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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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파일:이정후 국대.jpg


이정후의 국가대표 경력을 정리하는 문서.

2023년 기준 25세[1] 어린 나이임에도 5번이나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 단기간에 슈퍼 루키에서 이제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자리잡은 케이스로 자연스럽게 국가대표 세대교체의 주역이 됐다. 이승엽, 김현수를 뒤잇는 대한민국의 붙박이 외야수이자 중심 타자.

  • 성인국가대표 통산 성적
: 28경기 106타수 타율0.330 35안타(3홈런) 22타점 18득점 13사구


2.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편집]



2.1. 제11회 BFA 야구 청소년 선수권대회[편집]


계약 직후 열린 제11회 BFA 야구 청소년 선수권대회에 대표팀으로 참가해 출전했다. 유일하게 한국 선수들 중 청소년 대표 올스타 TOP 10에 들었으며 중견수1루수를 보면서 1번타자로 타율 6할과 최다타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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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수 이정후가 대만의 천후에게 태그를 하고 있는 장면.[2]

또한 대만전 오심으로 눈물을 글썽이던 장면은 많은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3.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편집]



3.1. 선동열호[편집]



3.1.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파일:20211009_211413.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3
13
2
1
1
0
3
0
0.154
0.214
0.385
0.599
0
1
1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며 U-24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는데, 외야/주루코치가 이종범이다. 부자가 같이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 여담으로, 이종범이 야구 선배로서 몸 상태가 둔하다며 지적했는데, 이정후는 단순한 부모의 잔소리인줄 알고 '뭐요~'라며 응수하자 이에 이종범이제부터 잔소리 안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상 최초로 부자 동반 참가하게 되자 코치님이 시키시는 일은 잔말 없이 다 따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중입니다

또한 KBO 신인상 수상 때 수상 소감을 통해 대표팀 훈련과정에서 아버지의 펑고 템포가 너무 빠르다고 형들에게 컴플레인이 왔다며 이야기해 큰 웃음을 줬다. 관련 기사 당연히 이종범 코치는 차명석 해설위원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갸는 자식도 아녀~라고 농담섞인 디스를 날렸다.[3] 그런데 하필 바뀐 사람이 타구 스피드 빠르기로 유명한 김재현.선배들:혹을 떼라니까 붙이고 있네

11월 8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넥센과의 첫 평가전 경기 후 이정후는 “(안타를 친 뒤) 아버지가 (1루에서) 장비를 받아준 것이 신기했다. 소속팀이랑 뛴 것도 느낌이 색달랐다”고 말했다. #

11월 16일 일본전에서 출장해 7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4회 잘맞춘 타구가 일본 외야의 삽질과 겹쳐 2타점 쐐기 2루타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범타로 물러난게 아쉽다.

다음날 대만전에서는 5번타자 중견수로 출전해 6회말 2사 1루에 대표팀의 귀중한 선취점을 안겨주는 1타점 3루타를 작렬시켰다. 그리고 투수진들이 이 귀중한 1점을 지켜내며 결승타로 기록되었다.



'APBC' 이정후 천금의 3루타...타이완 격파 / YTN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2번 타자로 돌아와 몸맞는 공으로 출루했으나 무안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 날 한국팀에서 살아나간 타자는 단 네명뿐이었다.

3.1.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편집]


2018 아시안 게임

파일:2018아시안게임이정후.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6
24
10
3
0
2
7
6
0.417
0.448
0.875
1.323
0
2
3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자신의 커리어 첫 A대표팀 소집이자[4], 이른 나이에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최충연과 등번호가 겹쳐 나중에 발탁된 자신이 51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17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하는 거 보면 최충연이 51번 포기했어야 된다. 기왕 원래 번호 못 쓰는 거 절친인 축구선수 이승우의 아시안게임 등번호와 맞추려 그랬다고.



