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네이션즈/역사적 배경/병력/고유 유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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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1.1. 추코누
1.2. 정예 추코누
1.3. 왕실 추코누
1.4. 화창 기병
1.5. 파이어 드래곤
1.6. 만주 소총수
1.7. 장정 소총수
1.8. 인민 소총수
1.9. 인민군 중장갑 소총수
1.10. 인민 숙련 소총수
1.11. ?
1.12. ?
2. 영국
2.1. 대궁 사수
2.2. 정예 대궁 사수
2.3. 국왕 대궁 사수
2.4. 기마 의용병
2.5. 왕립 기마 의용병
2.6. 영국 특수 부대
2.7. 왕실 소총수
2.8. 그린 재킷 소총수
2.9.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
2.10. 정예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
2.11. 명예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
2.12. ?
3. 프랑스
3.1. 슈발리에
3.2. 중장갑 슈발리에
3.3. 정예 슈발리에
3.4. 슈발리에 근위병
3.5. 경기병
3.6. 생샤몽 전차
3.7. R35 전차
3.8. S35 전차
3.9. ARL44 전차
3.10. AMX-13 전차
3.11. 숙련 AMX-13 전차
3.12. 명예 AMX-13 전차
3.13. ?
4. 독일
4.1. 반달족
4.2. 중장갑 반달족
4.3. 독일 보병
4.4. 중장갑 독일 보병
4.5. 융커스
4.6. 독일 국방군
4.7. 국민척탄병
4.8. 분데스베어
4.9. 중장갑 독일국방군
4.10. 정예 분데스베어
4.11. 명예 분데스베어
4.12. ?
5. 그리스
5.1. 컴패니언 기병대
5.2.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5.3. 중장갑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5.4. 정예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
5.5. 로마 용병
5.6. 컴패니언 전차
5.7. ELAS 전차
5.8. 그리스 전차
5.9. 센타우르 전차
5.10. 레오파드 전차
5.11. 숙련 레오파드 전차
5.12. 명예 레오파드 전차
5.13. ?
6. 일본
6.1. 무사
6.2. 사무라이
6.3. 중장갑 사무라이
6.4. 노다치 사무라이
6.5. 아시가루
6.6. 시조쿠
6.7. 화족
6.8. 자위대 병사
6.9. 중장갑 자위대 병사
6.10. 정예 자위대 병사
6.11. ?
6.12. ?
7. 한국
7.1. 화랑
7.2. 정예 화랑
7.3. 풍월주
7.4. 신기전 부대
7.5. 중장갑 신기전 부대
7.6. 독립군 의병
7.7. 광복군 보병
7.8. 공화국 소총수
7.9. 중장갑 공화국 소총수
7.10. 숙련 공화국 소총수
7.11. ?
7.12. ?
8. 로마
8.1. 레기온
8.2. 중장갑 레기온
8.3. 카이사르 레기온
8.4. 집정관의 근위병
8.5. 집정관의 수발총병
8.6. 이탈리아 산악 특수 부대
8.7. 왕립 이탈리아 산악 특수부대
8.8. 프리울리 보병
8.9. 트리에스테 보병
8.10. 정예 트리에스테 보병
8.11. 명예 트리에스테 보병
8.12. ?



1. 중국[편집]



1.1. 추코누[편집]


기원전 4세기 추코누는 중국 전사들이 사용하던 독창적인 연발 석궁이었습니다. 지렛대를 한번 당긴 후 화살을 위쪽 탄창에 장전한 다음 발사하는 구조입니다. 숙련된 전사는 20초 만에 화살을 10대까지 쏠 수 있었습니다. (탄창에 10대까지 장전가능)화살은 다른 석궁 화살보다 가벼워서 두꺼운 갑옷을 뚫지는 못하였지만 발사속도는 탁월하였습니다.



1.2. 정예 추코누[편집]


정예 추코누는 무기를 더 개량하여 한 번에 화살을 3대까지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거리와 정확성은 어느 정도 떨어졌으나, 발사 속도는 놀랄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적의 보병 부대처럼 크고 느린 목표물을 상대로 많은 수를 발사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보였습니다. 일부 전사들은 여러 대의 화살촉에 독을 발라 효과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1.3. 왕실 추코누[편집]


특정 부대는 더 강력하게 강화된 추코누를 사용하였습니다. 19세기 1895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은 일본군을 상대로 상당수의 왕립 추코누를 파견하였지만 신식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맥없이 패했습니다.



