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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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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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Battle of Rantemario · ランテマリオ星域会戦

날짜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표준력 2월 8일~9일
장소
자유행성동맹령 란테마리오 성역
교전 당사자
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자유행성동맹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지휘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볼프강 미터마이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나이트하르트 뮐러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코르넬리우스 루츠
폴커 악셀 폰 부로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드로이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알렉산드르 뷰코크
춘우 지엔
파에타
라이오넬 모튼
랄프 칼센
양 웬리
듀드네이
율리안 민츠(후지사키 류 코믹스)
병력
은하제국군
함선 15만 4600척,[1] 장병 1660만 명,(원작),
함선 10만 척, 장병 불명,(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자유행성동맹군
제1, 14, 15함대
함정 3만 2900척, 장병 520만 6000명
이제르론 주둔함대
불명
피해 규모
피해규모불명
피해규모불명
결과
은하제국의 승리

1. 개요
2. 배경
3. 동맹의 대응
3.1. 트뤼니히트의 잠수, 아일랜즈의 각성
3.2. 동맹군의 준비
4. 출동
4.1. 제국군 출격
4.2. 동맹군의 출격
5. 전개
5.1. 동맹군의 선공
5.2. 제국군의 반격
5.3. 동맹군의 붕괴
5.4. 양 웬리의 등장
6. 그 후 이야기
7. 평가
8. 후지사키 류 코믹스
9. 둘러보기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의 에피소드
율리안 민츠의 페잔 탈출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수송선단 습격전

역대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제2차 란테마리오 회전

1. 개요[편집]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4장
    • 은하영웅전설 OVA 48화
    • 은하영웅전설 후지사키 류 코믹스 174화~176화
  • 시기 :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표준력 2월 8일 13시 45분 ~ 2월 9일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자유행성동맹령의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동맹으로 침공한 은하제국군의 대규모 원정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자유행성동맹군의 결전이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남은 전력 상당수를 가지고 나름대로 선전했으나 압도적인 질적,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어 자유행성동맹 우주함대는 양 웬리 휘하의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를 제외하고서는 사실상 이름만 남은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 배경[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페잔 점령 작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황제 납치 사건부터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 그리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의 대동맹 선전포고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태풍 속에서 동맹 정부는 라인하르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며 길길이 날뛰면서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르론 회랑은 동맹이 장악하고 있고 이제르론 요새양 함대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마음을 놓아버린 것이다. 또 다른 통로인 페잔 회랑페잔 자치령이 회랑 자유항행권을 틀어쥐며 외교적 수완으로 외세의 간섭을 배제해왔기 때문에 동맹, 페잔, 제국을 가리지 않고 평화로운 중립지대로 인식되어서 군사적 활용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동맹 고관과 페잔 시민들의 생각과 달리, 페잔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연이은 패전으로 몰락해가는 동맹을 버리고 제국에 빌붙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루빈스키의 제안에 응하는 척 하면서 페잔 회랑을 통해 동맹령에 침입한다는 장대한 작전을 구상했다.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은 전 인류의 시선을 이제르론 회랑에 집중시키고 양 웬리의 발을 묶기 위한 조공(助攻)이었을 뿐, 주공(主攻)은 페잔 회랑이었고 제국군 주력부대도 죄다 페잔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양 웬리는 이러한 라인하르트의 전략 구상을 정확히 추론해냈고, 직속 상관인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대장에게 손수 정리한 문서를 율리안 민츠를 전달하여 방비책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군부는 이미 정권의 시녀화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뷰코크가 아무리 제 목소리를 낸다해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정치권에서도 노친네 잠꼬대란 식으로 무시해버렸다.[2] 비슷한 시기 페잔 주재무관에 부임한 율리안 민츠 소위도 페잔 시민들에게 현 정부가 페잔의 중립을 제국에 팔아넘기려 한다고 경고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계획대로 모두 이제르론에만 신경을 쓰자 라인하르트는 볼프강 미터마이어를 선봉으로 페잔 회랑에 침입하여 페잔 행성을 기습 점령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자치정부는 무너지고 루빈스키는 지하로 도망쳤으며 페잔 자치령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하고 제국군에게 머리를 숙였다. 미터마이어의 뒤를 이어 뮐러, 라인하르트,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바렌 등등 제국군 함대가 페잔에 입성했고, 라인하르트는 자신에게 협력한 니콜라스 볼텍을 페잔 대리총독에 임명하여 임시 민정을 펼치도록 했다.

페잔 자치령의 병탄으로 이미 한 차례 크게 제국쪽으로 기울어진 군사적 균형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넘어가버렸다. 압도적인 전력 열세를 이제르론 회랑에서의 우주방어로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 이제르론 회랑의 전략적 가치는 완벽하게 상실되었다. 덤으로 동맹은 제국령 침공작전과 내전 이후 남은 1만여 척의 함대를 양 웬리에게 맡겼는데 이들이 로이엔탈 함대에 묶여 동맹 본토 방어에 적극 나설 수가 없게 되어 동맹군은 남은 예비전력만으로 싸워야 했다. 또한 과거 제국군이 동맹내부의 지리에 어둡다는 점을 활용하여 방어에 용이한 장소로 적을 유인하여 격퇴한다는 전략 역시 페잔 항로국에 저장되어 있는 방대한 분량의 성계도와 항해도가 고스란히 제국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는 제국령 침공작전,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정규함대를 상실한 동맹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3. 동맹의 대응[편집]



3.1. 트뤼니히트의 잠수, 아일랜즈의 각성[편집]


페잔이 함락되자 동맹 정부는 낭패에 빠졌다. 정부는 일단 보도관제를 내려 시민들에게 진실을 감추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 고관들이 언제 보도관제를 풀지 논의하던 사이 페잔 방면에서 돌아온 우주선 승무원들이 페잔이 무너졌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보도관제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동맹 사회는 순식간에 공황에 빠졌다. 그나마 보도관제가 유지되던 동안 도망친 고관이 없었다는 것이 정부의 위안거리였지만, 시민들은 고관들이 안전한 곳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시민들은 "어떻게든 좀 해봐!"라며 동맹정부에게 해결책을 요구했다.