톱타자 겸 중견수로 출장한 이정후는 예선라운드 대만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사사구로 두 차례 출루했고 인도네시아전에서는 2타수 2안타 2타점 그리고 예선 마지막 홍콩전에서는 7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예선라운드 기간 동안 12타수 7안타 2홈런 6타점 타율 .583을 기록하며 고전 중인 타자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슈퍼라운드 일본전에서는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중국전에서는 4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7회말 1사만루에서 3루수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기록했다.[5]

결승전에서는 볼넷 하나를 얻어서 선취득점을 했으나 이후 안타와 출루를 기록하지 못했다. 경기 후반 우익수 자리에서 9회초 우승확정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여담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될 플라이 타구를 잡는 과정에서 펄쩍 뛰며 스텝을 넓게 밟는 특이한 동작을 취해서 “이정후는 포구도 멋지게 한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인터뷰 중에 나온 본인의 해명에 의하면 스텝이 꼬인 것이었다 한다.(...)[6]

이정후는 결승전 포함 전경기에 출장하며 24타수 10안타 6타점 6득점, 타율 0.417을 기록했다. 대체선수로 뒤늦게 합류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호성적에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특유의 기복없는 타격과 수비를 대회 기간 내내 선보여 앞으로도 부동의 리드오프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AG] 3회 연속 金…이종범·이정후 '부자 금메달' | 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이로써 만 20세에 병역특례를 받게 되었고, 향후 FA 연수와 해외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날 동일한 결승 상대인 일본을 꺾고 우승한 축구 대표팀의 절친 이승우도 덩달아 병역특례에 골인했다.

3.2. 김경문호[편집]



3.2.1. 2019 WBSC 프리미어 12[편집]


2019 프리미어 12

파일:20210804_222113.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8
6
26
10
5
0
0
4
5
.385
.484
.577
1.061
0
1
5
#

지난 아시안 게임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 이어 프리미어 12에 참가하는 김경문호에도 선발됐다. 아시안 게임보다 더 다양하고 수준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프로 3년차 이정후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 지 팬들의 기대가 상당하다.

김경문 감독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이정후를 중심타선인 3번타자 겸 중견수에 배치되며 신뢰를 받았다. 이정후 역시 그 기대에 보답하며 1라운드 3경기 모두 선발출전해 9타수 4안타, 4사사구, 2타점-2득점 맹활약을 펼쳤다. 중심타선이던 의지이 제 몫을 못해주는 동안 보여준 이정후의 맹활약은 가히 김경문호의 2라운드 전승진출의 1등 공신이라 칭할 만했다.




슈퍼라운드에 진출해서 역시 이정후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매경기 승부처마다 맹타를 휘둘렀음은 물론 안정적인 수비력까지 뽐냈다. 하지만 이미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후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경기때 대주자로 교체투입 됐지만, 본헤드 주루플레이를 보였다.



POST-GAME: JP Morosi interviews Jung-Hoo Lee
2019년 11월 15일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존 모로시[7]와 선수 대표로서 인터뷰했다.

일본과 연이 있는 이종범의 아들이자 외모 역시 출중하고 성적도 좋아 일본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 SNS에서는 이정후를 주니치, 한신, 라쿠텐 등 여러 NPB 구단에서 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1 #2 #3 특히 이 중 주니치는 팬들이 이정후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며, 카토 히로유키 구단 CEO가 이종범의 주니치 코치연수에 맞춰서 “아들 획득도 적극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




아쉽게도 준우승 메달에 그쳤지만 김하성과 함께 대표팀 중에서는 유이하게 베스트11로 선정됐다.


3.2.2. 2020 도쿄 올림픽[편집]


2020 도쿄 올림픽
파일:20210804_223545.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7
7
29
7
2
0
1
3
3
.242
.281
.448
.729
0
4
2


이미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정후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이로써 프로 데뷔후 열린 국제대회에 모두 참가하게 되었다.[8]


파일:이정후 소신발언.jpg


(한국야구 미래 걱정에) 요즘 어린 친구들은 야구보다 e스포츠를 더 좋아해요. 이번 도쿄 올림픽을 통해 야구에 관심 없는 분들도 좋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1년 6월 16일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 승선이 확정된 후[9]


