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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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식의 감독 경력 및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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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23
(감독)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감독
ANYANG JUNG KWAN JANG RED BOOSTERS

파일:김상식2022-23.png

김상식
金商植

출생
1968년 3월 14일 (5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신장 182cm|체중 78kg
직업
농구 선수 (슈팅 가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윤중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양정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 / 학사)
병역
상무 농구단
실업 입단
1990년 기업은행 농구단
소속
선수
기업은행 농구단 (1990~1997)
광주 나산 플라망스 (1997~1998)
안양 SBS 스타즈 (1998~2003)
감독
안양 KT&G 카이츠 (2006~2007 / 대행)
대구 오리온스 (2008 / 대행)
대구 오리온스 (2008~2009)
서울 삼성 썬더스 (2014 / 대행)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 / 대행)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2021)
안양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부스터스 (2022~ )
코치
안양 SBS-KT&G (2004~2007)
대구 오리온스 (2007 / 수석 코치)
서울 삼성 썬더스 (2012~2014 / 수석 코치)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5~2018)
가족
아버지 김영기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실업 시절
2.2. 프로 시절
2.2.1. 시즌별 성적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역대 프로필 사진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 선수 출신 감독. 농구인 2세로 기업은행의 간판 슈터였고 프로 출범 후 나산, SBS에서 활약했으며 이동 미사일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유명했다. 현재는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의 감독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실업 시절[편집]


부친은 1950~1960년대 한국 농구를 책임졌던 스타 선수이자, 한국프로농구 출범에 크게 기여하고 KBL 2대 총재를 역임한 김영기. 아버지의 뒤를 따라 농구 선수가 되었고 고려대 시절에는 외곽슛을 주무기로 제법 우수한 실력을 뽐낸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고려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다만 한 시대를 풍미한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정하고 입단하는데, 이유는 부친인 김영기가 기업은행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기업은행의 주포로서 농구대잔치 무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군복무 시절인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정재근, 오성식과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연세대에게 패하면서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이 금융팀인지라 다른 팀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업농구 시절의 김상식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약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에이스로 각인되었다. 상무 시절이던 1993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3 자카르타 ABC에 참가하였다.


2.2. 프로 시절[편집]


프로 출범 후에는 기업은행을 인수해서 출발한 광주 나산 플라망스 소속으로 원년에 평균 20득점을 넘기면서 용병 에릭 이버츠, 이민형과 함께 팀을 6강 PO로 이끌었다. 이듬 해인 1997-98 시즌에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지만 당시 나라를 뒤흔든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 모기업이던 나산그룹이 부도가 났고 모기업의 경영난이 농구단 운영 차질로 연결되고 말았다. 결국 나산은 팀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간판 선수였던 김상식을 현금 2억원에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시켰다.

안양에서의 성과는 다소 미흡했다. 이적 당시 김상식은 이미 30줄에 접어들었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은 출장시간에도 불구 장기인 3점슛과 외곽슛을 무기로 가드진을 이끌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 때의 활약을 통해 SBS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SBS가 코치 연수를 보내준 것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2.2.1. 시즌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 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1997
나산
15
44/83
(53.01%)
50/109
(45.87%)
66/79
(83.54%)
304
46
27
42
0
1997-98
43
134/266
(50.38%)
116/311
(37.30%)
172/190
(90.53%)
788
128
98
82
1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2점슛
3점 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슛
1998-99
SBS
43
102/183
(55.74%)
99/283
(34.98%)
79/109
(72.48%)
580
71
86
54
0
1999-00
40
52/98
(53.06%)
47/127
(37.01%)
70/79
(88.61%)
315
128
62
84
0
2000-01
27
23/47
(48.94%)
22/61
(36.07%)
30/37
(81.08%)
142
24
44
19
3
2001-02
41
24/44
(54.55%)
37/101
(36.63%)
36/39
(92.31%)
195
55
66
23
2
2002-03
19
6/14
(42.86%)
7/31
(22.58%)
5/5
(100%)
38
15
32
8
0
KBL 통산
(7시즌)
228

385/735
(52.38%)
378/1023
(36.95%)
458/538
(85.13%)
2,362
401
437
263
6


3. 지도자 경력[편집]



3.1. SBS 스타즈 코치 및 KT&G 카이츠 코치-감독 대행[편집]


은퇴 이후 마지막 소속 구단이었던 SBS에서 연수 지원을 받은 이후 다시 구단에 복귀했다.