1.4. 화창 기병[편집]


초기 화약 무기 중에서 중국의 화창은 화약을 채운 대나무 통을 창에 묶어 발사하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근접 전투 시 화창병들은 화약을 채운 대나무 통을 발사해 위협한 후 날카로운 창끝으로 적군을 죽였는데요, 공학이 발전하면서 화창은 진정한 화기로 거듭났습니다. 창 대부분은 쓸모가 점점 줄어 결국에는 없어졌습니다.



1.5. 파이어 드래곤[편집]


'수저용왕포'는 17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놀라운 무기입니다. 2단계 발사체로 마치 [용처럼 생겼으며, 포의 길이는 약 1.5미터였습니다. 측면에 장착된 4개 이상의 발사체를 적에게 발포할 수 있었는데요, 이 중 도화선 하나가 더 많은 관에 연결되어 불이 붙으면 폭발물이 채워진 발사체가 적을 향해 날아가 결정적인 공격을 가했습니다. 바다에서 사용되었으며 먼 거리에서도 적의 함선에 불을 질러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었습니다.



1.6. 만주 소총수[편집]


청 왕조(1644-1911)는 만주족이 중국을 점령하여 탄생하였습니다. 만주족이 개발한 깃발 시스템은 군대를 체계화하였고 여진족의 단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몽골과 중국의 일부 깃발 군대도 청의 군대에 흡수되었습니다.



1.7. 장정 소총수[편집]


중국 국공내전이 발발 시, 1년 동안 약 6,400km 이상의 '대장정' 행군을 하였습니다. 이 행군은 장시 성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서중국의 가장 거친 지역을 통과한 대장정이었습니다.



1.8. 인민 소총수[편집]


PLA는 인민해방군을 뜻하는 중공군을 말합니다. 1927년 난창 봉기는 PLA가 창설되는 계기이자, 공산당과 민족주의 국민당 간의 국공 내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PLA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지휘 아래 1934~1935년 사이 12개월간의 잔혹한 대장정에서 살아남았고, 이 사건은 지금 현대 중국의 토대를 이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1937~1946년까지의 대일 항전을 중단한 이후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949년 중국 본토를 점령했습니다. PLA는 소련의 지원 하에 1950년 현대화되어 한국 전쟁에서 미국이 이끄는 UN군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현재 PLA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 인민군 중장갑 소총수[편집]


중국제 56식 소총은 잘 알려진 AK-47 7.62×39mm 돌격소총의 변종입니다. 이는 탈착식이 아닌 접이식 총검과 완전히 닫힌 가늠쇠를 제외하고는 소련의 원작과 거의 동일합니다. 중국은 냉전 시대에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포함한 여러 공산 국가에 56식 소총을 수출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보복에 나선 중국은 중국제 무기로 무장한 적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56식 소총은 현재까지도 동남아시아, 발칸 반도, 중동의 분쟁 지역에 사용됩니다.



1.10. 인민 숙련 소총수[편집]


인민군 중장갑 소총수와 동일



1.11. ?[편집]




1.12. ?[편집]





2. 영국[편집]



2.1. 대궁 사수[편집]


영국이나 웨일스 대궁 사수들은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주목으로 만든 이 활은 커다란 D모양의 나무와 대마 끈으로 만들어졌습니다.(향후 주목이 고갈된 뒤로는 다른 재료로 대체되었습니다) 대궁의 강도는 36~113kg 정도였으며 (현대 대궁의 강도는 보통 최대 27kg 정도.) 이 무기로 훈련한 궁수는 중세 시대 가장 견고한 갑옷까지 뚫을 수 있었습니다.



