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1995)/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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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경력
1.1. 유소년 시절
1.2.1. 2014년
1.2.2. 2015년
1.2.3. 2016년
1.2.4. 2017년
1.2.5. 2018년
1.2.6. 2019년
1.2.7. 2020년
1.2.8. 2021년
2. 국가대표 경력


1. 선수 경력[편집]



1.1. 유소년 시절[편집]


파일:대건이태희.png

청주 지역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이태희는 인천의 스카우트를 받아 유스팀인 광성중으로 전학갔고, 대건고로 진학했다. 대건고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상당한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고, 당시 골키퍼 코치였던 김이섭 코치의 애제자이기도 했다. 특별한 재능이라는 소리를 들은 만큼 그는 골키퍼라는 특수 포지션임에도 저학년 시기부터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았다. 이태희는 자신보다 1살이 많은 선배 이재걸과의 경쟁에서도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재걸은 결국 승부차기용 골키퍼로 입지가 줄어들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었다. 후반기에는 큰 부상이 반복되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한 팀 동료 정의진에게 주장 완장이 넘어갔지만 변함없이 팀의 구심점으로 활약했고, 이정빈, 권세현 등과 함께 전국체전 준우승에 공헌했다.


1.2.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파일:이태희2018시즌.jpg


1.2.1. 2014년[편집]


그렇게 기대를 모으던 그는 고교 졸업 이후 본래 대건고 동기 권세현과 함께 경희대학교 입학이 예정되었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이태희는 경희대 입학 대신 프로 직행이 성사됐다. 이는 인천 유스 중에서는 세 번째이자 골키퍼 중에서는 최초의 사례.[1] 다만 첫 시즌에는 팀 상태도 어지러웠고 전반기에는 권정혁, 조수혁의 굳건한 체제가, 후반기에는 유현의 제대가 있었기 때문에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1.2.2. 2015년[편집]


새 시즌이 시작되며 권정혁은 떠났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유현과 조수혁이 여전히 팀에 남으며 3순위 골키퍼의 입지가 됐다. 벤치에 앉을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유현과 조수혁이 번갈아가며 부상을 당할 때마다 서브로 올라왔다. 그러나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4일, 성남 FC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뛰던 조수혁 골키퍼의 부상으로 후반에 갑작스럽게 데뷔 무대를 치렀다. 아쉽게 실점하긴 했으나 데뷔전이었음을 감안하면 무난한 모습을 보였고, 이후 조수혁이 시즌 아웃을 당하며 스플릿 라운드 시작 후에는 기회를 많이 얻었다. 2015 시즌 최종 기록은 4경기 3실점.


1.2.3. 2016년[편집]


2016년, 유현FC 서울로 이적하면서 이태희의 팀 내 입지는 조수혁 다음으로 높은 세컨드 골키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 초 김교빈 - 김다솔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수혁이 부상으로 없는 사이 주전으로 나왔고, 앞의 둘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였으나 상주 상무 전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4실점을 당하면서 조수혁의 복귀 일자를 앞당겨 버렸다. 그래도 다른 경기에서는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여전히 이태희에게 가능성은 열려 있었고, 이후 세컨드 골키퍼로 남아 있는 상태.

2016년 9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R리그 경기에서 아크 정면 프리킥 키커로 나서서 무회전 슈팅으로 크로스바를 맞췄다.영상 이후로도 한동안 R리그 위주로 출전하다가 시즌 마지막 경기인 11월 5일 수원 FC 전에서 오랜만에 선발 골키퍼로 출전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선이었던 데다가, 팀의 K리그 클래식 잔류가 걸린 부담감이 상당한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기형 감독은 과감히 컨디션이 좋았던 이태희를 선택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이태희는 경기 중 벌어지는 위기 상황마다 뛰어난 호수비를 선보이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면서 인천의 승리와 클래식 잔류에 크게 기여했다. 이 날 브루스 지테의 위협적인 슈팅을 선방하기도 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었다.


