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조선)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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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 어떠한 명분도 없이 보위에 오른 왕
조선의 제7대 임금. 묘호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임금이 되기 전 군호인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4]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 왕조의 기반을 완성한 군주. 그동안 평가가 여러모로 엇갈리는 군주로 어떤 점에 집중할 것인가에 따라 폭군에서 군주권의 강화에 노력한 노련한 군주까지 평가가 다양하다. 정권과 정치색에 따라서도 평가가 갈리는데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한 사례가 두 차례나 있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관련하여 그래도 알고 보면 꽤 좋은 놈이라는 평가를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받았었다. 때문에 1970~80년대의 평가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 1990년대 이후의 평가가 매우 상반된다.[5] 2010년대 들어서는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 심해져서, 아예 '군사정권에 의해 거품만 잔뜩 낀 정통성도 없고 업적은 더더욱 없는 암군'으로 격하되거나 심한 경우 '선대가 기반을 잘 다져놓은 조선을 졸지에 헬조선으로 만들어버린 만악의 근원이자 천하의 개쌍놈[6] '이라는 극단적인 악평을 듣기도 한다. 묘호가 아닌 군호 혹은 아예 대놓고 본명으로 부르면서 개무시하는건 거의 일상 수준. 예를 들어 위 각주에서 소개한 디시위키 수양대군 문서라든가(...).[7]
다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지나칠 정도의 고평가를 받고 있는 군주란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도 세조는 정치적 실책과 무리수 및 잔혹한 숙청, 심각한 패륜 등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물론 포악한 성격의 군주는 굳이 세조 뿐 아니라 세계사는 물론이고 한국사에서도 숱하게 보이는 편이지만, 치세의 내용이나 업적 등이 이런 행적을 무마할 정도로 좋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2. 세조/대군 시절[편집]
3. 세조/국왕 세조[편집]
4. 세조/인간 세조[편집]
5. 세조의 능[편집]
광릉 문서로.
6. 어진[편집]
이 사진은 1935년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이당 김은호 화백이 당시 궁에 보존되어 오던 세조의 어진을 이왕직의 주문으로 새로 이모해 그려내는 광경을 담은 것이다. 출처 하지만 사진 자체가 원래 원본과 모사본 자체를 찍으려고 촬영한 게 아니라 모사본을 만드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라 어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의하면 1928년 원종과 세조의 어진을 모사했던 김은호가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내에 새로 건립된 김경승 作 세종대왕 동상의 고증에 대해 지적하면서 '1928년 당시 작업했었던 세조의 어진에 거의 수염이 없었다', '아들인 세조의 얼굴과 역시 수염이 성근 편인 태조의 얼굴처럼 세종의 얼굴도 그닥 수염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바가있다.
또한 이 신문에는 세조 어진의 초본이라고 하는 사진도 실려 있었는데 선원보감본 어진과는 전혀 다른, 전체적으로 둥근 얼굴형에 광대뼈가 드러나고 수염이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2016년 11월 16일 옥션블루(링크)에 그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세조 어진의 초본이 출품되었다.링크 본인의 행적과는 180도 딴판의 너무나 순박하고 선량해보이는 얼굴에 충격을 받은 네티즌들이 많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낙찰받았으며 곧 복원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안태성 교수가 최근에 발견된 세조의 어진 초본으로 디지털로 복원한 어진.
합천군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세조 어진(1458년). 둥그런 얼굴형, 숱이 적은 수염 등이 왕실 공식 어진과 비슷하여 상상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선원보감(왕실 족보) 속 그림이다. 관상학에선 하관이 넓은 것을 좋은 관상으로 여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어진이나 초상화가 남아 있으면 그것대로 캐릭터를 그려내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세조에 대해서는 하관도 비범하고 수염도 파워풀한 이런 개성 있는 생김새를 고증하지 않았다. 도리어 조금 왜소하고 광대뼈가 드러나는 얇은 수염의 소유자로 그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발견된 세조 어진 초본과는 180도 딴판으로 생긴 것이 문제다. 영조나 철종어진과 같이 교차검증을 해보면 선원보감이나 열성어진에 실린 어진들이 신뢰성이 낮고 그린이의 주관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1970년대까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복개당에 모셔져 동제를 받았던 전(傳)세조 존영도. 신수동 복개당은 노인정 공사로 철거되었고 전 세조존영도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일본인이 그의 어진을 그린 적도 있다 한다. 자세한 내용은 어진 문서 내의 조선 세조 문단 참고.
