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쿠 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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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稚泊連絡船 (稚泊航路)
Chihaku Train Ferry / 치하쿠 연락선 (치하쿠 항로)

(폐지)
파일:Soyamaru.jpg
쇄빙객화선 소야마루(宗谷丸)
노선 정보
분류
철도 연락선
기점
왓카나이잔교역
종점
오도마리미나토역
역 수
2
개업일
1923년 5월 1일
폐업일
1945년 8월 25일
소유자
운수성(運輸省)
운영자
노선 제원
항로거리
210.0km

1. 개요
2. 역사
3. 운항 선박
4. 오늘날의 왓카나이-코르사코프 카페리
5. 여담


((はく(れん(らく(せん / Chihaku Train Ferry



1. 개요[편집]


홋카이도 왓카나이가라후토(현 러시아 사할린 섬) 오도마리를 이었던 일본철도 연락선. 이름은 왓카나이(稚内)의 '稚'와 오도마리(大泊)의 '泊'를 따서 지었다.


2. 역사[편집]


러일전쟁 승리의 대가로 일본1905년 사할린 섬 남부 절반을 차지했다. 이 섬은 러시아 제국에게 있어서는 땅끝 변방의 섬에 불과했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일본 열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일본 제국 정부는 개척을 위해 대대적으로 일본인을 이주시키고 일본 제국은 곧바로 철도 건설에 착수해 1906년에 개통시켰다. 제국의 수도 도쿄도쿄역에서 시작하는 도호쿠 본선~세이칸 연락선~하코다테 본선~소야 본선에서 치하쿠 연락선을 통해 가라후토선으로 토요하라역까지 이어지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치하쿠 연락선은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대기중인 열차에 탑승하는 등 급행열차 시간표와 그대로 연계되어 운행, 운영도 일본국유철도의 전신인 철도성에서 직접 운영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사할린을 소련군이 장악하면서 1945년 8월 23일 밤에 마지막으로 출항한 이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3. 운항 선박[편집]


선명
운항기간
총 톤수
길이(m)
정원(명)
적재량(t)
속도(Knot)
이키마루(壹岐丸)[1]
1923.5 ~ 1931.5
1,680
82.4
337
300
15
쓰시마마루(對馬丸)[2]
1923.3 ~ 1925.12
1,679
82.5
337
300
15
다무라마루(田村丸)[3]
1926.4 ~ 1927.10
1,479
89.2
328
239
18
고마마루(高麗丸)[4]
1931.6 ~ 1932.10
3,029
102
603
930
16
아니와마루(亜庭丸)[5]
1927.12 ~ 1945.7
3,298
99.8
754
470
16.4
소야마루(宗谷丸)[6]
1932.12 ~ 1945.8
3,593
103.3
790
380
17.1

4. 오늘날의 왓카나이-코르사코프 카페리[편집]


냉전이 끝난 후 1995년부터 왓카나이~코르사코프 간 카페리가 운항(겨울에는 휴항)하기 시작하였으나, 운항사인 하트랜드 페리에서는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2015년에 취항을 종료하였다.[7]

이후 러시아 사할린 측의 상선사 SASCO에서 2016년 8월부터 여름철 주 2회 코르사코프~왓카나이 간 페리를 운항하기로 하였다. 요금은 편도 18,000엔. 하지만 이 페리도 2019년부터는 운휴 상태이다. 왓카나이 시의 정기선 안내


5. 여담[편집]


위 노선에는 모두 정기 여객선이 다니고 있지만 철도연락선이 아니라 철도와 직접 연계되지 않는 일반 카페리(칸몬 기선은 일반여객선)이다.
  • 2018년부터 일본인도 러시아 극동지방으로 관광 등의 목적으로 출입국 시에는 8일간 유효한 전자비자를 사전 신청할 수 있어서 여행이 간편해졌다. 러시아 외무성 안내(일본어)
  • 오늘날 이 노선의 페리 외의 방법으로 왓카나이에서 사할린으로 가려면 삿포로 인근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가서 항공편을 이용, 유즈노사할린스크를 거쳐 코르사코프로 가야 한다. 왓카나이 공항에는 유즈노사할린스크행 항공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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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 취항 선박. 1923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되었다가 한파에 의해 노후화된 선체가 손상되어 1931년에 운항중지, 1932년에 오사카 상선(大阪商船)에 매각된다. 이후 류큐 항로, 치토(稚斗) 항로, 세이칸 항로를 돌아다니다가 1951년에 무로란에서 해체되었다.[2] 1905년부터 부관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23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25년 12월 17일 눈보라로 인한 시계악화가 원인이 된 좌초 사고로 침몰(사상자는 없음)[3] 1908년부터 세이칸 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26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29년에 오사카 상선(大阪商船)에 매각되었으며 1933년에 해체됨.[4] 1913년부터 부관연락선에서 운항하던 선박으로, 1931년에 치하쿠 항로에 전속. 1933년에 북일본기선에 매각되어 만슈마루(満州丸)로 운행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와중에 일본제국 해군에 징집된다. 1944년 9월 9일 필리핀 해역에서 미 해군 잠수함 USS Queenfish의 어뢰를 맞고 격침되어 승선하고 있던 1600명 중 869명이 사망했다.[5] 처음부터 치하쿠 연락선에서 운항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1945년 7월에 미군 공습으로 세이칸 연락선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어 도와주러 갔다가 1945년 8월 10일에 미군기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6] 처음부터 치하쿠 연락선에서 운항하기 위해 건조되었다. 패전 후 세이칸 연락선에서 배속되었다가 무로란~히로시마 간 석탄운송선으로 쓰이기도 했다. 1965년 8월 11일에 퇴역하여 이후 스크랩 처리되었다.[7] 2020년대까지도 레분/리시리행 페리는 여전히 이 회사에서 운영 중이다.[8] 정확히는 지금은 없어진 부산잔교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