2004-05 시즌 김동광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존의 SBS 성골인 이상범 코치와 함께 SBS의 수석코치로 부임해서 팀이 KT&G로 넘어간 후에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2004-2005 시즌 단테 존스 신드롬을 함께하면서 코치로 성적을 내게 된다.

하지만, 2005-2006 시즌 6강 탈락과 함께 시련을 겪더니 2006-2007 시즌 1라운드를 마치고 김동광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하자 감독 대행을 맡게 된다. 잠시 팀을 잘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2006-2007 시즌중이던 2월 1일부로 신임 감독으로 창원 LG 코치였던 유도훈이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다시 KT&G 수석코치직으로 돌아가 남은 시즌을 치르면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후, 결국 팀을 떠났다.[1]


3.2. 대구 오리온스 수석 코치-감독 대행-감독[편집]


KT&G 카이츠 수석코치에서 사퇴 이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새 도전에 나서게 된다.

대구 오리온스로 떠나게 된다. 같은 대학 대선배이자 김진 감독이 11년만에 떠나게 되면서 후임으로 역시나 같은 대학 대선배이자 슛도사이자 신사수로 불렸던 이충희 감독이 부임하면서 수석코치직으로 KT&G 카이츠 사퇴 이후 5개월만에 복귀하게 된다. 김진 감독은 김지홍 수석코치를 같이 데리고 가면서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다.

하지만,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인해 또 다시 원치 않은 자리를 맡게 된다.

2007-2008 시즌 대구 오리온스에서 이충희 감독이 4승 22패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자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아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렀다. 김상식 감독대행 체제에서는 8승 20패로 그나마 조금 나은 성적을 냈으나 그 시즌 오리온스는 98-99 시즌 32연패에 버금가는 12승 42패라는 굴욕이자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나마 김상식이 몸담았던 KT&G를 상대로는 4승 2패로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했다.

파일:김상식 오리온스 감독.jpg

이후 대구 오리온스의 5대 감독으로 정식으로 승진해서 2008-2009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 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농구인 2세 감독이 탄생한 것.

수석 코치는 대학 동문인 정한신 전 TG 삼보 코치가 맡게 되었으며 오리온스 창단 멤버였던 정재훈 코치와 함께 맡게 된다.

외국인 또한 김승현김병철 그리고 오용준을 살릴 수 있는 가넷 톰슨과 크리스 다니엘스를 영입하며 최소 봄농구를 노릴 수 있는 전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넷 톰슨의 부상과 부진 그리고 계속되는 김승현의 부상으로 인한 골골 모드에 김병철의 극심한 노쇠화로 인해 또 성적부진의 아픔을 겪게 된다.

참고로, KBL 대표명장인 김진 감독이 떠난 이후의 당시 오리온스는 그야말로 역대급 굴욕이었다. 심용섭 단장의 프런트가 개판을 치고, 김승현김병철 그리고 오용준 이외의 나머지 선수는 없는 한 마디로 막장 중의 막장. 여기에 혼혈 드래프트에서 1순위냐, 꽝이냐를 뽑는 확률 1/2의 상황에서 꽝을 뽑으면서 혼혈 드래프트 1순위도 놓치는 불운까지 겹쳤다. 이 때 김상식 감독이 1순위를 놓치고, 1순위를 가져간 사람은 끝 번호라서 뽑기 자체를 안 한 뽑기의 끝판왕 전주 KCC 이지스허재 감독이다. 이 때 박장대소하는 허재와 머리를 감싸쥐고 좌절하는 김상식이 찍힌 사진이 꽤 유명하다(...). 허재 감독 문서에도 있는

파일:external/cfs15.tistory.com/4986ae470f828?.jpg
바로 이거...