당시 동맹정부의 수장은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이었다. 트뤼니히트는 선동과 웅변에 능했으며 젊고 미남에 풍부한 자금력으로 동맹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국민들은 그의 화려한 외면에 걸맞은 지도력을 기대했으나, 트뤼니히트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했다.

'책임이 막중함을 통감한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25


트뤼니히트 의장은 정부 공보관을 통해 짦은 성명을 발표한 뒤 어디론가 잠적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제서야 시민들은 트뤼니히트가 뛰어난 정치가가 아니라 입만 산 선동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트뤼니히트와 유착한 언론들은 의장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책임이라고 물타기를 시전하며 도망친 트뤼니히트가 아니라 정부를 비판한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추태를 보였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트뤼니히트가 등용한 정치가들은 죄다 능력은 1도 없으면서 충성심만 가득찬 자들이라 보스가 사라지자 모두 낭패에 빠져 정부가 마비될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동맹정부의 혼란을 수습해냈다. 바로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였다. 아일랜즈는 그 전까지만 해도 여느 부패한 내각 정치인과 다름없는 잉여인간이었고, 뷰코크가 페잔 루트로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아일랜즈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각성하여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수탄 트뤼니히트를 대신하여 동맹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대책을 논의하면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사실 이 국무회의 자체도 아일랜즈 혼자서 발언하고, 혼자서 대책을 내놓고, 혼자서 의견을 물어보고,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다른 위원장들은 무능하니 해결책 따윈 모르겠고 아일랜즈의 대격변에 놀라 그저 아일랜즈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3]

아일랜즈는 항전하되 모든 국민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최대한 유리한 상황에서 강화조약을 맺기 위해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태도를 바꾼 아일랜즈는 뷰코크를 만나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며 협조를 요청했고, 뷰코크도 변한 국방위원장을 인정하여 최대한 협조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좀 더 일찍 각성해줬으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았겠나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동맹과 협력하던 은하제국 정통정부는 제국군의 동맹령 침공이 가시화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렘샤이트 백작과 메르카츠 제독을 제외한 나머지 정부각료들이 정통정부와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안 그래도 허약하기 그지 없었던 정통정부는 이때부터 주체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이름만 남고 말았다.

3.2. 동맹군의 준비 [편집]


정부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동맹군은 있는 자원 없는 자원을 최대한 끌어모아 방어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많았다.

항전이 결정되었지만 제국령 침공작전 이래 연이은 패전으로 동맹의 군사력은 급감해 있었다. 이때 동맹군에서 1만 척 이상의 전력을 보유한 우주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 있는 양 함대파에타 중장이 이끄는 제1함대 뿐이었다. 이 중 양 함대는 이제르론에 묶여 있고, 제1함대는 함정 수가 겨우 1만 4천여척에 불과하여 제국군과 정면대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4]

동맹군은 우주력 798년 이래 급히 편성한 몇몇 소함대와 성간 순찰대, 각 성계 경비대 중 중장부대를 차출하여 병력을 소집했다. 이 중에는 해체를 앞둔 노후함과 시운전도 못한 신조함도 있었지만 양동작전이나 연락에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동원되었다. 대략 2만 척의 함정이 모였고, 동맹군은 이걸 둘로 나누어 제14함대와 제15함대를 창설했다. 뷰코크는 라이오넬 모튼을 제14함대 사령관에, 랄프 칼센을 제15함대 사령관에 임명하자고 통합작전본부에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두 사람은 중장 승진과 함께 신설 함대의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렇게 수뇌부가 꾸려져 제국군과 싸울 방책을 논의했찌만 시작하자마자 오스만 중장이 급성뇌출혈로 쓰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병원으로 후송된 오스만은 침대에서 경질당했고 후임으로 부참모장 춘우 지엔 소장이 중장 승진 후 임명되었다. 그는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사관학교 전략연구과 교수였고 지금은 행정업무에 전담하고 있던 사람이었고 엉뚱한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능력은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동맹군은 있는거 없는 거 긁어모아 그럭저럭 전투를 해볼만한 전력은 확보했으나 제국군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전력이었기에 수뇌부에서도 어떻게든 병력을 더 짜내보려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전회의에서 춘우 지엔이 양 함대를 동원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파에타가 현재 양 웬리는 제국군과 대치중이란 사실을 지적했고, 다른 인물들도 이제르론 포기로 인한 발생할 악영향 등을 감안하여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르론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진 시점에서 무리하게 이제르론을 사수할 필요는 없고, 양 웬리와 그의 함대 역시 귀중한 전력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양 웬리 역시 어떤 대안을 마련해뒀을 것이란 춘우 지엔의 주장이 받아들어졌다. 이에 따라 뷰코크는 "모든 책임은 사령부에서 질테니 귀관이 최선이라 판단하는 행동을 취하라"는 훈령을 양 웬리에게 보냈다.

한편 제복군인 1인자로서 군을 지휘해야 할 통합작전본부장 도슨 원수는 말단 공무원 근성을 발휘하여(...) 의욕이 0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뷰코크가 직접 찾아가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통합작전본부의 마비는 막았지만, 대놓고 정부 요인들의 신임을 받아 통합작전본부장에 올랐다는 걸 만천하에 광고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방위원장이 시키고 부하들이 진언할 때만 겨우 움직였으며, 매일매일 서류 결재나 하면서 현실도피를 시전하고 있었다.