1.2.4. 2017년[편집]


이번에는 조수혁이 팀을 떠나면서 주전의 가능성이 생겼으나, 곧 이어 FC 안양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진형과 후보였으나 나오는 경기에서 임팩트를 보여준 정산이 영입되면서 치열한 삼파전의 구도가 생겼다. 우선 23세 이하 쿼터를 채울 수 있다는 강점을 중심으로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산은 잦은 부상으로 경력에 비해 출전이 적고 경기력도 들쑥날쑥하며, 이진형은 오랜만에 복귀한 K리그 클래식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태희가 사실상 인천의 1선발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이태희는 시즌 초에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기도 하면서 동년배의 강현무와 함께 주목받는 골키퍼 유망주로 떠올랐지만, 아직 어린 선수라 다소 분위기에 휩쓸리는 모습도 보이면서 안정감이 중요한 인천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었고, 결국 정산의 폼이 올라오면서 정산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세컨드 키퍼로 밀려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진형이 정산까지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얻어내며 이태희는 R리그에서만 모습을 보이는 서드 골키퍼로 다시 밀려났다. 시즌 막판까지 반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개인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시즌이 되었다.


1.2.5. 2018년[편집]


이태희 선수 개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즌이 될 전망이다. 우선 이 해를 마지막으로 U-23 쿼터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고[2] 아시안게임이 있다는 점이 제일 크다. 그리고 유스에서 그와 두 살 차이 나는 김동헌이 용인대에서 성장하고 있고, 민성준도 대건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진학했는데 이 선수들 역시 청소년 대표팀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고, 이태희와 나이도 비슷하기 때문에 자칫 이후로도 본인의 입지가 꼬일 수 있다.

이진형이 개막전에서 실책을 범하면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출전했지만, 본인도 그리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계속 흔들리는 모습으로 아쉬움을 더했으며, 고르단 부노자와의 콜 미스로 두 번째 골을 어이없게 실점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좋은 펀칭이나 괜찮은 킥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아직 더 성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한 경기만에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서 돌아왔다. 대구 FC를 상대로 연달아 선발로 나온 이태희는 카이온, 김경준, 김대원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한희훈의 위협적인 슈팅까지 쳐내면서 무실점으로 인천을 지켰다. 이 경기에서 보여 준 활약 덕분에 다시 아시안게임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이후로도 사실상 부동의 1선발로 활약하고 있다.

분명히 이태희가 셋 중에서는 가장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뜬금없이 이진형과 정산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이 계속 나오면서 팬들이 이런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이진형이 실책이 늘고 정산도 큰 임팩트가 없는 만큼 제일 젊은 유스 출신 이태희를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 주 논거. 이기형 경질 후 박성철 대행도 이진형을 기용했지만 대참사가 일어나면서 이태희의 확고한 주전 기용 주장이 더 힘을 얻었다.

욘 안데르센 부임 이후 안데르센이 정산을 중용하고 이진형을 세컨드 키퍼로 낙점하면서 결국 R리그 골키퍼가 되고 말았다. 정산이 3실점을 이어 가자 결국 이진형이 주전이 되었으나 이태희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탈락에 이어 팀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며 이래저래 커리어가 꼬이고 있다.


1.2.6. 2019년[편집]


일단 팀에는 남아 있으나,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유스 출신의 김동헌이 콜업되었고 그 이후 FC 서울에서 뛰었던 손무빈이 인천으로 이적한다는 설까지 불거지면서 주전은 커녕 백업 자리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시즌 도중 상주 상무의 추가 모집에 지원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3] 인천에 남아 봤자 어차피 미래가 불확실한지라 병역부터 빨리 해결하려는 듯. 그러나 2019년 3월 발표된 상무의 서류 전형 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예 지원하지 않았거나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9 K리그 1 5라운드 대구 FC전에서 정산이 부상으로 결장해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세징야의 두 차례 날카로운 프리킥을 선방하였으나 김진혁의 멀티골, 세징야의 쐐기골을 허용하며 팀의 0:3 패배를 막지 못했다.

