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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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전달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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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석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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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석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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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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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FC No. 4

C

오반석
吳反錫 | Oh Ban-Suk

출생
1988년 5월 20일 (35세)
경기도 과천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9cm, 81kg
포지션
센터백
소속
선수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1~2018)
알 와슬 FC (2018~2019)
무앙통 유나이티드 FC (2019 / 임대)
전북 현대 모터스 (2020)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0 / 임대)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1~)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경기 (대한민국 / 201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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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면제[1]
번호
국가대표팀 - 4번[2]
제주 유나이티드 FC - 26번,[3] 20번,[4] 5번,[5] 4번[6]
알 와슬 - 40번
무앙통 유나이티드 FC - 4번
전북 현대 모터스 - 4번
인천 유나이티드 FC - 26번
프로입단
2011년 제주 유나이티드 FC[7]
종교
개신교
가족
아내 여예지 (2021년 12월 18일 결혼) ,아들
주발
오른발(양발)
학력
과천초등학교 (졸업)
과천문원중학교 (전학)
존 폴 칼리지 (졸업)
강릉제일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생활체육학 / 학사)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인천 유나이티드 FC 소속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과거 제주 유나이티드의 주장이자 원클럽맨 후보로 유명했고, 해외를 거쳐 국내에 복귀한 이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부터 인천의 19대 주장을 역임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반석/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장신을 활용한 강력한 제공권과 깔끔하면서도 정확한 태클 능력이 강점이다. 리그 최고 수준의 제공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지간한 장신 공격수들을 만나도 밀리지 않고 수비해내는 편이다. 귀공자스러운 외모지만 몸이 더러워지거나 부상당하는 것을 불사하고 몸을 던지는 태클을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결정적인 수비를 자주 기록했다. 파울이 나오지 않게 공만 건드리는 태클이 일품이고, 몸싸움에도 능하다. 과거 전남에서 뛰었던 스테보가 오반석과의 경합에 밀려 한국어로 힘들다고 토로했을 정도. 타겟형 스트라이커와 주로 맞붙는 편으로, 개인의 수비력은 리그 수위급으로 꼽힌다. 수비 시 위치선정 및 판단력도 우수하고, 수비의 일원으로 뛸 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

단점으로는 스피드와 빌드업을 꼽을 수 있다. 스피드는 확실히 느린 편이고, 부상이 반복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약점으로 빌드업이 꼽히는데, 사실 기술 자체는 좋은 편이다. 부드럽게 공을 다루는 능력도 있고, 안정적으로 공을 돌리는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아래에서 점유율을 유지해주고 주변 선수들과 주고받으며 활로를 찾아나가는 플레이는 잘 수행한다. 그러나 본인이 공격을 만들어나가는 부분에는 취약하며, 2020년대 이후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빌드업이 강조되는 흐름 기준으로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오반석의 전성기 기준으로는 오반석 정도의 빌드업 능력으로도 충분히 리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시대가 지나가면서 현재는 약점으로 취급받을 정도. 쉽게 말하자면 수비의 핵심 일원은 될 수 있으나 중심에 서서 조율하는 역할은 힘들다. 때문에 오반석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비 전체를 조율해주는 선수가 필요하다. 제주에서부터 함께 했던 파트너인 양준아, 권한진이나 인천에서 합을 맞췄던 김광석 등이 대표적이다.

수비 스타일은 은근히 파이터적인 경향이 있다. 엄청나게 가출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적극적인 활동 범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커버를 위주로 플레이하다가도 어느 순간 파이터 성향이 짙게 드러나기도 하는 선수. 스피드에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공략당할 때도 있고, 반대로 힘이 좋기 때문에 이 성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를 무너뜨려버리기도 한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편.

특이한 점으로, 오른발잡이지만 3백의 왼쪽 센터백을 선호한다. 센터백들도 오른쪽, 왼쪽 중 선호하는 위치가 있기 마련이고 보통은 자신의 주발과 같은 쪽을 선호한다. 그러나 오반석은 어렸을 때부터 '왼쪽 센터백을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다면 내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 왼쪽에서 수비하는 습관을 들였고, 지금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어느 쪽이든 개의치 않고 수비할 수 있는 선수로 발전했다. 왼발이 주발이 아니라서 실책이 없는건 아니지만, 자주 뛰다보니 양발잡이에 가까울 정도로 왼발 사용 능력도 올라갔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왼발로도 킥을 시도하는 등 왼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올라갔다. 노장이 된 후에도 오히려 왼쪽에서 경기력이 좋은 편.

전반적으로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튀지 않는 수비수지만 종종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는 매력의 선수로 볼 수 있다. 이런 성향때문에 언론의 관심이나 개인 수상과는 거리가 있고, 인천에서도 스타들이 합류한 이후에는 존재감이 왠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주장을 차지할 정도로 팀에서의 신뢰도가 정말 높은 선수. 그리고 자신이 나서야 할때는 터프한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4. 여담[편집]


  • 오반석의 절친으로는 기성용이 유명하다. 과거 호주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오반석이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당시 오반석이 기성용에게 경기 티켓을 주었는데, 다른 자리도 아니고 무려 원정 응원석을 선물하여 기성용이 매우 난감했다고 한다. 2021년에 열린 오반석의 결혼식에도 하객으로 참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022년에 두 선수는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인천과 서울의 주장을 맡게 됐다.

  • 2016년 3월 전북 현대 모터스문상윤을 제주로 보냄과 동시에 오반석을 바이아웃으로 영입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이적은 무산되고 문상윤만 이적을 하고 말았다. 2020년 전북이 오반석 영입에 성공하자 배송까지 4년 걸렸다(...)는 드립이 나오기도. 정작 쓰지도 않고 인천으로 보내버렸지만 하지만 정작 전북에서는 결국 1경기도 뛰지 못하고 이적하게 됐다.

  • 2012년 당시 제주 홈경기에서 오반석의 이름을 딴 이벤트를 했다. 무려 오반석이 오징어와 맥반석 계란을 쏜다...

  • 2021년 11월 26일 인스타그램으로 결혼을 발표했다.

  • 훤칠한 외모로 굉장히 유명한 선수. 젊은 시절부터 K리그 최고의 미남을 꼽으라고 하면 무조건 언급되는 선수였고, 국가대표팀에 일찍 발탁됐다면 훨씬 유명했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 유독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이 없던 선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월드컵 명단에까지 올라갔다. 소집은 자주 됐지만 정작 본선만 못 가는 선수들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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