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영토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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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세기
2.1. 시스플라티나 병합
2.2. 시스플라티나 전쟁(우루과이 독립 전쟁)
2.3. 그란 콜롬비아-페루 전쟁
2.4. 카우카 전쟁
2.7. 삼국 동맹 전쟁(파라과이 전쟁)
2.9. 아크레 전쟁
3. 20세기


1. 개요[편집]


이 문서는 남미에서 발생한 영토 분쟁을 다룬다. 요약하자면 여러 나라가 싸우다가 볼리비아가 항상 지는 게임...


2. 19세기[편집]



2.1. 시스플라티나 병합[편집]


1816년 ~ 182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공으로 인한 스페인 본국의 혼란을 틈타, 현재의 아르헨티나 및 우루과이 일대인 리오 데 플라타 부왕령에서 현지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814년, 현지인들은 마지막 부왕을 몬테비데오에서 쫓아내고 자유 연맹(Liga Federal)을 세워 자치하고 있었는데, 2년 뒤인 1816년 리우데자네이루를 수도로 하고 있던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이 현재의 우루과이 지역을 공격하여 병합한 후, 브라질의 한 주인 시스플라티나 주로 편입시켰다.


2.2. 시스플라티나 전쟁(우루과이 독립 전쟁)[편집]


1825년 ~ 1828년. 브라질아르헨티나 및 시스플라티나 주(이후의 우루과이). 이 전쟁으로 브라질은 시스플라티나 주를 잃었으며, 해당 지역은 우루과이로 독립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우루과이는 현재까지도 아르헨티나와의 사이가 좋고, 브라질과의 사이가 나쁘다. 물론 축구할 때에는 둘 다 원수이다.

2.3. 그란 콜롬비아-페루 전쟁[편집]


1828년 ~ 1829년. 무승부.


2.4. 카우카 전쟁[편집]


1832년. 1830년, 시몬 볼리바르 사후 그란 콜롬비아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누에바 그라나다(지금의 콜롬비아) 삼국으로 나뉘자, 새로 생긴 에콰도르와 누에바 그라나다 간에 카우카 지역를 두고 일어난 전쟁. 누에바 그라나다가 승리하여 카르치 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했다.


2.5. 페루-볼리비아 연합 전쟁[편집]


1836년 ~ 1839년. 페루 - 볼리비아 연합과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독립세력간의 전쟁. 후자가 승리하여 페루-볼리비아 연합은 붕괴하고, 페루와 볼리비아는 다시 분리되었다.

2.6. 친차 제도 전쟁[편집]


1864년 ~ 1866년. 스페인 왕국칠레,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남미 연합군 승.

스페인 소선단 선원 중 한 명이 페루에서 현지인과의 충돌로 전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남아메리카에 대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던 스페인이 이 사건을 빌미로 선단을 보내 페루의 친차 제도를 점령하면서 일어난 전쟁. 원 식민국의 부당한 개입에 분노한 칠레가 개입하여 칠레-페루 연합군과 스페인 함대의 전쟁으로 확대됐고, 전황이 칠레-페루 연합군에 유리하게 흘러가자 에콰도르, 볼리비아도 일제히 스페인에 대해 선전포고했다. 결국 지속적 손해와 영국의 외교적 압박 등을 견디다 못한 스페인이 물러나면서 전쟁은 남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스페인의 남미에 대한 영향력은 완전히 소멸됐다. 볼리비아의 유일한 승리

2.7. 삼국 동맹 전쟁(파라과이 전쟁)[편집]


1864년 ~ 1870년. 파라과이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동맹(삼국 동맹)간의 전쟁. 삼국 동맹 승.

초기에는 징병제로 군대를 양성한 파라과이가 유리했으나 근본적 체급 차이로 대패, 수도가 함락되고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가 전사하는 등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 전쟁으로 파라과이는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특히 남자가 대부분 전사해 1950년대 까지 일부다처제를 유지해야 할 정도였다.

2.8. 태평양 전쟁[편집]


1879년 ~ 1883년.[1] 칠레페루-볼리비아 연합군의 전쟁. 칠레 승. 칠레는 페루에게서 타라파카와 아리카 지역을 획득했고, 볼리비아에게서 안토파가스타 주를 획득했다. 이 패전으로 볼리비아는 내륙국이 되었다. 볼리비아의 패배 2

2.9. 아크레 전쟁[편집]


1899년 ~ 1903년. 브라질 및 아크레 공화국과 볼리비아 간의 전쟁. 브라질의 승. 브라질에 인접한 볼리비아의 아크레 주가 아크레 공화국으로 독립하고 볼리비아가 진압군을 파견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으며, 브라질이 아크레 공화국을 지원하면서 볼리비아와 브라질의 전쟁으로 확장됐다. 1903년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통해 19만 제곱킬로미터의 아크레 공화국은 브라질에 병합됐고, 볼리비아는 대신 아부나 강과 마데이라 강 사이의 3천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얻었다. 일련의 진행 과정은 미국텍사스 공화국을 독립시켜 멕시코로부터 텍사스 주를 뺏어간 것과 비슷했다. 볼리비아의 패배 3

3. 20세기[편집]



3.1. 차코 전쟁[편집]


1932년 ~ 1935년. 파라과이볼리비아의 전쟁. 파라과이 승. 볼리비아와 파라과이가 그란 차코의 분쟁지역을 두고 싸웠으며, 승리한 파라과이가 분쟁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함. 볼리비아의 패배 4

3.2. 레티시아 전쟁[편집]


1932년 ~ 1933년. 페루콜롬비아의 전쟁. 콜롬비아의 전략적 승리. 1922년 살로몬 로사노 협정으로 콜롬비아가 레티시아 일대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페루가 레티시아를 공격하여 차지하면서 시작했다. 콜롬비아가 무력으로 레티시아를 탈환하지 못했지만, 국제 연맹의 중재로 레티시아가 국제 연맹 관할이 되었으며, 양국의 합의로 레티시아는 확실한 콜롬비아의 영토가 되었다.

3.3. 에콰도르-페루 전쟁[편집]


1941년. 에콰도르페루의 전쟁. 페루의 승리. 아마존 강 유역 내륙지대를 두고 싸움. 페루가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까지 진격하자 1941년 7월 31일, 에콰도르가 항복하면서 페루의 승리로 끝났으며, 1942년 리우 데 자네이루 조약으로 아마존 강 유역 일대가 페루의 차지가 되면서 마무리되었다.

3.4. 포클랜드 전쟁[편집]


1982년 4월 2일 ~ 6월 14일. 아르헨티나영국의 전쟁. 영국 승.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도 갈티에리 군사 정권이 내부 불만 무마를 위해 영국령인 포클랜드 제도를 공격하면서 시작했다. 당초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적극 개입하면서 패배하고 물러났다. 이 전쟁은 오히려 마거릿 대처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기여했으며, 이후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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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화 조약은 무려 21년 뒤인 1904년에나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