2008-2009 시즌 초반까지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플레이오프 진출도 어렵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선발한 크리스 다니엘스를 레지 오코사와의 맞트레이드로 동부 프로미로 이적시키면서 경기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후반기부터 갑자기 김승현의 부상과 외국인 문제로 인해 DTD를 시전하더니 결국 김상식 감독도 갑작스런 성적 부진에 팬들에게 몰상식, 돌상식 등으로 까이며 시즌 도중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면서 감독 생활을 허무하게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잔여 경기는 오리온스의 창단 멤버였던 2군 코치인 정재훈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지휘를 하게 되었으며 9위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감하게 된다.

핵심은 이충희 감독 시절부터 이어진 김승현의 부상이 결정적이었고 김병철 또한 노쇠화로 예전의 폭발력이 아니었으며 오용준과 이동준은 기복을 드러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게 되며 대학 대선배이자 KBL 대표명장으로 서울 SK 나이츠에서 자진사퇴 뒤 견문을 넓히고 있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신화와도 같았던 명장인 김진 감독에 이어 NBA LA 레이커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게 된다.


3.3. 서울 삼성 썬더스 수석 코치-감독 대행[편집]


파일:삼성 김동광 감독 김상식 수석코치.jpg

이후 기업은행 시절 스승이던 김동광 감독이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2012년부터 서울 삼성 썬더스의 수석코치에 임명되었다.

12-13 시즌 60대의 김동광 감독을 직접 잘 보좌하면서 슈터가 없는 팀의 현주소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봄농구를 올리면서 잠시나마 잃어버렸던 지도력을 회복하게 된다.

파일:김상식 삼성 감독대행.jpg

하지만, 김동광 감독이 2014년 1월 27일 부로 성적부진의 이유로 자진 사퇴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감독대행만 세 번째

시즌 이후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수석 출신도 아니었고 더 밑의 코치였던 이상민이 감독을 맡게 되면서 감독대행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3.4.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편집]


파일:대표팀 김상식 감독 조상현 코치.jpg

2015년 창사 아시아선수권 남자 국가대표 농구팀에서 김동광 감독을 다시한번 직접 보좌하여 수석코치로 활동하였다. 이후에는 허재 감독을 보좌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다가, 허재가 감독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감독직을 대행하게 되었다.


3.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감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식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는 스타 출신 슈터였던 조상현 전 오리온스 코치를 불러들이면서 코든 스테이트를 꿈꾸게 했다.

감독 대행 전문 코치(...) 당장 인맥농구 논란 등으로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상태인데다가 농구 월드컵 예선이 코앞인 상황이었는데, 난적 요르단과의 원정경기에서 86-75로 쾌승, 그 이후 당장 3일 후에 있는 시리아와의 홈경기에서 홈 이점따위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103-66 대승을 거두면서 팀 분위기를 잘 수습했다는 평. 경기력이나 작전능력도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 공로를 인정받은 까닭인지 2018년 10월 2일 공식적으로 감독대행을 떼고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그 이후에도 난적 레바논과 요르단의 홈 경기에서 2연승을 거두며 2019년 농구월드컵 출전을 조기에 확정짓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새 얼굴 테스트 겸으로 간 마지막 시리아와 레바논 원정 2연전도 승리로 마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특히 주전들 체력안배를 통한 후반 반격이 경기 때마다 주효했다는 평.

이후 임기 만료로 잠시 물러나있다가 새로운 감독 공모에 단독 지원해서 다시 선임되었다. 이후 2019 FIBA 농구 월드컵 본선 조별 예선 B조 3경기에서 모두 패배하였는데 러시아전에서는 선수들의 분전으로 박수 받았지만, 나이지리아전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42점차 대패를 당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전패로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고 순위결정전에서는 홈팀 중국을 상대로 접전 끝에 아쉽게 패했지만, 코트디부아르에게는 9점차로 승리하며 25년만에 농구 월드컵 본선대회 승리를 이끌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상식호/2019년 참조.

