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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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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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가 생성된 전투만 기재
전투 이름
교전국
공격측
방어측

세르비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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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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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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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넨베르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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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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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마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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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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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아라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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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이프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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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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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넬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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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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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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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아르투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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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카므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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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거 뱅크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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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잠수함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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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선박
다르다넬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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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프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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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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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를리체-타르노프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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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아르투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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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손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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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즈기르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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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비에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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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투리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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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됭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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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치 호수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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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란트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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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티노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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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실로프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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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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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아라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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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미 리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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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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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란토 해협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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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고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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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스키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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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샹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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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러셰슈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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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메종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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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레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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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셰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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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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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덴도르프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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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베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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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마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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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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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앵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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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미이엘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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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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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구분은 전투 및 교전 발생 일자 기준, 전투 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포클랜드 해전
Battle of the Falkland Islands

파일:external/www.bbc.co.uk/ce90d461535bb27bfb24589b51b6814993c154d1.gif
날짜
1914. 12. 08.
장소
포클랜드 제도
이유
아시아 지역에서 철수하는 독일 해군(카이저마리네)의
그라프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의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교전국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독일 제국|

독일 제국
display: none; display: 독일 제국"
행정구
]]

지휘관
파일:영국 국기.svg 더브턴 스터디
파일:영국 국기.svg 아치볼드 스토다트
파일:영국 국기.svg 존 루스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막시밀리안 폰 슈페

결과
독일 함대의 순양함 5척 중 4척 침몰, 태평양 전대의 본국 귀환 실패
태평양 전대를 이끌고 독일 본국으로 돌아가려던 슈페 제독의 패배,
영국제 신형 순양전함의 성능 입증.
병력
본문 참조
피해규모
본문 참조


1. 개요
2. 전투 전 상황
2.1. 영국
2.2. 독일
3. 양국의 주요 세력과 해전의 경과
3.1. 양국의 주요 세력
3.2. 해전의 경과
3.2.1. 독일의 시점
3.2.2. 영국의 시점
3.2.3. 개전
4. 결과
4.1. 양국의 피해
4.2. 의의



1. 개요[편집]


1914년 12월 8일에 독일 제국 해군 태평양 전대와 영국 해군이 포클랜드 제도에서 벌인 해전.


2. 전투 전 상황[편집]



2.1. 영국[편집]


코로넬 해전의 패전 이후 영국 해군성은 슈페 제독이 다음에 포클랜드 제도에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스터디 (Doveton Sturdee) 제독에게 신형 순양전함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인 인빈시블 (HMS Invincible)과 인플렉서블 (HMS Inflexible)을 이끌고 포클랜드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 이것으로 포클랜드에 있던 영국 함대는 순양전함이 2척 증강되었으며, 12인치(305mm) 16문의 함포를 가지게 되어 화력이 크게 상승하였다.

그 외에도 코로넬 해전에서 살아남은 함선들이 포클랜드 제도에 집결하였으며 기관 상태가 좋지 않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카노푸스는 임시로 항구 내부의 얕은 곳에 좌초에 가깝게 정박한 후 해안포로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해 항구 근처의 고지대에 관측소가 설치되고 카노푸스와 전화연결이 가능하도록 했다.


2.2. 독일[편집]


한편 독일의 슈페 제독은 이전 코로넬 해전에서 많은 연료와 탄약을 소모한 후라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승리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영국 함대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상황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모항이었던 칭다오가 칭다오 전투로 함락당하고 SMS 엠덴통상파괴전을 하다가 격침당했다는 소식이 항해중에 전달된다. 그래서 사기 진작의 이유로 11월 15일에 슈페 제독에게 1급 철십자 훈장이 수여되고 승조원들에게 300개의 2급 철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연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처를 지나던 캐나다 상선을 나포하여 석탄을 3일의 시간을 들여 적재한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 포클랜드로 향했다. 3일이라는 시간은 당초 슈페 제독이 예상한 것 보다 오랜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연된 이유는 석탄을 적재한 항구의 규모가 작고 시설이 열악해 모든 화물을 인력으로 적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상선에서 빼앗은 석탄으로 연료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부족한 탄약을 수급하는 것은 상선을 약탈하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슈페 제독은 포클랜드의 스탠리 항 (Port Stanley)을 공격해 영국의 무선 전신국을 파괴하고, 영국 총독을 체포하여 석탄을 탈취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이미 석탄은 충분했기 때문에 슈페 휘하의 대부분의 함장들은 작전에 반대하였으나 슈페 제독이 밀어붙였다.