2.2. 정예 대궁 사수[편집]


정예 대궁 사수는 광범위한 훈련을 수행하였습니다. 영국의 왕들은 군대 징집을 대비하여 백성들에게 무기 연습을 시켰었는데요, 실제로 유흥을 싫어했던 유명한 왕인 에드워드 1세는 일요일에 스포츠를 금하고 농민들이 대궁 연습으로 하루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정예 대궁 사수는 5초 이내에 장전, 조준, 발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3. 국왕 대궁 사수[편집]


백년 전쟁 중인 1415년 성 크리스핀의 축일 (10월 25일), 헨리 5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하였습니다. 아군 병력의 70% 이상을 정예 대궁 부대로 집중 배치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죠. 영국군의 병력이 1/4 정도로 열세였지만 정교한 장거리 일제 사격을 지속적으로 퍼부어 프랑스군을 무너뜨렸습니다.



2.4. 기마 의용병[편집]


18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한 기마 의용병은 영국의 소지주들이 보낸 자원 연대로, 나폴레옹이 다스리던 프랑스의 공포스러운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지역 귀족의 지휘를 받았던 이 병사들은 방어 군의 역할만 하였으며 병사 개개인의 동의가 없이는 국외 전투에 참가할 수 없었는데요, 영국 기마 의용병은 '브라운 베스'로 알려진 전장식 활강총으로 무장하였습니다.



2.5. 왕립 기마 의용병[편집]


특히 뛰어난 성과를 거둔 영국군 유닛에게는 '로얄(왕립)'이라는 칭호가 수여되었습니다. 제 42 왕립 하이랜드 보병 연대는 스코틀랜드 보병 연대로, 나폴레옹 전쟁 동안 활약하였습니다. '블랙 워치'라고 불렸던 이 연대는 영국군 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보병 부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무적' 군단의 깃발을 빼앗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2.6. 영국 특수 부대[편집]


블랙 워치는 스코틀랜드 보병 부대로 전장의 포화 속에서의 흉폭함과 용맹함으로 유명합니다. 자코뱅 혁명 이후 1731년에 결성된 블랙 워치는 대영제국의 모든 주요한 작전에서 전투의 화신으로 불리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전쟁 역사상 가장 쿨한 좌우명으로도 유명합니다. 'Neo me impune lacessit!'(나를 건드린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2.7. 왕실 소총수[편집]


왕실 소총 부대(KRRC)는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 배치되었던 영국 원정군의 일부로, 지중해 지역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아른헴 전투와 베비 전투, 크레테 전투에도 참여했습니다. KRRC는 이후 옥스 앤 벅스 경보병대와 함께 그린 재킷 연대로 재편성되었습니다.



2.8. 그린 재킷 소총수[편집]


영국 그린 재킷 여단은 1948년 결성되어, 18년 뒤 왕립 그린 재킷 '대규모 연대'로 재편성되었습니다. 200년 전, 영국군 중 최초로 위장을 위해 유명한 붉은색 제복을 버리고 녹색을 입었던 왕립 아메리카 연대가 이 부대의 시초입니다. 이 왕립 아메리카 연대는 이후 왕실 소총 부대로 이름을 바꾸고 기존의 일렬횡대 일제 사격에서 벗어나 이동성과 저격률을 높인 산개 척후 전술을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그린 재킷은 경보병의 전통을 이어 부대 색상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일반 부대보다 20보폭 빠르게 행군했습니다.



2.9.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편집]


왕립 그린 재킷은 나폴레옹 시대의 왕립 소총 부대와 소총 여단의 전통을 계승한 영구그이 보병 연대입니다. 이들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보스니아전과 코소보전에 참전했으며 북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공화국군에 의해 사상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병사들은 NATO 회원국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자유 진영의 오른팔"이라고 불린 전투 소총 FN FAL로 무장했습니다. 왕립 그린 재킷은 40년간 뛰어난 업적을 기록하며 존속되다 2007년에 소총 연대로 재편성되었습니다.



