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원/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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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축구 선수 권경원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프로 이전[편집]


서울오류초등학교 2학년에 축구부에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해 축구 명문인 경신중에 입학했다. 하지만 작고 왜소했으며 가정 형편마저 넉넉치 못했던 권경원은 이후 구산중, 장안중 등으로 전학을 갈 만큼 두각을 보이던 선수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에도 불러주는 학교가 없어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수원 계명고로 진학했으나 이 역시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고 만다.

이때 권경원은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는데, 바로 1년 간 브라질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어차피 빠른 92년생이기 때문에, 1년 동안 유학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최선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1년 동안 무려 16cm가 컸으며 기량도 키처럼 훌쩍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경쟁력 있는 유망주로 성장한 그에게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의 U-18 구단으로 막 창단한 영생고 축구부에 창단 멤버로 스카웃되며 1년 만에 진학할 고등학교가 없는 선수에서 프로 산하 유소년 선수로 환골탈태했다. 그렇게 영생고에서 조성환 감독 아래 우수한 센터백으로 성장한다.

영생고를 졸업하고 2011 K리그 드래프트에서 전북의 우선 지명을 받아 동기 이주용과 함께 동아대학교로 진학한다. 동아대에서 국가대표 수비수 및 주장 출신인 최영일 감독의 지도 아래 좌측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며 멀티 능력을 인정받았고, 2학년까지 동아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3. 전북 현대 모터스 1기[편집]


결국 2013년 전북이 우선지명을 행사해 전북 1군으로 합류하게 됐다. 영생고 1년 후배인 김현에 이어 영생고 출신 2호 선수가 됐다.

등번호는 27번을 배정받았다.

2013 시즌에는 파비우 레푼지스 감독 대행 아래 동아대에서 뛰던 수비형 미드필더 및 좌측 풀백뿐만 아니라 영생고 시절까지 주 포지션이던 센터백까지 여러 포지션에 걸쳐 실험 받으며 만족스러운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또한 당시 U-23 룰의 혜택을 받는 선수로 기대를 받았다.

3월 16일 경남 원정에서 좌측 스토퍼로 선발 출전하며 프로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ACL과 리그에서 꾸준히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4월 17일 대구와의 홈경기에 김상식과 호흡을 맞추며 클리시트에 기여했고, 프로 첫 풀타임 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윌킨슨, 정인환, 임유환이 좋지 못한 폼을 보였고, 특유의 왼발 빌드업으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7월 3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프로 첫 어시스트를 스로인으로 기록했다. 이 장면은 굉장히 황당한데, 이 득점이 그 유명한 이동국의 성남전 실수 득점이었다는 것.[1]

그러나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서 복귀한 이후 3선 자리는 김상식정혁에게, 센터백 자리는 국가대표 김기희와 각성한 윌킨슨에게 밀리며 후보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신인이 전북이라는 리그 리딩 클럽에서 리그 20경기, FA컵 1경기, ACL 4경기에 나서는 등 좋은 잠재력을 보여줬다. 특히, 팀의 레전드 김상식을 대체할 재목으로 평가받으며, 팬들에게 권씨앗 혹은 권새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

이듬해인 2014년에는 겨울에 새로 영입된 동갑내기 신인 이재성, 베테랑 김남일에게 밀렸고, 설상가상으로 여름에 신형민이 가세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겨우 리그 5경기, ACL 1경기, FA컵 3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4. 알 아흘리 클럽[편집]


2015 시즌을 앞두고 두바이 전지 훈련 중 아라비안 걸프 리그 소속 알 아흘리 클럽과 연습 경기를 했는데, 이 때 권경원의 플레이와 잠재력을 눈여겨 본 알 아흘리 클럽 감독 올리가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본래 최강희 감독은 권경원을 김남일과 신형민이 떠난 2015 시즌 전북의 중원을 맡을 적임자로 판단해 처음엔 만류했다. 게다가 두바이에서 출국날 기습적으로 미팅을 요청한 알 아흘리의 첫 번째 제안이 임대 이적이었기에, 최강희 감독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완전 이적 제의가 왔고, 수원에서 최강희 감독과 연이 있던 올리 감독 뿐만 아니라, 구단주인 왕자도 권경원에 대한 강한 구애를 펼쳤고, 거부할 수 없는 이적료를 들고 왔다고 한다. 결국 4년이라는 계약 기간과 함께 권경원은 알 아흘리로 이적했다.

