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지역별 현황/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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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00년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에 설립된 인천유치원이 최초이다. 그러나 이 유치원은 일본인 전용이었다. 인천에서 최초로 한국인을 위해 설립된 유치원은, 1917년 현재의 인천광역시 동구에 설립된 영화유치원이다. 인천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한국인 원생들은 1911년~1913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생존해 있을 경우 현재 112~113세이다. 일본인의 경우는 1894년~1896년생들이 최초의 원생이었고 1894~1910년생인데 인천에서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면 일본인이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인천시 중구 본토부와 동구 일대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치원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부천시시흥시, 멀리는 안산시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인천에 있는 유치원으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김포시 북부에서 인천으로 오는 경우가 늘고, 부천과 안산, 시흥에서는 자기 지역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는 경우가 늘어났다.[1]

1911년생부터 1975년생까지는 유치원생 시기에 인천이 경기도 소속이었으나, 1976년, 1977년생은 유치원 재학 도중에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됐으며 1978년생부터는 유치원 입학 이전에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됐다.

또한 시가지 팽창에 따라 기존에 중구, 동구에 있던 유치원들이 다른 구로 이전하기도 했다. 강화군옹진군을 제외한 나머지 인천 지역에 있는 사립유치원 수는 총 258곳인데 중구 9곳, 동구 7곳, 미추홀구 36곳, 부평구 43곳, 남동구 61곳, 서구 46곳, 계양구 26곳, 연수구 30곳이 있다. 1960년대 52만 5,827명이던 인구가 2019년 286만 5,345명으로 늘면서[2] 같이 늘었다. 인천에도 아파트가 매우 많아 아파트 단지 내에 유치원이 여러 곳 있는 경우도 있다.

인천에는 황해도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아 인천의 유치원에서는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대에 황해도 실향민인 원아들도 있을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까지도 황해도 사투리 억양이 들어간 표준어를 쓰거나 아예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원생과 교사가 있었고, 지금도 이런 사람이 드물게나마 있다. 2010년대 이후 가을부터 사이에 미세먼지로 인한 휴원이 서울만큼 잦아지고 있다.

이름만 봐서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다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청송유치원이 인천에만 2곳(연수구 1곳, 부평구 1곳) 있다. 참고로 모두 사립이다.[3] 2017년 박근혜 탄핵 사건 이후 유명세를 탄 '근혜유치원'이 인천 남동구에 있다.

야구선수 류현진1991년~1993년 사이에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4]고 한다. 축구선수 이강인2006년~2007년 사이에 YMCA 아기스포츠단에 다녔다.[5]

원생과 교사의 성씨 분포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과 유사하나, 한씨가 임씨보다 더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인천의 상위 10개 성씨는 김-이-박-최-정-조-강-윤-장-인데 동구는 윤씨가 강씨보다 많은 등의 세세한 변화까지 따지면 원마다 성씨 분포는 달라질 수도 있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계양테크노밸리에 설립되는 모든 유치원은 공립으로 세워지게 된다. 이는 다른 3기 신도시교산신도시 등도 동일.

2020년 6월 14일에는 명헌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원생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 2021년 10월에는 인천에서 유치원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2. 중구[편집]


해방 전 인천의 유치원은 중구 (영종도 제외)와 동구 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중구 본토는 경인선이 개통하고 얼마 안 돼 유치원이 설립돼 현재는 모두 사망한 19세기 출생자들까지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영종도는 경기도 옹진군 용유면 관할이었던 1981년 용유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3. 동구[편집]


동구의 경우 인천 시가지가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7년에 유치원이 설립돼 현재 112~113세인 어르신들도 유치원을 다녔을 정도이다.


4. 미추홀구[편집]


1960년대 이후부터 미추홀구[6] 등 인근에도 유치원이 많이 생겨났다. 미추홀구 최초의 유치원은 1968년 영천유치원, 당시 경기도 인천시 남구. 첫 입학생은 1962년~1964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61~62세이다.


5. 부평구[편집]


1970년 성심유치원, 당시 경기도 인천시 북구. 천주교 인천교구 부평4동 성당 부설. 첫 입학생은 1964년~1966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9~60세이다.


6. 남동구[편집]


1976년 선미유치원, 당시 경기도 인천시 남구. 첫 입학생은 1970년~1972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53~54세이다.


7. 계양구[편집]


1981년 계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관할.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8. 서구[편집]


1981년 검단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당시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관할. 첫 입학생은 1975년~1977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8~49세이다. 검단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서구는 인천직할시 북구 관할이었던 1984년 설립된 예일유치원이 최초이다. 첫 입학생은 1978년~1980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5~46세이다.