6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에서도 선발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고질적인 펀칭 미스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 외에는 종종 좋은 선방도 있었고 특히 전반전 이승기의 왼발 중거리 슛과 문선민의 결정적인 슈팅을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쳐냈지만 팀은 0:2로 패배했다. 이 두 경기에서의 모습으로 볼 때 왜 이태희가 정산에게 밀리고 있는지가 드러나고 있는데, 정산도 펀칭 미스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태희만큼 심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 크다.

이후 정산의 복귀로 다시 주전에서 밀렸으나 FA컵 32강 청주 FC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그러나 전반 19분 이동현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0:1 패배와 팀의 FA컵 탈락을 막지 못했다.

13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전반 29분 정산이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 출전하였다. 이후 윤빛가람의 중거리 슈팅을 안정적으로 선방하고 이규성의 결정적인 슈팅을 엄청난 슈퍼 세이브로 쳐냈다. 이렇게 상주의 맹공을 나름 잘 막아내고 있었으나 37분 김민우가 1:1 찬스에서 칩샷으로 이태희를 가볍게 넘겼고, 양준아가 가까스로 걷어냈으나 세컨볼을 잡은 이태희[4]의 패스를 받은 박용지의 정확한 슈팅에 반응하지 못하고 실점을 내주고 만다. 그리고 54분 박용지의 패스를 받은 이태희에게 두 번째 골까지 내주었다. 이 외에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활약했으나 본인에게 1골 1도움을 허용하며 끝내 팀은 패배하고 말았다.

정산의 부상이 심하지 않아 바로 다시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16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상대로 뜬금없이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미친 선방을 보여주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지만, 결국 김신욱에게 실점을 허용하면서 패배했다. 이후 다시금 정산이 주전으로 뛰고 있었는데, 19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유상철 감독이 대거 로테이션을 돌리며 또 한번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도 좋은 선방을 보여주면서 능력을 입증했으나, 수비진이 집중력을 잃는 바람에 주니오에게 실점해서 또 패배를 경험했다.

정산에 대한 신임이 이어지면서 이태희는 서브로 확정되어갔는데, 33라운드 전북과의 경기를 앞두고 워밍업을 하다가 정산이 부상을 당하면서 갑작스럽게 선발로 올라왔다. 이로써 서브 키퍼임에도 2019년 전북을 상대한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을 달성했다. 경기 내에서의 활약도 좋았고, 준수한 선방과 수비진의 분전이 합쳐지며 자신의 시즌 첫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이후 정산의 4주 아웃이 확정되었는데, 시기 상 거의 시즌아웃이나 다름이 없어 드디어 주전 등극의 기회가 찾아왔다. 잔류를 위해서는 이태희의 활약이 절실해진 셈.

이어진 34라운드 성남 FC 원정에서는 예상대로 선발로 출전했다. 이 날 경기에서 인천은 주도권을 내주며 수차례 위기를 맞았는데, 이태희가 신들린 선방으로 무력화시키면서 고비를 넘겼다. 실제로 이 날 이태희는 결정적인 슈퍼세이브를 거의 5차례 이상 보여주면서 성남의 공세를 저지했다. 그리고 인천은 기어이 스테판 무고샤의 프리킥 득점으로 1:0 승리를 따냈다. 경기 종료 후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보였으며, 후보 골키퍼로 있던 후배 김동헌도 같이 눈물을 살짝 보였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쭉 주전으로 출전해서 일취월장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37라운드에는 주간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그간 클린시트를 많이 기록하지 못하는 불운이 있었으나 시즌 말미에 수비진도 비교적 안정되고 본인의 폼도 올라오면서 몇 차례 클린시트를 추가했다. 최종전에서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잔류에 공헌했고, 정산과도 주전 경쟁을 이어갈만한 폼을 확실히 만들었다는 평.