하지만, 2021년 1월에는 2월에 열리는 FIBA 아시아컵 대표팀 관련 차출문제로 인해 대표팀 감독직에서 제한된 조건에서 차출이라는 선수선발 문제로 인해 KBL 10개 구단과 신뢰를 잃게 되더니 자진사퇴를 밝혔다. 본인은 신뢰문제가 깨지면서 사퇴로 책임을 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모교 선배로 오리온 사령탑인 강을준 감독이 이승현 선수 관련 차출로 인해 디스를 당하고 말았다. 또 하나의 피해자는 오리온의 전 감독이었던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이었다.

심지어 오리온 출신 감독 간의 집안 싸움이라는 오명의 피해자 중 하나가 되었다. 농구 팬들은 강을준 감독이 무조건 잘못했음에 비판과 분통을 터트렸고 오히려 추일승 경기력향상위원장과 김상식 감독을 위로했다. 이후 강을준 감독은 김상식 대표팀 감독에게 미안함을 고백했으나 이미 버스 간 뒤에 손든 꼴이었다.

이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결국 허무하게 나가고 말았다.

후임으로 공모전을 통해 당초 유력했던 김진 감독-김영만 코치 조가 아닌 자신이 지도했던 조상현 코치가 후임으로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3.6.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감독[편집]


대표팀 감독에서 허무한 상태로 물러난 이후 야인의 시간을 가지던 중 2013-2014 시즌 삼성 수석코치-대행 이후 떠났던 KBL 지도자로 무려 8년만에 KGC인삼공사 감독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6-2007 시즌 수석코치-감독대행을 포함하면 무려 15년만의 친정 귀환이었다. 참고로 김상식 감독은 지도자 인생 처음으로 감독대행을 거치지 않고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팀을 이끌면서 챔피언결정전 3회 진출 2회 우승 1회 준우승의 명장인 김승기 감독이 당초 2020-2021 시즌 플레이오프 10전 전승신화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1+1 계약[2]으로 인해 이적설이 떠돌았는데 1년 뒤 사실이 되었다. 김승기 감독은 이 계약의 보장 1년이 만료된 상태에서 1년 옵션을 거부한 뒤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를 인수한 데이원자산운용의 고양 캐롯 점퍼스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팀을 떠나게 된다. 공석이 된 안양 KGC인삼공사의 후임 감독이 되었다.

06-07 시즌 도중 성적부진으로 팀을 떠난 김동광의 후임으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월까지 감독대행을 맡고 5690일만의 안양 감독 복귀라고 볼 수 있다. KGC인삼공사 구단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처음에는 면접만 보러 오라고 하는 줄 알고서 구단 사무실로 갔더니 얘기를 나누고서 곧바로 감독에 발탁되었다고 한다.

계약완료한 직후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구단이 전통적으로 돈을 아끼는 방침으로 인해 최근들어 이재도를 FA 때 LG 세이커스로 떠나 보내게 된다. 이번에 FA로 나온 슈터인 전성현마저 캐롯 점퍼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적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또한 팀이 보상선수 지명 대신 이번에도 보상금만 가져오면서 전력 누수를 기록한 채 시즌을 맞이한 상황이 되었다. 코치진으로 국가대표팀에 선수로 뛰어 한솥밥을 먹은바 있었던 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었던 조성민 신임 코치와 창원 LG 세이커스 전 코치였던 최승태 수석코치를 데리고 와서 모션오펜스를 중시한 기조를 만들어냈다.

대신 이재도 선수와 전성현 선수의 공백은 FA 시장에서 SK 나이츠의 통합우승을 함께했던 슈터인 배병준 선수와 필리핀 쿼터로 렌즈 아반도를 영입하면서 바쁜 비시즌을 보냈다.

