협박도 해가면서 맨해튼 계획을 완벽한 성공으로 이끌었다.

4. 영향[편집]



4.1. 일본 제국의 항복[편집]


2차 대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전력과 그로 인한 연이은 패배, 경제 및 플랜트의 붕괴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1%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은 1억 총옥쇄, 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등 헛된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시된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일본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으나, 30만 명 안팎이라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피해만 입고 자신들의 제도를 보존한 채 전쟁을 종료하게 되었다. 괜히 오기부리다가 나라하나 잿더미가 될 뻔하다가, 큰 손해는 면한 셈이다.

한 국가에서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가장 큰 경우는 지상군이 국토를 들쑤시고 다니며 싸우는 것으로, 말 그대로 국토가 전장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지경까지 가진 않았고 폭탄 투하와 공습만 당했기에 사망한 민간인은 전체의 6~8%도 되지 않았으나[7] 6.25 전쟁에서는 국토에서 직접 보병들이 싸우며 전장이 한반도에서 일어났기에 사망한 민간인만 10~20%에 달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2차대전 때 독일인과 러시아인, 중국인이 많이 죽은 이유도 그들 국토가 전장이 되어서였다.[8]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고, 맨해튼 계획과 몰락 작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원자폭탄 투하의 소식을 들었기에 핵개발에 실질적으로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계획에 대해 상당히 자조적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핵개발에 참여한 맨해튼 계획의 연구진 중에는 아인슈타인처럼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으나, 존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원폭투하에 대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핵무기로 인한 조기 항복이 없는 상태,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상태였다면 원폭 투하나 항복 없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비록 핵무기가 없더라도 수많은 일본인이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4.2. 공포 위의 평화[편집]


가장 강력한 전쟁무기인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역설적으로 강대국끼리의 전면전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적국을 공격하게 되면 조국도 멸망하게 되는, 전쟁을 시작하면 누구도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호확증파괴가 대두되면서, 인류는 인류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힘의 공포로 인해 세계 대전과 같은 거대한 전쟁이 종식되고 계산된 평화가 도래했다.

5. 이후[편집]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에너지부(당시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에서는 이 시설들 중 3곳을 국립 연구소로 지정[9]하였으며, 현재는 핵무기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관은 에너지부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국립 연구소로는 아르곤 국립 연구소[10],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등이 있다.

지도에 나와있는 캐나다 초크 리버(Chalk River) 연구소에서도 맨해튼 계획에 대한 연구가 벌어졌는데, 이런 연구로 인하여 캐나다는 1945년 11월에 세계 2번째로 원자로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여기서의 삽질인 ZEEP(Zero Energy Experimental Pile)이 발전하게 된 것이 CANDU이다. 캐나다가 중수로를 삽질한 것도 맨해튼 계획 당시 중수를 생산하던 공장이 캐나다에 있어서였다.

6. 기타[편집]


프로젝트 이름이 맨해튼이지만 실제 뉴욕맨해튼과는 별 상관이 없다. 프로젝트가 미국 전역에서 나누어 진행되었지만 그 중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미군 공병부가 맨해튼 거리에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맨해튼 기술국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맨해튼 페리 투어 가이드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연구진들이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과학관에서 연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엔리코 페르미가 주도한 원자로 실험은 대학의 라켓볼 코트에서 이루어졌다.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위장하기 좋았다고.

또 우라늄을 분리해내기 위한 입자가속기 건설에 전선용으로 대량의 구리가 필요했는데, 전시상황이라 구리 수급이 쉽지 않았다. 현대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으나 당시 기술력상 추출 방식이 복잡했기 때문에 생긴 일. 미 정부는 구리를 구할 수 없자 대범하게도 무려 1만 3천 톤의 은을 가공하여 대신 사용했다.[11] 물론 개발이 끝나고 나서는 시설을 꼼꼼하게 다 뜯어내고 은을 모두 찾아내어 회수했는데 수 킬로그램 정도의 손실밖에 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 Y-12 프로젝트에 맨해튼 게획 예산의 절반이 들어갔다.

