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축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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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
1.1. 유소년 시절
1.2.1. 2014년
1.2.3. 2015년
1.2.4. 2016년
1.2.5. 2017년
1.2.6. 2018년
1.2.7. 상주 상무 군복무
1.2.8. 2020년 8월
1.2.9. 2021년
1.2.10. 2022년
1.2.11. 2023년
2. 국가대표 경력


1. 클럽 경력[편집]



1.1. 유소년 시절[편집]


서울에서 태어나 꾸준히 서울 지역에서 축구를 배우면서 성장했다. 전농초등학교 4학년 때 공격수 포지션으로 축구에 입문했고 경희중학교 진학 이후 중앙 수비수로 전향하였다.

경희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수한 수비수 유망주로 평가받으면서 청소년 대표팀에도 소집되었다. 특히 세트피스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한 선수로 여겨졌다. 홍익대학교에서도 주전 센터백으로 꾸준히 활약하면서 주가를 올랐고, 프로 구단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2.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1.2.1. 2014년[편집]


2014시즌 시작을 앞두고 자유계약 선발을 통해 김도혁과 인천에 합류했다. 하지만 김도혁과 달리 출전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인천의 주전 수비수로는 안재준이윤표가 있었고 이들의 뒤를 받쳐주는 김진환, 임하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선수 본인도 부상이 겹치면서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1.2.2. 대전 시티즌 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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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출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여름에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 이적했다.

대전 시티즌은 당시 사장이었던 김세환이 선수 선발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과 입김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한 철저한 검증 과정인 선수선발위원회를 발족한 상황이였고, 김대중은 이러한 선수선발위원회가 뽑은 최초의 선수였다. 8월 9일 고양 Hi FC전을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후 8경기를 출장하며 대전의 2014 K리그 챌린지 우승과 승격을 이끌었다.

1.2.3. 2015년[편집]


이후 2015 시즌에는 이윤표가 늦은 합류로 폼이 올라오지 않았고 임하람, 안재준이 군입대나 임대 등으로 떠나는 등 수비수가 부족하여 주전으로 예상되었다. 그만큼 기대도 높았는데...1라운드에서부터 자책골을 기록, 이어서 2라운드 수원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치명적인 패스 실수를 시전하여 패배의 원인이 됐다. 사실 역주행한 김도혁의 선택이 더 문제기는 했지만...두 차례의 치명적인 실수로 시즌 초부터 인천 팬들에게는 대역죄인 취급을 받고, 수비 불안의 원흉으로 찍히는 등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3라운드 전북전에선 상대의 파상공세에 맞서 철벽같은 수비력을 보여주며 경기 MOM에 선정되었고 3라운드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렸다. 무려 리그 최강 팀을 상대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면서 덕분에 이제 밥값을 하겠구나...등의 기대를 모았지만 그 기대는 다음 경기부터 바로 깨졌다. 전남전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그는 계속 미숙한 경기력을 보이다가 결국 김진환이 폼이 올라오고 골도 기록하면서 주전 자리를 뺏기고 벤치에 앉게 된다. 거기에 인천 수비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주축 이윤표도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김대중의 상황은 점점...팀이 상승세를 탄 이후에는 후반에 케빈과 교체되어 나오는 수비 강화용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여름을 기점으로 이효균이 대신 나간다.

큰 키를 이용해 헤딩을 잘 따내서 후반기 들어선 공격수로 교체 출전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리고 지고 있는데 수비수가 나와서 당황한 팬들도 있었다. 폐막전인 전남전에선 헤딩 능력이 특히 더 발휘되었다. 하지만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내년엔 케빈 김대중 투톱에 이효균 서브라 카더라 사실 김대중의 스트라이커 기용은 인천 공격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하는 부분인데, 케빈처럼 공중볼을 잘 따는 선수가 없으면 공격력이 빈약해진다. 김대중이 공격수 경험이 적어 다른 부분에선 모자라지만, 공중볼은 잘 따기에 그나마 투입 이후에 공격적으로 개선이 이루어지긴 했다. 2016년에는 타깃형 스트라이커인 유스 출신 한남규가 합류하고 송제헌, 박종진이 합류하기에 다른 공격루트가 나오거나 김대중이 아닌 한남규를 투입하는 변화가 예상된다. 또 김대중 개인으로도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 재능은 있는데 집중력만 좀...키운다면 충분히 주전을 할 수 있다. 그게 안 늘으니까 문제... 2016년에 조병국이 합류했기에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1.2.4. 2016년[편집]


