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칸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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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카무라 칸쿠로 (中村勘九郎)
일본 가부키 업계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배우의 예명 중 하나. 이 이름을 가진 배우의 가문인 나카무라 종가, 나카무라야(中村屋)는 에도에서 최초로 상설극장을 세운 가문으로, ‘에도 가부키의 원조’라고 불리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가부키 4대 명문가에 드는 가문이다.
세습 구도는 '나카무라 칸타로 → 나카무라 칸쿠로 → 나카무라 칸자부로'이다.
본래 '나카무라 칸쿠로'라는 세습명은 나카무라 칸자부로를 지낸 인물이 은거명으로 사용하는 예명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나카무라 칸자부로를 습명 받기 전에 쓰이는 예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23년 기준, 46년 간 5대 '나카무라 칸쿠로'로서 지냈던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장남인 나미노 마사유키가 6대 나카무라 칸쿠로로서 활동중이다.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2012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나카무라야의 당주로 지내고 있기도 하다.
2. 역대 나카무라 칸쿠로[편집]
- 초대 나카무라 칸쿠로
초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장남, 생몰년 미상.
- 2대 나카무라 칸쿠로
초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차남, 혹은 4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동생으로 추정. 후에 5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에게 입양되었다. 1688년-1758년.
- 3대 나카무라 칸쿠로
11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차남, 은거명으로 사용하였다. 1800년-1851년.
- 4대 나카무라 칸쿠로
인물 내력 미상. 허나 12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자녀지만 습명 받자마자 사망하여 애매해진 위치라는 설이 있다. 생몰년 미상.
17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장남, 나카무라 칸쿠로라는 세습명으로 46년 간 지냈으며, 현재까지 최장기간 동안 이 세습명을 사용하였다. 이후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를 지낸 인물이다. 1955년-2012년.
- 6대 나카무라 칸쿠로 (당대)
5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장남, 현 나카무라야의 당주. 1981년-.
3. 6대 나카무라 칸쿠로[편집]
3.1. 개요[편집]
일본의 가부키 배우. 6대 나카무라 칸쿠로를 지내고 있으며 나카무라 종가, 나카무라야의 현 당주이며 현대 가부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이다.
3.2. 생애[편집]
1981년,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와 어머니인 나미노 요시에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17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와는 단 한 번 함께 무대에 섰었는데, 아이임에도 또렷한 발음과 큰 목소리로 가문에서부터 '이 아이는 어마어마한 배우가 될 거야'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986년, 하츠오메미에로 무대에 처음 올랐고 이듬해인 1987년, 2대 나카무라 칸타로를 습명함과 동시에 모모타로 역으로 동생과 함께 첫 무대에 나섰다. 나카무라야는 자녀들의 하츠오메미에나 습명 피로연에 모모타로 역으로 연극을 올리는 특징이 있다. 동생인 타카유키도 이 때에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를 습명받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부키 배우 활동도 하며, 동생인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와 함께 아역배우로도 데뷔했다. 1992년, 배우 히노 쇼헤이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이 드라마는 당시에 반응과 시청률도 높았고 최근까지 재방영하기도 했다. 가끔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감초 역할 등, 카메오로 특별 출연한다.
2001년, 드라마《빛의 제국》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주연이었던 마에다 아이와 처음 만나게 된다. 칸쿠로는 아이와 여러번 얘기를 나누었고 이는 정식적인 교제로 이어졌다.
