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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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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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4대 공군참모총장
최차규
崔且圭 | Choi Cha-kyu


파일:공군최차규.jpg

출생
1956년 7월 1일 (67세)
경상남도 마산시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직업
前 군인
복무
대한민국 공군
1980년 ~ 2015년
재임기간
제34대 공군참모총장
2014년 4월 11일 ~ 201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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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윤재옥
자녀
슬하 1남1녀
학력
마산고등학교 (졸업)
공군방공포병학교(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서울대학교 행정학원 (행정학 / 석사)
광운대학교 대학원 (방위사업학 / 박사)
임관
공군사관학교 (28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
주요보직
합참 비서실장
제10전투비행단장
방위사업청 항공기사업부장
합참 교리연습부장
공군참모차장
공군작전사령관


1. 개요
2. 경력
3. 여담
4. 비판
5. 사건사고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공군의 전직 군인으로, 제34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경력[편집]


1956년 6월 9일 경상남도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출신이다. 마산고등학교(34회)를 졸업했으며 1976년공군사관학교 28기로 입학하였고 1980년 4월 4일 28기로 졸업과 동시에 소위임관하였다. 특기는 조종이며 주기종은 F-5E/F. 2006년에 준장으로 진급했고 제2롯데월드 건설에 공군이 이의를 제기할 때 뉴스를 탄 적도 있다. 동창생의 회고

제10전투비행단 비행단장, 방위사업청 정밀타격방공유도사업부장, 항공기사업부장, 신특수사업부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연습훈련부장[1], 공군참모차장, 공군작전사령관 등을 거쳤다. 비행시간은 2700시간이다. 부인 윤재옥과 슬하 1남 1녀.

2014년 4월 11일부터 공군참모총장을 맡았으며 작전통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훈련에 진심이었는지 참모총장 기간에 알래스카 레드플레그 훈련 사전연습 때 솔선수범하여서 공중급유훈련을 익히는 지휘비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래에 서술된 스캔들로 인해 2015년 9월 17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전역하였다.[2]

군 문을 나선 후에는 한국안보협업연구소라는 것을 세워서 군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자문료 명목으로 1억 가까운 돈을 수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2020년 7월에는 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에 선출되었으며, 대선 국면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3. 여담[편집]


최초의 1980년대 군번 대장이다. 즉, 동기급인 육사 36기보다 4달 정도 대장진급이 빨랐다. 육사 36기는 2014년 8월과 9월에 각각 김현집, 장준규 장군이 각각 3군 사령관과 1군 사령관에 보임되며 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에서는 2015년 2월에 동기급인 정호섭 제독이 대장진급을 했다.

공군이 타군보다 1980년 임관자 대장을 일찍 배출한 탓에 시기적으로 후배 기수를 중장 진급시키기가 애매해[3] 동기 2명과 같이 근무하였다. 공사 28기인 김영민 중장(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김형철 중장(공사교장)이 최 총장의 취임에도 전역하지 않고 계속 근무했고 이 들은 후속 인사에 교체되었다.

정옥근프사사진이 거의 똑같이 생겼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직위나 하는 행동도 닮은 걸 보면 도플갱어 아니냔 말도 있는데, 심지어 마산고 4년 선배이기까지 하다.


4. 비판[편집]


쉽게 말하면 꼽창으로 유명했다고 보면 된다.