1.2.7. 2020년[편집]


새 시즌을 앞두고 인천과 3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2023년까지 인천에 잔류하게 되었다. 계약 기간도 상당히 길고, 군 문제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2025년까지의 계약이나 마찬가지. 인천 팬들은 시즌 막판 상승세를 보여준 이태희와의 재계약 소식을 굉장히 반가워했다. 올해에는 주전 등극을 노려볼만했으나 정산이 폼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결국 리그 경기에서는 다시 벤치를 지켰고, 부상을 당하면서 잠시 벤치에서도 빠지게 됐다.

16라운드 대구 FC전에서 드디어 시즌 첫 경기를 치뤘다. 김대원과의 1대1 찬스와 세징야, 정승원, 이진현 등의 공격을 막아내고 1:0으로 승리하면서 첫 출장에 팀의 귀한 1승과 클린시트까지 모두 챙겼다. 이 경기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는지 계속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다.

21라운드 FC 서울전에서는 한승규 등의 슈팅을 막으며 순조로운 듯 했으나... 후반 7분 윤주태의 크로스에 어이없는 펀칭 미스를 범하며 실점을 허용했다. 실점 직후 화면에 잡힌 조성환 감독의 극대노한 표정이 압권. 다행스럽게도 VAR 후 정현철의 파울로 골이 취소되었고, 송시우의 골로 팀이 승리를 거두어 죽다 살아난 셈이 되었다.

26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는 그야말로 노이어가 연상되는 활약을 펼쳤다. 훌륭한 선방뿐만이 아닌 노이어가 능숙하게 쓰는 크루이프 턴을 성공시키면서 오랜만에 발재간 좋은 키퍼가 나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 간지 쩌는데요? 후반 막판 김현의 헤더를 선방한 뒤 이정협의 결정적인 슈팅을 발을 뻗어 막아내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다.

부상으로 인해 출발은 늦었지만 후반기에는 확실한 주전으로 선택을 받았다. 향상된 안정감과 준수한 반사신경을 보여주며, 인천의 주전 골키퍼로서의 충분한 기량을 선보인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2020시즌 K리그1 출전기록은 12경기 11실점 6클린시트.


1.2.8. 2021년[편집]


2020년의 활약을 바탕으로 주전 자리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1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 전반전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나, 후반 포항의 거센 맹공을 못이겨 후반 14분 신광훈에 동점골을, 26분에는 자신의 실수로 송민규에게 추가 실점까지 허용하면서 2:1로 역전패했다.

3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13분 이동준의 압박에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공을 걷어내려 한 것이 이동준을 걷어차며 파울을 범해 PK를 내줬다. 윤빛가람의 킥을 선방했으나, 킥 당시 오재석의 발이 박스 안에 걸쳐있어 다시 찼을 때는 막지 못했다. 후반전에는 좋은 선방을 보이기도 했지만 델브리지가 허용한 PK와 김인성의 추가골로 3:1 패배. 7라운드 광주 FC 원정에서는 후반 추가시간에 세 차례의 슈퍼세이브를 보여주었으나 종료 직전 이희균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배했다.

1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는 경기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13라운드 강원 FC전에서도 클린시트와 함께 팀의 승리를 이끌어내며 2라운드 연속으로 베스트11 골키퍼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14라운드 대구 FC 원정에서의 3실점 이후 15라운드부터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부상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조성환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골키퍼 경쟁 체제인 듯. 이후 17라운드 경인 더비에선 명단에 다시 올라왔다.

8월 18일에 열린 리그 20라운드 순연경기 성남 FC 상대 홈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선발출장하면서 여러번의 슈퍼 세이브를 기록해 팀의 1 : 0 승리와 무실점을 도왔다. 이어진 27라운드 대구 FC전에도 출전하면서 기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다만 이후로는 입지가 계속 오락가락하는 중. 31라운드 FC 서울전에는 정산이 선발로 출전했는데, 정산이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로 출전했다. 이후 김동헌이 주전으로 나서면서 서브에 있다가 36라운드에 김동헌이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 교체로 출전했다. 아쉽게도 투입 직후 실점을 허용했지만 김현의 동점골로 팀이 조기 잔류를 확정지으면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후 마지막 남은 두 경기에서는 김동헌을 대신하여 선발로 출전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시작 전에는 주전으로 큰 기대를 받았고, 본인의 활약도 괜찮은 편이었으나 김동헌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다시 경쟁에 직면했다. 다음 시즌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인천에서 이태희의 입지를 결정할 듯.