2.10. 정예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편집]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와 동일



2.11. 명예 왕립 그린 재킷 소총수[편집]


명예 소총수와 동일



2.12. ?[편집]





3. 프랑스[편집]



3.1. 슈발리에[편집]


'슈발리에'는 프랑스어로 '용감한 사람' 또는 '기사'를 의미합니다. 귀족 집안 출신으로 말과 갑옷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하며, 자신의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이었습니다. 슈발리에 중 가장 낮은 계급은 하급 영주의 아들로 장남이 아니어서 상속을 받지 못하고 전쟁 중에 재산을 모아야 하는 부류들이었습니다. 슈발리에는 대부분 길고 육중한 창으로 무장하고 쇠사슬 갑옷 등 견고한 갑옷을 착용했습니다. 적의 보병뿐만 아니라 주변의 강한 소작농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3.2. 중장갑 슈발리에[편집]


재력을 갖추었거나 군주의 총애를 받는 슈발리에는 더 견고한 장비로 무장하였습니다. 도금된 미늘갑옷, 말 갑옷을 착용하여 말 위에서도 허점이 없었습니다. 이런 중장갑 슈발리에들은 전투 도중 말에서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자신을 보호할 종자를 데리고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보병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이 바로 말에서 떨어져 진흙에 처박힌 적의 기사들일 테니까요.



3.3. 정예 슈발리에[편집]


정예 슈발리에는 숙련된 기사로, 여러 전투에서 살아남았고 돌격에 능숙했습니다. 보통 예비 인력으로 대기하다가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게 사용되었습니다. 다리키온 전투(1081)에서 양쪽 군대가 모두 무너지자 노르만 기사들은 비잔틴의 중심부를 공격해 적의 보병을 부수고 적 전체를 섬멸했습니다.



3.4. 슈발리에 근위병[편집]


슈발리에 근위병은 전투에서 군 지휘관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지휘관이 주로 군주였기 때문에 근위병은 가장 위협적인 전사였고 당대 최고의 기술로 생산한 가장 좋은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였습니다.



3.5. 경기병[편집]


18세기에 머스킷 총은 거의 모든 갑옷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경기병'이 검과 긴 창으로 무장한 기병대에 제공되었습니다. 경기병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맹함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서른 살이 넘은 경기병을 본다면 정말 놀랄 일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경기병들은 샴페인 병을 기병도로 여는 기술인 '사브리지'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3.6. 생샤몽 전차[편집]


생샤몽 전차는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400대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본래 디자인 상 궤도가 전차 자체 길이보다 많이 짧아 결함이 있었는데요, 결국 이 전차는 서서히 사라졌고 영국의 중장갑 전차로 대체되었습니다.



3.7. R35 전차[편집]


르노 R35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프랑스군의 경보병 전차입니다. 보병 작전을 지원하는 데 적합한 무기로 무장되어 있었지만, 37mm 주포뿐 이였고 대전차를 상대할 무기가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더 강력하고 사정거리가 긴 포를 탑재한 르노 40이 개발되었습니다.



3.8. S35 전차[편집]


SOUMA S35는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기병 전차로,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지휘관이 포탑 외부에 있어야 했지만 화력과 방어력이 모두 뛰어났습니다. 프랑스군은 이처럼 뛰어난 전차를 보유했지만 효율적인 전략과 통신수단을 가진 독일군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3.9. ARL44 전차[편집]


카무플라주 뒤 마테리엘은 독일에 협력하던 비시 프랑스 정부에서 비밀 군사 설계 작업을 했던 반독일 공학자 집단이었습니다. 1942년 11월 독일이 비시 프랑스를 점령할 당시에는 작업을 중단했지만 제설 궤도 차량을 개발한다는 명목 하에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프랑스 정부는 명망 있는 군사력을 복원하고자 이들의 설계를 기초로 하는 새 전차를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가 ARL44였습니다. 종전 후 프랑스에서 산업이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면서 1949년이 되어서야 전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쯤에는 ARL44는 이미 한물 간 모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발 빠르게 ARL44를 미국의 M47 패튼으로 대체했습니다.



3.10. AMX-13 전차[편집]


AMX-13은 전차 파괴 및 공수 전차로 설계된 프랑스의 경전차입니다. 탄창식 자동 장전기와 요동 포탑이 특징입니다. 위아래로 조준할 때 포탑 전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내림 각이 좋고 대구경 포를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AMX-13은 100가지가 넘는 변종으로 다양하게 개조되어 1953년 이후 최소 9번의 전쟁에서 프랑스와 동맹국에 기여했습니다.



