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조씨(영조)
덤프버전 :
조선 인조의 후궁에 대한 내용은 귀인 조씨(인조) 문서
조선 영조의 후궁. 화유옹주의 어머니이다.
사위의 가문인 창원 황씨 가문에 전해지는 《영세보장(永世寶藏)》의 묘표에 따르면, 1716년(숙종 42년) 10세의 나이로 궁녀가 되었고 나이 29세에 숙원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영조의 열 번째 딸 화유옹주를 낳고, 1772년(영조 48)에 숙의로 진봉되었다. 살아 생전의 기록도 별로 남아있지 않고, 다른 후궁인 영빈 이씨와 숙의 문씨에 비하면 존재감도 흐릿한 편. 오죽하면 사극에서도 배우들이 이 역할로 나온 적이 없다. [2]
그러나 영빈 이씨는 다 키운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악명을 남기고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은 이들에 비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에 의해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오르고 2년 뒤 사망했다.[3] 조씨의 사후에 제사는 사위 황인점(黃仁點)의 가문인 창원 황씨 집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씨의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원미로281번길 35)에 있는데, 인근에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의 합장묘가 같이 있다.
, 조선 철종의 후궁에 대한 내용은 귀인 조씨(철종)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조선 영조의 후궁. 화유옹주의 어머니이다.
2. 생애[편집]
영고께서 집안을 바르게 하여 / 寧考正家
교화가 이남에 두루 미치니 / 化洽二南
영령이 이에 순응하여 / 靈維順序
그 마음을 밝게 살폈네 / 洞屬其心
의복을 검소하게 하여 / 衣不曳地
기리는 말이 궁중에 퍼졌고 / 譽播宮闈
희미한 저 작은 별에 / 嘒彼小星
오히려 남은 광휘가 있었네 / 尙有餘輝
화유옹주와 무덤이 가까워 / 和柔近岡
신리가 매우 편안하니 / 神理孔安
행차가 지나는 이날에 / 輦過是日
한 잔 술을 따르네 / 迺斟一尊
《홍재전서》, 淑嫒趙氏墓致祭文
사위의 가문인 창원 황씨 가문에 전해지는 《영세보장(永世寶藏)》의 묘표에 따르면, 1716년(숙종 42년) 10세의 나이로 궁녀가 되었고 나이 29세에 숙원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영조의 열 번째 딸 화유옹주를 낳고, 1772년(영조 48)에 숙의로 진봉되었다. 살아 생전의 기록도 별로 남아있지 않고, 다른 후궁인 영빈 이씨와 숙의 문씨에 비하면 존재감도 흐릿한 편. 오죽하면 사극에서도 배우들이 이 역할로 나온 적이 없다. [2]
그러나 영빈 이씨는 다 키운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악명을 남기고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은 이들에 비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에 의해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오르고 2년 뒤 사망했다.[3] 조씨의 사후에 제사는 사위 황인점(黃仁點)의 가문인 창원 황씨 집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씨의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원미로281번길 35)에 있는데, 인근에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의 합장묘가 같이 있다.
[1] 귀인 조씨의 묘는 본래 부천시 작동 산 112-19에 조성되었으나, 2005년 4월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2] 대왕의 길에서 언급은 되었는데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이 죽은 것으로 나온다...[3]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3월 2일 임술 2번째기사. #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17:10:29에 나무위키 귀인 조씨(영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