2016년에는 백업 멤버로서 간간히 출장하고 있다. 요니치, 이윤표, 조병국이 주전으로 출장하는 빈도가 워낙 높기에 아직까지는 기회가 많지 않지만 그들의 공백을 메울 대체제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윤표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던 당시에 대체로 나와서 보여준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전 해와는 달리 팬들도 김대중을 좋게 보고 있다. 그리고 7월 3일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기적적인 역전 헤딩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이기형 체제에서는 포백으로 회귀하여 센터백 자리가 줄며 기회는 더 줄었다. 그러다가 리그 최종전, 케빈이 경고 누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에서 후반전에 크르스테 벨코스키와 교체되어 다시 공격수로 기용됐고, 이후 직접적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공중을 장악하며 박종진, 김용환에게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등 준수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잔류에까지 기여했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인천과 재계약을 맺었다.


1.2.5. 2017년[편집]


조병국과 요니치는 떠났지만, 코너 채프먼고르단 부노자가 합류하며 새로운 경쟁에 직면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시즌 초 이윤표를 중심으로 수비진이 짜여지는 가운데 출전 기회가 상당히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신인 하창래도 적절한 기량을 보여주며 팀 내 입지가 위험해졌다.

그러단 와중.. 7월 16일 강원 FC를 상대로 원톱으로 간만에 선발 출장했다. 팬들은 김대중이 센터백도 아니고 무려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을 한 것에 대해 상당히 우려를 표시했고, 실제로 전반전에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후반전에 대갈사비로 각성, 송시우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 박용지와 공격 포인트가 동률이다. 후반전에 보여준 플레이가 상당히 위협적이었고, 팀의 무승부에 공헌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7월 19일 FC 서울을 상대로 후반에 공격수로 교체 투입됐다. 스코어가 5골 차이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중거리 슛을 시도하는 등 분전했고, 최후의 상황에서 박용지의 득점을 어시스트하여 영패는 면하게 했다. 공격수 출장 두 경기만에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7월 22일 울산 현대를 상대로도 박용지의 득점을 어시스트하여 승점 획득에 공헌하는 등 공격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달리가 계약을 해지했고 이효균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김대중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엔조 마이다나의 영입 이후로는 둘 중 한 선수가 선발로 나오고 이후 서로 교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월 20일 포항 스틸러스 전에 엔조와 교체되어 투입되자마자 측면을 파고든 이후 크로스를 올려 최종환의 득점을 이끌었다. 어느새 시즌 4도움.

그리고 9월 17일 경인더비에서 후반에 웨슬리 스미스 아우베스 페이토사와 교체되어 들어가자마자 2분만에 송시우에게 킬패스를 전달해 시즌 5도움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거의 어시스트 머신. 다만 공격수 역할임에도 득점으로 인한 공격 포인트가 없다는 부분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2.6. 2018년[편집]


우선 전지훈련 중에는 다시 센터백으로 훈련을 소화했다고 한다. 스테판 무고샤의 영입도 있어서 당분간은 수비를 보겠지만, 조커로 김대중만큼의 효율을 뽑을 공격수가 전무하므로 앞으로도 간혹 공격수 김대중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시즌 시작 후에는 윤상호, 박종진과 함께 만년 벤치 트리오 신세가 되었다. 이윤표, 고르단 부노자 다음 순위의 중앙 수비수 위치이기는 하지만, 정작 출전 기회는 못 받던 상황. 그런데 수비진의 실점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결국 선발 명단에 들어왔다. 이후 이윤표와 부노자가 로테이션으로 돌아가고 김대중을 한 자리에 고정시킨 채로 경기를 치르고 있는데 제공권만큼은 굉장함을 다시 증명해내고 있다. 오랜만에 기회를 받은 것치고는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윤표의 신체 능력이 저하됐고 부노자가 슬슬 트롤링을 선보이는 만큼 김대중을 중심으로 수비라인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대중 외에도 김정호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꽤 크다.