7. 사극[편집]
계유정난과 관련한 사극이 워낙 많아서,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 중 한 명. 이 시대를 다룬 사극이 대부분이 그렇듯 누구를 주인공으로 보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극과 극을 달린다. 세조를 주인공으로 하면 '고뇌하는 인간적인 군주', '구국을 위해 오명을 감수한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단종의 비극이나 사육신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에서는 권력욕에 광분해서 조카(단종)를 몰아내 죽이고 친동생들(안평대군, 금성대군)마저도 죽이는 등의 패륜도 서슴치않는 폭군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더불어 30대에 병사한 문종 역을 40~50대 이상의 배우들이 맡게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세조 역은 문종 사후부터 다루는 시간이 긴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중견 연기자가 맡을 수밖에 없는데 그 형을 동생보다 어려보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왕과 비에서는 임동진씨가 세조를 맡았다, 여기서는 형인 문종과의 약속을 두고 단종을 몰아내고도 그 처우에 대해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려졌으며, 말년에는 죄의식으로 고뇌하고 고통받는 군주로 그려진다, 말년에 그가 묻힌 무덤 앞에서 단종의 혼령이 춥다고 꺼내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홍위야! 내가 꺼내주마! 조금만 기다리거라!"하며 울면서 무덤을 파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파천무-1990에서는 왕 역할을 주로맡는 유동근이 수양대군시절부터 세조의 즉위후 얼마간의 치세까지 연기했는데, 다른 사극에서와 달리 왕위찬탈과정과 유지에서 심적으로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섬세한 지식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정적에게는 잔인할정도로 차가운, 수하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남자다운 캐릭터로 그려냈는데 해석은 연출자와 작가의 몫인만큼 다른작품들과 비교해보는것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는다.
흔히들 공주의 남자에서의 김영철 이 분했던 세조가 '역대급' 이라고 불리나 파천무에서의 유동근이 세조의 대군시절의 모습에 나이나 분위기로 보아서는 더 가까웠다고 보인다. 훗날 즉위후에 그려진 캐릭터에서는 김영철씨의 세조가 더 유사했다고 보는사람들이 많다.
퓨전 사극이 아닌 의외로 한명회(서인석 분)나 왕과 비(임동진 분)같은 정통 사극들에서 인간적이고 영웅적인 인물로 등장하곤 하는데 사실 이는 미화가 매우 지나친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단종실록과 세조실록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데서 나오는 현상으로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보면 김종서나 안평대군, 혜빈 양씨가 역적이고 오히려 수양대군의 위기 상황이나 그 속에서의 호탕함이나 대인배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그대로 사극에 녹아들어 수양의 영웅성과 고뇌만을 강조하는 캐릭터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다루는 방송매체를 볼때에는 비판적 시각에서 내용을 해석할 줄 아는 신중함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순재는 파천무에 이어 공주의 남자에서도 김종서 역을 맡아 세조에게 참살을 당한다. 군사정권 시절에 쿠데타를 미화하려고 했다는 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당장 2010년대만 해도 세조미화물인 인수대비 같은 드라마가 나오는걸로 봐선 그냥 작가가 실록을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이런 작품들이 나온다고 봐야 한다. 당장 박정희때만 해도 이예춘[8] 이 인간쓰레기 수양대군으로 나온 단종애사가 인기를 끌 정도였다고 하니...
퓨전사극인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영철씨가 세조 역할을 맡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정통 사극이 아닌 이 극이 묘사하는 세조가 역대 최고의 세조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교롭게도 파천무에서 세조 역이었던 유동근씨는 용의 눈물에서 태종 역을 맡았고, 김영철씨는 대왕 세종에서 태종 역을 맡았다. 김영철의 세조는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6회에서 김종서를 생각하며 가만히 "이 손으로 죽여 드리리다."라고 말할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 역대 세조 캐릭터 중 가장 미화가 덜하고 실제 세조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한다. 권력에 대한 욕구가 넘치며 정적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것. 특히나 정적이나 친족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역대 사극들의 세조와 가장 다른 점이다.
심지어 딸이 김종서의 아들을 좋아한다는 것마저도 이용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한편 엔딩에서 딸 세령이가 자결한 줄 알고 크게 상심하는 모습과 수 년이 흐른 뒤 그 세령이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은은한 미소를 날리는 모습에서 인간미 또한 넘쳐난다.
대왕 세종에서는 아역은 최민호, 성인은 서준영이 연기하였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진양대군으로 나온다. 성인으로 첫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최대의 정적이 되는 김종서와 나란히 나오는 장면. 세종을 도우면서 문자 창제에도 참여하지만, 시체 해부까지 하려는 일에는 반감을 가지고, 반정을 권하는 최만리의 충동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마지막회에서 세종이 모든 걸 알고도 "한 때 그런 마음을 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하진 마라."라고 다독이자 결국 뜻을 접고 수양대군이란 군호를 받는다.
인수대비(드라마)에서는 김영호가 연기를 펼쳤으나 앞서 김영철의 연기가 너무 후덜덜했을 뿐더러, 인상이나 성품이 순하게 나와서 야인시대 이정재 시절 만큼의 위엄이 나오지 않았다. 비중이 정희왕후(김미숙 분)나 인수대비(채시라 분)에 밀린 것도 한몫했다.# 결국 스스로 저지른 업보 탓인지 문종, 단종에 대한 악몽에 떨다가 절규하며 퇴장. 왕과 나의 김병세도 비교적 선이 가늘게 나온 세조로 꼽힌다.
