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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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여담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K리그와 관련된 여담을 정리해 놓은 문서.


2. 여담[편집]



  • 1983년의 K리그 출범은 1986년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에서 10회 연속으로 본선진출을 기록하게 될 정도로 한국 축구의 강한 뿌리가 되었고, 아시아 최강급의 전력으로 발돋움하게 될 수 있는 본격적인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흔히들 K-라는 접두어의 유래가 K-POP이라고 생각하지만, K-POP이라는 단어도 사실 1999년 10월 9일자 조현진 빌보드 한국특파원의 'S. Korea To Allow Some Japanese Live Acts' 기사에 따르면 K리그의 당시 명칭인 K리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원문

  •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서울과 수원 간의 슈퍼매치에서 관중 55,397명이 입장하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한 경기 5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5일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성남 간의 경기에서 60,747명이 입장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한편, 2010년 4월 4일에 있었던 서울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 역대 4번째 최다 관중 기록인 48,558명이 입장했고, 12월 5일 있었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선 56,759명이 입장하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2023년 4월 8일 K리그1 6라운드 FC 서울 대 대구 FC의 경기에서 코로나 이후 최다 관중인 45,007명을 기록했다.

  • 2008년 5월 18일 K리그 10라운드 부산과 성남 간의 경기에서는 일부러 골을 먹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전반 37분 부산의 김태영이 쓰러지자 부산은 치료를 위해 공을 밖으로 내보냈고, 성남은 페어 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부산에 공을 돌려줬다. 그런데 공을 내준 성남의 두두가 공을 내주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었고, 공을 받은 부산의 김유진은 두두가 달려오는 것을 모르고 등을 돌린 채 방향을 바꾸다가 두두에게 공을 뺏겼다. 조동건의 패스를 받은 최성국이 그것을 득점으로 연결시키자, 부산 측에서 성남에 항의를 했다. 결국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골을 주라고 지시했다. 부산의 안정환이 아무도 막지 않는 상태에서 공을 몰고 가 득점을 했다. 당시 대표 팀 승선을 앞두고 있던 안정환의 시즌 연속 2호골이었다. 경기는 원정 팀 성남이 3 : 1로 승리했다.

  • 과거에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1997년 4월 26일 울산과 부천의 경기에서 부천의 윤정환이 하프 라인에서 울산의 김병지에게 공을 돌려주려고 찼다가 힘 조절에 실패, 김병지의 키를 넘겨 골을 넣었다. 당시 부천 감독인 니폼니시 감독은 2008년의 김학범 감독처럼 울산에게 한 골을 내주라고 지시했고, 부천의 골키퍼 샤샤는 이것을 미처 듣지 못하고 연달아 슈팅을 막다가 나중에서야 골을 내줬다.

  • 2008년 11월경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이 가까워지자 K리그 측에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하필이면 부산의 김태영자책골로 10,000번째 골을 넣으면서 모든 게 흐지부지 됐다.[1]

  • 2010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K리그 4개 구단이 J리그, CSL, A리그 팀들을 전부 격파하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4팀 중 성남과 전북은 리그에서도 잘 했지만 포항(12위)과 수원(15위)이 리그에서 크게 부진했던 팀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 결국 이 시즌에서 성남이 우승을 차지했다.

  • 역대 K리그1 승격팀들은 수원 FC를 제외하고는 모두 K리그1에서 강등 당했던 팀들이 K리그1에 재입성한 경우다. 유일한 예외인 수원 FC는 2015 시즌 K리그2에서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격을 확정지었는데, 이 승격으로 수원 FC는 3부 리그 격이던 내셔널리그서부터 1부 리그인 K리그1까지 올라온 최초의 팀이 되었다.