3.11. 숙련 AMX-13 전차[편집]


AMX-13 전차와 동일



3.12. 명예 AMX-13 전차[편집]


MBT Mk4와 동일



3.13. ?[편집]





4. 독일[편집]



4.1. 반달족[편집]


반달족은 원래 동유럽 출신의 거친 게르만 전사 부족이었습니다. 훈족에 의해 서쪽으로 밀려나 독일에 정착한 반달족은 수 세기 동안 로마와 주변 여러 부족들을 상대로 전쟁과 동맹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북아프리카 연안에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서기 455년에는 로마를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4.2. 중장갑 반달족[편집]


정예부대인 반달족 중장갑 전사는 여러 개의 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나무 방패를 들고 철모를 썼습니다. 뛰어난 전사들은 죽은 적에게서 빼앗은 쇠사슬 갑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세련미나 감수성 따위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한 이후,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물건을 부수는 자를 반달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4.3. 독일 보병[편집]


'란츠크네흐트'(독일 보병)은 15~16세기의 게르만족 용병이었습니다. 1500년대에 이들은 자신을 고용했던 신성 로마 제국이 더 이상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로마를 약탈하였습니다.



4.4. 중장갑 독일 보병[편집]


란츠크네흐트 최고의 전사는 중장갑 정예군사로 주로 거대한 칼을 사용하고, 적의 창을 잘라버리고 대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들은 부대의 기수를 보호하는 임무도 맡았습니다. 기수가 쓰러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질서도 파괴되어 부대가 중대한 위기에 처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투에서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수를 지키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이기도 했습니다.



4.5. 융커스[편집]


게르만 귀족들의 아들들인 융커스들은 안타깝게도 장남으로 태어나지 못해 부모의 재산과 칭호를 상속받지 못하고 군인이 된 자들입니다. 대신, 이들은 적의 재산을 빼앗아 부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부잣집 가문 출신이다 보니, 이들은 최고의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하여 자신들을 뽐냈습니다.



4.6. 독일 국방군[편집]


베어마흐트(독일국방군)는 1935년부터 1946년 패전까지 독일의 통합 3군으로 조직된 군대였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공격하는 브리츠크리그(전격전)으로 유명하며 기계 보병, 전차, 근접 항공기 지원까지 동시에 투입하여 적을 압도하였습니다.



4.7. 국민척탄병[편집]


국민척탄병 사단은 1944년 중반, 최소의 인원으로 병력손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설되었습니다. 통상적인 9열 대신 6열 보병 대대 체제를 도입했으며, 주로 사정거리가 짧은 기관단총이나 가벼운 자동 화기, 그리고 판처 파우스트 같은 대전차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4.8. 분데스베어[편집]


세계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점령 구역으로 분할됐습니다. 이것이 이후 NATO의 지원을 받는 서독과 공산 국가인 동독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소련과 서방군대가 각자의 점령 구역의 안보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긴장이 심화됨에 따라 1950년대에는 일본을 비롯하여 여러 현지에 군대가 창설되었으며, 서독과 동독에서도 분데스베어와 독일 인민군이 창설되었습니다. 이들은 냉전 중에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지 않았지만,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는 3차 세계대전의 전선에서 싸울 준비를 하고 철의 장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4.9. 중장갑 독일국방군[편집]


1950년대 서독은 NATO의 요구에 따라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여 재무장했고 이때 NATO 표준 탄약을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연방군이 사용한 MG-42의 개량 버전은 7.62mm NATO 표준 약실을 채택했고 연결식이나 분리식 금소 링크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습니다. 라인 메탈사에서 개량한 MG-2는 독일연방군이 30년간 유럽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을 가른 베틀린 장벽의 서독 지역을 순찰할 때 사용한 화기이기도 했습니다.



4.10. 정예 분데스베어[편집]


중장갑 독일연방군과 동일



4.11. 명예 분데스베어[편집]


명예 보병과 동일



4.12. ?[편집]





5. 그리스[편집]



5.1. 컴패니언 기병대[편집]


페르시아 정복 전쟁 중 알렉산더 대왕은 기병대에게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이 기병대는 마케도니아 귀족들과 대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투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가슴과 어깨 갑옷을 입은 기병들은 마케도니아 보병들이 전방에서 적들과 맞서는 동안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공격하는 연합 공격 작전을 펼쳐 위용을 떨쳤습니다.