김경문 감독은 지난 프리미어 12에서도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을 겸비한 이정후를 테이블 세터가 아닌 3번타자로 활용하여 성공을 거뒀는데 이번에도 톱타자 혹은 중심타선에 세워 멀티 외야수로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29일 이스라엘과의 개막전 경기에 2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경기 초반은 좋지 않았다. 3회 첫 찬스에서 병살타로 물러났고, 5회에도 우측 선상에 붙은 강습 타구를 이스라엘 1루수 대니 발렌시아가 잡아내면서 2루타성 타구가 범타가 됐다. 하지만 7회 2-4로 뒤진 상황에 선두타자로 나와 우완 잭 와이스에게 추격의 우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수비에서도 경기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6-5 신승에 기여했다.

31일 미국과의 오프닝 라운드 2차전 역시 2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은 초반부터 맹타를 휘둘렀다. 1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상대 선발 닉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뽑아냈다. 이후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치며 일찌감치 멀티히트 게임을 완성했다. 이 날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한국에서 유일한 멀티 출루, 멀티 히트를 기록한 선수로 남았다.

8월 1일 도미니카와의 녹아웃 스테이지 1차전은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1회말 무사 2, 3루 찬스부터 침착하게 볼넷을 걸러 출루했다. 이후 2-3 상황이던 9회말 1사 2루 찬스에서는 좌측을 가르는 2루타를 만들어 2루 주자였던 박해민을 불러내 동점을 만들었고 같은 이닝의 2사 2루에서 김현수의 결승 안타 때 홈으로 들어와 역전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

8월 2일 이스라엘과의 녹아웃 스테이지 2차전도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1회말 첫 타석에서 희생플라이로 결승 타점을 올렸다. 5회말에선 유격수 정면으로 간 타구가 상대의 악송구로 인해 2루까지 진루하였고 김현수의 투런 홈런으로 홈을 밟으면서 11-1 대승에 기여하였다.

8월 4일 일본과의 준결승 역시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1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야마모토 요시노부[10] 상대로 우익수 키를 넘기는 대형 2루타를 때려냈다. 두 번째 타석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6회초 세 번째 타석에서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공에 스플리터와 커브를 섞은 유인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압박하더니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익 선상 안타를 쳐 무사 1,3루의 찬스를 만들어냈다. 팀도 이정후가 연결한 찬스에서 김현수가 1타점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승부를 원점을 되돌렸다. 그러나 팀은 8회말 고우석의 3실점으로 인해 2:5 로 패배하며 미국과의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그래도 이정후 개인으로서는 일본전에 약했던 징크스를 떨쳐내고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특히 2년 전 프리미어 12에서 자신에게 삼구삼진 굴욕을 안겨준 야마모토에게 완벽하게 복수를 했던 의미있는 경기였다.[11]



'3타수 2안타' 불방망이 휘두르는 이정후…이승엽도 감탄 (야구 준결승 일본전) | 파일:SBS 로고 화이트.svg

이날 경기를 중계한 지상파 3사 야구 해설진들은 6회 이정후와 야마모토 대결을 최고 명승부로 꼽았으며, 일본 방송측 야구 해설진들도 이정후에 대해 하체축이 흔들리지 않고 컨택과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며 칭찬했다. 이정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야마모토는 좋은 투수고, 좋은 투수와 상대한다는 게 흔치 않은 기회다. 전력분석에서 좋은 자료를 많이 줬다. 나도 나름대로 전략을 잘 짜고 들어가 오늘 경기에서 좋은 타구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



2021년 8월 4일 경기 종료 후 인터뷰

8월 5일 미국과의 패자 준결승 경기에서는 좌익수 3번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회초 조 라이언을 상대로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쳐 2사 2루 찬스를 만들었으나... 김현수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나 선취점을 내는데 실패했다. 4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잘친 타구가 수비 시프트로 2루 1루 사이에 자리 잡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범타로 물러났다. 그리고 8회초 다시 선두타자로 볼넷으로 걸어나갔지만, 김현수가 병살타를 치면서 득점에는 실패했다.[12] 이 날 경기 이정후는 2출루를 기록하며 나름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팀은 2-7 스코어로 패배했다. 이때 표정이 상당히 심기가 불편함을 감추지 못 했을 정도. #