시즌 개막전과 홈 개막전에서는 모션오펜스 위주의 공격 전술을 착실하게 잘 보여줬으며,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전임자였던 김승기 감독 시절과는 달리 트랩 디펜스를 최대한 줄이고 프레스도 어느 정도 조절을 하면서 경기를 운영하며 전 시즌까지 문제가 되었던 4쿼터에서의 경기력 하락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데에 성공, 2연승을 달렸다. 특히 홈 개막전이었던 캐롯전이자 김승기 감독과의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둔 것은 덤이다. 창단 이후 개막 4연승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구단 통산 처음으로 1라운드 7승째를 챙기면서 13경기 10승에 먼저 선착한 팀의 감독으로 뒤늦게 역량이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라운드까지도 꾸준히 1위를 수성하면서 선수들에게 유하게 다가오는 형태의 리더십까지도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감독 커리어 중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후 5라운드를 기점으로 전주 KCC 이지스까지 완파하고 2004-05 시즌에 기록한 15연승 이후 구단 최다 연승인 10연승에 성공, 정규리그 1위 확정 매직넘버를 7까지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3]

안양 KGC 부임 이후의 선수 기용 스타일을 보면 철저하게 2~3쿼터에는 식스맨 위주의 라인업도 불사하면서 철저하게 3쿼터까지 크지 않은 점수차로 비비다가 4쿼터에 충분히 휴식을 취한 주전 선수들의 폭발력을 살리는 경기 운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와는 별개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들은 완전히 회복이 될 때까지 출전을 절대 허가하지 않는 등의 엄격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안양 KGC는 2022-23 시즌에 감기 몸살로 인해 약 3주간의 휴식을 취해야했던 렌즈 아반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장기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가 5라운드까지도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이것이 꾸준히 1위를 질주하는 경쟁력을 마련한 셈.

3월 5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에서 서울 SK 나이츠를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단, 이때의 대회 여파로 오마리 스펠맨, 대릴 먼로가 부상으로 잠시 결장하고, 후반기에 시즌 첫 3연패 수렁에 빠지며 잠시 위기를 맞이했다.[4] 다행히 이후 2연승을 달리며 창원 LG와의 격차를 1-2게임으로 근소하게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며, 3월 26일 열린 창원경기에서 LG가 SK에게 패배해서 역대 세 번째[5] 와이어 투 와이어로 정규리그 우승을 자동으로 확정되었다.

3월 30일 열린 KBL 시상식에서 지도자 생활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임 감독인 김승기 감독이 이끄는 고양 캐롯과 상대해서 3승 1패로 제압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상대인 SK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7차전에서 승리하며 프로선수 코치 감독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2023-24 시즌을 앞두고 변준형이 상무입대를 하고 문성곤이 kt로 이적한 대신 SK에서 뛰었던 최성원을 영입했다. 새판짜기에 나선 KGC가 새로운 전력을 통해 디펜딩 챔피언의 모습을 이어갈지 김상식 감독의 지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2023년 5월 18일, 충격적인 사건이 나오게 된다.

국가대표 센터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오세근과의 FA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하게 된다. 개막전부터 엄청난 전력공백을 안게 됐다. 이로인해 일부 정관장 팬들은 안양 홈 개막전에서 피켓시위를 했다. 프런트들의 뻘짓 때문에 감독 할 맛 안날듯

결국 문성곤과 오세근의 공백은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에서 정효근과 전주 KCC 이지스에서 이종현을 영입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전문가들의 평가 또한 6강권이라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오마리 스펠맨이 피로 골절로 이탈하면서 어려운 시즌 초반을 보낼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종현이 반등에 성공한 것에 더해 일시 대체 선수인 듀본 맥스웰도 꽤나 준수한 기량을 보이면서 적절한 로테이션을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 결과 1라운드를 5할 승률을 웃도는 것을 넘어 6승 3패를 기록하며 무려 공동 2위(KT와 동률)로 마감지었다. 다만 3점슛이 영 터지지 않고 있는 것이 고민거리.