5.2.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편집]


왕립 기병대는 마케도니아 최고의 기병 부대였습니다. 이들은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았으며 가장 신뢰하는 동료들과 병사들로 조직된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단일 기병 부대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쐐기 대형으로 이 부대를 이끌었으며 선봉에 서서 적을 맞이하였습니다.



5.3. 중장갑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편집]


알렉산더 대왕의 서거 이후 거대한 제국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후 일부 군대는 계속 알렉산더의 기병 대형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무기와 갑옷이 발달함에 따라 대형을 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후기 중장갑 헤타이로이는 중장갑 기병과 유럽 초기 기사들처럼 말에 일부 갑옷을 입히고 기병의 팔과 다리에도 보호 장구를 착용하였습니다.



5.4. 정예 왕립 컴패니언 기병대[편집]


10세기에 비잔틴 제국은 '더 컴퍼니(The Company)'라는 정예 부대를 전장에 투입했습니다. 이 부대는 대부분 외국인으로 구성되었고 제국 근위병의 역할도 일부 수행하였습니다(군주가 백성들을 얼마나 불신했는지 보여줍니다.). 이 부대는 12세기까지 활약하였습니다.



5.5. 로마 용병[편집]


스트라디오티는 15세기 동유럽 발칸 지역 출신의 정예 기병 용병대입니다. 이 용병대는 약 300년 동안 유럽 전역의 전쟁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이들은 헨리 8세의 요청을 받아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위해 영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들은 갑옷을 입고 투창, 검, 철퇴 그리고 간혹 석궁을 사용하였으며 기병 전술의 최고 전문가였습니다. 또한, 사망하거나 생포한 적군의 목을 베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5.6. 컴패니언 전차[편집]


알렉산더 대왕의 지휘 하에 승전을 거듭해온 그리스 전사들은 전투 시 기동성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적의 취약점을 공략해 결정적인 공격을 하는 강력한 유닛인 '컴패니언 전차'를 개발하였습니다.



5.7. ELAS 전차[편집]


크레타 전투와 추축국의 그리스 점령 이후, 그리스 공산당은 국가적 저항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이 창설되었는데, 이들은 소규모 병력을 동원한 게릴라전에 특화되어 있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 점령군을 상대하기 위해 전차를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5.8. 그리스 전차[편집]




5.9. 센타우르 전차[편집]


1940년 A15 크루세이더 전차가 출시되자, 영국은 전쟁 중 대체 전차가 필요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새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크롬웰 전차와 센타우르 전차입니다. 크롬웰은 성공적 모델로 노르망디 전투에서 최초로 활약했습니다. 센타우르는 크롬웰과 대부분 유사했지만 엔진 저출력 문제가 있어 주로 영국 군대의 교육용 전차로 사용되었습니다. 전후에는 많은 센타우르가 그리스 군대에 기증되었고, 그리스에서 최초의 무장 부대를 창설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센타우르는 1950년대까지 그리스 군대에서 활용되었습니다.



5.10. 레오파드 전차[편집]


레오파드 1A1은 서독에서 소련의 침공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 개발안 주력 전투 전차입니다. 1965년 통상적으로 HEAT탄이라 불리는 대전차 고폭탄의 공격으로 두꺼운 장갑이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에, 구조적인 안정성과 기동성을 위해 레오파드를 설계했습니다. 레오파드 전차는 토션 바 서스펜션과 선진 주포 안정 장치를 채택하여 기동 중에도 포탄을 안정적으로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819 마력의 엔진으로 최대 속력이 63km에 달했으며 최대 60도의 경사를 오를 수 있었습니다. 레오파드 전차는 비교할 수 없는 야지 횡단 성능으로 빠르게 명성을 쌓았고 유럽의 두 NATO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채택한 주력 전투 전차가 되었습니다.



5.11. 숙련 레오파드 전차[편집]


레오파드 1과 동일



5.12. 명예 레오파드 전차[편집]


MBT Mk4와 동일



5.13. ?[편집]





6. 일본[편집]



6.1. 무사[편집]


'무사'는 일본 귀족을 섬기던 전사 계급인 '사무라이'를 부르던 초기의 칭호입니다. 일본 왕은 서기 7세기경부터 전사 계급을 만들고자 하였는데요, 최초의 무사들은 곧은 검을 사용했지만, 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날이 살짝 휘어진 전통검인 '카타나'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을 쓰는 무사들도 많았으며 특히 대규모 전투의 경우 창을 사용하였습니다.