코로넬 해전에서의 영국 제독인 크래독이 불리한 전투를 감행한 것과 같이 슈페 제독이 포클랜드 제도를 휘하의 함장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공격하기로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추정되고 있다.

첫번째로는 영국 해군의 무선통신을 일시적으로 차단하여 슈페 제독의 전대가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슈페 제독이 휘하 전대를 이끌고 독일 본토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을 늘리는데 있다.

슈페 제독이 키아우초우를 출발한 후 포클랜드 제도에 당도하기까지 중간에 중립국의 항구를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정박을 하면서 군함을 현지에서 정비하고 석탄같은 연료를 수급하고 식료품을 조달하는 등의 각종 노력을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의 무선통신을 일단 끊어놓아야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깨닫게 된다. 무선 전신국이 없거나 발견 즉시 파괴한 태평양의 환초같은 곳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장시간 작업이 가능하지만 중립국의 항구라도 방문하는 순간 일거수 일투족이 모조리 영국의 스파이에게 넘어가서 무선통신을 통해 영국 본토와 현지에서 가까운 영국 주둔군에게 전해지면서 슈페 제독의 전대가 지나갈 길에 매복을 미리 설치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그리고 당대의 무선통신은 모스 부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무선 전신국을 통해 몇 단계를 거쳐서 연결하는 일이 잦았다. 따라서 포클랜드 제도의 영국 무선 전신국을 일단 박살내놓으면 중립국인 남미의 각국과 미국을 통하는 방식으로 멀리 우회해서야 영국 본토까지 소식을 알릴 수 있으며 비용도 상당한데다가 영국의 군사용 긴급통신을 타국의 무선 전신국이 최우선 순위로 처리하지도 않으니 바로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고 중간에 스파이가 통신내용을 가로챌 우려가 있어서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간단한 암호 형식으로 만들어서 민간인의 사소한 통신처럼 위장해서 보내야 안전하므로 통신 전달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지게 된다. 그 동안 슈페 전대는 다른 지역으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두번째로는 연료인 석탄 문제였다. 일단 캐나다 수송선을 나포해서 당장 쓸 연료는 확보하였으나 다음의 연료 보급처가 마땅치 않았다. 포클랜드 제도를 넘어가면 점점 영국의 본토함대와 가까워지고 각 거점에도 많은 수비병력이 배치되기 때문에 사실상 무보급으로 독일 본토의 항구까지 강행돌파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멀리 우회할 것도 생각해야 하고 경제적인 순항속도가 아닌 연료를 미친듯이 소비하는 전투속도로 장거리 항행을 할 것도 생각해야 하므로 그런 것까지 따지면 포클랜드 제도에서 석탄을 미리 더 수급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로는 이 시점까지 가면 독일의 군함들도 가벼운 수준의 현지 정비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아무런 시설이 없는 곳에서는 장기간 정박해도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뿐더러 폭풍에 안전한 정박지를 찾기도 곤란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곳과 멀리 떨어진 포클랜드 제도에 최소한의 시설은 갖춘 항구가 있으니 습격해서 점령한 후에 독일 군함의 정비도 받으면 독일 본토까지 무사귀환할 확률도 올라간다.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에 슈페 제독은 포클랜드 제도를 습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도 생각해서 확실하게 포클랜드 제도에 영국 군함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전대중 일부의 함선만 빼내서 습격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강적을 만나더라도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긴 했다.


3. 양국의 주요 세력과 해전의 경과[편집]



3.1. 양국의 주요 세력[편집]


영국 함대 주력
독일 함대 주력
영국
함명
함종
독일
함명
함종
HMS 인빈시블
(HMS Invincible)

CC[1]
SMS 샤른호르스트
(SMS Scharnhorst)

CA
HMS 인플렉시블
(HMS Inflexible)

CC
SMS 그나이제나우
(SMS Gneisenau)

CA
HMS 카나번
(HMS Carnarvon)

CA
SMS 라이프치히
(SMS Leipzig)

CP[2]
HMS 콘월
(HMS Cornwall)

CA
SMS 드레스덴
(SMS Dresden)

CL
HMS 켄트
(HMS Kent)

CA
SMS 뉘른베르크
(SMS Nurnberg)

CL
HMS 브리스톨
(HMS Bristol)

CP[3]

HMS 글래스고
(HMS Glasgow)

CP
HMS 카노푸스
(HMS Canopus)

Pre-Dreadnought Class B[4]

영국이 독일에 비해 군함의 숫자와 능력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특히 장갑순양함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순양전함이 2척이나 있기 때문에 몬머스급 장갑순양함 켄트같은 군함이 정면승부로 상대하기가 벅찬 독일의 장갑순양함을 상대할 필요가 없이 독일의 방호순양함과 경순양함을 상대할 수 있으며 저속함인 카노푸스는 해안포가 되었고 무장상선인 보조순양함 HMS 오트란토(HMS Otranto)는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모두 고속함인데다가 정규해전에 충분히 참여가능한 군함만 있어서 추격전에 유리하다.