등번호 21번을 받았다.

입단하자마자인 14/15 시즌 중반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해당 시즌 팀에 합류한 이후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엄청나게 경험치를 쌓는다. 특히 2015 ACL 준결승전에서 팀의 결승 진출을 확정짓는 극장골을 넣기도 하였다.

중동에 있는 동안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했는데, 이 선택이 그를 국대급 센터백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고, 2015/2016 시즌 아라비안 걸프 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016/2017 시즌 전반기에도 역시 주전으로 나서며 팀의 선두 질주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5. 톈진 톈하이[편집]


2017년 중국 갑급 리그에서 우승하여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한 톈진 취안젠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권경원을 영입해 달라고 구단 측에 강력히 요청했고, 구단은 파격적인 대우로 권경원을 영입했다. 이 때 이적료가 무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2위인 132억 원이었다.[3] 게다가 연봉 37억으로 5년 계약까지 맺었다.[4]

그러나 2017년 외국인 선수 규정이 바뀌며 슈퍼리그에서 아시아 쿼터제가 폐지되어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인 용병은 3명만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자, 2017 시즌 초반에는 출전을 거의 못 했다. 톈진의 외국인 선수앙토니 모데스테[5], 알레샨드리 파투, 악셀 비첼로 모두 유럽 빅리그 경험이 있는 수준급 선수들이었는데, 이 3명이 모두 나서게 되면 권경원의 자리는 자연스레 없어졌다. 이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직접 권경원을 영입해 놓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있던 칸나바로 감독은 "네가 벤치를 지키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다"며 권경원을 위로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쩌다가 출전한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감독과 프런트의 신임을 얻은 권경원은 이후 중국 슈퍼 리그의 다른 한국 선수들과는 달리 5월부터는 붙박이 주전으로 나서고 있다.#

그리고, 권경원의 맹활약에 힘입어 톈진은 2017년에 승격된 팀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4위를 차지하며 2018 ACL 참가 자격을 획득했다.[6] ACL은 아시아 쿼터가 적용되므로 권경원의 팀 내 입지가 한층 탄탄해진 셈이다. 권경원은 알 아흘리 시절부터 EPL의 주목을 받았으며, 중국에 와서도 맨시티, 아스날 스카우터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병역 의무가 남아 있기 때문에 실제 이적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듯.

권경원을 직접 발탁하고 중용했던 칸나바로 감독이 광저우로 이적하자, 최용수 감독이 떠난 후 바로 후보 신세가 된 홍정호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권경원은 그간 톈진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으며 홍정호와는 달리 리그 경기에서 큰 실수를 자주 범하지 않았으므로 후임 감독의 신임을 잃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후임 감독도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을 이끈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파울루 소자이므로 전 감독이었던 칸나바로 못지 않게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월 30일 톈진에서 열린 아챔 플레이오프 세레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준수한 수비로 필리핀 리그 우승 팀 세레스를 중원에서 봉쇄하며 2-0 승리에 기여했다.[7]

3월 2일 리그 개막전 허난 젠예 원정에서도 풀타임 출전했다. 팀은 모데스테와 비첼의 활약에 힘입어 2:0으로 승리. 2018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톈진 이적설이 터졌고 일각에서는 권경원의 군 입대를 염두에 두고 영입하려 한다는 설이 돌았으나, 다행히도 톈진은 이니에스타 영입설을 강하게 부정했다. # 그리고 이니에스타는 일본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하였다.