6.2. 사무라이[편집]


사무라이는 세계 역사상 최고의 전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도의 훈련과 무장을 통해 죽음을 불사하는 철학으로 유명한데요, 에도 시대 사무라이인 야마모토 츠네모토는 "무사도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완성된다. 즉, 삶과 죽음에 갈림길에 서면 반드시 죽음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다른 길은 없다."와 같이 말했습니다.



6.3. 중장갑 사무라이[편집]


15세기 들어 초기형 소총이 등장하자 사무라이는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판금 갑옷을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후대에 화기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요.) 갑옷 덕분에 빈약한 농민의 무기는 사무라이에게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은 주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6.4. 노다치 사무라이[편집]


'노다치'는 1미터가 넘는 위대한 일본도입니다. 워낙 거대하다 보니, 휘두르다 주변의 아군이 다칠 수도 있어 부대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다치를 들고 다니는 사무라이는 지상에서나 말 위에서나 혼자 싸웠는데요, 이들은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전사였습니다.



6.5. 아시가루[편집]


'아시가루'는 일본 보병입니다. 원래 긴 막대나 창, 검으로 무장했었지만, 16세기가 되면서 '타네가시마'로 알려진 화승총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의 '유미(활)'가 초기 화기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었지만, 화승총 사용 습득 시간이 활 쏘는 법을 배우는 시간에 비해 훨씬 짧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6.6. 시조쿠[편집]


중무장 보병인 시조쿠는 검과 활보다 소총과 수류탄을 사용하였지만 스스로 일본 사무라이의 후계자로 자부해 왔습니다. 이들은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했으며 지휘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살공격대는 아니었지만 적군의 목숨을 서슴없이 빼앗았습니다.



6.7. 화족[편집]


화족은 1884년의 일본 귀족 법안에 의해 제정된 사회 계급입니다. 이 지위는 국가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화족은 5등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쌀 수확량에 비례하여 더 좋은 지위를 받았습니다.



6.8. 자위대 병사[편집]


일본제국의 2차 세계대전 패배는 일본인에게 경천동지할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인은 일본군과 천황은 천하무적이며, 국민은 국가를 위해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교육 받았습니다. 히로히토 천황이 '옥음방송' 으로 일본의 항복을 발표하자 일본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천황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군대를 강제 해산해야 했지만, 냉전기의 긴장상황에서 미국의 지원 하에 곧 재무장을 하여 1954년 일본자위대(JSDF)를 창설했습니다.



6.9. 중장갑 자위대 병사[편집]


1946년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태의 군대도 보유하지 못한다는 전력 불보유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 동안 소련의 침략 위협이 계속됨에 따라 일본은 자국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라는 이름의 방위조직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군인들은 20여 년간 99식 경기관총이나 미군의 M1 개런드와 카빈과 같은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구식 화기를 사용했으나, 이후 산업 경제가 회복되자 일본은 미군과 소련에 필적할 만한 수준으로 무기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6.10. 정예 자위대 병사[편집]


중장갑 자위대 병사와 동일



6.11. ?[편집]




6.12. ?[편집]





7. 한국[편집]



7.1. 화랑[편집]


신라의 청렴하고 훌륭한 가문 출신의 멋진 청년들을 선발하여 만든 조직인 화랑은 처음에는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젊은 귀족 청년들의 심신을 훈련시키기 위한 조직이었습니다. 화랑은 삼국시대(기원전 75년~서기 676년)에 들어와 신라 왕조의 전사가 되었으며 검술과 마상전투 훈련도 받았지만 특히 최고의 궁술로 유명했습니다.



7.2. 정예 화랑[편집]


정예 화랑은 최고의 무기를 지원받았으며 불교 승려들에게 무술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삼국시대의 경쟁 국가들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신라(기원전 57년~서기 935년)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화랑은 마침내 고구려를 물리치고 한반도에 통일신라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서기 676년 중국 당 왕조를 축출하는 데에도 기여하였습니다.