승조원이나 보급품의 경우에도 본토함대에서 빼온 정예병력이 집결한 것이라 훌륭한 수준이었고 보급품도 고속수송선을 사용해서 필사적으로 포클랜드 제도로 수송완료하여 충분하였다.

이에 비해 독일 함대는 본거지를 떠난지 너무 오래된 상태라 슬슬 대규모 정비를 받아야 할 시점이 도래하였으며 연료만 간신히 충당했을 뿐 탄약을 비롯한 각종 물자가 모자라기 시작한 상태였다. 덤으로 승조원들도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 상태였다. 중간에 중립국 항구에 정박하기도 했지만 한번에 3척이 한계였고 24시간 체류가 고작인데다가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식료품 정도라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3.2. 해전의 경과[편집]



3.2.1. 독일의 시점[편집]


독일의 '슈페 제독'은 최근 영국 함대의 기함이 방문한 이후 군함이 스탠리 항에 없다는 소식을 듣고, 애초 계획대로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섬을 공격하기 위해 장갑순양함 '그나이제나우 (SMS Gneisenau)'와 경순양함 '뉘른베르크 (SMS Nurnberg)'에게 스탠리 항으로 접근해 항내를 정찰한 후, '무선전신국'에 포격을 가할 것을 명하였다.

영국 함대가 스탠리 항에 없다고 판단해 작전을 속행하던 그나이제나우와 뉘른베르크는 갑자기 포격을 받았다. 해당 포격은 해안포로 전환된 카노푸스가 항구 고지대의 관측소 연락을 받고 사격한 것이다. 원거리 포격인지라 포탄의 대부분은 빗나갔으나 1발이 그나이제나우의 연통중 1개를 관통했다. 해당 포탄은 연습탄이라서 피해는 없었으며 연습탄이 발사된 이유는 훈련을 위해 장전해두었다가 급박한 상황에 갑자기 놓이자 카노푸스가 그냥 일단 사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대구경 포탄이 날아오는데다가 항 내에서 영국 순양전함 특유의 마스트를 발견한 그나이제나우와 뉘른베르크는 예상보다 아주 강력한 영국 해군 세력이 있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하여 침로를 변경해 기함인 장갑순양함 샤른호르스트 (SMS Scharnhorst)가 있는 위치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초 코로넬 해전 이후 캐나다 상선에게서 물자를 탈취할 때 슈페 제독이 예상했던 대로 시간이 걸렸다면 독일 함대는 영국 함대를 마주치지 않고 본국으로 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문제로 물자의 적재에 3일이 소모되었고 굳이 하지도 않아도 될 습격을 한 덕분에 이것이 독일 함대와 영국 함대가 조우하는 원인이 되었다.


3.2.2. 영국의 시점[편집]


영국의 준비도 상당히 엉성했다. 코로넬 해전의 패배 소식으로 영국 해군의 명성이 하락하고 영국 국민들이 충격을 받자 급하게 전력을 증원해서 파견한데다가 빠른 성과를 내라고 압박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순양전함 인빈시블의 경우에는 본국에서의 수리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출격한데다가 워낙 다급하게 투입된 나머지 석탄 적재량이 부족해서 10노트라는 저속으로 순항해야 했으며 포클랜드 제도에 도착한 이후에도 스크류 프로펠러에 훈련용 견인 표적과 연결된 케이블이 걸려들어가서 제거 작업에 돌입하기도 하는 등의 여러가지 트러블이 발생했다. 콘월은 보일러를 수리하기 위해 잠깐 엔진을 멈추었고 브리스톨은 엔진중 하나를 분해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독일 함대가 포클랜드 섬의 스탠리 항에 도착할 때 쯤, 영국의 순양전함 전대를 지휘하는 '스터디 제독'은 스탠리 항 내에서 석탄을 보급하거나 수리를 받거나 하는 식으로 켄트를 제외하고는 즉시 출항할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순양함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즉각 함대를 출항시킨다.