9. 연수구[편집]


1982년 청학유치원, 당시 인천직할시 남구. 첫 입학생은 1976년~1978년생이고, 첫 졸업생이 현재 47~48세이다.


10. 강화군[편집]


1926년 설립된 강화유치원이 최초이다. 강화유치원은 강화군이 아직 경기도이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당시 원생들은 지금의 강화읍에 살았다고 한다. 강화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20년~1922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생존해 있을 경우 103~104세이다.

강화도에 유치원이 설립된 역사는 매우 깊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5개의 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유치원이 세워진 동네이자, 국내에서 3번째로 유치원이 세워진 섬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영도, 제주도 다음으로 유치원이 생겨난 섬이 강화도일 정도다. 거제도, 울릉도, 영종도, 대부도 등 웬만한 섬들은 강화도보다 최소 30년 늦게 유치원이 들어왔다.

또한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시는 물론, 지금은 광역시가 된 울산시나, 포항시, 구미시, 용인시 등 어지간한 도시들보다도 강화도에 유치원이 먼저 생겨났다.

사립유치원은 4곳이다. 1960년대 11만 8,482명이던 인구가 2021년 6만 9,203명으로 줄면서[7], 유치원도 같이 줄었다. 이런 이유로 강화도에 사는 유아들이 경기도 김포시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8] 서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수도권에서 단 둘밖에 없는 전체 원생 1명인 유치원으로 등극했다.

군부대가 산재한 지역 특성상 원생의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해병대 장교 또는 부사관의 자녀들이다. 또한 강화군 거주 청년들은 상근예비역에 선발되기 쉬워 유치원 동창이나 선후배가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경우도 생긴다.[9]

강화군은 성씨 분포상 한씨최씨보다 많아[10] 유치원 중 한씨가 최씨보다 많은 곳이 많다. 실제로 강화도 상위 10개 성씨는 김, 이, 박, 한, 최, 정, 황, 고, 조, 유씨로 수도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 윤, 장씨가 10위 안에 못 드는 지역이다.

축구선수 황재원이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


11. 옹진군[편집]


1963년 설립된 진촌유치원이 최초이다. 옹진군이 아직 경기도이던 시절에 개원되었다. 지금은 인천광역시 중구 관할로 넘어간 용유초등학교 병설유치원[11]도, 1981년 옹진군에서 개원되었다. 옹진에서 유치원을 다닌 최초의 원생들은 1957년~1959년생으로, 첫 졸업생은 현재 66~67세이다.

사립유치원은 2곳 있다. 1960년대 1만 7,817명이던 인구가[12]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북도면, 영종면, 용유면, 영흥면, 덕적면, 대부면을 넘겨 받고 5만 1,237명까지 늘어난 뒤 영종도 (영종면)와 용유도 (용유면)를 인천광역시 중구로, 대부도 (대부면)를 경기도 안산시로 넘겨 주면서[13] 그만큼 인구가 빠져 나가 2021년 2만 455명으로 줄었는데도[14] 거의 그대로다. 두 사립유치원은 모두 백령면에만 있어서, 원생 대부분은 백령도에서 복무하는 직업군인의 자녀들이다. 향후 인구 감소로 옹진군이 수도권 최초의 사립유치원 없는 군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옹진군에 사는 유아들은 대부분 자신이 거주하는 섬에 있는 병설유치원을 다니고, 영흥면 등 일부 지역에서만 사립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을 정도이다. 심지어 인천용현남초등학교 자월분교장 병설유치원은 원생이 단 1명밖에 없다.

원생과 교사의 성씨 중 윤씨가 임씨보다 적다고 한다. 실제로 옹진군의 10대 성씨는 김, 이, 박, 최, 정, 강, 장, 조, 임, 윤 순서인데 유치원마다 성씨 분포가 달라서 김씨 다음에 바로 박씨로 넘어가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이돌 정아가 이 곳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