2021시즌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26경기 출전 36실점 클린시트 7회.


1.2.9. 2022년[편집]


인천에서 9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이윤표와 함께 구단 역대 최장 기간 소속된 선수가 됐다.

기존 1번의 소유자이자 경쟁자였던 정산이 대전으로 이적하면서 공번이 된 1번으로 번호를 옮겼다. 이로서 인천 입단 후 처음으로 1번을 달게 됐다. 인천의 골키퍼들 중 최연장자에 프로 경력 또한 가장 길고, 게다가 유스 출신 골키퍼라는 상징성까지 있는 선수라서 1번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측 인대 부상으로 2~3개월은 못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 바뀐 선수 소개 멘트는 이제는 인천의 넘버원.

4월 27일 광주와의 FA컵 3라운드에서 복귀전을 치뤘으나 6실점을 당하면서 6 : 1 대패를 기록했다. 해당 경기에는 부상에서 막 복귀한 선수들이 무리하게 출전했기 때문에 팀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나빴고, 다소 찜찜한 복귀전이 되고 말았다.

12라운드 울산 원정에서 리그 첫 출전을 기록했다. 인천은 전반에 2득점을 먼저 기록했으나 수비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등 악재가 겹쳐 팀이 흔들렸다. 결국 동점이 됐지만, 이태희는 울산의 위협적인 공격을 틀어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후반 추가시간에 레오의 승부를 끝낼 헤더를 왼발로 틀어막은게 결정적이었다. 팀이 줄부상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승점 1점을 건져 오는 활약을 했다.

이어진 13라운드 대구와의 홈경기에서는 전반 초반 대구의 슈팅을 연속으로 막아냈으나 이후 실점을 당하면서 2경기 연속 2실점을 허용하게 됐다. 14라운드 포항전에도 출전했으나, 이번에도 2실점을 기록하였다. 개인의 활약 자체는 좋은 편이었는데, 임상협허용준 등에게 찾아온 위협적인 기회를 막아내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다만 복귀 후 계속해서 실점이 이어진데다 팀도 부진에 시달리고, 그 전까지 주전으로 나오던 김동헌의 경기력이 좋았기 때문에 이태희보다 김동헌의 손을 들어주는 팬들이 많았다. 결국 15라운드부터는 다시 김동헌이 출전하였고,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시 경쟁이 시작됐다.

한동안 2순위 골키퍼로 밀려나서 벤치에 있다가 김동헌이 부상을 당하면서 23라운드 성남전부터는 다시 출전 기회를 받았다. 선방 능력 자체는 괜찮지만, 김동헌에 비해 안정감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킥의 경우 예전보다 확실히 발전했지만 공중볼 처리 과정에서의 미스가 있는 편.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실점을 계속 허용하면서 클린시트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27라운드 포항전까지 계속 실점을 허용하면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28라운드 서울전에 드디어 시즌 첫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31라운드 수원전에 선발로 출전해서 전반전에 좋은 선방을 계속 보여줬다. 하지만 후반에 세트피스로 연달아 실점하는 등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 3 : 1까지 밀리고 말았다. 힘든 경기가 되었지만 후반전 추가시간 김대중의 추격골과 신인 김민석의 극장 동점골로 무승부를 기록, 파이널 A행을 확정지은 경기가 되었다. 이태희 나름대로는 분전했지만 수비 불안을 해결하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남은 경기에서는 복귀한 김동헌이 다시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벤치에도 주로 민성준이 앉았고, 최종전에 민성준이 인천 데뷔전을 치르면서 새로운 경쟁자까지 생겼다. 처음으로 1번을 달았던 시즌이지만 시즌 전체의 활약도는 다소 애매했다. 경쟁자들에 비해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있고, 본인의 폼도 일정하지 않았던 시즌.

