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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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경성시대'를 보는 관점
4. 기타
5. 관련 작품
6. 관련 관광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경성시대19세기 말~20세기개화기대한제국 시기의 한성부(한양), 일제강점기조선 경성부를 배경으로 한 복고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

2. 상세[편집]


과거에도 야인시대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여럿 있었지만 경성시대라는 용어를 쓰며 특별한 장르로 구분짓거나 하진 않았다. 경성시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2010년대 후반으로, 뉴트로로 불리는 신복고가 한참 유행하던 2019년 경이다.# 비슷한 시기에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 션샤인이 흥행하면서 근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덩달아 경성시대라는 용어도 대중화되었다. 비슷한 장르인 다이쇼 로망에 빗대어 경성 로망스, 경성풍, 경성 모던으로 부르거나, 경성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비교적 중립적인 개화기 스타일, 개화기 감성, 개화기풍 등으로 돌려 말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강화도 조약 이후로 새롭게 들어온 서양, 일본 문화와 기존의 조선 문화가 혼합된 '한양절충(韓洋折衷)'의 양상을 보인다. 유럽 고전 건축 양식과 드레스 등 유럽 귀족 문화, 도시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개화기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조선 궁궐 한복 무료 입장으로 한복 대여업이 성행하자, 파생 사업 분야로 개화기 의상 대여업도 함께 성행한 사례가 있다.


3. '경성시대'를 보는 관점[편집]


경성시대 자체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있다 보니 당대 문화를 조명하는 경성시대 장르가 일제강점기미화하고 식민 지배의 아픔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조선귀족[1]과 같은 단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물의를 빚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옷을 입고 당대의 문화를 모방한다고 해서 미화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조선시대의 양반의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양반들에 의해 고통받던 노비들의 아픔을 외면한다고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애초에 개화기 의상은 서양 복식으로, 서양에서 입었던 옷이 근대화의 흐름과 함께 동양으로 오면서 개화기 의상이 된 것이다. 또한 당대의 여러 독립운동가이상, 백석, 이효석처럼 시인, 작가와 같은 문학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근대문화를 향유하던 이른바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의외로 많았다.[2] 특히 독립운동가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대한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는 등 더욱 문화적 소양에 신경썼다.[3] 결국은 당대 문화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그래서 당대의 역사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시대의 문화를 재해석하는 시도 자체를 죄악시할 것까지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21세기의 경성에 일본은 필요없다

이렇듯 전통과 근대의 교차라는 매력적인 점이 있지만 동시에 민감한 역사와도 연계된 장르 특성상 제대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장르이기도 하다.


4. 기타[편집]


경성시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슷한 장르인 중국의 '민국시대'나 일본의 '다이쇼 로망'이 모두 국가 특성이나 연호 등으로 시대상을 함축하는 반면 '경성시대'라는 용어는 뜬금없이 도시 이름을 이용하고 있으며,서울공화국 경성이라는 도시만 부각되고 있고, 경성시대라는 용어가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까지 포함해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용어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구한말을 분리하여 본다면 실제 대한제국의 연호였던 광무를 이용한 '광무시대' 나 '광무 낭만' 정도로 구분하는 것이 비교적 덜 어색한 용어가 된다.

일본의 '다이쇼 로망'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시기적으로 그렇고 세부적인 요소도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나무위키 내에서 '경성물'이란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나, 위키외에서 쓰이지 않는 독자연구 용어다.

과거 경성이었던 지금의 서울에는 그 시대의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에 6.25 전쟁이 터지면서 서울이 초토화가 된 것도 있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것들도 경제개발과 일제 잔재 청산 등의 명목으로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의 서울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고층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현대도시가 되었다.[4] 오히려 개항장이었던 인천이나 군산, 포항, 목포같은 항구도시나 한국전쟁의 화마를 비켜간 부산, 대구, 창원 등지에 근대 건축물이 더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서울보다는 대부분 지방 로케이션 촬영을 하거나 아예 세트장을 만들어서 촬영을 한다.

5. 관련 작품[편집]



6. 관련 관광지[편집]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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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가 공적이 있는 자들에게 내린 작위를 받은 이들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친일파 인증표다. 대한제국의 오등작과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함부로 쓸 단어는 절대 아니다.[2] 사실 당연한 것이 문학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당대에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구제전문학교로 만족할 게 아니라면 경성제국대학에 진학하거나 일본 내지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재력이나 개인적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기회를 가졌으면서도 변절하지 않고 민족성을 유지한 현진건, 황순원 같은 몇몇 작가들의 작품성이 특히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3]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전에 한인애국단에서 찍은 사진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4] 사실 당시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던 일본도쿄도쿄 대공습으로 근대 시기의 모습은 크게 남아있진 않다. 이쪽은 애초에 자업자득이었지만. 그 이후 일본도 60~80년대 고도 경제 성장 시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들도 많다. 괜히 아이치현에 근대 건축물들을 옮겨 온 메이지무라를 만들거나,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시 일본 근대 건축계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