아직까지 유치원생인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는데 이는 옹진군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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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천의 경우는 서울로 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주로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로 간다.[2] 중구 13만 9,729명 (4.6%), 동구 6만 2,542명 (2.3%), 미추홀구 40만 4,343명 (14.3%), 부평구 49만 4,962명 (18%), 남동구 52만 5,354명 (18.6%), 연수구 38만 7,450명 (12.6%), 계양구 29만 6,750명 (10.7%), 서구 54만 2,040명(18.9%)이다. 강화군 인구 6만 9,203명과 옹진군 인구 2만 455명을 포함해서 계산한 인천시 전체 인구인 294만 2,828명 대비 각 지자체의 비율을 구하면 중구 4.5%, 동구 2.2%, 미추홀구 13.9%, 부평구 17.4%, 남동구 18%, 연수구 12.3%, 계양구 10.3%, 서구 18.4%, 강화군 2.3%, 옹진군 0.1%이다. 또한 옛날 군(郡) 관할대로 조립해 보면 인천부 10만 8,220명, 김포군 15만 6,727명, 부천군 258만 8,213명이다. 옛날 면대로 조합하면 인천부 10만 8,220명, 부천군 부내면 67만 3,316명, 다주면 57만 5,440명, 남동면 31만 1,253명, 서곶면 38만 5,313명, 문학면 46만 6,939명, 계양면 8만 1,901명, 영종면 8만 9,947명, 용유면 4,104명, 김포군 검단면 15만 6,727명이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많은 부평구, 서구, 연수구에 사립유치원 숫자가 늘고 있다. 이는 인천 자체의 지형 때문인데, 아파트 건설로 인해 사라진 산들이 여럿 생겨 산지 비율이 낮아진 점도 있지만, 원래 인천 자체에 산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만한 산이 없어서 (거의 네덜란드 수준이다.) 인구가 모든 지역에 고루 퍼질 수 있는 것. 심지어 인천국제공항은 항공기 이착륙에 용이하도록 (김해국제공항만 봐도 알 수 있다. 돗대산 항공기 추락사고가 여기서 발생했을 정도.) 영종도용유도 사이를 간척해서 지었기 때문에 인천공항 근처와 공항 내부에서는 산을 아예 볼 수 없다.[3] 청송군에는 사립유치원이 없고, 심지어 공립 단설유치원도 없다. 이유는 당연히 인구 감소. 2005년에 이미 인구 3만 명 선이 무너졌다.[4] 류현진은 1987년 3월 25일생(37세)이며, 당시에는 유치원 입학 대상이 4~5세였다. 류현진의 또래인 1987년생들은 1991년부터 1993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고, 1987년 1~ 2월생들은 1990~1992년 사이에 1986년생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 그래서 ‘다니유치원’의 최다은 (1988년 1월 25일생)은 야구선수 류현진과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닌 것이다.[5] 이강인은 2001년 2월 19일생(23세)이므로 원칙대로라면 2003~2006년 사이에 유치원을 다녔어야 하나, 빠른 년생인데도 제 기수에 맞춰 2006년부터 유치원에 다녔다. (그 때문인지 이강인과 최윤서가 같은 시기에 유치원을 다녔다.) 참고로 당시 이강인은 사자반이었다.[6]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이 곳의 인천문학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겼다. 참고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로 뛴 그 경기였다.[7] 강화군의 읍면별 인구는 강화읍 2만 2,707명, 선원면 7,850명, 길상면 7,043명, 불은면 4,903명, 화도면 4,507명, 양도면 4,243명, 하점면 4,037명, 송해면 3,215명, 내가면 3,069명, 교동면 2,901명, 삼산면 2,223명, 양사면 1,861명, 서도면 644명인데, 서도면은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면동이다. 그 인구가 가장 많다는 서구 청라2동 (인구 4만 8,770명)의 74분의 1 수준이다.[8] 인천 본토는 너무 멀고, 그나마 가까운 도시가 김포시이기 때문이다. 사실 길상면 (전등사가 있는 곳이다.)과 강화읍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김포시이며, 강화군이 경기도였을 때는 국회의원도 김포와 함께 뽑았다.[9] 이건 전방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마찬가지. 전방 지역은 후방보다 상근예비역에 뽑히기 쉽다.[10] 한씨 2,787명, 최씨 2,630명.[11] 영종도 최초의 유치원.[12] 경상북도 울릉군보다도 적었다. 다만, 그 시기는 경기도의 신도시들이 인구가 매우 적은 시절이었다.[13] 만약 영종면, 용유면, 대부면이 넘어가지 않았다면 옹진군의 인구는 12만 3,306명까지 늘어나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동두천시, 과천시, 여주시를 제쳤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종면이 읍으로 승격해서 영종읍 8만 9,947명, 대부면 8,800명, 영흥면 6,377명, 백령면 5,238명, 용유면 4,104명, 북도면 2,152명, 연평면 2,020명, 덕적면 1,892명, 대청면 1,465명, 자월면 1,311명이 된다.[14] 심지어 이 동네는 군청이 관외에 있고, 가장 인구가 많은 영흥면조차 인구가 6,377명밖에 안 된다. 옹진군의 읍면별 인구는 영흥면 6,377명, 백령면 5,238명, 북도면 2,152명, 연평면 2,020명, 덕적면 1,892명, 대청면 1,465명, 자월면 1,311명으로 그 어떤 곳도 인구 1만 명을 넘는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