패자 준결승전 마저도 패하면서 8월 7일 도미니카와 동메달 결정전을 펼치게 되었으나 우리가 알던 이정후와 달리 5타수 무안타 2병살로 찬스를 모두 날려먹었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근데 추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손가락 통증이 있는채로 경기를 소화했다고 한다. 결국 6-10으로 패배하면서 도미니카 참사에 한몫했다. 그래도 껌백호가 어그로를 다 가져가서 펜스를 잡으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최소한의 자존심은 보여줬다는 평. #

이번 대회에서 이정후는 타율과 출루율은 그리 높진 못했지만 추격 홈런, 동점 적시타, 강팀인 미국과 일본의 선발 에이스 투수들을 상대로 타석에서의 끈질긴 명승부를 보여주고 중요할 때마다 공격의 맥을 뚫어주며 큰 임팩트를 보여줬다. 앞으로 국가대표팀의 타선을 이끌 국제용 선수로 손색없음을 입증했다. 안타까운 점은 위 인터뷰에서 언급한 올림픽을 통한 도쿄 키즈 세대 창출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7년 뒤 그가 서른쯤이 되었을때 열리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야구 종목이 부활할 가능성이 매우 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3.3. 이강철호[편집]



3.3.1. 2023 WBC[편집]


2023 WBC

파일:이정후_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pn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4
14
6
2
0
0
5
4
.429
.500
.571
1.071
1
1
2


저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등 영광의 순간을 보며 자랐는데, 국가대표로는 아쉬운 성적표만 받아서 마음이 무척 무겁다.

지금이 한국 야구의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실망하셨을 팬들에게 한국 야구가 다시 도약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며 "도쿄올림픽 4위, WBC 1라운드 탈락 등 아픈 경험을 했지만, 이런 경험도 내게는 소중하다. 2026년, 2030년, 2034년까지 WBC 대표팀으로 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본에 설욕?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의 실력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야구의 발전을 위해 일본을 꺾어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실력을 더 늘려야 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 WBC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음 대회까지 3년간 더욱 성장하겠다.

한국에도 좋은 투수들이 많지만 (일본 투수들은) 볼끝, 공의 힘이 달랐고 코너코너 들어오는 제구력이 정말 좋더라.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예선 라운드 탈락을 한 뒤 인터뷰에서[13]


2023년 3월에 열리는 2023 WBC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강력한 3번 타자 및 중견수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2022년 11월 중순에 열릴 예정이였던 MLB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 2022[14]에 출전하는 ‘팀 코리아’(KBO 올스타팀) 출전 명단에 올랐으며, 기사 보도에 의하면 메이저리거 선수들의 합류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그대로 WBC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에 앞서 MLB 공식홈페이지인 MLB닷컴은 2023년 2월 12일 WBC에 출전하는 선수 중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를 선정하였는데 이정후는 마이크 트라웃무키 베츠와 함께 외야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15] # 그리고 MLB닷컴은 이정후에 대해 “WBC에 출전하는 외야수 중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흥미로운 선수가 될 수 있다. 이정후는 2023시즌 종료 후 MLB에 진출할 예정이며 WBC는 자신을 소개하는 국제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1 #2 그리고 이후 MLB닷컴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 중 하나로 이정후를 선정했으며, 크게 주목해야 할 맞대결에 대해서도 한국의 이정후와 일본의 사사키 로키의 맞대결을 꼽았고,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3월 8일에는 MLB닷컴이 단독 인터뷰 대상자로 이정후를 지목하며 MLB닷컴과 WBC 공식 단독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큰 관심을 표했다. #1 #2 #3 #4

한편, 베이스볼 아메리카(BA)는 매 대회마다 유망주 랭킹을 발표했는데 이번 대회에도 랭킹을 발표했다. 한국 국적의 선수로는 이정후 외에도 김혜성, 강백호가 포함되어 있다. 원문 링크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발표한 WBC 유망주 랭킹에서 상위 10명이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봤다는 점에서도 이 리스트에 포함된 선수들은 눈여겨 볼만한 선수라는 뜻.