마침내 2009년 10월, 결혼 발표와 동시에 식을 올렸다. 여담으로 나카무라야의 삼대가 같은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11년, 장남 나미노 나오야가 태어났다.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는 당시 요양중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의 얼굴을 보러 집을 나섰다고 한다. 칸자부로의 렌지시 비디오를 보고 자란 나오야는 어릴 적부터 렌지시의 춤을 따라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연기한 역할의 사진만 보고도 시그니처 포즈나 대사를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많고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2012년, 6대 나카무라 칸쿠로의 이름을 습명하였으나 동년 12월에 당주였던 아버지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가 57세에 식도암으로 인한 급성 호흡곤란으로 사망하면서 젊은 나이에 나카무라야의 당주가 되었다. 이때 아버지의 빈자리를 급하게 메꾸느라 아버지의 대표 무대를 본인이 올랐지만 혹평만 받고, 빈 객석도 많아져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실감했다고 한다. 다만 아버지의 연기가 넘사벽이었을 뿐이지, 칸쿠로의 연기 실력 자체에 흠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는 이윽고 완화되었다.
2013년, 차남 나미노 노리유키가 태어났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를 기리기 위해 칸자부로의 본명인 나미노 노리아키에서 이름을 따와 지었다.
아버지와 모모타로 공연 준비를 위해 방문했던 곳에 이번에는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여 습명 후 첫 공연인 모모타로 극을 준비했다. 형제는 이때 각자 3대 나카무라 칸타로, 2대 나카무라 쵸자부로를 습명하고 무대에 올랐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경기장 도착 전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13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함께 개회식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봉송 주자로 대체 되었다고 한다.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에서 주연 카나쿠리 시조 역을 연기한 것이 영향이 컸다고 한다.[7]
현재 4대 명문가 중, 선대가 타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구성원 수가 제일 많다. 때문에 가부키 계열에서 우러러 보는 면도 있는 가문이며 구성원이 많기에 할 수 있는 극이 다른 가문에 비해 많고, 수에 맞추어 내용을 각색할 수도 있으니 티켓이 잘 팔리는 편이다. 특히 모모타로 이야기의 경우 이전 세대와 더불어 또 두 명이 출연했다보니, 다찌석마저 전부 팔렸을 정도. 네 명 다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나, 거의 장남과 차남끼리, 즉 칸쿠로와 칸타로, 시치노스케와 쵸자부로 이런 콤비로 묶여서 무대에 오를 때가 많다.
3.3. 연기 스타일[편집]
상단 영상의 13분 30초. 가부키 극을 위해 분장을 했을 때의 외형이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와 판박이이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고전 무용 수업을 받아오며 성장했고 고등학생 시절에도 동생인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가 아버지와 렌지시를 설 때에 혼자 무용극 하나만으로 무대를 채웠다.
일상생활에서의 목소리와 다르게 연기를 할 때 목소리가 굉장히 두껍고 음정이 낮으며 대사 끝마다 긁는 소리를 자주낸다. 본래 목소리가 높은 편이었지만 맡는 배역이 대부분 주인공에 무사들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감사제에서 호시노 겐의 곡 <사랑>의 간주에 나오는 댄스를 롯포로 선보이며 화제가 됐었다. 칸쿠로의 춤선 자체가 가벼움을 엿볼 수 있다.
3.4. 여담[편집]
- 아버지가 사생활 촬영에 너그러운 편이었던지라 어릴 적 동생인 시치노스케와 가부키좌를 방문하는 모습, 배를 타고 순회 공연에 다니는 모습, 그 외 각종 CM 등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 할머니인 나미노 쿠에다가 오토와야의 6대 오노에 키쿠고로의 장녀이기에 오노에 종가와 함께 올리는 가부키 극이 많은 편이며, 5대 오노에 키쿠노스케와 친하다. 2대 오노에 마츠야는 헤이세이 말기에 나카무라자에서 배우로 지냈었다. 외에 친한 배우로는 형제처럼 함께 자란 나카무라 시도, 2대 나카무라 츠루마츠가 있다.
-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과 카레. 카레를 배달시켜 무대 뒷편에서 먹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으며, 공연의 반응이 좋으면 나카무라야의 배우들과 함께 오마카세 스시를 즐기는 것이 루틴이라고 한다. 이건 아버지인 칸자부로의 영향이라고 한다.
- 눈이 나쁜 편이라 공연이 없는 날에는 주로 안경을 착용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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