미국은 맨해튼 계획 완수 이후 '앞으로 장기간 미국이 유일한 핵보유국이다'라는 전제 위에 모든 전후처리를 결정하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차피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의 핵무기 때문에 소련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 대인배의 풍모를 보인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런데 4년 만에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면서 모든 게 망했어요...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국공내전의 공산당 승리 직후에 김일성의 남침 주장을 스탈린이 승인한 게 의미심장하달까... 소련도 핵무기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2차대전 동안 이론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핵분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문과 기사가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소련 과학자가 미국이 핵분열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도 했다. 결국 맨해튼 계획에 간첩을 투입하여 미국의 연구개발 자료를 빼돌렸다. 자신들의 이론 연구와 엄청난 돈과 인력을 퍼부어서 실험한 미국 쪽 자료를 바탕으로 단시간 안에 핵무기를 만들어 1949년 8월, 첫 원폭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미국 과학자들은 대부분 소련 따위가 어떻게 핵무기를 만드느냐는 입장이었지만 이로 인해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특히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퇴임 이후에도 "난 소련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2차대전 말 미국은 낙후한 과학기술과 폐허가 된 국토의 재건 때문에 소련의 핵무기 개발은 최소 20년 이상 걸린다고 예측하였다.

7. 관련 문서[편집]



8. 같이 보기[편집]



9.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국가 불가사의로 등장하며 한 문명이 개발하면 모든 문명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모든 문명이 소련처럼 첩보질을 많이 해서 그런가? 문명 5에서는 개발한 문명에서만 핵을 만들 수 있다.

슈퍼파워 2에서는 외교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국가를 핵 공격 시, 다른 모든 핵보유국들에게 핵 보복 공격을 받게 된다.

캐나다의 락밴드 러시는 이 계획과 더불어 이 계획의 결과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다룬 동명의 노래 Manhattan Project를 발표하기도 했다.

Braid는 워낙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게임이지만 가장 메이저한 해석은 이 맨해튼 계획을 다룬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왓치맨의 등장인물인 닥터 맨하탄은 이 계획에서 따 붙여진 이름이다. 작중에서 나오는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의 히어로명은 '미국의 적들이 두려워할 만한 호칭'이라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남북전쟁남부연합의 승리로 끝나 미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세계를 그린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2차대전 시기에 독일 제국북부에서 독자적으로 자신들만의 맨하탄 계획을 발동시킨다. 문제는 북부의 경우, 남부연합의 게릴라 부대와 남부연합군이 개시한 연구소 편도 폭격으로 인해서 자체적인 핵개발이 무산되고 만다. 결국 북부의 핵개발은 독일이 제공한 연구결과를 통해서 핵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빅뱅 이론쉘든 리 쿠퍼가 여자친구인 에이미와 잠시 헤어진 에피소드에서 쿠퍼는 이별의 충격으로 이 계획에 참가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딴 고양이들을 키웠던 적이 있다.

아이언맨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이 계획에 참여했다고 나온다. 군수물자를 생산/개발하는 미국의 천재 과학자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런데 정작 아들인 토니 스타크는 어벤져스에서 세계안전보장이사회치타우리의 지구 침공을 막고자 맨하탄에 발사된 핵미사일을 막아내게 된다. 결자해지?[12]

팀 포트리스 2에서는 데모맨의 핼러윈 모자로 핵폭발 버섯구름을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있는 만(Mann)해튼 작전을 얻을 수 있다. 드랍이 되지 않으므로 거래를 통해 구하자. 사실 맥주거품 같다는 의견도 있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나치 독일이 다트 이슈드의 우월한 기술력을 훔쳐서 전쟁에 승기를 잡고, 현실 역사와는 반대로 1948년 12월 21일에 뉴욕에 핵을 투하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후속작에서 핵으로 폐허가 된 뉴욕시를 뒤지다 보면 나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 미국도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참여한 9명의 과학자가 갑자기 모두 살해되는 바람에 끝내 핵폭탄 개발에 실패하고 만다.

9.1. 듀크 뉴켐 시리즈[편집]


듀크 뉴켐 3D의 후속작들 중 하나. 듀크 뉴켐 3D에 비해 좀 더 본격적인 3D화해서 나온 작품이다. 하필 발매시기가 듀크 뉴켐 포에버 전이라서, 이 게임을 듀크 뉴켐 포에버로 알고 있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3D이지만 진행 방식은 횡스크롤식. 즉 록맨 X8 같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원래 이 작품의 최종보스는 Dr. 프로톤이 될 예정이였다. 실제로도 로봇 과학자라는게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고. 하지만 무슨 사정으로 인해 메크 모르픽스(Mech Morphix)라는 이름으로 변경. 대신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 등장할 예정...이였으나 다시 짤렸다가 DLC에서야 보스로 등장!...했으나 최종 보스가 아닌 중간 보스로 나왔다... 프로톤 입장에서는 현실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충격과 공포였을지도.