2018년 4월 4일, ACL 킷치 SC 원정에서 앙토니 모데스테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 이로써 톈진은 조 2위로 16강 진출 확정. 권경원은 조별리그에서 세트피스 전술의 핵심 역할을 맡으며 2도움을 기록했다.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주로 권경원 쪽으로 찬 후 세컨볼을 이용하는 전술이 자주 쓰였다. 5월까지 파투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

그러나 2019년에는 군 문제로 인해 K리그 복귀가 점쳐지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친정 팀 전북 이적이 유력하지만 본인이 밝힌 바로는 어느 팀으로 이적할지는 아직 모르며, 여름 이적 시장에 K리그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한다. 톈진과의 계약 기간이 3년 정도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윤빛가람처럼 국내 구단으로 임대 이적한 후 군경 구단에 입대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

2018년 8월 기준으로 톈진의 외국인 선수들 중 유일하게 개근 중이다. 악셀 비첼은 도르트문트로 이적, 앙토니 모데스테는 연봉 문제로 이탈, 알레샨드리 파투는 컨디션 난조로 계속 결장을 하고 있다. 다만 이렇게 외국인 선수들이 제대로 못 들어오자 톈진은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8월 19일 기준으로 리그 13위까지 내려왔다.

2018년 말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좀 더 입지가 넓어질 듯 했으나,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2019년 하반기까지는 K리그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2019 시즌 시작 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K리그 복귀가 확정되었다. # 톈진은 권경원을 전반기까지 뛰게 하고 여름 이적 시장에 대체자를 구하기보다는 아예 대체자를 일찌감치 구해 내년 시즌 전체를 소화하는 방안이 낫다고 판단, 이번 겨울 K리그 팀으로 복귀한 후 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주 상무의 추가 모집에 응할 계획이다.

소속 팀이 공중 분해되었지만 그동안 계속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였던 군 문제가 전화위복이 되었다. 군 제대 후 돌아왔을 때 구단이 정상화되었으면 좋고, 만약 해체된다고 해도 군 문제 해결 + 이적료 면제로 인해 좋은 조건으로 이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축구 커뮤니티에서 울산이 권경원 영입에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친정 팀 전북 현대 모터스가 오퍼를 보냈으나 뭔가 맞지 않아 센터백이 부족한 울산 현대에서 오퍼가 왔다. 이적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일단 톈진의 전지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파투도 마찬가지이다.

파투는 결국 팀을 떠나 브라질로 돌아갔지만, 권경원은 2019년에도 톈진에서 뛰는 것이 확정되었다. 아마 여름 이적 시장에서 K리그 복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3월 1일 광저우 헝다와의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뛰었으나, 팀은 0-3으로 참패했다. 이후로도 계속 주전으로 출전하며 풀타임을 소화 중이지만, 팀은 계속 지고 있다.

2019년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K리그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 윤빛가람의 선례를 따라 K리그로 임대 이적 후 상주 상무에 지원할 듯.

6월 29일 장쑤 쑤닝전을 마지막으로 잠시 팀을 떠나 전북 현대로 임대 이적했다. 이날 팀은 강팀 장쑤와 2-2로 비겼다. 권경원은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큰절로 작별인사를 했으며, 팬들은 권경원의 이름을 연호했다. 구단 측에서는 외국인 선수로서 팀에 2년간 헌신한 권경원을 레전드 취급하며 이적할 때 기념 동영상까지 만들어주기도 했다. #[8]

6. 전북 현대 모터스 2기 (임대)[편집]


기존에 전북에서 달던 27번은 문선민이 달고 있기 때문에, 알 아흘리와 텐진에서 달던 등번호 21번을 배정받았다.

김민재의 이적과 최보경의 부상으로 인해 센터백 자원이 홍정호, 김민혁뿐인 전북에 큰 힘이 되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복귀하자마자 대구 FC 원정, 울산 현대 홈 경기에서 연속 선발 출전했다.

파이널 라운드 첫 경기인 3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손준호의 프리킥이 상대 수비 맞고 뒤로 흐른 것을 마무리하며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했다. 팀은 3:0 완승을 거두었다.

리그 13경기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의 리그 3연패에 기여했다.

2019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에 최종 합격, 12월에 입대했다.

7. 상주-김천 상무 FC (군 복무)[편집]


1라운드 울산전에 선발 출전 했지만 워낙 울산이 강력했고 홈이었기에 팀의 4:0 패배를 막진 못했다.