또다른 골치거리는 동맹군의 대응방침이었다. 물론 동맹도 제국이 페잔을 경유하여 동맹령을 침공할 가능성을 아예 상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 및 상황에 따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작전안 정도는 준비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0만척에 달하는 동맹의 정규함대 세력이 건재하다는 전제하에 수립된 계획이었으므로 정규함대가 그 3분의 1밖에 남지 않은 현 동맹 상황에서는 그냥 휴지조각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페잔 회랑의 출구 방면에서 종심방어진을 펼쳐 제국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제국군은 중앙돌파 전법으로 동맹군의 방어진을 돌파한다 해도 상당한 희생을 낼 뿐만 아니라 시간도 소모할 뿐만 아니라 페잔 자치령의 동향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국군이 한 방향으로 힘을 집중하지 못하여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병력이 현저히 부족한 지금의 동맹군이 이러한 전법을 펼쳤다가 패배한다면 페잔 회랑부터 바라트 성계까지 모든 공역이 무방비한 채로 제국군의 공격에 노출된다. 따라서 동맹군은 과거 제국군이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최대한 동맹군을 끌어들였다가 반격한 것처럼, 최대한 적을 끌어들인 뒤 보급선과 통신망을 차단하고 고립된 제국군을 각개격파하는 작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국군 또한 이를 알고 있었고, 대응책 또한 생각해 두었다. 동맹군은 어떻게든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점을 다 빼앗기는 바람에 제국이 예측한 행동범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우주력 799년 2월 1일, JL77기지에서 제국군이 포레비트 성역에서 전군을 집결하고 바로 하이네센으로 진격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마지막 통신을 보냈다. 이 보고를 토대로 동맹군 고급장교들은 제국군의 진격로가 란테마리오-잠시드-켈림-하이네센으로 예측했다. 문제는 잠시드 성역부터 하이네센까지 모두 유인 성계라서 사실상 란테마리오 성역이 동맹군 최후의 방어선이 되었다는 점이고, 제국군도 이 점을 고려해두었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 동맹군을 옭아매는 것은 군사적 조건이 아니라 정치적 조건이었다. 당시 동맹 시민들은 정부가 하이네센만 방어하고 나머지 지방은 모조리 내다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만약 이 의혹이 확신으로 바뀐다면, 동맹의 지방정부들은 방위의무를 내팽기친 중앙정부에 등을 돌리고 제국군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동맹 탈퇴 및 중립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페잔과 하이네센을 잇는 동맹령 성계들이 모조리 동맹을 탈퇴하여 중립국(실상은 제국의 속국)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맹군은 싸워 이겨서 지방정부의 충성심을 붙들어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그 와중에 춘우 지엔 중장은 조금이라도 개전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르론을 포기한 양 함대와 합류하여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월 8일 이제르론을 포기한 양 함대가 란테마리오 성역에 도착할 예상 시간은 2월 15일이었고, 그 사이 제국군 본대가 하이네센으로 쇄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양 함대 뒤에는 제국군 별동대가 따라오고 있는 만큼, 양 함대와 합류하여 제국군 본대와 싸우다가는 로이엔탈이 먼저 수도를 점령할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동맹군은 이 계획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병력만으로 제국군 본대와 대적할 수 밖에 없었다.

4. 출동[편집]



4.1. 제국군 출격[편집]


페잔에서의 사후처리를 마친 제국군은 미터마이어를 선봉으로 내세워 동맹령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1월 1일 4시 경 제국군 미터마이어 함대가 페잔 중앙우주항에서 발진하여 동맹측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전진했다. 1월 5일이 되자 미터마이어는 부장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을 선봉에 내세워 회랑 출구를 정찰하라고 명령했다. 바이어라인은 1월 8일에 회랑 출구에 적이 없다고 보고했고, 이에 따라 제국군은 처음으로 페잔 회랑을 통해 동맹령에 발을 내딛었다.

동맹군의 대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돌발상황에 대한 부담도 적은 편이었다. 실제로 동맹군은 페잔 회랑 출구방면인 포레비트 성역에서 란테마리오 성역까지 정보수집에 꼭 필요한 거점기지에만 모든 기능을 집중시키고, 나머지 기지에서는 인력과 물자를 모두 철수시킨 상태였다. 게다가 남은 기지에도 사실상 전투병력이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었기에 제국군 역시 무리하게 공격하여 화력을 낭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JL77 기지와 같은 절묘한 에피소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동맹령 깊숙히 진공한 제국군은 2,800광년을 내달려 1월 30일 포레비트,Porewit, 성역에서 페잔에 남겨둔 육전부대 절반을 제외한 전 부대의 집결을 마쳤다. 그 병력은 전투함정 112,700척, 지원함정 41,900척, 장병 1,660만에 달하였는데, 이는 은하제국군 전사(戰史)를 뒤져봐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대한 전력이었다.

포레비트 성역에 집결한 제국군도 동맹군이 란테마리오 성역을 방어선 삼아 결전에 나서리라 예측하고 있었다. 미터마이어의 보고를 받은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에 맞서 쌍두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진두지휘를 하겠다고 선언하여 부하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뮐러 대장이 동맹군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만큼 궁지에 몰린 쥐처럼 역습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후방에서 독전[5]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라인하르트는 쌍두사 진형에는 후방이 없고 오직 두 개의 머리만 있을 뿐이라며 기각한 뒤 미터마이어에게 동체를 지휘하라고 명령했다.

진형이 결정된 제국군은 이미 전투에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마친 뒤였다. 쌍두사 진형에 필요불가결한 유연한 병력운용을 위해 통신망에는 마비를 막기 위해 몇 가지 대책이 시행되었다. 3중 방해 방지 시스템이 구축되었을 뿐더러 그것마저 끊어질 것을 대비해 단거리 워프 능력을 가진 연락정 2,000척이 마련되었다.