그 때, '그나이제나우'가 항구 입구로 접근해 스터디 제독의 함선에 포격을 가하였다. 정박해 있던 영국 함대는 바로 독일군에게 반격을 가하고자 하였으나 출격준비가 안된 군함이 태반이었고 순양전함들의 보일러를 가동시켜서 출격완료를 하려면 2시간이나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부분이나마 출격준비가 된 군함들이 항구를 급하게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침몰선암초등이 방해가 되어서 그렇게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실상 이 상황에서는 독일 함대는 의도치 않은 습격을 한 셈이 되었다. 제대로 가동하는 전력이 카노푸스 1척밖에 없었고 그나마 해안포로 사용중이라서 항해 능력이 없었다. 만일 슈페 제독이 포클랜드 제도를 굳이 습격하지 않았거나 아예 모든 함선을 총동원해서 스탠리 항을 제대로 집중공격했다면 전자의 경우에는 좀 더 멀리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후자의 경우에는 독일 함대는 당연하게도 괴멸하겠지만 영국 함대도 정박중이라 회피불가능 및 출격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근접거리에서 다수의 포탄을 맞아야 하므로 만만치 않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소수에 의한 습격, 그것도 하다가 말고 후퇴한 습격으로 인해 스텐리 항 내부의 영국 군함들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고 카노푸스가 독일 군함을 쫒아낸 것을 확인한 후 긴급출격을 잠시 정지하고 제대로 된 출격준비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곧 석탄 적재와 보일러 가열 및 증기 확보를 마친 영국 함대는 추격전에 나선다. 덤으로 출격준비시간을 이용해서 승조원들에게 아침식사까지 제대로 먹여서 컨디션까지 챙겼다.


3.2.3. 개전[편집]


영국 함대는 우여곡절끝에 출격준비를 마치고 스탠리 항을 빠져나왔다. 이미 독일 함대는 도주를 시작해 거리는 24km나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함대가 기동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에 점점 독일 함대를 따라잡아 1250시 경에는 독일 함대 최후미함인 방어순양함 라이프치히(SMS Leipzig)가 함포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스터디 제독의 명령으로 포문이 열렸고, 독일 함대와 영국 함대의 화력 차이는 영국 함대에 증원된 순양전함 인빈시블과 인플렉서블의 영향으로 너무도 확연했다. 영국 순양전함의 12인치 (305mm) 주포는 사정거리와 위력에서 독일 장갑순양함의 8.2인치 (210mm) 주포보다 우월한데다가 영국 순양전함은 당시 최신식 장거리 사격방식인 협차사격이 가능하여 독일 장갑순양함의 주포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거리에서 지속적인 사격이 가능했다. 덤으로 속도도 순양전함이 25노트로 독일 장갑순양함의 23.5노트보다 빨랐고 장거리 고속항행도 가능했다.

결국 큰 화력 차이로 전투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슈페 제독은, 남은 함대라도 무사히 탈출 시키고자 자신의 전함이자 기함인 그나이제나우를 제외한 나머지 함대에게 분산 도주를 지시했다. 그리고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8.2인치 주포가 순양전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도록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했으나 그럴 때마다 더 정확해진 영국의 포격을 얻어맞아야 했다. 1604시경 사른호르스트는 피탄 누적으로 치명상을 입어서 1617시경 슈페 제독과 함께 침몰한다. 이후 1730시경 부족한 화력에도 분투하던 그나이제나우가 결국 침몰하였다. 전투 결과 독일 장갑순양함들은 영국 순양전함에게 총 40발을 명중시켰으나 대부분 유효사정거리를 넘어갔기 때문에 별 위력이 없어서 1명 사망과 4명 부상의 피해와 함체의 경미한 피해밖에 못주었다.

슈페 제독과 장갑순양함의 희생이 무색하게도 도주하던 뉘른베르크와 라이프치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영국 순양함에 의해 침몰당하고 말았다. 뉘른베르크는 켄트에게 추격당한 끝에 1730시에 전투가 시작되었으나 뉘른베르크는 속도와 기동성 면에서 유리하였으나 긴급유지보수가 필요하였고 켄트는 포탄 중량과 장갑면에서 우세하여 결국 뉘른베르크가 회피기동중에 18:30시에 2차례의 보일러 폭발이 일어나면서 켄트에게 두들겨맞고 1927시에 전복되어 격침당한다.

라이프치히는 글래스고와 콘월에게 추격당해서 전투가 진행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탄약이 고갈되어 조명탄까지 쏘는 처지에 몰린다. 결국 2123시에 전복되어 격침당한다.