지난 시즌 타율, 안타, 타점, 출루율, 장타율 1위를 휩쓸어 타격 5관왕 및 MVP에 등극한 이정후지만 지난 겨울 보폭을 조금 좁히고 배트를 잡은 팔의 높이를 낮추는 등 타격폼에 변화를 주며 또 한 번의 진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그 첫 실험대가 바로 이 대회로 2023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만큼 메이저리거들과의 맞대결이 기대된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이번 대회의 이정후를 관심있게 볼 것으로 전망된다.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본인의 메이저리그 몸값을 더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경우 메이저리그 진출의 문을 스스로 걸어잠그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 투손 캠프에서 그다지 좋은 타격감을 보이지 못했던 이정후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 펼쳐진 NPB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평가전에서 멀티히트를 날리며 살아난 모습을 보였다. 다음 날인 한신 타이거스와의 평가전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본 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인 호주 전에서는 1안타를 치긴 했으나 공략하기 수월할 거라 생각했던 호주 투수들을 상대로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9회말 1사 주자 1루에서 뜬공으로 물러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

두 번째 경기 일본 전에서는 그 강하다는 일본 투수진을 상대로 무려 멀티 히트를 치고 1타점을 따내는 활약을 했으나, 투수진이 말 그대로 처참하게 박살나면서 팀은 크게 패배했다. 한편 이정후는 현재 KBO를 대표하는 새로운 젊은 스타이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해이기에 세계적으로 눈도장을 받을 수 있는 이번 WBC가 중요했으나, 호주전과 일본전 2연패를 통해 팀은 1라운드 광탈에 그쳤다. 하지만 이정후는 투수진이 18이닝 21실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타자들이 허무하게 돌아서는 가운데 두 경기 동안 양의지, 박건우와 함께 제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작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실질적 에이스였던 다르빗슈 유와 작년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이마나가 쇼타에게 각각 안타와 2루타를 기록하면서 리그 수준 저하로 인해 기량을 의심받고 있는 다른 타자들과는 달리 이정후는 도쿄 올림픽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경기에서도 통하는 타자라는 사실을 증명해내었다.[16] 게다가 이들이 모두 95마일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정후의 강속구 대응 능력과 적응력을 확인해 볼 수도 있었다.

경기는 완패했지만 본인은 일단 제 실력을 발휘했고, 잘생긴 외모 덕에 일본 넷상에서 '잘생긴 한국의 이치로'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1라운드에서 팀은 떨어지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고 자신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팀이 몰락하는 동안 이정후 본인은 충분히 활약했기에 해외 스카우터들에게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쇼케이스 역할은 이미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17]

이후 체코전과 중국전에서는 멀티히트를 기록하면서 대표팀에서 박건우, 양의지와 함께 매 경기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또한 이미 본선진출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집중력과 투지를 잃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박수를 빋았다.

본인이 성인무대에 데뷔한 뒤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전력이 계속해서 하락하여 대표팀에 올때마다 대표팀은 처참한 성적표와 비판을 받고 돌아가는 반면, 본인은 묵묵히 대회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며 홀로 비판을 빗겨나가고 있다.

한국에게 있어서는 참담한 결과만을 남긴 2023 WBC지만 이정후가 확실하게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만큼은 긍정적인 성과라고 할수 있을듯. 다만 WBC에서도 이정후를 매우 주목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위라운드에 진출하여 한 단계 더 높은 투수들을 상대로 본인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잃었다는 것은 매우 뼈아플듯하다.