  • K리그1에서 한 번도 강등을 경험하지 않은 팀은 전북, 울산, 서울, 수원, 포항, 인천 6팀이며, 그중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않은 팀은 전북, 울산, 포항, 인천 4팀이다. 그리고 그중 파이널 B조차 경험하지 않은 팀은 전북이 유일하다. 반대로 K리그2에서 한 번도 1부 리그를 경험해 보지 못한 팀은 안양, 부천, 안산, 아산, 서울 이랜드 5팀이며, 그중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해본 팀은 안양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중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해보지 못한 팀은 안산, 아산 2팀뿐이다. 한편 1부 리그를 경험해 본 팀들 중 파이널 A(상위 스플릿)에 진출한 경험이 없는 구단은 대전이 유일하다.

  • 2012년 울산 현대가 무패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ACL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2013년 FC 서울이 결승에 진출하면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 클럽이 5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는 초강세를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이후 ACL에서 이전과 같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리그 경쟁력이 하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2016년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우승과 2020년 울산 현대의 무패 우승으로 여전히 아시아에서 경쟁력을 갖춘 리그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 2012 시즌 K리그에서는 2부 리그 창설을 앞두고, 처음 실시한 강등 제도에서 AFC 클럽 라이선스 자격 미비를 이유로 상주 상무를 강제로 강등시키면서,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강등팀이 탄생했다. 그리고 2부 리그가 창설되고 본격적으로 승강제가 실시된 2013 시즌에는 최초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진행되었다. 당시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이었던 상주 상무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 1패 합계 점수 우세로 승리하며 승격에 성공했다. 이로서 최초의 프로축구 승격팀 또한 상주 상무가 되며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 2013 시즌 강원 FC는 K리그 클래식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6 시즌 K리그 챌린지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최초로 양대 리그 소속으로 모두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기록을 세웠다. 전자는 강등, 후자는 승격에 성공했으며 4경기 1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이후 이 기록은 부산 아이파크와 경남 FC가 나란히 이어받았다.

  • 2016년 성남 FC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면서 만약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할 경우, 성남 팬들은 K리그 클럽 팬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경험해볼 수도 있게 되었다. K리그 클래식 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FA컵 우승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리그컵 우승까지 모두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K리그2에서 최종 2위를 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승격이 되었다. [2]

  • K리그의 홍보대사들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홍보대사들과는 다르게 매우 열심히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 은퇴 후 홍보대사가 된 안정환[3]은 아예 직함을 '홍보팀장'이라고 하며 홍보활동을 했고, 중학교 시절 축구선수였던 윤두준 역시 K리그를 알리는데 맹활약했다. 2016년 8월부터 홍보대사에 위촉된 박재정은 '성공한 축덕'이라는 이미지답게 전 경기장을 돌아다니면서 맹활약 했다. 2018년에는 사상 최초로 인터넷 방송인 감스트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K리그 팬들은 반신반의했으나, 감스트 본인의 노력으로 지금은 많은 이들이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2019년 나락즈 성희롱 발언 사건으로 홍보대사 활동을 중단했다. 그래도 감스트는 자숙 후 방송에 복귀한 다음, 이미 홍보대사가 아님에도 본인 방송에서 K리그를 잘 다뤄주고 있다. 감스트에게도 본인이 한때나마 공영매체에 올라서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K리그이기도 하니까.

  • 승강제 도입 이후 가장 희로애락을 겪은 팀은 부산 아이파크다. 승강 플레이오프에 무려 4번이나 진출해 합계 전적 2승 2무 4패를 기록 했으며, 4번의 승강 플레이오프 중 1번의 강등과 3번의 승격 실패를 경험했다. 2015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수원 FC에 패해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2016년을 제외하고 2017, 2018, 2019년 무려 3년 연속 승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2017년에는 상주 상무에게 승강 플레이오프 최초로 승부차기 패배, 2018년에는 뜬금없이 내려온 FC 서울과 맞붙어 합계 전적 1무 1패로 패배하며 다른 2부 리그 팀들에게 다이렉트 승격만이 승격의 길이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부산 아이파크는 강등 이후 항상 우승권 전력으로 꼽혔고, 실제로 리그 상위권을 계속 유지했음에도 1위로는 리그를 마치지 못하는 묘한 부진에 빠졌다. 2019년에도 K리그2 준우승으로 다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이번에는 경남 FC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하며 5년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5년만의 복귀는 역대 강등팀 중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1부 리그 복귀 기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0년 K리그1 최하위를 기록하며 강등 당해, 불과 1년만에 다시 K리그2로 돌아가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여러모로 승강제와 승강 플레이오프에 한 맺힌 역사를 가진 팀이다.