4.2. 동맹군의 출격[편집]


뷰코크 원수가 지휘하는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는 우주력 799년 2월 4일 하이네센을 떠났다. 전력은 제1함대를 주축으로 한 함정 32,900척에 장병 520만 6000명으로 제국군의 3분의 1 이하에 불과했다. 출정 직전 뷰코크 원수와 춘우 지엔 대장은 정부로부터 각각 1계급 승진을 명하는 사령장을 받았다. 오랫동안 뷰코크를 보좌해온 파이펠 소령은 심장발작으로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후송당했기 때문에 후임으로 순 수울 소령이 출격 전날부터 뷰코크의 부관을 맡게 되었다.

2월 7일 12시 40분, 순 수울 소령이 제국군의 위치에 관한 정보를 뷰코크 원수에게 보고했다.

파일:란테마리오동맹군반응.jpg

제국군 란테마리오 성역에 진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총 수 10만척 이상 각개 함대가 종렬로 전개를 계속하며 제2행성에 궤도를 스치는 형태로 동(同) 성역을 통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 동맹군의 보고


첫 보고 이후 계속 정보가 들어왔고, 뷰코크 원수는 10만 척이 넘는 제국군이 쌍두사 진형을 취할 것이라고 통찰했다. 그렇다면 중앙돌파 전법은 적의 노림수에 그대로 걸리는 것이라 위험부담이 너무 컸으나, 달리 취할 방법이 없어 중앙돌파 전법을 고집할 수 밖에 없었다.

2월 8일 13시, 양군은 5.9광초까지 접근했다. 전투가 다가오자 뷰코크는 단시간에 중앙돌파하지 못한다면 적의 양익에 포위당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해서 적의 선제공격에 나서면 이를 끌어들이고 공세를 흘려보내면서 양익 중 하나를 공략하는 게 더 각개격파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때가 13시 40분이었다.


5. 전개[편집]



5.1. 동맹군의 선공[편집]


2월 8일 13시 45분, 5.1 광초까지 접근한 양군은 포격을 주고받으며 전투를 시작했다.

30분 동안 포격전을 벌인 미터마이어는 천천히 시위를 하듯이 포격을 하면서 동맹군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사실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동맹군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 것인지 간보기 위함이었고, 동맹군의 일선지휘관들은 제국군의 압박에 위축된 듯한 반응을 보였다. 뷰코크 제독도 대항을 보류하고 잠시 대기할 것을 주문했지만 성급한 일부 지휘관들과 극도의 불안에 미쳐버린 지휘관들이 신경질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뱀의 이빨도 아닌 혓바닥만 보고 놀라 달려든 생쥐의 꼴이었다.

숙련되지 못한 장병들과 각 지역에서 끌어모아 급하게 만들어낸 급조함대라 이런 일부 동맹 함대의 돌격은 의도하지 않은 돌발적인 사고나 다름없었다. 적절한 시기를 엿봐 반격을 개시하려던 원래 작전은 붕괴되었고 동맹 함대는 본의 아니게 총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돌발상황은 당연히 제국군으로써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압도적인 병력 차이에 공포감에 휩싸인 동맹 함대가 오히려 맹렬한 포격을 퍼붓기 시작하며 제국군 함대는 생각치도 못한 큰 피해를 입게되었다. 소 뒷걸음질 하다 쥐 잡기

한번 밀리면 그대로 패배로 직행한다는 공포의 심리는 반대로 장병들의 전의를 고양시켰고 동맹군 함대는 일제히 제국함대를 향해 돌진하였다. 동맹군 전함은 주포, 미사일, 함재기 등 가진 무기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한술 더 떠 한 전함은 함선 조종계에 내장된 충돌방지회로를 끊어버리고 돌격하여 제국군 구축함을 들이받아 격침시키고, 도망가는 제국 전함의 추진부를 들이받아 격침시키고, 큰 손상을 입어 격침 직전까지 몰린 한 순양함은 근처에 있던 제국군 전함에 근접하여 주포를 발포하여 자폭하는 등 작전도, 계획도, 미래도 없는 동맹 함대의 광신적인 맹공에 제국 함대는 크게 당황하여 전열이 붕괴될 처지에 놓인다.

미터마이어는 짜증이 났다. 그가 아무리 노련한 지휘관이라 해도 예기치못한 급작스런 상황전개와 동맹군의 닥돌로 점철된 현 상황을 효과적으로 통제해내지 못했다. 후방에 머무르던 라인하르트가 관찰한 것처럼 미터마이어는 동맹군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적이 생각보다 훨씬 더 미쳐있는 상태라 생각대로 전개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용맹'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것'이며 미터마이어는 노련한 투우사이기 때문에 사나운 소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힘을 온존시켜 승기를 노리는 것이라 판단했다. 허나 의외로 정말로 공세에 질려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에 슬슬 스스로 움직여보기로 한다.

한편 동맹군 역시 이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승기를 잡을 수 있지 않냐는 말도 있었지만 뷰코크는 오히려 병력 분산 상태를 염려했다. 뷰코크는 곧이어 의도에서 벗어난 돌발사태를 제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간신히 주요 지휘관들과 통신을 연결하여 불호령을 내려 각급 지휘관들이 사태파악을 하고 상황을 수습할 수 있게 했다. 늦게나마 정리가 된 걸 보면 뒤가 없으니 악에 받치긴 했어도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진 않았던 모양.