이후 요시다 마사타카, 오카모토 카즈마 등 일본 선수들 몇몇과 친해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인스타에서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면서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글을 올렸는데 거기에 다르빗슈 유가 함께 플레이하기를 기대하고 있겠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번 WBC에서 직접 상대해보기도 한 데다 김하성이 이정후의 팀 선배이자 다르빗슈와는 메이저리그 팀 동료인만큼 진작부터 이정후에 대해 들어봤었기에 본인도 관심을 가지고 댓글을 단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상으로 인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이 좌절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 이정후의 마지막 대표팀 대회가 되었다.

3.4. 류중일호[편집]



3.4.1.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참가 불발)[편집]


4월 9일 오전에 발표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나설 류중일호의 1차 예비 엔트리에 발탁되었다. 과거 대표팀 선발 논란으로 이번 대회부터는 만 24세 이하, 또는 프로 입단 3년차 이하 선수들로만 최종 엔트리를 꾸린다는 원칙을 정해졌는데 류중일 감독도 이정후는 꼭 필요한 선수라며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특별히 언급하는 등 사실상 발탁은 기정사실이다. 이후 인터뷰에선 만약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승선한다면 주장을 맡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어필하기도 했다.

그간 대표팀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와일드카드로 어떤 선배님들이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주장이 된다면)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잘 할 수 있다.

2022년 4월 17일 경기 후 인터뷰[18]


하지만 중국에서 아시안 게임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모두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출전 가능성이 희미해졌다.[19] 연기된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2023년 9월로 다시 확정됐고, 엔트리에 승선했으나 동년 7월에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고서 약 3개월간 재활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자연스레 출전도 불가능해졌다.

한편 대만전에서 타자들이 집단 슬럼프를 겪으며 0:4 완봉패를 당하자 이정후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끝내 반등에 성공해 이정후 없이도 금메달을 따냈다.

4. 둘러보기[편집]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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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나이 기준.[2] 천후의 발은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1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3] 국가대표팀경찰 야구단의 연습 경기에서 나온 이야기였다.[4]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은 A대표팀이 아닌 U-24 대표팀이다.[5] 중국3루수가 파울 지역에서 호수비를 했고 3루주자 김현수의 주루 플레이가 좋았다.[6] 장면을 자세히 보면 포효를 외친 뒤에도 스텝이 또 꼬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7] MLB.com의 칼럼니스트이자 FOX Sports 방송 기자로 유명하다.[8] 참고로 아버지인 이종범은 올림픽에 한번도 참가하지 못했는데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었던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아시아 예선 탈락)와 1996년 애틀랜타 대회는 아마추어 대표팀 구성으로 불발,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일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불발, 국내 복귀 후였던 2004년 아테네 대회는 아시아 예선 탈락, 노익장을 과시했었던 30대 후반의 2008년 베이징 대회는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전이 불발되었다.[9] #[10] 2019 프리미어 12 결승에서 3구삼진을 당했었다.[11] 이날 전까지 일본 상대로 14타수 2안타 타율 0.143에 불과했으며, 당시 야마모토가 던진 포크볼과 커브 구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올림픽에서 만나고 싶은 선수로 꼽았었다.[12] 애초에 LG에서 뛸 때도 1루수로 출전할 때 공수에서 극심한 부진을 겪어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경문은 선발 라인업을 재구성한다고 1루수에 김현수를 배치했다. 결론적으로 선수 소집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터진 모습이다.[13] #[14] 2022년 10월 29일 MLB 사무국에서 주최사 계약 이행 이슈 등으로 ‘월드 투어 코리아 시리즈’를 취소하면서 최종 무산되었다. #[15] 파일:MLB닷컴선정_2023 WBC 포지션별 최고 선수.jpg[16] 사실 마츠이 유키를 상대로도 공을 침착하게 골라내고 정확하고 여유로운 타격으로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중견수 정면으로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아웃이긴 했지만 아웃되는 과정을 보면 다른 대한민국 타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클래스에서 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7] 이정후는 일본쪽에서도 다시금 자기에게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된 것은 알지만 변함없이 메이저리그 진출이 최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18] #[19]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공개되진 않았으나, 최근 상하이와 베이징 등에서 불거지고 있는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해 도시봉쇄 정책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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