전투후 침몰한 독일 군함에서 생존자는 215명으로 9명은 뉘른베르크, 18명은 라이프치히, 나머지는 그나이제나우 소속이었다. 샤른호르스트는 슈페 제독을 포함해서 생존자가 전혀 없었는데 이는 격렬한 추격전 및 치열한 전투상황이라서 양측 모두 생존자를 구출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경순양함 드레스덴 (SMS Dresden)[5] 한 척만이 도주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독일 본토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3개월 후인 1915년 3월 14일에 짧은 전투 후에 승조원이 탈출하고 함선은 자침하면서 독일 제국 태평양전대는 전멸한다.


4. 결과[편집]



4.1. 양국의 피해[편집]


영국 함대의 피해
독일 함대의 피해
격침 혹은 파손된 함선 없음
SMS Scharnhorst
침몰
SMS Gneisenau
침몰
SMS Leipzig
침몰
SMS Nurnberg
침몰
SMS Dresden
중파
사망
10 명
사망
1,871 명
부상
19 명
포로
215 명

영국 순양전함이 독일 장갑순양함을 상대하고 영국 장갑순양함은 영국 방호순양함과 경순양함과 동행해서 독일 방호순양함이나 경순양함을 상대하며 숫자도 영국이 압도했으므로 피해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손빈의 마차경주 고사에서 나오는 삼사법 전략이 제대로 먹힌 사례로 상대방인 독일 함대에게 상등마가 될 순양전함이 없어서 보통의 결과인 2대 1이 아닌 3대 0으로 완전승리했다.

독일의 경우에는 전투 중반에 장갑순양함들이 조직적 저항을 한 것외에는 도주와 분산철퇴를 했기 때문에 전력에 비해서 성과가 매우 적다. 장갑순양함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순양전함들에게 장거리에서 일방적인 난타를 당하다가 끝났고 나머지 군함들도 애초에 추격하는 적이 압도적이기도 했거니와 분산철퇴의 결과 추격군에게 따라잡힌 군함은 단독인 상태라 제 실력도 제대로 못내고 격침당했다.

여기에 더해서 대규모 정비를 받아야 할 독일 군함도 많아서 동력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특히 장시간의 고속 도주로 인해 석탄을 사용하는 보일러 내부에 석탄재가 쌓여서 이걸 꺼내지 않으면 추가적인 연료 투입이 불가능해지므로 독일 군함들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정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동력기관이 지속적인 전투속도 유지에 따른 과부하에 시달리다가 증기폭발이 일어나는 등의 사태가 터져서 도주에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4.2. 의의[편집]


포클랜드 해전에서의 패배로 일본에 밀려 본국으로 귀환하려던 독일 태평양 전대가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두 격침당해서 사실상 괴멸했다. 사실상 독일 본토의 항구에 갇혀있는 상태인 대양함대를 제외하면 독일 제국이 외부로 투사 가능한 전력이 몇 척의 무장상선을 위장해서 가장순양함의 형태로 파견해서 통상파괴전을 하는 것 외에는 수상함선을 투입할 길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대양함대는 현존함대 전략을 사용하게 되고 통상파괴전의 주력은 U보트로 넘어가게 된다.

또한 독일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던 슈페 제독이 전사하고 그의 함대마저 괴멸되는 바람에 실전에서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현지에서 긴급 보급 및 수리를 하면서 적과 해전을 벌인다는 귀중한 경험을 한 승조원과 장교와 제독을 한꺼번에 상실하게 된다. 덕분에 대양함대가 유틀란트 해전같은 대해전을 하더라도 만일 해전에서 승리하면 그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대서양에 진출하여 영국의 숨통을 조를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승조원을 훈련하며 각종 준비를 진행할 인재 및 쓸만한 승조원이 없어서 현존함대 전략을 타개할만한 방안도 수립 못하게 된다.

피셔제독이 생각한 영국식 순양전함의 개념이 실전에서 증명된 사례이다. 반대로 영국식 순양전함의 한계를 보여준 건 유틀란트 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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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C가 순양전함의 분류기호다. CB는 대형순양함.[2] Protected Cruiser, 방호순양함[3] 타운급 방호순양함은 종종 경순양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4] 1920년 이전에 건조된 전함의 기호는 BB가 아니라 B이다.[5] 이 배의 정보관으로 근무하던 사람이 바로 빌헬름 카나리스로, 후에 히틀러 정권 내의 반나치주의자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