5.2. 제국군의 반격[편집]


하지만 그동안 꽤 큰 피해를 본 제국군이 순순히 동맹군을 보내줄리 없었고, 쌍두사 작전을 본격적으로 실행한다. 전방에는 볼프강 미터마이어 함대가 동맹군을 압박하고, 좌측에는 라인하르트 직속함대가, 오른쪽에는 뮐러, 파렌하이트, 바렌 등 제국군 제독들이 동맹군을 공격했다. 2월 8일 16시에서 19시까지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는데, 함정 840척으로 구성된 동맹 듀드네이 분함대가 제국군 바렌 함대의 공격을 받고 불과 3시간 만에 130척 밖에 남지 않았다.

듀드네이 분함대를 완파한 바렌은 동맹군 좌측면을 파고들어 동맹군 함대를 분단시키려고 했지만 라이오넬 모튼 제독이 응사하자 분단에는 실패했고, 바렌은 계속 동맹군 좌측면에 붙어서 포화를 퍼부었다. 그 뒤로 파렌하이트 함대가 크게 우회하여 동맹군의 후방으로 향했지만 항성 란테마리오에 지나치게 접근한 탓에 란테마리오가 내뿜는 전자파와 열에 계기류가 오작동을 일으키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6]

그 결과 동맹군은 위기에서 탈출하여 다시 함렬을 가다듬고 전선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교전 시간이 10시간을 넘어가고 교착상태에 빠지자 불필요한 전투와 쓸데없는 희생을 원치 않았던 라인하르트와 뷰코크는 전투를 중지하고 휘하 병력에 재충전을 명령했다.

5.3. 동맹군의 붕괴[편집]


2월 9일, 제국군의 병력우위가 힘을 발휘하여 동맹군을 반포위한 상태로 전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쫓기기만 하던 동맹군도 공격 위주의 전술을 포기하고 방어태세로 돌입했다. 머릿수 차이로 동맹군의 함렬은 시시각각 붕괴했지만 항전의지를 잃지 않고 전투를 계속했으며 스파르타니안 공전대는 미끼가 되어 제국군 함정을 동맹군 포화 속으로 유인하여 격침시켰다. 볼프강 미터마이어는 우위를 점하며 동맹군을 밀어붙였지만 뷰코크가 '지지 않는 것'에 전념하여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애먹을 수밖에 없었다.[7]

"비텐펠트에게 전달하라. '경이 나설 차례다, 흑색창기병의 창끝에 적 총사령관의 군용 베레모를 걸고 돌아오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김완, 이타카(2011), p.145

이에 후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일격'이 필요하다고 판단, 상황타개를 위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가 이끄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투입을 결정했다.

2월 9일 오전 11시, 지시를 받은 비텐펠트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환희의 휘파람을 불면서 즉시 동맹군을 향해 기쁨의 출격을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미터마이어, 뮐러, 파렌하이트, 바렌 함대도 비텐펠트에게 공을 모두 뺏길 수는 없었기에 즉시 공세에 가담했다. 다만 비텐펠트의 돌격은 태양풍의 영향으로 형성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었다. 그는 우회할 수도 있었지만 맹장답게 위험을 감수하고 전진을 명령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동맹군이 놓칠리 없었다. 춘우 지엔이 명령을 내려 제국군의 진격 속도와 조류의 속도를 계산해 흑색창기병이 조류를 도하할 지점을 특정했고, 집중포화를 퍼붓기 위해 포진을 완성했다. 11시 20분, 제국군이 도하하자 동맹군을 일제히 포격에 나서 도하한 함정들을 에너지 조류로 밀어넣었다. 그러나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는 그보다 더 막대한 닥돌정신으로 맞받아치며 반격과 전진을 계속했고, 결국 동맹군은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돌격을 저지하지 못했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뒤를 이어 수많은 제국군 함대가 공세를 가했고, 결국 전선이 무너지며 동맹군은 스러져갔다.

"끝났군. 이렇게 해는 기울고, 장수는 공을 세우지 못한 채 만골,萬骨,과 쓰러지는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김완, 이타카(2011), p.149


무너져가던 동맹군 함대는 사령부에 증원을 요청했으나 이 시점에서 사령부가 보유한 병력은 총기함 리오그란데와 순양함, 구축함 약 30척 뿐이었다. 주력함으로 분류되는 전함과 우주항모는 모조리 전선에 투입한 뒤라 더 보내줄 병력이 없었다.

아군의 붕괴와 패주를 지켜보고 있던 뷰코크 원수는 자결을 선택하려 했으나 춘우 지엔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와 메르카츠의 사례를 들면서 만류했다. 또한 뷰코크가 '전범재판의 희생양이 되어주는 것만으로 양을 비롯한 후대의 인물들에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 때 OVA에서는 순 수울이 사령관실 문 뒤에 서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8]


5.4. 양 웬리의 등장[편집]


동맹군의 패배가 확정되었을 무렵, 나이트하르트 뮐러 함대 소속으로 격전 속에서 중파당해 안전공역에서 공작선과 도킹하여 수리 중이던 순양함 오버하우젠이 후방에서 다수의 함정이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중상을 입은 함장 대신 지휘하던 부장이 접근하는 함대에게 수하를 실시했으나, 돌아온 것은 다수의 광선이었다. 공황상태에 빠진 오버하우젠은 즉시 통신파를 타고 제국군 함대에 연락했으며, 갑자기 후방에서 등장한 대규모 병력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동맹군 별동대로 제국군이 착각한 병력은 바로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였다. 1월 8일 이제르론 요새를 포기하고 동맹령으로 철수한 양 함대는 도중에 알렉스 카젤느 소장이 지휘하는 민간인 수송선단을 분리하고 하이네센에 들르는 대신 바로 란테마리오를 향한 것이었다. 란테마리오 성역에 도착한 양 함대는 후방을 교란하면서 마치 페잔과의 연결로를 차단하는 것과 같은 기동을 보이면서 제국군 장병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패닉은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본 라인하르트가 호되게 질타하면서 수습될 수 있었다. 현 상황에서는 후방에 적이 있더라도 하이네센을 가뿐히 즈려밟고 이제르론을 통해 귀환할 수 있었기에 후방을 교란당하는 것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결국 양 웬리의 의도는 패주중인 아군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제국군이 거기에 휘말려들어 결국 동맹군 잔존세력을 전멸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전투속행의지가 없었던 라인하르트와는 병력 재정비를 지시하고 전장에서 이탈했다.[9] 양 웬리는 간신히 살아남은 뷰코크와 접견을 하고 휘하 분함대 제독들에게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하이네센으로 복귀를 지시했다.