욘 안데르센 부임 이후 주전 수비수로 낙점되었지만, 팀이 대량 실점을 거듭하면서 김대중 개인의 능력에 대한 비판도 다시 증가했다. 간혹 집중력을 잃은 것도 사실이기에 비판은 감수해야 할 듯. 그래도 이윤표가 노쇠화를 보이자 이윤표 대신 김정호를 기용하고 김대중은 그대로 주전으로 둔 것을 보면 안데르센 감독에게는 신뢰를 받고 있는 듯하다. 강원 FC 전 7 : 0 패배의 과정에서 김대중에 대한 논란은 다시 발생했는데, 사실 김정호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미 강지용이윤표는 K리그 1 수준의 자원이 아님이 증명되었고, 정원영은 프로 데뷔조차 하지 못한 자원이니 그나마 나은 김대중을 쓸 수밖에 없다. 애초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풀백 외에도 센터백도 추가로 영입을 했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김정호가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 복귀하여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김대중은 후반 막판에 투입되었으나 바로 패널티킥을 내주면서 팬들에게는 여전히 믿지 못할 선수로 남게 되었다. 김정호, 부노자 라인이 굉장히 안정적인 상황이라 주전 경쟁은 당분간 힘들 듯 했으나...그 다음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다시 선발로 출전하면서 팬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 수비 자체는 부노자와 김진야, 임은수, 정동윤 등 모두가 제 몫을 하면서 김대중도 그런대로 준수하게 플레이했으나, 세트피스 상황에서 문선민이 기습적으로 올려준 크로스를 형편없는 퍼스트 터치로 슈팅 시도조차 못하고 날려먹어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골키퍼조차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만큼 몸에 갖다대기만 해도 골인 상황이었는데, 이를 놓쳐 결국 팀이 승점 3점을 얻는데 실패했다. 김대중 공격수론이 여전히 큰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었고, 경기 막판에는 부상을 입어 김정호와 교체되었다.

부상이 낫자 다시 선발로 기용되면서 또대중이라는 별명과 함께 욕받이 신세가 되었다.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실제로 위험한 실수를 연발하고 패스 미스로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는데, 또 그러면서도 거의 들어간 공을 걷어내는 인생 수비를 보여주는 등 한 경기 내에서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9월 30일 경남 FC를 상대로는 경남에게 2실점을 하는 동안 별다른 활약이 없었으나 2 : 1로 따라붙은 상황에서 코너킥 종료 이후에도 공격 진영에 머물다가 헤딩 경합에 성공, 문선민에게 패스했고 문선민이 다시 찔러준 공을 스테판 무고샤가 마무리하며 동점골 기록의 주역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붕대 투혼을 보여준데다가 골의 기점 역할까지 해서 이 날만큼은 까임방지권을 획득. 그리고 헤딩 경합 장면을 본 팬들은 롱볼 축구 할꺼면 김대중 무고사 투톱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부상이 남아있는지 대구 FC 원정에서도 붕대를 감은 채 선발로 출전했다. 이 경기에서는 이전 경기들에서 보여준 불안함이 많이 사라졌고 부노자와 더불어 좋은 수비를 펼쳤으며, 세트피스에서는 엘리아스 아길라르의 킥을 좋은 슈팅으로 수차례 연결했으나 조현우의 선방으로 인해 득점은 무산되었다. 그래도 부상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승점 3점 획득에 기여했다. 그 뒤 경기에서도 주전 수비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래도 인천 수비수들 중에서는 많은 능력을 가진 선수인 만큼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고 있다.


1.2.7. 상주 상무 군복무[편집]


2019년 1월 10일 한석종과 함께 상무 합격자로 공시되었다. 그리고 2019년 1월 21일 입대했다.

2020년 8월 27일까지 상주 상무 소속으로 군 복무를 하였으나, 2019년 2경기, 2020년 1경기 출장에 그치면서 주전으로 기용되지는 못했다.


1.2.8. 2020년 8월[편집]


2020년 8월 28일 인천 유나이티드 공식 유튜브에서 복귀 신고를 하고 등번호 50번을 배정받은 뒤 곧바로 팀 훈련에 합류하였다. 상주에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한지라 기대치가 높진 않지만, 쏠쏠한 로테이션 자원이 되리라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

19라운드 강원 원정에서 후반 43분 스테판 무고샤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어 복귀전을 치루었다. 팀에서는 김대중을 최전방 공격수로 다시 분류했는지 아예 공격수 자원으로만 기용하고 있다. 22라운드 울산전, 24라운드 수원전에도 짧은 시간을 소화했는데 제공권을 활용해서 경합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잔류하기 위해선 무조건 이겨야 하는 26라운드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후반전 김준범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됐다. 당시 인천은 전반전에 이미 1실점을 허용해서 끌려가고 있는 입장이었고, 득점하지 못하면 강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공격 자원을 쓸 수 있는만큼 전부 투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김대중이 후반 29분 스테판 무고샤의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하여 득점에 성공하였다. 해당 장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동윤의 골까지 터지면서 팀은 2 : 1로 역전했고, 리드를 잡은 이후로는 아래로 내려와 상대의 골킥을 전부 끊어버리는 골킥 방파제의 모습을 선보이며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패배할 경우 강등이 확정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팀을 구해냈고, 다시 한번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모든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27라운드 서울과의 최종전에서도 후반 32분 스테판 무고샤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었다. 전반에 엘리아스 아길라르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리드를 잡고 있었고, 이에 따라 김대중도 버티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중앙 미드필더 라인까지 가서 골킥을 전부 끊어버리는 등 제공권 툴 플레이어의 정점에 도달한 모습을 선보였고, 서울은 끝내 인천을 뚫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경우의 수를 모두 잠재워버리는 깔끔한 2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인천이 기적의 잔류를 달성하면서 개인에게도, 팀에게도 인상적인 시즌을 만들었다. 주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올 때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을 선보였다.

