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용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아명이 이갑용인 전 가수에 대한 내용은 백년설 문서
백년설번 문단을
백년설# 부분을
, 본명이 이갑용인 소설가에 대한 내용은 이무영 문서
이무영번 문단을
#s-번 문단을
이무영#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이갑용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제3대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이갑용
李甲用 | Lee Gab-yong


파일:100137804.jpg

출생
1958년 7월 27일 (65세)
경상남도 부산시
(현 부산광역시)
재임기간
제3대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학력
동해중학교 (졸업)
가족
아내 이선옥, 슬하 2녀
소속 정당

파일:노동당(대한민국) 흰색 로고타입.svg

주요 경력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민선 3기)
민주노동당 울산 동구위원장
노동당 대표
노동자민중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 공동선거대책본부장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자 노동당 전 대표이다.


2. 생애[편집]


1958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동해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84년 울산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근무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93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1998년 3월 31일 민주노총 2기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공약으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 1년 후 위원장 사퇴를 내걸었다. 기사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달성하지 못했으나[1] 1년 후 위원장을 사퇴하겠다는 공약은 지켰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여 울산 동구 지역위원장을 맡았으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몽준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2004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파업에 참여한 소속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거부하였고, 이로 인하여 박재택 울산광역시 행정부시장으로부터 직무유기로 고발당해 2005년 법원에 의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청장직에서 직무정지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민주노동당 선관위로부터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이갑용 후보가 2005년 집행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고, 때문에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게 이유였다. 이갑용 후보 측은 노동자를 위해 싸우다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것인 만큼 후보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련 글

2008년 2월 19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기사

전임자 정천석의 당선 무효(공직선거법 위반)로 치러진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에 밀려 4위로 낙선하였다.

2011년 5월 '새로운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새노추)'가 만들어지자 추진위원으로 참가했다. 기사

2012년 진보신당사회당이 통합하자 '새노추'와 함께 집단으로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기사

2013년 3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서 47.7%를 득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50%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해서 찬반 결선투표를 진행해야 했는데, 이갑용 후보에 반대하는 몇몇 대의원들이 집단으로 퇴장하면서 의결정족수가 미달되었고, 결국 선거가 무산되었다. 2013년 4월 다시 한번 찬반 결선투표를 진행했으나 대의원 의결정족수가 미달하면서 투표가 무산되었다. 재선거가 결정되었고, 2013년 7월 재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신승철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2]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정의당의 야권단일화에 참여하지 않고,[3] 새누리당 김기현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 동구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무소속 김종훈과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불출마했다.

2016년 10월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으로 출마가 예상되었으나, 민주노총 지지후보가 민중당김창현으로 결정되면서 불출마했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나올려고 했으나 진보당 김종훈과 단일화를 선언하였다.#

울산광역시 동구를 지역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워낙 이 지역을 둘러싼 진보계열 후보들의 경쟁이 심하고, 제16대 총선부터 제20대 총선까지, 진보계열 후보가 단일화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같은 후보가 연속 출마한 적은 없다. 민주노총 급진파로 분류되는 현장파의 지지를 받는지라 조직력에 있어서는 NL에 밀리는 처지이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9,288 (35.06%)
낙선 (2위)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 동구청장
24,289 (34.68%)
당선 (1위)
초선
2011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무소속|
무소속
]]

2,249 (3.59%)
낙선 (4위)
[4]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파일:노동당(대한민국) 흰색 로고타입.svg

38,107 (8.13%)
낙선 (3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34,272 (0.12%)
낙선 (2번)



4. 둘러보기[편집]




파일:울산광역시 휘장_White.svg

{{{#!wiki style="margin:0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bgcolor=#0095DA><width=20%> ||<width=20%><bgcolor=#0095DA> ||<width=20%><bgcolor=#EE7700> ||<width=20%><bgcolor=#EE7700> ||<width=20%><bgcolor=#0095DA> 울주 ||
|| 조용수 || 이채익 || 이갑용 || 이상범 || 엄창섭 ||
||<-5> 민선 2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3 01:49:43에 나무위키 이갑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2014년부터 직선제로 전환되었다.[2] 출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797 https://www.nocutnews.co.kr/news/4313568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010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380975[3] 다만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금지한 새정치민주연합에 의해 통합진보당 후보의 자진 사퇴, 이후 새정치-정의당간의 단일화 식으로 진행되었다.[4] 전임자 정천석 구청장식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