  • 반면 인천 유나이티드는 K리그의 대표적인 생존왕으로 불리는 팀이다. 승강제 도입 이후 상위 스플릿에 속한 2013 시즌을 제외하면 2014 시즌 10위, 2015 시즌 8위, 2016 시즌 10위, 2017 시즌 9위, 2018 시즌 9위, 2019 시즌 10위, 2020 시즌 11위[4], 2021 시즌 8위로 8년 연속 하위 스플릿에 속하고도 승강 플레이오프조차 가지 않는 아슬아슬한 레이스로 잔류에 성공해왔다. 때문에 인천 팬들은 인천의 축구를 마약축구로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행보를 유지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인천 팬들이 충성도가 높고, 항상 시즌 막판 이슈의 주인공이 되어 팀 자체의 인지도와 인기는 리그 내에서도 높은 편이다.

  • 승강제 도입 전에는 승강제를 실시하면 돈 없는 시민구단들만 2부 리그로 떨어져 해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승강제 시행 불과 2년만에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 당하면서 그러한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후 2018 시즌 FC 서울이 승강 플레이오프를 다녀오며 강등의 위험을 맛봤고, 같은 시즌 전남 드래곤즈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자동 강등을 당했다. 그리고 2019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자동 강등 당하면서 기업구단으로서 세 번째 강등 사례가 추가되었다.

  • 2013년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면서 세미프로 리그에 있던 구단들이 프로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시민구단이 창단되어, 많은 구단들이 새로 프로 리그에 참가했다. 하지만 2017년 한꺼번에 두 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할렐루야 독수리의 후신을 자처하는 고양 자이크로가 30년 전과 똑같은 꼴로 해체를 선언했고, 유일한 충북 연고의 구단이었던 충주 험멜 역시 연고지 유지 문제와 재정난의 이중고로 결국 해체됐다.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참가팀에 대한 자격조건을 강화했고, 이로 인해 K리그2 2020 시즌 참가를 목표로 프로화를 추진했던 청주 FC의 가입이 불허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 프로 리그에 참가 중인 구단 중 가장 오래된 구단은 포항 스틸러스로 1973년에 실업구단으로 창단되었다. 하지만 세미프로 리그나 아마추어 리그에 참가 중인 구단까지 확장하게 되면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이 더 오래되었는데, 무려 1943년에 실업구단으로 창단되어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 K리그의 구단들 중 트레블을 달성한 팀은 아직 없다. 더블을 달성한 팀은 총 4팀인데, 1995 시즌 일화 천마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코리안리그에서 우승하며 K리그 사상 첫 번째 더블을 달성했고, 두 번째는 2002 시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와 FA컵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더블을 달성.[5] 2013 시즌 포항 스틸러스K리그 클래식FA컵에서 우승하며 세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0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K리그1FA컵에서 우승해서 네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6][7]

  • 2019 시즌 K리그1 17라운드 강원과 포항 간의 경기에서는 K리그 최초로 4실점 경기를 역전승하는 기록이 써내려졌다. 포항은 전반전에 2득점, 후반전에 2득점을 기록하며, 후반전 25분까지 4 : 0 리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원은 조재완의 만회골을 시작으로, 후반전 정규시간 동안 2득점을 거두고, 추가시간 동안 3득점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이 경기는 국내 스포츠 매체는 물론이고 해외 스포츠 매체에까지 소개되면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 경기는 한 경기에 양 팀 선수에 의해 총 두 번의 해트트릭이 나온 경기로, K리그에 새로운 기록을 써내렸다. 해트트릭은 포항의 완델손 선수와 강원의 조재완 선수가 각각 기록했다.