3.7. 통산 감독 성적[편집]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2006-07
안양 KT&G 카이츠
19
10
9
6위[6]
6강 PO[7]
통산
19
10
9
0.526
-
연도
소속 구단
경기 수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2007-08
대구 오리온스
34
11
23
10위[8]
-
2008-09
39
13
26
9위[9]
-
통산
73
24
49
0.329
-
연도
소속 구단
경기 수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2013-14
서울 삼성 썬더스
15
5
10
9위[10]
-
통산
15
5
10
0.333
-
시즌
소속 구단
경기 수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2022-23
안양 KGC인삼공사
54
37
17
1위
우승
2023-24





통산
54
37
17
0.685
V1
총계
161
76
85
0.472
V1


4. 여담[편집]


  • 부친 김영기 전 KBL 총재가 이민형의 부친 이경우 선수와 국가대표 시절부터 친구였다. 이경우 선수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김영기가 이민형의 후견인이 되어 진학 등을 책임졌고 3살 차이인 이민형과 김상식은 형제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 이민형과 김상식은 나란히 고려대-기업은행에 입단하면서 1998년 김상식이 안양 SBS로 현금 트레이드될 때까지 선수생활을 함께 했다. 대학 동문이자 동기인 서동철 감독과는 친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작전타임 때 다른 감독에 비해 나긋한 말투를 쓴다.

  • 동명이인인 축구감독 때문에 에펨코리아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농상식(농구+김상식), 몰상식[11]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상식종신 이야기는 덤. 그래서 전북 현대 팬사이트인 에버그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 울산 현대 팬들이 현대가 더비에서 건 '느껴라 상식종신' 현수막은 안양 KGC 팬들에게는 오히려 극찬이다(...). 2022 시즌 말부터 2023 시즌 초까지 K리그의 주요 스토리 라인인 김상식 감독·허병길 단장 사퇴 시위 때문에 오히려 농구 김상식 감독은 풍평피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22-23 시즌 정규시즌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통합우승을 일궈냈음에도 스포츠뉴스에는 축구 김상식 소식만 나왔을 정도.[12]


  • KGC의 감독으로 취임한 뒤에는 감독과 코치진이 선수의 중요 행사 때 함께 참석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먼저 유진의 학위 수여식 당시 코칭스태프 전원이 참석했으며, 변준형한승희가 입대할 때도 코칭스태프 전원이 육군훈련소까지 대동해 배웅을 해줬다.

5. 역대 프로필 사진[편집]


안양 KGC인삼공사

파일:김상식2022-23.png

2022-23 시즌 (감독)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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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6 10:14:17에 나무위키 김상식(농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후가 바로 오리온스의 레전드인 김병철[2] 1년 보장에 1년 옵션 형태의 계약을 말한다.[3] 모기업이 SBS에서 KT&G-KGC인삼공사로 바뀐 이후에는 최다 연승 기록이기도 하다. 참고로 김상식은 SBS의 코치 시절에 과거 은사였던 김동광 감독과 함께 2004-2005 시즌 15연승을 함께한 적이 있다.[4] 특히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서울 SK 나이츠, 창원 LG 세이커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게 모두 1, 1, 5점차로 패배한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는 향후 플레이오프에서도 큰 숙제로 남을 것이다.[5] 첫 번째는 2011-12시즌의 원주 DB 프로미, 두 번째는 2018-19시즌의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다. 단, 이 두 팀은 모두 KBL 한 시즌 최다승 1, 2위인 44, 43승을 우승을 확정지었고, 6라운드 초반 일찌감치 1위를 확정지었었다.[6] 감독 대행[7] 김동광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진 사퇴로 19경기 감독 대행을 맡았다가 창원 LG 코치였던 유도훈이 들어오자 다시 코치로 활동했다.[8] 감독 대행[9] 자진 사퇴[10] 감독 대행[11] 이미 오리온스 감독 시절에 성적 부진으로 실패한 경력이 있어서 오리온스 감독 시절부터 불렸던 별명이었지만 잘하면 상식백과사전이 될지도.[12] 참고로 축구 김상식은 농구 챔피언결정전 기간에 사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