6. 그 후 이야기[편집]


전장에서 이탈한 제국군은 2.4광년 떨어진 간다르바 성계를 급습하여 제2행성 우르바시를 점령했다. 그리고 훗날 동맹이 제국에 병탄될 때 반란을 제압할 거점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반영구적인 군사거점을 건설했다. 여기에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과 헬무트 렌넨캄프 대장이 합류하면서 제국군 총병력은 2000만에 달했다.

병력을 수습한 수도성 하이네센으로 귀환한 양 웬리는 이제르론 포기에 대한 비난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은 오히려 양을 비롯한 양 함대 간부들을 각각 1계급씩 승진시켰다. 덕분에 양은 36세에 원수에 추서된 브루스 애쉬비의 기록을 깨고 동맹 최연소 원수가 되었다.

수도에 귀환하여 아일랜즈와 접견한 양은 자신이 이제르론을 포기하고 전선에 뛰어든 이유, 후계자가 없는 라인하르트를 쓰러뜨리면 구심점이 사라진 제국군은 권력다툼으로 스스로 자멸할 것이고 그러면 동맹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여 대제국 작전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리고 훗날 많은 역사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양 웬리 특유의 예술적인 군사작전이 시작된다.

한편 페잔에 고립됐다가 탈출한 율리안 민츠 일행이 동맹군과 합류한 것도 이 전투가 끝난 직후였다. 게다가 판무관 헨슬로까지 무사히 보호했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제국군 구축함까지 강탈한 사실이 알려져 동맹국민이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환호하기도 했다. 이 공적으로 율리안은 중위로 승진함과 동시에 자유전사 훈장을 수여받았다.


7. 평가[편집]


제국령 침공작전과 비교하면서 동맹이 너무 섣불리 결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뷰코크 제독이 2만 척을 보유한 양 웬리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붙었으면 혹은 차라리 제국군의 병참 한계를 이용하여 제국령 침공작전을 역으로 되돌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진 독자들이 많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맹의 구조상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란테마리오 이후로는 유인행성의 밀집지역이었다. 게다가 동맹은 여러 자치정부가 모인 연방제 국가이고, 작중 묘사를 보면 강력한 연방정부라기 보다는 느슨한 연방에 가까운 형태이다. 이로 인해 작중에서도 동맹정부의 방위의무 방기를 거론하면서 각 지방의 행성들이 동맹을 이탈해 제국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라인하르트 본인이 동맹 멸망 이후 지자체들의 통치력을 유지하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주민들에게 정치보복을 하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고 페잔에서 이미 예시를 보여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결국 동맹정부에서도 "우리는 방위의무를 방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전투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또다른 방책이란 것이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작중에서 인물들이 말한 최선의 방책은 제국군에 맞서 결전을 벌이는 것 뿐이었다.[10]

이 전투에서 자유행성동맹 우주함대는 제국군에 큰 피해를 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양 웬리가 지휘하는 이제르론 주둔함대를 제외한 모든 정규함대전력을 상실했다. 물론 대함대 단위로 무너진 것이지 제국군이 섬멸전에 실패했기 때문에 개별함정으로 따지면 아직 상당수 병력이 남아있긴 했지만 대부분 급조된 소함대는 분함대 정도이고 1만척 이상의 조직화된 정규함대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일단 소규모 단위의 부대가 큰 조직으로 통합되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더불어 이 전투가 끝나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 직전까지 여러 차례 전투가 있었지만 잔존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14함대와 15함대가 바로 참가하지 못했다. 원래 두 함대가 급조된 함대였던데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한 패잔병들이라 이들을 다시 추슬러 몇천척 규모의 분함대 수준으로라도 재정리하는데 그만큼 시일이 걸렸다는 뜻이다. 오히려 제국군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쉽게 동맹 함대를 궤멸시킬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피해가 커져 추격을 중단할 정도의 상황이 되자 놀랐을 정도였다.

더불어 양 웬리 역시 개별함정들이 상당수 남아 있음에도 그간 손실이 누적된 자신의 이제르론 주둔함대에 보충하지 않고 원래의 이제르론 함대만으로 제국군 함대들과 싸운 것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손발이 맞지 않은 보충전력이 작전수행에 영향을 줄수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이 다소 억지해석처럼 보일 수 있으나 외전 율리안의 일기를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구 제13함대를 주축으로 하여 10함대의 잔존병력을 흡수통합하여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가 편성됐지만 더스티 아텐보로가 손발을 맞추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좋은 술에 비유하면서 율리안을 통해 양 웬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이에 양 웬리 역시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는데 13함대가 주축이 됐는데도 이 모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따로 추가병력이나 보충병을 동원하지 않은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사실 추후 전투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양웬리가 제국군 함대와 싸울때 보여줬던 정교하고 복잡한 전술기동들, 신속하게 치고 빠지거나 적에게 서서히 밀리는척 또는 도망가는척 하다가 일거에 반전해 상대를 허를 찔러 박살내는 등등의 기동은 원래부터 양 웬리 함대에 소속됐던 부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도 적을 앞에 두고 후퇴하는게 제일 힘들다고 한다. 처음엔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더라도 점차 공포심에 부대편제가 붕괴되는 패주대열이 되기 십상이므로 손발이 안맞는 보충병력은 안 데리고 다니는게 양 웬리에게는 최선이었다.