  • 승리팀에게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주는 K리그2의 플레이오프는 K리그2 정규 리그 2위 팀에게 많은 고배를 마시게 했다. 2014년 정규 리그 2위였던 안산은 3위 강원을 꺾고 올라온 4위 광주에게 고배를 마셨고, 2015년 정규 리그 2위였던 대구는 3위 수원 FC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16년 정규 리그 3~5위간 치른 플레이오프에서[8] 정규 리그 3위였던 부천은 4위 강원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번의 플레이오프에서 3번을 정규 리그 상위 팀이 하위 팀에게 잡혀 고배를 마셨고, 놀랍게도 그 3번의 플레이오프 승리팀 모두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K리그1 11위 팀을 꺾고 승격을 확정지었다.

  • 승강제가 시행되고 2부 리그가 창설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모든 광역시 연고의 팀들이 같은 리그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2013년에는 광주가 강등되어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광주는 K리그2에 있었다. 2014년에는 대구, 대전이 강등되어 부산,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광주, 대구, 대전은 K리그2에 있었다. 2015년에는 광주와 대전이 승격하여 대구를 제외한 팀들은 K리그1에, 대구만 K리그2에 있었다. 2016년에는 대전, 부산이 강등되어 광주,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대구, 대전, 부산은 K리그2에 있었다. 2017년에는 대구가 승격하여 광주, 대구,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대전, 부산은 K리그2에 있었다. 2018년에는 광주가 강등되어 대구,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광주, 대전, 부산은 K리그2에 있었다. 2019년에는 광역시 연고 팀들의 승강이 없어 2018년과 같았다. 2020년에는 광주와 부산이 승격하여 대전을 제외한 팀들은 K리그1에, 대전만 K리그2에 있었다. 2021년에는 부산이 강등되어 광주, 대구,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대전, 부산은 K리그2에 있게 되었다. 2022년에는 광주가 강등되어 대구, 울산, 인천은 K리그1에, 광주, 대전, 부산은 K리그2에 있게 되었다. 2023년에는 광주와 대전이 승격하면서 부산만 K리그2에 남게 되었다.

  • K리그에 승강제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사용된, 리그의 대표적인 약팀들을 일컫는 대대강광이라는 조어가 있다. 대대강광은 대전, 대구, 강원, 광주의 첫 글자를 따 이어붙인 조어로서, 당시 대대강광은 때리면 맞는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들이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K리그가 상전벽해하여 대대강광의 대전과 광주만 K리그2에 남아있고, 강원은 K리그1에서 빅클럽들도 무시 못하는 다크호스가 된데다, 대구는 챔피언스 리그까지 출전하는 명실상부한 강팀이 되어 사실상 대대강광 동맹은 해산되었다.

  • 2020년, K리그 공식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하며 유튜브 실버 버튼을 받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 중 최초이며, 채널 구독자 수도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많다. 2019년부터 매경기 하이라이트를 공식 채널에 올리기 시작하고,[9] K리그 콘텐츠를 뉴 미디어와 젊은 세대에 집중한 것에 대한 소기의 성과라 볼 수 있다.

  • 2021년 2월 23일, 해외에서 K리그를 시청하는 사람들을 위한 K리그 전용 OTT 플랫폼 K리그TV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포츠레이더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동개발한 이 플랫폼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접속이 가능하며, K리그1, K리그2 전 경기 실시간 중계는 물론 하이라이트와 인터뷰 콘텐츠를 영문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2021년 현재 하이라이트에는 한국어 해설이 나오고 있다.

