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 사망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중 임기 도중에 사망한 인물들을 정리한 문서이다. 사망한 날짜 오름차순(같은 날 사망한 경우는 가나다순)으로 기재한다.
6대와 21대는 임기 도중에 사망한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어서 이로 인한 보궐선거 또한 없다.[1]
2. 제헌 국회[편집]
3. 2대 국회[편집]
4. 3대 국회[편집]
5. 4대 국회[편집]
6. 5대 국회[편집]
7. 7대 국회[편집]
8. 8대 국회[편집]
9. 9대 국회[편집]
10. 10대 국회[편집]
11. 11대 국회[편집]
12. 12대 국회[편집]
13. 13대 국회[편집]
14. 14대 국회[편집]
15. 15대 국회[편집]
16. 16대 국회[편집]
17. 17대 국회[편집]
18. 18대 국회[편집]
19. 19대 국회[편집]
20. 20대 국회[편집]
21. 관련 문서[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3:22:23에 나무위키 임기 중 사망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21대 국회 중에서는 직위상실이나 지방선거 출마 등으로 인해 재보궐선거를 했었다. 지자체장이나 기초의원을 제외한 국회의원의 임기 도중 사망으로 인해 보궐선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2] 사망으로 치러진 1949년 보궐선거에서 김용화가 당선되었으나 무효처리되었다. 한 달여 뒤 치러진 재선거에서 이상돈이 당선되었다.[3]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최주일이 당선되었다.[4]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동생 김문용이 당선되었다.[5]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전진한이 당선되었다.[6] 역대 최연소 사망 [7]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이한창이 당선되었다.[8]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이범승이 당선되었다.[9]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배은희가 당선되었다.[10]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김제능이 당선되었다.[11] 족보상의 사망일로, 정확한 사망일은 알 수 없다.[12] 사망으로 치러진 1952년 재보궐선거에서 윤치영이 당선되었다.[13] 사망으로 치러진 1954년 재보궐선거에서 박정근이 당선되었다.[14] 사망으로 치러진 1955년 재보궐선거에서 안준기가 당선되었다.[15] 제3대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중 사망, 사망으로 치러진 1956년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아들 신하균이 당선되었다.[16] 3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사망으로 치러진 1956년 재보궐선거에서 손준현이 당선되었다.[17] 사망으로 치러진 1956년 재보궐선거에서 이성주가 당선되었다.[18] 제4대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중 사망[19] 4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20] 사망으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조윤형이 당선되었다.[21] 사망으로 신민당 전국구 19번 후보였던 김현기가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2] 사망으로 민주공화당 전국구 29번 후보였던 노진환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3] 사망으로 유신정우회 소속 김충수가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4] 사망으로 유신정우회 소속 이승복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5] 그의 사망과 동반 당선된 정일형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오제도, 정대철이 동반 당선되었다.[26] 사망으로 유신정우회 소속 고귀남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7] 사망으로 민주정의당 전국구 63번 후보였던 문용주가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8] 사망으로 민주정의당 전국구 66번 후보였던 유수환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29] 사망으로 민주한국당 전국구 25번 후보였던 이용곤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30] 사망으로 한국국민당 전국구 6번 후보였던 조용직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31] 사망으로 치러진 1990년 재보궐선거에서 허탁이 당선되었다.[미실시] A B C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32] 사망으로 민주자유당 전국구 36번 후보였던 박근호가 의원직을 승계하였다.[33] 사망으로 치러진 1993년 재보궐선거에서 손학규가 당선되었다.[34] 사망으로 치러진 1993년 재보궐선거에서 류종수가 당선되었다.[35] 사망으로 치러진 1994년 재보궐선거에서 이상두가 당선되었다.[36] 사망으로 치러진 1994년 재보궐선거에서 김기수가 당선되었다.[37] 사망으로 통일국민당 전국구 11번 후보였던 이용준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38] 사망으로 치러진 1997년 재보궐선거에서 조한천이 당선되었다.[39] 사망으로 치러진 1997년 재보궐선거에서 이태섭이 당선되었다.[40] 사망으로 치러진 1997년 재보궐선거에서 김일주가 당선되었다.[41] 사망으로 치러진 1997년 재보궐선거에서 이영일이 무투표 당선되었다.[42] 사망으로 치러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아들 남경필이 당선되었다.[43] 사망으로 통합민주당 전국구 7번 후보였던 이형배가 의원직을 승계하였다.[44] 사망으로 치러진 1999년 재보궐선거에서 김의재가 당선되었다.[45] 사망으로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서병수가 당선되었다.[46] 사망으로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이해구가 당선되었다.[47] 사망으로 치러진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정갑윤이 당선되었다.[48] 사망으로 한나라당 비례대표 24번 후보였던 장광근이 의원직을 승계하였다.[49] 사망으로 치러진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심대평이 당선되었다.[50] 사망으로 치러진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한기호가 당선되었다.[51] 잔여임기가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52] 사망으로 치러진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청원이 당선되었다.[53] 사망으로 치러진 2019년 보궐선거에서 여영국이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