9.2. 만화책[편집]


Manhattan Project

2012년 3월부터 미국 이미지 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만화. 글 조나단 힉맨(Jonathan Hickman), 그림 닉 피타라(Nick Pitarra). 11화까지 출판되었다.

일단은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당대 로스 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맨해탄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로 보이나, 실상은 약을 거하게 들이마신 판타지물. 실존 인물을 따서 만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도덕과 윤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지 오래이며, 하나같이 사격과 격투술에 능하며, 이미 인간을 초월하거나 인간이 아닌 인물도 있다.

2017년 시공사를 통해 한국에도 정발 예정이다. 한국 정발 제목은 맨해튼 계획이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9.2.1. 등장 국가[편집]


  • 미국: 가장 현실의 미국과 비슷해 보이나 프리메이슨이 권력을 잡고 있는 등 정상은 아니다.
  • 소련: 퉁구스카에 떨어진 외계 기술을 이용하여 비밀 우주기지 '스타시티'를 운용하고 있으며, 해파리 같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배양하는 로봇의 인공지능으로 사용하는 등 실제 소련과 비교해봤을 때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 일본: 작중 시작시점에서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 중. 하지만 승려의 생명을 이용한 순간이동장치인 '토리이'와 자율전투로봇인 '카미카제'를 운용하는 등 실제 일본 제국보다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순식간에 핵 맞고 항복한 후 기술 셔틀로 전락한다.

9.2.2. 등장 인물[편집]



9.2.2.1. 미국[편집]


9.2.2.2. 독일[편집]


9.2.2.3. 소련[편집]


9.2.2.4. 일본[편집]

[1] "am become"은 현재완료시제의 고어적 표현이다(have + pp에서 have 대신 be가 들어감).[원문] अमी हि त्वां सुरसंघा विशन्ति केचिद्भीताः प्राञ्जलयो गृणन्ति । स्वस्तीत्युक्त्वा महर्षिसिद्धसंघाः स्तुवन्ति त्वां स्तुतिभिः पुष्कलाभिः[2] 시드 마이어의 문명시리즈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면 나오는 대사이기도 하다.[3] 현재에도 이 정도의 기밀사항으로 개발된 무기들은 F-117이 유일할 정도다.[참고] Feasibility, Bomb design concepts, 영문위키.[4] 당시 M4 셔먼전차의 평균 가격이 $47,000으로 약 43,000대를 생산가능한 금액이다.[5] 여기엔 약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루스벨트와 독대하여 핵무기 개발을 중요성을 역설해야 할 자리에서 닐스 보어는 중언부언 늘어놓는 대신에 로버트 풀턴증기선 개발 지원을 거부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야기를 하였다. 기술에 대한 무지가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진다고 암시했던 것. 이에 루스벨트는 아무 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바로 맨해튼 계획을 허가해준다. 단, 여기선 닐스 보어가 설득을 위해 꺼낸 이야기이지만 객관적인 역사학의 관점으로 보면 이런 비유는 정확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나폴레옹에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폴레옹 문서 참조.[6] 다시 말해 부통령도 모르던 기밀 프로젝트였다. 출처[7] 전쟁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오키나와에서 비율이 높다. 미군 보병들이 직접 상륙해서 벌인 오키나와 전투가 일본 땅에서 벌어진 지상군 전투의 처음이자 절정이었다. 유럽의 지상 전투들처럼 양국 군인의 피해 + 국토 폐허화 + 민간인들 다수 희생 등이 이루어졌다.[8] 전쟁에서 공습과 폭탄투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적 목적이 더 강하다. '우리는 이렇게 적은 비용으로 너희 민간인들을 많이 쓸어버릴 수 있다' 라며 그 상대국가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2차대전은 국가주의/민족주의가 절정에 다른 시기였기에 상대국의 민간인을 죽여서라도 적의 의지를 끊어서 항복을 받으려는 시도가 많았다.[9] 로스 앨러모스, 오크리지, 버클리 방사선 연구소(현재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10]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체인 리액션에서 싱크로트론이라든가 중수소 실험실이 있는 연구소가 아르곤 국립 연구소다.[11] 전기 전도율은 사실 구리보다 은이 좋다. 구리가 훨씬 싸서 구리를 쓰는 것뿐이다.[12] 물론 본 문서 초반에 서술되어 있듯이 실제론 뉴욕의 맨하탄에서 진행된 계획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