2020시즌 기록은 5경기 1득점.


1.2.9. 2021년[편집]


군 복무 시기에 자신의 등번호의 주인이었던 이재성이 팀을 떠나면서 원래 쓰던 등번호였던 15번을 되찾았다.

지난 시즌에 보여준 활약덕분에 출전 시간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팬들도 있었지만, 시즌 초에는 스쿼드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짙었다. 특히 김현의 영입이 결정적이었는데, 제공권이 강한 정통 스트라이커가 생겼기 때문에 김대중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그러다가 6라운드 강원전에서 후반 29분 교체로 들어가면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이어서 8라운드 수원전에도 경기 종료 직전 투입되면서 팀이 부침에 빠지자 다시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FA컵 안양전에는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이 날 경기에서는 상당히 부진했다. 일단 센터백 포지션에서 너무 오랜만에 뛰기도 했고, 본인의 성향이 이젠 스트라이커 쪽에 거의 맞춰진 상황이라 향후 김대중을 기용한다면 최전방으로 써야 한다는 평이 나왔다.

한동안 명단에서 제외되다가 18라운드 수원 FC전에 교체로 투입되었다. 당시 팀은 2 : 1로 끌려가고 있었는데, 박스 밖에서 김대중이 시도한 슈팅이 박지수의 손에 맞았고, VAR 끝에 페널티킥을 얻었다. 무고사가 이 기회를 살려내면서 팀은 2 : 2 무승부를 따냈고, 팬들은 "올해에도 김대중은 여전하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막히게 승점을 따내는 능력은 확실한 선수.

19라운드 전북전에도 교체로 출전했으나 그 후로는 다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무고사가 스쿼드에 복귀한데다 김현도 기대 이상의 폼을 보여주면서 김대중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즌 최후반부에는 간간히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팀이 잔류를 확정지으면서 최종전에 로테이션을 선언했고, 38라운드 광주전에 유동규와 함께 투톱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기막히게 내준 패스로 유동규의 골을 도우면서 기어이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출전 시간은 짧아도 그 안에서 무언가 뽑아내는 능력은 여전하다는 점을 입증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1시즌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6경기 출전 1도움.


1.2.10. 2022년[편집]


지난 시즌 자신의 입지에 영향을 미쳤던 경쟁자 김현이 팀을 떠났고, 대신 이용재가 새로 합류했다. 무고사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로 이용재와 경쟁할 전망.

개막전부터 교체명단에 포함되면서 올해는 기회를 많이 받으리라는 기대도 받았지만, 이후 다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전반기 내내 무고사의 폼이 압도적이었고 다른 공격수들에게는 아예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기에 김대중 역시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름에 무고사가 이적하게 되면서 이용재와 김대중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19라운드 수원전에서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20라운드 수원 FC전에 교체투입되면서 시즌 첫 경기를 소화했다. 몸만 푸는데도 경기장 삼면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는 놀라운 상황까지 연출했는데, 비록 팀 내 입지는 좁아도 팬들에게 김대중이라는 선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투입 이후 제공권 면에서는 좋았으나 활약도 자체는 애매했다.

이후 에르난데스가 팀에 합류하면서 김대중은 다시 후보로 밀려났다. 에르난데스와 김보섭을 중심으로 한 공격이 상당히 날카로웠고, 김대중뿐만 아니라 이용재 역시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 그런데 8월 말 에르난데스가 큰 부상을 입고 전열을 이탈하면서 다시 김대중이 필요한 상황이 찾아왔다.

29라운드 강원전에 교체로 투입되면서 에르난데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실험이 다시 시작됐다. 제공권 옵션은 확실하지만 공격수로 믿고 기용하기엔 애매한 면도 있는 상황이라 강점을 살리는 부분이 중요할 듯.