실제 이런 복잡한 전술기동을 덜 요구했던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는 양 웬리도 동맹군의 가용 가능 전력을 최대한 끌고 갔다. 재편을 끝마친 14/15함대의 합류에 대해서도 양 웬리는 군소리를 달지 않았다. 더불어 재편을 마친 두 함대는 상당한 전투력을 보여줬는데 그 일화로 나온게 바로 14함대이다. 제국군 뮐러 함대의 갑작스런 맹공을 받아 많은 병력과 함께 사령관 모튼 제독까지 전사했는데 남은 병력은 붕괴되지 않고 대오를 유지한채 양 웬리의 본대로 합류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결론은 계속 패잔병과 신병 위주로 편성된 병력 위주로 지휘해온 양 웬리는 진성 먼치킨

한편 제1함대의 경우에는 아예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왜 그런지에 대한 추정은 가능하다. 일단 혼성함대를 결성한 시점에서 기존 정규함대는 1함대가 유일했기 때문에 당연히 혼성함대의 주 전력도 1함대가 차지했을 것이고, 주전력의 특성상 란테마리오에서의 피해도 컸을 것이다. 33,000척의 함대가 적은 규모는 아니지만 그 중 2만 척은 애초에 제국군과 정면으로 붙일 수 없는 전력이었으니 사실상 정면대결을 한 건 1함대 뿐이었다. 따라서 정규 함대로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피해가 크고 이를 회복할 시간도 부족하므로 14/15함대로 편성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정부는 계속 제 기능을 하고 있었고 시민들도 비관적인 상황에 탄식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사회도 정상적인 기능을 계속 수행하고 있었다. 훗날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는 조안 레벨로가 완전히 멘붕하여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정부는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못하고, 군부 혼자서 개고생을 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일랜즈가 정말 큰 활약을 한 셈이다. 게다가 이 전투가 끝난 후 전권을 위임받은 양 웬리가 제국군을 거의 격퇴시킬 뻔한 점을 보면 아일랜즈의 활약은 높이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8. 후지사키 류 코믹스[편집]


비밀리에 숨겨진 페잔 회랑의 입구를 파악한 제국군 본대는 페잔 자치령이 회랑 내부에 깔아둔 방어시설들을 연달아 격파하여 페잔 본성을 점령하고 곧바로 동맹령에 침입했다. 알렉산드르 뷰코크의 호의를 얻어 페잔 회랑의 출구를 탐색하는 임무를 맡은 율리안 민츠는 페잔 상인 보리스 코네프의 도움을 받아 회랑을 빠져나오는 볼프강 미터마이어 함대를 목격한 뒤 철수하였다. 제국군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동맹 시민들을 분노하여 정부의 책임을 물었지만 욥 트뤼니히트 의장은 정부공보관을 통해 "책임의 무게를 통감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시민들에게 소재를 감추고 어딘가에 건설된 수상 리조트로 숨어 휴양을 즐기고 있었다.

도망친 의장을 대신해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이 각성하여 정부를 이끌고, 군부는 남은 함대를 모두 모아 반격을 준비한다. 라인하르트 역시 포레비트 성역을 시작으로 동맹령 내부에 계속 진입하여 란테마리오를 결전장으로 삼고, 이제르론을 포기한 양 웬리가 동맹군 본대에 합류하기 전에 '쌍두사' 진형으로 동맹군을 격파하려고 한다.

란테마리오는 거대한 흑점과 슈퍼 플레어가 빈발하는 불안정한 적색왜성으로, 항성 주변에 핫 어스라는 지구형 행성이 자전하면서 란테마리오의 자기장을 흐트러뜨려 우주전함조차 버틸 수 없는 거대한 슈퍼 플레어를 발생시켰다. 동맹군은 슈퍼 플레어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양 웬리가 올 때까지 최대한 버티려고 한다. 그러나 양 웬리가 오기 1주일 전인 2월 7일 제국군 대함대가 쌍두사 진형을 취하며 란테마리오 성역으로 쇄도했다. 다음 날 전투가 시작되었고 동맹군은 방추진형을 짜서 중앙돌파를 시도한다.

그런데 전투가 시작되자 동맹군 선봉대가 공황에 빠져 마구잡이로 공격을 시도했다. 의외의 사태에 미터마이어조차 동맹군의 공격에 밀렸는데 뷰코크는 어떻게든 통신을 연결하여 각 함 지휘관들에게 후퇴하여 진형을 재편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국군의 뱀의 머리는 측면을 우회하여 동맹군을 포위하려고 했고, 한참 두들겨맞은 미터마이어는 보복을 부르짖으며 맹공에 나섰다. 결국 지나치게 앞으로 나간 선봉대는 궤멸당하고, 동맹군은 슈퍼 플레어를 앞에 포진하여 적이 후방으로 우회하지 못하도록 막고 14, 15함대를 이용해 적의 측면 우회를 막았다.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제독은 슈퍼 플레어를 크게 우회하여 동맹군의 후방을 타격하려고 했고 동맹군은 이를 막을 예비병력이 없어 곤란한 처지였지만 때마침 전장으로 복귀한 율리안 민츠 휘하 소함대 50척이 마치 복병처럼 위장하여 제국군을 속였다. 슈퍼 플레어 때문에 복병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파렌하이트는 쓸데없이 전투를 벌였다가 전군의 작전을 말아먹느니 복병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후퇴하는 길을 택했다.