2022년 기록은 리그 12경기 18실점 2클린시트, FA컵 1경기 6실점.


1.2.10. 2023년[편집]


인천 입단 10년 차

작년에 달았던 등번호 1번을 후배 김동헌에게 넘기고 다시 21번을 배정받았다. 지난 시즌에 김동헌의 활약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2선발 골키퍼로 시즌을 치르리라 예상된다.

시즌 초반에는 예상대로 김동헌에게 밀려 벤치에서 대기하였다. 그러나 김동헌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실책이 잦아지면서 골키퍼 로테이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특히 4라운드 광주전에 대패를 당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결국 5라운드 대구전에 시즌 첫 선발출전 기회를 얻었다. 이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긴 했으나, 대구가 워낙 빈공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실 크게 막을 건 없는 경기였다. 아직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이 중론. 6라운드 전북전에도 선발로 출전했으나 팀의 경기력이 나빴고, 결국 2실점을 허용하면서 패배를 당했다.

김동헌의 부진으로 다시 주전 출전 기회를 잡나 싶었지만, 7라운드부터는 김동헌도, 이태희도 아닌 민성준이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민성준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시 2선발 골키퍼로 돌아왔다. 민성준이 연령별 대표팀 차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인데다 현재 기량도 좋기 때문에 당분간 민성준에게 기회가 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12라운드 제주전을 앞두고 민성준이 안면 부상도 당했고, 청소년 대표팀 차출 일정도 겹치면서 이태희에게 다시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 나온 경기에서 활약 자체는 평이한 편. 큰 실수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고, 종종 좋은 선방도 보여주고 있다.

5월 말 FA컵 경기를 기점으로 다시 김동헌이 선발로 나서면서 본인은 벤치로 돌아왔다. 김동헌이 2022년의 모습을 제법 찾으면서 다시 경쟁에 직면한 상황.

25라운드 전북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김동헌의 부상으로 선발출전하였다. 경기 시작 전부터 폭우가 쏫아지며 경기에 변수가 생겼고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어버리면서 전반전 2실점을 하면서 패배하였다.

26라운드 대구FC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출전하며 자신의 K리그1 통산 100경기를 기록했다. 이날 대구의 유효슈팅이 3개였던만큼 엄청난 선방을 보여준 장면을 없었고 후반전 오반석이 PK를 내주면서 클린시트는 실패했지만 경기는 3:1 승리하였다. 경기 이후에 아내의 임신소식을 전하며 팀 승리와 함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27라운드 광주 FC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출전하였다. 경기 내내 광주의 위협적인 유효슈팅을 죄다 슈퍼세이브로 틀어막는 미친 활약을 보였으나 후반 34분과 후반 추가시간 3분 실점을 허용하면서 아깝게 2:2 무승부, 2연승에 실패했다. 사실 후반 34분 아사니의 프리킥 골은 레프 야신도 못 막을 궤적으로 들어갔고, 이건희의 동점골은 골키퍼 맞고 운 없이 굴절돼서 들어간 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중론.

2. 국가대표 경력[편집]


대건고 시절의 활약을 통해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자신의 나이대에서는 꾸준히 주전을 차지하였다. 그 결과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 직행까지 달성.

인천에서 함께 한 김봉길 감독이 이끄는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대표팀 명단에 발탁되었지만, 과거에는 주전으로 뛰었던 것과 다르게 프로에서 큰 성장세를 보여준 강현무에게 밀려 단 1경기도 뛰지 못한 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결국 아시안게임 최종 명단에는 탈락.

[1] 첫 번째는 진성욱, 두 번째는 박지수. 한편 이때 같이 경희대 진학을 포기한 동기 권세현은 유럽으로 넘어갔다가 이후 K3리그 무대로 왔다.[2] 애초에 룰도 U-22로 개정된다.[3] 게다가 상무 입장에서도 추가 모집이 필요한 큰 이유가 있는데, 2019년 전반기 합격자 중에는 골키퍼가 없기 때문이다.[4]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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