31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 경기에서 3 : 1로 밀리던 도중 교체로 투입됐다. 투입 이후 공중을 장악하면서 존재감을 보였고, 추가시간 돌입 직후 해리슨 델브리지의 도움을 받아 만회골을 기록했다. 이어서 김대중의 경합 참여에 상대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로 인해 발생한 혼전 중 김민석이 동점골까지 기록하면서 또 극장을 열어버렸다. 이 경기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거둔 덕분에 팀은 파이널 A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야말로 신기한 선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활약이 2022년에도 이어진 셈.

수원전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한동안 서브로 계속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다. 팀은 김보섭 원톱 기용 플랜을 들고 나왔고, 결국 시즌이 끝나는 시점까지 김대중에게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았다. 3경기 1득점이라는 기록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2 시즌 종료 후 인천과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팀을 떠난다는 공식 발표까지 나오면서 오랜 기간 몸담았던 인천을 나오게 됐다. 주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위기의 순간 팀을 수차례 구해내면서 큰 임팩트를 남긴 선수이기에 아쉽다는 팬들이 많았다.

그렇게 인천과의 인연이 끝나는 듯 싶었지만....


1.2.11. 2023년[편집]


시즌 시작 직전인 2월 22일에 김대중 재영입 오피셜이 나왔다! #

아예 대놓고 공격 강화를 위해 영입한다는 코멘트까지 넣으면서 완전히 공격수로 전향하게 됐다. 무고사의 복귀가 어렵고, 확실한 원톱은 천성훈이 유일한 상황에서 옵션을 늘리기 위해 재영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선수 역시 다른 팀과의 이야기가 잘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인천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 기간은 1년. 본래 본인의 등번호인 15번은 신인 임형진에게 가면서 전역 후 잠시 썼던 50번을 다시 달게 됐다.

재영입 사건을 본 팬들은 그야말로 웃음만 가득했다. 그라운드 안에서도, 밖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길만 걷던 선수였고, 이 사건으로 김대중의 독특한 이미지가 더욱 굳혀졌다.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는 선수답게 환영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프리시즌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시즌 초에는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 팀이 공격수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는지라 김대중을 기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주류였고, 천성훈이 맹활약을 보여주면서 잠시 사그라들었으나 천성훈의 부상 이탈 이후에는 다시 김대중 기용론이 제기되었다.

결국 14라운드 광주전에 교체 투입되면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투입되자마자 올라오는 롱볼을 전부 머리에 맞춰버리면서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상대 수비진은 김대중의 투입과 함께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혼전 도중 권한진이 득점을 기록하면서 1 : 1 무승부를 따냈고, 김대중 본인도 거의 득점을 기록할뻔한 찬스를 잡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복귀전부터 상당한 임팩트를 남기면서 팬들에게 다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어진 FA컵 경남전에도 후반 막판에 교체로 들어왔는데,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는 큰 활약은 없었다.

이후 15라운드 대구전에도 교체로 투입됐다. 팀이 2 : 1로 역전당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경합에 도전했고, 결국 김대중의 머리에 맞은 공이 김도혁에게 연결된 뒤 홍시후가 마무리하면서 동점골이 터졌다. 이번 경기에도 득점의 기점 역할을 수행하면서 팬들에게 또 한번 기적같은 활약을 선물했다.

17라운드 서울전에는 좋은 찬스를 경기 막판에 잡았으나 슈팅이 약하게 나오면서 득점에 실패했다. 크로스 타이밍이 빨라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했지만, 주전으로 기용하기엔 아쉬운 김대중의 특성이 나타난 장면이었다.

팀 내에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6월에도 꾸준히 명단에 들어오고 있다. 선발로는 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골이 필요하다 싶으면 거의 무조건 김대중을 투입하는 편. 제공권과 타고난 감각을 바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경기도 있지만,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거기에 인천이 김대중을 넣은 뒤에도 정작 크로스를 올리지 않고 패스를 돌리는 전술적 괴리도 보이고 있어서 팬들의 불만이 있는 상황. 보통 기용해도 굉장히 짧은 시간만을 소화하다가 19라운드 포항전에는 제법 일찍 투입됐으나 역시 공이 많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고전했다. 권한진까지 끌어올리면서 후반에 인천이 나름 기회는 잡았으나,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2. 국가대표 경력[편집]


경희고등학교 재학 시절 U-17 국가대표팀에 짧게 소집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국가대표팀과 인연이 없는 편. 성인 무대에 올라온 후로는 포지션 변경 문제를 비롯하여 출전 시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다만 리그 내에서 제공권 하나는 최고 수준이다보니 우스갯소리로 원포인트 자원으로 데려가라는 농담이 나올 때는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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