  • 2019년부터 연맹이 직접 중계를 시작하면서 중계 BGM에 2010년 K리그 서포터즈 연합이 만든 K리그 헌정 음반 Into the K-League의 수록곡을 사용하고 있다. 인트로곡인 Here is the glory는 2013년부터 FC 서울을 제외한 K리그 22개 구단에서 선수 입장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 K리그에서는 2020년부터 매년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K리그 전 구단에서 각각 한 명의 마스코트가 출마하여 K리그 팬들에게 투표를 받는다. 선거 기간은 10일이며, 하루에 한 번씩 투표할 수 있고, 투표권은 3개씩 주어진다. K리그 마스코트 반장선거의 초대 반장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아길레온이다.

  • K리그에는 리그의 몇몇 팀들을 묶어 부르는 통칭이 있다. 이 통칭은 짧게 한 시즌만 사용되기도 하고, 길게 오랜 기간 사용되기도 하는 등 명칭마다 유통기한이 다르다. 한때 오랜 기간 사용된 통칭으로 성수울포, 대대강광 등이 있지만, 현재는 다소 맞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주로 강등권 팀들을 묶어서, 2019 시즌에는 경제인[10], 2021 시즌에는 잠강라 등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통칭은 당시의 리그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로서, K리그를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을 준다. 자세한 내용은 K리그/구단 통칭 문서 참고.

  • 2022년 말레이시아케다 주에서 지역 축구 리그를 새로 창설하였는데, 리그 명칭이 다름아닌 'K-LEAGUE'라 국내 축구팬들로부터 신기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 K리그는 IFFHS가 선정하는 세계 프로축구 리그 순위에서 2011년부터 11년 연속으로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2022년 K리그에서 동명이인이 꽤 많이 발생했다: 이근호(대구, 전북), 이상민(서울, 안산, 충남 아산), 티아고(안산, 경남)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했던 영국 대표단은 서울 이랜드와 경남FC의 하나원큐 K리그 2 2023 맞대결이 열리는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서울 이랜드 FC 구단 vs 경남 FC 구단

3. 둘러보기[편집]





[1] 그리고 이 장면은 201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UCL 통산 6,000호 골이 터졌는데 그 골이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던 것.[2] 1위는 아산무궁화였으나 시민구단으로 재창단하여서 2등인 성남이 승격하였다.[3] 지금처럼 예능에서 맹활약하기 전.[4] 상주 상무의 자동 강등이 조기 확정되었기 때문에, 2020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는 상주가 최종 12위로 리그를 종료하지 않으면 치러지지 않는다. K리그1 19라운드, 상주가 수원을 이기고 파이널 A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2020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5] 수원의 경우 당시 ACL은 춘추제, 국내 리그와 FA컵은 추춘제로 진행되어 후년도(2002년)를 기준으로 동일한 시즌으로 삼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소개 페이지, 수원 구단 공홈 아카이브, 영문 위키피디아 수원 2002 시즌 문서, 트랜스퍼마크트 수원 우승 기록, GOALZ 수원 페이지, worldfootball 수원 페이지, 국내 기사1, 국내 기사2, 국내 기사3, 국내 기사4, 국내 기사5 [6]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와 19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그 해 전관왕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했지만 그 때는 리그와 2개의 리그컵, 슈퍼컵 대회에 우승했고 리그 폐막 후 주로 12월 연말에 열리던 FA컵에는 관심이 없었다.[7] 2013 시즌 포항이 달성한 더블은 외국인 선수 없이 오직 한국인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으로 이뤄낸 것이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기록이다.[8] 2016년 정규 리그 1위 안산 무궁화가 연고 이전을 함에 따라 다음 시즌 K리그2 참가가 확정되어, K리그1 승격권이 정규 리그 2위 대구 FC에게 이양되었다.[9] KBO리그는 유튜브에 하이라이트를 일절 올리지 않으며, KBL과 V-리그는 유튜브에 하이라이트는 올리나 리그 공식 채널이 아닌 SPOTV 채널에서 업로드하고 있다.[10] 경남, 제주,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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