북한에서 남한의 장비를 빌려 합작제작한 사육신에서는 최봉식이란 배우가 수양대군 역을 맡았다.
2013년 9월 개봉영화 관상에서는 이정재가 수양대군 역할을 맡았다.[9]
이정재는 이 작품에서 수양대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제로 치밀하게 관찰한것처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수양대군의 성격과 강한 권력에 대한 집착을 확실하게 소화해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김내경의 아들을 활로 저격해 죽이고나서 "저 자는 자기 아들 놈이 저렇게 절명할 것을 알고나 있었으려나? 난 몰랐네만..." 이라는 말 한마디로 뻔뻔하면서도 냉혹의 최절정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어, 얼마나 확실하게 수양대군 역을 소화해냈는지 보여준 절묘한 대목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함께 출연한 배우 김혜수가 관상의 시나리오를 읽고 수양대군 역이 탐났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러면서 수양이 실존인물이 아니었더라면 수양을 남장여자로 설정해 달라고 감독에게 조르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악역이지만 영화 속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으로 뽑혔다는 의미.
영화 제목처럼 관상이 주 소재인 영화다보니 수양의 관상도 표현하는데 수양의 상은 이리의 상. 물론 여기서도 보고 있노라면 왕이고 뭐고 간에 천하의 개쌍놈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 이정재의 연기와 맞물려 호쾌하면서도 간악하고 잔인한 세조의 면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수양대군의 첫 등장씬인 사냥을 마치고 걸어들어오는 장면은 BGM과 맞물려 엄청난 포스를 뿜어낸다...
8. 기타 관련 문서[편집]
- 경국대전
- 경진북정, 정해서정
- 계유정난
- 관세음보살예문
- 관음현상기
- 교식추보법
- 구급방 : 구급방의 복각판으로 구급방언해, 언해구급방, 구급간이방 등이 존재하고 있다.
- 국조보감
- 금강반야바라밀다경언해
- 금속활자
- 낙산사
- 능성 쌍봉사 감역교지
- 능엄경언해
- 단종애사
- 대반열반경소
- 대악후보
- 동국정운
- 동국지도 : 동국지도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며, 이 동국지도의 형태와 내용을 이어받은 동일계통의 지도로 국보 제248호인 조선방역지도와 보물 제1538호인 동국대지도가 존재한다.
- 동국통감
- 목우자수심결언해
-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 무경칠서주해
-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 법화경언해
- 병장설
- 병조선
- 봉선사
- 불과환오선사벽암록
- 불조역대통재
- 사법어언해
- 사후어제시
- 삼봉집
- 상원사
- 삼국사절요
- 석가여래성도기
- 석보상절
- 선종영가집언해
- 세조대왕연
- 식료찬요
- 쌍계사(3번 항목)
- 아미타경언해
-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 양우법
- 양화소록
- 역대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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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 도갑사 해탈문
-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 예념미타도량참법
-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
- 옛 보신각 동종
- 오음약보
- 원각경구결
- 원각경언해
- 원각사
- 원구악
- 월인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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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손 유서
- 적개공신교서
- 전폐
- 정명경집해관중소
- 조의제문
- 종묘제례악
- 종상법
- 주역전의구결
- 진법(병서)(오위진법)
- 진실주집
- 창진집 : 창진집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며, 대신 그 내용을 일부 이어받은 창진방촬요, 언해두창집요 등이 전해지고 있다.
-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
- 천태사교의집해
- 치평요람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훈사
- 흥천사명 동종
- 횡간
[1] 출처.[2] 실록에 매년 탄일하례 기록을 보면 9월 24일로 되어 있다.[3] 안태성 교수가 좌측 초본을 토대로 디지털 복원한 세조 어진 용안 출처링크 [4] 수양대군이 조선 세조라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므로 누구인지 모를 일도 없으며, 연산군 취급을 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멸칭으로 애용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무위키와 달리 항목명이 수양대군이고 세조라고 치면 수양대군으로 리다이렉트된다는 점에 주목하자(...).[5] 고우영 화백의 만화에는 아예 세조의 별명을 '쿠데타 리'라고 붙여놓았다.[6] 사실 인성면에서는 정말로 역대급 천하의 개쌍놈이 맞긴 하다.[7] 201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욕먹지 않는 조선시대 왕족들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묘호를 무시하고 군호나 본명을 멸칭으로 사용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까이는 인물은 능양군이나 민자영 정도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웬만하면 묘호로 불러준다. 2010년대 젊은 층에서의 수양대군의 인식이 얼마나 시궁창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부분.[8] 이덕화의 아버지.[9] 재밌게도 이정재 본인은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22대손으로, 어쩌고 보면 먼 항렬의 조상님을 연기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