작전사령관으로 있던 때 예하 부대 전 장병이 매일 아침 하루에 3㎞씩 구보할 것을 명령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4년 참모총장이 된 이후 이 명령을 공군교육사, 공군군수사 등 공군본부 직할부대를 포함한 전 부대로 확대시켰다. 공군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는 없던 아침구보를, 악기상, 체감온도 강하 등의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4] 전 부대에 아침 구보를 뛰게 하는 바람에 아침 구보에 대한 문제가 2014년 공군 인트라넷 내에서 진지하게 공론화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구보 미실시의 기준이 행군이나 사격, 기지방호같이 정례적으로 실시되는 군사훈련 미실시 기준과 동일했었기 때문인데, 간부와 병사를 막론하고 "매일 실시하는 일일구보 실시 기준이 군사 훈련과 같은 건 말이 안 된다"고 많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 사정 때문에 공군 12-15군번들은 같은 부대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도 최차규를 굉장히 싫어한다. 진급에 사활 건 일부 간부들을 빼면, 병들 외 간부들 특히 장기 선발 생각 없이 만기만 채우고 나갈 단기 간부들과 중령/상사 이상 간부들은 병사들과 동일하게 구보를 굉장히 싫어했다. 어차피 진급할 것 다 하고 은퇴하면 군인연금 다 나오는데 뭐하러 힘들 게 이런 개짓거리를 해야 되느냐고 한탄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부사관들의 경우 병사 관리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사 이상 선임부사관이나 주임원사의 경우 아침에 병사들을 인솔하고 구보를 같이 뛰어야해서 엄청나게 싫어했다.

현역인 시절부터 공군 내부에서는 인격에 결함이 있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입소문이긴 하지만, 작전사령관일 당시 참모진 회의 시중을 들던 병사가 뒤에서 깜빡 졸았다는 이유로 '쟤 영창 보내!'라고 말한 사건이 유명하다. 결국 피해자 병사는 영창 14박 15일을 갔다왔고, 전역 후 다음 날 민원을 넣었는데, 그 국방부는 근무태만은 입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민원을 무시했다. 당연히, 15일짜리 영창감은커녕 단순히 졸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영창, 군기교육대에 보낸다는 것은 과잉 처벌임에도 불구하고, 제식구 그것도 높으신 분 감싸기는 여전했던 것이다.[5]

그의 전임, 후임 공군참모총장이 덕장으로 존경받았던 것을 보면 최차규의 인성 및 행각이 막장으로 더욱 깎였다.

5. 사건사고[편집]


2014년 8월 윤일병 사건이 일어나자 공군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발설금지하라고 했다#

2015년 4월에 공관병 출신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 때문에 해명을 하기도 했다. 해당 공관병은, 최 총장이 정수기 물이나 수돗물은 절대 마시지 않고 오로지 뚜껑을 개봉하지 않은 생수만 마신다는 증언도 했다.

5월 4일, 제보자 발본색원을 지시하는 지휘서신을 전 예하부대에 전파한 것과 함께 헌병대를 동원해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상부에는 자진해서 감사를 받겠다면서 이면으론 구시대적 행태를 보여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게다가 제보자 색출을 지시한 당일 낮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에어 스포렉스에서 전임총장들과 공군정책간담회를 갖고 나오다가 자신을 규탄하는 예비역 공군병장의 1인 시위를 피해 뒷문으로 나가는 추태를 보였다.[6]

자군의 현역 대령이 자진용퇴를 제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과연 현역 대령이 작성한 글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어색한 명칭으로 자신을 칭했는데, 자군 내부 문서에서는 계급, 직함에 소속군을 기재하지는 않는 관례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군참모총장이 예하부대에 내려보내는 지휘서신에 대한민국 국방부 육군대장 홍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해보자, 이상하다.[7] 이처럼 군 내부의 문서작성 관행조차 따르지 않은 채 쓰인 서신이라, 작성자가 정말 현역 장교인지조차 의심스런 대목이다.

단, 이에 대한 반론이 있는데 만약 실제 장교가 자신의 직함을 대면 바로 들킬 것이 자명하고, 이에 대한 불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에 이를 우려해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문에서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면 당연히 이상하지만, 공문이 아니라 편지에서 그렇게 쓰인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실명까지 밝히면서 양심선언한 군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몇년 전에 일어났던 김영수 해군 보급소령의 사례에서 똑똑히 드러났기 때문에 100% 단정할 수만은 없다. 특히 공군의 경우 편제 자체가 작고 지휘관의 수는 더더욱 적은 군이라 이런 글을 적은 사람을 맘 먹고 찾아내려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2015년 5월 21일, 국방부에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의 공금 유용, 예산 부당집행, 관용차 사적사용 등의 혐의를 두고 벌인 특별감사 결과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공금 유용 부분에 대한 것만 증거부족으로 확인되지 못하고, 나머지 의혹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직을 유지하고 경질하지 않은 것이다.