뷰코크는 철저한 방어태세로 3배나 많은 제국군의 공세를 저지했는데,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동맹이 라인하르트를 강화협상에 끌어내려면 최소 비겨야 할 텐데 이기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 뷰코크가 비기는 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율리안 민츠도 비슷하게 판단하여 휘하 함정들에게 멋대로 돌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편 이자크 페르난트 폰 투르나이젠을 비롯한 젊은 지휘관들은 무훈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이번 전투에서 공격이 먹히지 않자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2월 9일이 되자 전황은 제국군에게 우세해졌지만 동맹군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를 전선에 투입했고 비텐펠트는 곧바로 슈퍼 플레어를 돌파한다. 함선을 여럿 잃고 마침내 도하에 성공한 비텐펠트를 향해 동맹군이 집중사격을 퍼부었지만 흑색창기병대는 동맹군의 포화를 뚫고 뒤에서부터 동맹군의 진형을 돌파하여 완전히 분쇄했다. 동맹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패했고 뷰코크는 자결하려고 했지만 춘우 지엔이 앞으로 있을 전범재판에서 부하들이 죄를 뒤집어쓰지 않기 살아야 한다고 만류했다.

전투가 마무리될 무렵 후방에서 양 웬리 함대가 접근, 제국군의 후방을 타격하여 혼란에 빠트렸다. 퇴로가 막힌다고 판단한 제국군은 공황에 빠져 급히 함수를 돌렸지만 그 틈을 탄 동맹군의 집중사격에 함정이 여럿 격침당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가 직접 통신 스크린에 등장하여 혼란에 빠진 부하들에게 호통을 쳐 진정시켰고, 연전에 나서면 병사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철수했다. 제국군은 간다르바 성계 제2행성 우르바시를 점령하여 교두보로 삼았다.

전투가 끝난 후 뷰코크는 양 웬리에게 율리안이 적의 침입을 발견하고 적군의 우회를 막았으며 휘하 분대의 생존률도 높아 3계급 특진을 받을만한 공을 세웠다고 칭찬했지만 율리안은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양 웬리는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 함대를 경계하여 수도로 후퇴하자고 제안했고 동맹군은 그대로 수도로 철수했다.

수도로 돌아온 율리안 민츠는 영웅이 되어 중위로 승진하고, 양 함대 간부들도 모두 1계급씩 승진했다. 월터 아일랜즈와 대면한 양 웬리는 후계자가 없는 라인하르트를 죽여 제국 내부의 분란을 유도하는 전략을 제안했고, 얼마 뒤 다시 출격했다. 뷰코크는 수도성 방어를 위해 남았지만 수도에 남아봤자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라이오넬 모튼, 랄프 칼센은 양 함대에 합류하였다. 또한 율리안 민츠루이 마솅고도 양 함대에 합류했고, 이때부터 양 함대는 '양 이레귤러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역사는 라이가르 성역 회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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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투함정 11만 2700척, 지원함정 4만 1900척[2] 문제는 언뜻 보기엔 뷰코크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다른 이들은 멍청하기만 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실이지만 도슨이 뷰코크의 의견에 "하지만 제국이 비대해져봤자 페잔이 볼 이익이 뭐 있겠나" 는 말을 했는데 페잔 자치령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은 페잔 자치령이 제국과 동맹의 중간지대의 역할을 하며 부를 쌓는 걸 토대로 페잔이 제국과 손잡았다고 추측하기는 어렵다. 뷰코크조차 처음에 그 생각은 못 했으니 말이다. 한 마디로 양 웬리와 뷰코크는 감은 잘 잡았지만 그 감을 일반인들에게 납득시킬 증거가 없었다. 작중에서야 100여년 넘게 이어진 삼자구도에 익숙해져서라고 하지만 그 당시로서도 동맹 정치인이 페잔이 제국에 협력해 동맹을 멸망시켜봐야 얻을 이익도 없는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냐고 말할 만 했다.[3] 제일 가관인건 다른 위원장들은 제국군의 침공도 트뤼니히트의 잠수도 아닌 아일랜즈의 각성에 가장 당황했다.[4] OVA에서도 이런 동맹군의 병력부족 난망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직전의 작전회의에서 병력차가 너무 크다란 칼센 제독의 말에 암릿처에서 바보짓만 안했어도...라고 개탄하는 뷰코크의 표정이 백미.[5] 督戰, 싸움을 감독하고 사기를 북돋아 줌.[6] OVA에서는 전투에서 나온 막대한 에너지와 군함의 잔해가 항성 란테마리오로 끌려가는 '우주 조류'를 형성하고 있었고, 돌파를 시도하던 파렌하이트는 의외로 거센 조류에 자칫하다가는 항성 란테마리오와 지나치게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일단 물러난 뒤에 장거리포 포격에 집중했다.[7] OVA에서는 총력전을 펼치려는듯이 보여 제국함대가 접근해오자 함선들마다 항행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려 제국군이 아군함대를 구출하는 시간을 통해 아군의 붕괴를 최대한 늦추려는 수법을 썼다.[8] 아마 춘 우 지엔이 뷰코크를 만류하지 않으면 순 수울이 만류했거나 함께 자결했을 것으로 보인다.[9] 그러고는 혼자서 양 웬리에게 걸려 망친 전투를(티아마트, 아스타테, 암릿처 모두 제국군이 이겼지만 양 웬리 하나로 인해 라인하르트가 만족할 수준의 승리를 얻진 못했다.) 회상하며 속으로 분통에 터졌다.그러다가 결국 버밀리온에서는 기어이 패배를 맛보고 만다.[10] 사실 동맹군 입장에서는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도 그럴게 빨리 개전하든 늦게 개전하든 불리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빨리 개전하면 양 함대와 만나지 못해 병력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고 늦게 개전하면 다른 성계의 반발과 제국군 결집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춘우 지엔이 지적했듯 결국 동맹군의 가장 유리한 시점은 양 웬리를 만날 수 있을만큼 최대한 늦게 교전하되 제국군이 덜 결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교전하는 시간 그 두 지점이 만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