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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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width=9%><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fff><bgcolor=#d60026> 권동진 ||<width=9%><bgcolor=#d60026> 권병덕 ||<width=9%><bgcolor=#ba4160> 길선주 ||<width=9%><bgcolor=#ba4160> 김병조 ||<width=9%><bgcolor=#d60026> 김완규 ||<width=9%><bgcolor=#ba4160> 김창준 ||<width=9%><bgcolor=#d60026> 나용환 ||<width=9%><bgcolor=#d60026> 나인협 ||<width=9%><bgcolor=#ba4160> 박동완 ||<width=9%><bgcolor=#ba4160> 박희도(日) ||<width=9%><bgcolor=#ff8c00> 백용성 || ||<bgcolor=#d60026> 박준승 ||<bgcolor=#d60026> 손병희 ||<bgcolor=#ba4160> 신석구 ||<bgcolor=#ba4160> 신홍식 ||<bgcolor=#ba4160> 양전백 ||<bgcolor=#d60026> 양한묵 ||<bgcolor=#d60026> 오세창 ||<bgcolor=#ba4160> 오화영 ||<bgcolor=#ba4160> 유여대 ||<bgcolor=#ba4160> 이갑성 ||<bgcolor=#ba4160> 이명룡 || ||<bgcolor=#ba4160> 이승훈 ||<bgcolor=#d60026> 이종일 ||<bgcolor=#d60026> 이종훈 ||<bgcolor=#ba4160> 이필주 ||<bgcolor=#d60026> 임예환 ||<bgcolor=#ba4160> 정춘수(日) ||<bgcolor=#d60026> 최린(日) ||<bgcolor=#ba4160> 최성모 ||<bgcolor=#ff8c00> 한용운 ||<bgcolor=#d60026> 홍기조 ||<bgcolor=#d60026> 홍병기 || ||<-11> ※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련 인물은 (日)로 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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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운동가,
장로회 목사.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1873년
평안북도 철산군 태어났다. 이후 1892년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3년에는
정주군의 정주서면교회의 집사가 되었다.그후의 일본시찰단 소속으로 일본을 돌아다니다
105인 사건 으로 인하여 3년간 옥살이를 하게되었다. 그이후에는 1919년엔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기미독립선언서]의 서명
3.1 운동을 주도하여 만세를 외치며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립선언서와 3.1운동 주도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서 2년 옥살이을 하게되었다. 그후의 교육인재양성과 포교활동등을 하며 활약하였다.
1945년의
대한민국이 일제에게 해방되어 광복이 되자
조선민주당의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조직하였고 교육계의 지원을 하며 인재양성도모를 하였다. 그후의 1956년의 향년 84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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