치욕의 공군 참모총장…"지휘봉 부러졌다"는 제목의 SBS뉴스 취재파일이 떴다. 여러모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어 부하들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 결재 서류를 올리면 예전과 달리 군말 없이 사인한다는 이 나오기도 했다. 덕분에 최차규의 말년에 공군본부 근무자들은 공문 올리는 족족 일사천리로 처리돼서 일 편하게 했다고 한다.

2015년 6월 2일, 軍검찰이 최차규를 횡령·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는 기사가 떴다. 2015년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교체될 것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고,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상술된 사건으로 인해 교체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9월, 한국항공우주산업 경영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부정 채용' 의혹과 관련해 소환조사하고 있다. 자신의 전 공관병, '친박계' 국회의원 동생모 방송사 간부의 조카 등을 KAI에 취업 청탁해 입사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9전대 비행대대장(중령) 역임 당시 운전병을 개별적으로 호출하여 외부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수송대대장의 승인 없이 개별적으로 호출하는 등 운전병에게 사제차를 운전시키는 행위까지 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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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해공 소장이 모두 보임가능한 보직이나 최근에는 공군 소장이 주로 보임된다. 공군 소장들의 중장 진급 사례가 많은 보직이기도 하다.[2] 그나마 통상적인 임기인 1년 반에 근접하기는 했다. 경질되는 과정이 상당히 모양새가 빠져서 문제지.[3] 2014년 4월에는 아직까지 1982년 군번 중장까지만 있었고 1983년 군번 중장이 없을 때였다. 83군번 중장은 2014년 후반기에 탄생했다. 공군만 미리 83군번들을 중장으로 올리기가 애매했을 것이다.[4] 14-15년 당시 기준으로 구보 미실시 기준이 미세먼지 농도 매우나쁨(그냥 나쁨이 아니다!), 하절기의 경우 기온 영상 31도, 동절기의 경우 체감온도 영하 20도였다. 아침 구보를 기상 직후인 07시경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추워서 손과 귀가 얼어버릴 날 빼고는 무조건 뛰어야했다.[5] 사실 징계 수위는 저렇게 정할 수 없고, 징계위원회에서 심의를 통해 수위를 정할수 있다. 어찌보면 최차규가 위법을 행한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군의 징계 시스템은 관례적으로 지휘관의 입김이 징계위원회 심의에 적용되어 편파적이었던것이 사실이다.[6] 1인 시위를 하던 예비역 병장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있다. 알다시피 장성급의 동선은 대외비에 부쳐진다. 그런데 1인 시위를 하는 예비역 병장은 참모총장의 동선은 물론, 출입시간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내부사정에 밝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항들이다. 참고로 방공포대는 방공유도탄사령부에 속하고, 방공유도탄사령부는 공군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이다. 한편, 최차규는 공군작전사령관으로 있다 참모총장으로 영전했으며, 이 예비역은 병 719기로 8월 전역자라고 한다. 최 총장은 같은 해 4월에 공참총장에 취임했다. 간접적 영향도 받지 않았을 방공포대 복무자라는 서술은 문제가 있다. 두발까지 상당히 기른 것을 보면 전역한 지 꽤 된 사람이며, 이 동선을 파악할 정도라면 친한 현역 간부 혹은 후임병, 또는 동기가 친한 간부에게 확인한 뒤 언질을 해줬을 수도 있다. 만약 간부 혹은 후임병이 해당 예비역 병장에게 언질해 주었다면 최 장군은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정평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부사관끼리는 타 부대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해당 예비역의 상관이 공군본부 등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는 동기 부사관과 확인해서 알려줬을 수도 있고.[7] 참고로 흔히 쓰이는 표기는 육군참모총장 대장 홍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