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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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 일제강점기~현대



1. 개요[편집]


김포시의 역사를 다룬 문서다.


2. 고대[편집]


마한의 소국중 하나인 속로불사국이었다가 백제에 복속되었다. 당시의 지명은 전해지지 않고, 고구려 장수왕 시기 고구려 영역이 되었는데 이 때는 검포현(黔浦縣)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라 진흥왕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신라의 영역이 됐고 남북국시대에는 9주 5소경한주에 속했으며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행정제도 개편으로 금포현(金浦縣)이란 이름이 되었고 장제군(長堤郡)의 영현이 되었다. 원래의 영역은 현재의 김포 시내와 고촌읍, 검단 지역 일대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태봉~고려의 영역이었다.


3. 고려[편집]


1182년 고려 명종(明宗) 2년에 감무를 두었으며, 1198년 고려 신종 원년에 어태(御胎)를 매장하고 현령을 두었다.


4. 조선[편집]


조선시대인 1632년 인조 10년 북성산(北城山)에 장릉(章陵)이 조영된 뒤 군으로 승격되고 읍치가 현재 북변동으로 이전되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 당시 인천부에 편제되었다가, 이듬해 13도제 시행으로 다시 경기도 산하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한강변의 일부 월경지인 고란태면(髙蘭台面; 골안테면) 신평리(현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가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5. 일제강점기~현대[편집]


파일:김포군기.svg
김포군 시절 사용된 깃발. 부천군 폐지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까지 사용되었다.

원래 독음은 '금포군'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김포군'으로 변화했다. Daum 카페 배우리 땅이름 연구 다만, 금포를 김포로 읽게 된 것은 김알지의 사례처럼 본래 쇠 금(金)자를 김으로도 읽던 관행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링크

일제강점기부터의 행정구역 변화 및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김포군(구래동, 마산동을 제외한 동 지역 및 고촌읍, 인천 검단)과 통진군(현 구래동, 마산동과 양촌읍, 통진읍, 하성면, 대곶면, 월곶면), 양천군(현재 오곡동·오쇠동을 제외한 서울특별시 강서구 전역, 양천구 전역, 영등포구 양화동 및 양평동 일부)이 김포군으로 병합
  • 1925년 이후, 안양천 하류 부분의 직강화
  • 1936년 4월 1일, 양동면 양화리, 염창리와 목동리의 안양천 동쪽 지역이 경성부에 편입
  • 1937년, 양서면 송정리(현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김포비행장(현 김포국제공항) 개항
  • 1938년 1월 1일, 전국 군청 소재지 읍·면 명칭을 군명과 동일하게 하는 조치에 의해 군내면(현 김포시내 동 지역 중 구래동, 마산동을 제외한 지역)이 김포면으로 개칭
  • 1958년, 김포비행장 국제공항으로 전환
  • 1962년 12월 11일, 양서면·양동면(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의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
  • 1973년 7월 1일, 부천군 폐지로 인해 계양면과 오정면이 김포군으로 이관
  • 1975년, 오정면이 부천시로 편입(사실상 부천 환원)
  • 1979년 5월, 군청 소재지인 면을 읍으로 일괄 승격시키는 조치에 따라 김포면이 김포읍으로 승격
  • 1983년, 월곶면, 하성면, 양촌면의 각 일부를 분리하여 통진면 신설
  • 1989년 1월 1일, 계양면 폐지(인천직할시 북구로 편입)[1]
  • 1995년 3월 1일, 검단면 폐지(인천광역시 서구로 편입)
  • 1998년 4월 1일, 김포시 승격, 김포읍 분동[2]
  • 2003년 9월 1일, 김포3동에서 풍무동을 분동함과 동시에 김포3동을 사우동으로 개칭
  • 2004년 1월 1일, 통진면이 통진읍으로 승격
  • 2008년 4월 1일, 시 승격 10주년 기념식. (태진아, 송대관, 주현미, 박상철, 쥬얼리, 브라운아이드걸스 초청)
  • 2009년 9월 1일, 고촌면이 고촌읍으로 승격, 양촌면 구래리 일부와 마산리가 김포2동에 편입
  • 2011년 11월 14일, 양촌면이 양촌읍으로 승격
  • 2012년 9월 24일, 김포2동에서 장기동 분동
  • 2013년 10월 28일, 김포2동에서 구래동(구래동, 마산동) 분동
  • 2015년 2월 2일, 김포2동에서 운양동 분동
  • 2017년 4월 18일, 김포1동을 김포본동으로, 김포2동을 장기본동으로 개칭
  • 2019년 9월 23일, 구래동에서 마산동 분동
  • 2021년 11월, 인구 50만 명 돌파(외국인 포함)
  • 2023년 2월 1일 대도시 특례 대상 50만 대도시 지정(행정안전부)

[1] 오정면 편입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환원된 것에 가깝다. 당시 북구 대부분(십정동 제외)이 부평의 중심지였기 때문.[2] 김포1동(북변동 일원 및 감정동 일부, 걸포동 일원)과 김포2동(장기동 일원, 운양동 일원 및 감정동 일부), 김포3동(사우동, 풍무동)의 3개 행정동으로 분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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