별개로,원 소속팀인 톈진 톈하이가 해체를 하면서,전역후에는 FA가 된다.윤빛가람처럼 전역 후 선수 본인이 임대 되어있던 팀인 전북으로 갈수도 있다.

원래 팀의 주장이던 한석종이 전역하게 됨에 따라 주장직을 승계받게 되었다.

2020시즌 리그 총 23경기 1골을 기록했고, 같은해 11월 5일 2020 K리그1 시상식에서 베스트11 수비수 센터백 부분 수상을 차지했다.

상무 축구단과 상주시의 연고지 계약이 만료되고, 경상북도 김천시와 새로운 연고지 계약을 맺으면서 상무 축구단은 김천 상무로써 2부리그 K리그2에서 다시 시작한다.

다만 권경원은 2021 시즌 개막 전 부상을 당해 전역할 때까지 김천을 연고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주장직도 심상민에게 인계했다.

8. 성남 FC[편집]


2021년 7월 6일로[9] 군복무 기간이 끝나 전역하게 되었는데, 아직 권경원의 행선지는 불분명하다. 원소속팀이던 톈진 톈하이는 2020년에 이미 해체되었고, 고로 전북 현대 모터스가 톈진과 체결했던 임대계약도 더이상 유효하지 않아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상태나 다름없게 되었다. 선수의 차기 행보에 대해선 여러 루머가 있는데, 친정팀 전북과 장기 계약을 체결한다는 설, 김남일 감독이 있는 성남 FC과 계약한다는 설,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 설 등 현재로썬 확인이 불가능한 소문들이 많아 앞날을 점치기 힘들다.

전북 팬들 입장에서는 홍정호의 파트너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영입해야한다는 반응이며, 성남 팬들은 가능성이 없어 딱히 반응이 없는 편이다. 해외라면 J리그나 중동 쪽이 유력하며 선수 본인이 간절히 원한다면 유럽 진출도 노려볼만하다. 하지만 현재는 전북 또는 아시아 내 이적이 유력하다. 고향 서울을 연고로 한 FC 서울로도 이적 루머가 돈다고 한다.

그러나 7월 9일자 스포츠 동아 단독 보도로, 전북시절부터 남다른 친분이 있는 김남일 감독이 있는 성남 FC로 이적한다는 보도가 나오며 성남 FC에 입단하게 됐다. 7월 15일, 6개월 단기 계약을 체결했다. 등번호는 3번.

휴식기가 끝나고 8월 1일 K리그1 22라운드 광주 FC 전에서 선발출전하며 데뷔했는데, 공백기가 느껴지지 않는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리차드-이종성과 함께 주전 스리백으로 나서며 팀의 짠물 수비에 일조하고 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인 리그 24라운드 순연경기 울산 현대 전에서는 전반 29분 이스칸데로프의 프리킥을 헤더로 방향만 바꿔 선제골을 기록,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어려운 시기에 팀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수비수의 명성과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권경원의 합류가 성남을 강등의 수렁에서 구해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한 6개월이었다.

이번 시즌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리는데, 김남일 감독에 따르면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2021시즌 성남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18경기 출전 1골 1도움.

국가대표 탑급 센터백이 FA로 풀리니 여러 국내외 팀들이 군침을 흘렸고 특히 전 소속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로의 이적이 성사되는가 했으나, 울산 현대로 이적한 김영권의 이전 소속팀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다. 이적 과정에서 전북 김상식 감독한테 오겠다고 밀당해놓고 정작 본인은 감바로 간 셈이어서 전북팬들은 통수맞았다고 극대노하였다.


9. 감바 오사카[편집]


2022년 1월 1일, 감바 오사카에서 FA로 팀을 떠난 김영권의 대체자로 권경원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년.

등번호는 본인의 국대번호이기도 한 20번. 대표팀 동료인 주세종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4월 중순까지는 무슨 연유에선지 아예 명단조차 들지 못했다가, 4월 10일 시미즈 S-펄스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출전하진 못하였다.

