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수정 장식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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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74호
금동 수정 장식 촛대
金銅 水晶 裝飾 燭臺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생활용구
수량/면적
1쌍(雙)
지정연도
1974년 7월 9일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파일:국보174호금동수정장식촛대.jpg

1. 개요
2. 내용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74호


1. 개요[편집]


金銅 水晶 裝飾 燭臺.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구리로 주조하여 으로 도금한 금동 촛대로 두 점이 한 쌍을 이룬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 소유였던 골동품 중에 국보 등의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 유물들이 그렇듯이, 금동 수정 장식 촛대도 정확한 입수경위나 출토 위치를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한 쌍의 촛대가 어디 계열 유물일지 그리고 언제쯤 만들어진 것일지도 역시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형태적인 측면에서 보면, 통일신라 말기 석등과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시기의 유물일 것으로 추정한다.[1]

본 금동 수정 장식 촛대 2점은 한 쌍으로 묶여 1974년 국보 제174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촛대 유물로는 유일하게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본 한 쌍의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두 점 모두 높이가 36.8cm이고 그 형태와 문양이 서로 아주 유사하여 처음부터 세트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제작 당시에는 최고급 초호화 촛대 제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 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촛대들은 금으로 도금되어 있으며 몸체와 접시의 곳곳에는 수정이 금속 꽃장식에 박혀 삽입되어 있는데 원래 하나의 촛대에 48개의 수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들어진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촛대에 입힌 도금이 상당히 벗겨지는 바람에 내부의 구리가 그대로 외부로 노출되었고 공기 중에서 서서히 산화하며 퍼렇게 변색되는 구리의 특성으로 인해 한 점은 아예 푸른 색으로 변했다. 또한 두 점 모두 박혀있던 수정이 빠지고 없어진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래의 화려했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원래의 형태가 잘 보존된 편이다.

두 점 모두 형태가 같은데, 맨 아래 받침대 위로 6개의 짐승 모양의 다리가 있으며, 다리 위에는 큰 접시가 놓여져있다. 큰 접시의 둘레에는 6개의 수정이 박혀 있다. 큰 접시의 중앙부에는 상단의 작은 접시와 만나게끔 위로 솟은 손잡이용 큰 기둥이 있는데, 큰 기둥과 큰 접시가 만나는 부분에도 수정을 돌려가며 박아놓았으며 기둥은 크게는 3단의 굴곡을 보이면서 위에 얹어진 작은 접시와 만난다. 이 큰 기둥은 3단의 굴곡뿐만 아니라 세밀한 가로선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큰 기둥의 가운데 굴곡에도 수정을 돌려가며 박아놨다. 큰 기둥 위의 작은 접시는 아래의 큰 접시와 형태는 유사하다. 이 작은 접시의 둘레에도 역시 6개의 수정이 박혀 있다. 작은 접시 위에는 초꽂이가 올려져 있다. 초꽂이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아랫 부분은 연꽃형의 받침으로 12개의 수정이 박혔다. 윗 부분은 초를 꽂는 부분으로 원통형인데 측면에도 수정을 둘러가면서 박아놨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현재로선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이 촛대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금속 조형 및 세공 기술이 대단히 높은 경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자신의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드러낸 견해를 따르자면) 특정한 시기의 공예 수준은 그 문화의 발전도를 반영하며 본디 실용적인 용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던 제품들이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공예품적인 성격을 드러내게 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본 금동 수정 장식 촛대를 만들어낸 통일신라시기가 문화적으로 상당히 성숙한 시대였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그 예술품적인 미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 받아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편집]




4. 국보 제174호[편집]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높이 36.8㎝, 밑지름 21.5㎝의 수정이 박힌 금동제 촛대 한 쌍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6장의 꽃잎 모양을 한 받침이 기둥 줄기를 사이에 두고 아래위로 놓여 있다. 아래 받침에는 꽃 모양의 고리로 고정시킨 6개의 짐승 모양의 다리가 받치고 있다. 윗받침의 중앙에는 짧은 줄기가 솟고 그 위에 이중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반원 모양의 받침이 있으며, 위쪽으로는 원통형의 초꽂이가 있다. 받침대 표면에는 양각과 음각의 수법으로 조각을 하였고 곳곳에 수정을 박아 장식하였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지고 도금이 벗겨진 곳도 있다.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통일신라 금속 공예의 일면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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