4월 13일 오이타와의 J리그컵 A조 4라운드에 풀타임 출전하며 감바에서 데뷔전을 치루며 클린시트에 기여했고, 4월 17일 쇼난 벨마레와의 홈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J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리그 3번째 출전 경기인 비셀 고베와의 12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36분 헤더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오사카 데뷔골을 넣었다.

리그 22라운드 오사카 더비 홈경기에서 코너킥 상황 헤더로 선제 득점을 올렸으나 팀의 역전패를 막지 못했다.

이후 주장 미우라 겐타의 짝 자리를 두고 쇼지 겐과 주전 경쟁을 하며 시즌을 보냈다.

2022 시즌 리그 16경기 2득점, 리그컵 3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2023 시즌을 앞두고 지난 시즌 주전 경쟁을 하던 쇼지 겐이 가시마 앤틀러스로 떠나며 미우라와 함께 무난히 주전조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주장 우사미 타카시에 이어 팀의 부주장으로 선임되며 굳건한 입지를 보여줄 전망.https://www.gamba-osaka.net/news/index/no/14508/ 실제로 리그 첫 2경기에 미우라와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리그 3라운드 고베 원정에서 명단 제외됐는데, 이후 기사중국 슈퍼 리그 우한 싼전 이적설이 강하게 나고 있음을 알렸다.

4월 5일 J리그컵 3라운드 도쿄와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70분을 소화하며 부상 복귀전을 치뤘고, 리그 7라운드 가와사키와의 홈경기에선 주장 완장을 달고 79분을 소화하며 팀의 시즌 리그 첫 승에 기여했다.

이어진 리그 8라운드 교토 상가 원정에서 우사미가 선발 출전하지 않자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했지만 후반 막판 다이렉트 퇴장당했다.

하지만 팀은 5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에 빠지며 리그 꼴찌로 추락했고, 권경원은 5월 중순부터 아예 명단에 제외되고 있다. 경기력이나 그런것을 고려했을때 팀에서 완전히 밀려버린 상황이다. 더군다나 대표팀에 계속 뽑히는데 정작 소속팀인 감바 오사카팬들은 왜 뽑히는지 모르겠단 반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오랜만에 출전한 경기에서 전반 17분만에 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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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21:22:23에 나무위키 권경원/클럽 경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성남 선수가 넘어져 있어 공을 밖으로 뺐는데,이러면 매너상 전북이 성남에게 스로인을 그대로 주거나 아니면 공을 반대로 차야 한다.이 때 권경원이 공을 돌려주라고 이동국에게 던져버렸는데 이동국이 골키퍼에게 차 버린 공이 그대로 골대로 들어가 버려 권경원의 스로인 어시스트가 기록된 것이다. 스로인 어시스트 자체도 흔치 않은데,스로인+의도치 않은 득점까지 합해진 어시스트는 아마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할 것이다.[2] 2022년 현재는 권통수라고 불린다.[3] 1위는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할 당시 토트넘이 지불한 400억이다.[4] 그러나 아직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K리그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와일드 카드로 선발되지 못하면서 병역특례 획득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국내 복귀가 유력해진 상황.[5] 모데스테는 2017년 여름에 영입됐으므로 처음부터 권경원의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2017 시즌 시작 시점에서 톈진의 외국인 선수 구성은 권경원, 파투, 비첼, 모라에스, 제우바니우였고, 권경원은 시즌 초반 모라에스와 제우바니우를 밀어내고 선발로 뛰었다. 여름에 모라에스, 제우바니우가 정리되고 모데스테가 영입됐다.[6] 물론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하기는 하다.[7] 이 날 동북아시아가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였기 때문에 남쪽 나라 팀들이 고생했다. 같은 날 수원으로 원정 온 베트남 리그 우승 팀 탄 호아도 1-5로 참패했다.[8] 톈진 프런트가 현재 완전히 긴축 운영 중이라 매치데이 포스터도 못 만들 정도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9] 원래 6월 23일이지만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출전으로 인한 늦은 입대로 문선민과 함께 7월 6일에 전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