7.3. 풍월주[편집]


신라의 귀족사회에는 '골품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결혼 대상자 선택, 집안 재정 규모, 왕위 계승에 이르기까지 신라 귀족 생활 전반을 규제하였습니다. 국선 화랑은 보통 '진골'이었습니다. 국선 화랑은 무기 사용과 무술 연마 외에도 불가사의한 적들로 부터 신라를 지켜줄 신적인 존재를 찾기 위해 산으로 순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7.4. 신기전 부대[편집]


신기전은 초기형 로켓입니다. 조선이 13세기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의 비법을 배운 직후 발명한 신기전은 어깨에 멜 수 있는 둥근 관 형태의 로켓입니다. 이런 로켓들은 대부분 정확성은 높지 않지만 발사하는 것 자체로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7.5. 중장갑 신기전 부대[편집]


중장갑 신기전은 휴대용 신기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발사 거리도 길어지고 타격력도 높아졌지만 정확성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무기들이 그러하듯이, 중장비 신기전은 주기적으로 사용되며 화려한 폭발을 선보이는 심리적인 전쟁무기입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화살이 두렵지 않은 병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7.6. 독립군 의병[편집]


독립군 의병은 외세의 공격을 받을 위기의 시대에 자발적으로 생성된 병력입니다. '의병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가 거란과 몽골에 맞서 싸웠던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의병대 투쟁의 역사는 20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7.7. 광복군 보병[편집]


한국광복군은 1941년에 창설된 군대로, 초기에는 30명에 불과했으나 당시 한반도 북쪽에서 형성된 여러 게릴라 무장 단체들과 연합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광복군은 영국군과 함께 남동부 격전지로 군사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종전 무렵에 광복군의 병력은 1,000명에 달했습니다.



7.8. 공화국 소총수[편집]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8선으로 분단되어 남북 정부가 각각 미국과 소련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1950~1953년간 발발한 한국 전쟁은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한을 침입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UN군이 남한을 원조하기 위해 도착했으며 9월에는 북한 지역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다음 달 중국이 개입하면서 UN군이 후퇴하게 되고 교착 상태가 이어져 비무장지대, DMZ에서 경계가 재구축되었습니다. 이름과는 달리, DMZ는 지구에서 가장 군사화된 경계 중 하나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7위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7.9. 중장갑 공화국 소총수[편집]


베트남 전쟁에서 공산주의 병력의 공격에 있어서 미국 다음으로 한국의 기여가 가장 컸습니다. 남한의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에서 총 30만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보냈으며, 이곳에서 이들은 북베트남군으로부터 매우 무서운 적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1973년 철수 전까지 한국은 4만1천명의 적군을 사살하며, 단 3천8백 명의 병력만 잃어서 11:1이라는 비율을 기록했습니다.



7.10. 숙련 공화국 소총수[편집]


중장갑 공화국 소총수와 동일



7.11. ?[편집]




7.12. ?[편집]





8. 로마[편집]



8.1. 레기온[편집]


레기온은 로마 군단으로, 세계 역사상 최고의 보병이었습니다. 이 징집병들은 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투구와 가슴받이를 착용했으며 타원형이나 직사각형의 커다란 방패를 사용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전례 없는 기세와 잔인함으로 전투에 임했는데요, 전 세계를 행군하면서 유럽, 대영제국, 북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상당 부분까지도 정복하였습니다.



8.2. 중장갑 레기온[편집]


중장갑 로마 레기온은 최고의 장비를 갖출 여력이 있는 로마 시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들은 투창(필룸)을 사용하였는데 적군의 목숨을 노리기보다 방패에 던져 박살내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8.3. 카이사르 레기온[편집]


율리우스 시저는 자신과 함께 유럽과 아프리카 전역에서 싸웠던 제9레기온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시저가 죽은 후, 옥타비아누스는 레기온을 이끌고 반란군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그 다음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상대하였습니다. 이 정예부대는 영국에 주둔하면서 켈트족 전사 여왕 부디카의 출현에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로마 군단은 이후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요, 스코틀랜드 침략 중에 전멸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이 부대의 소멸은 군사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8.4. 집정관의 근위병[편집]


집정관 친위대는 로마 황제의 개인 경호원으로, 로마에 주둔하며 황제의 통치 권력을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만든 이 군단은 로마의 외곽에 주둔했으나, 이후 티베리우스에 의해 시내로 들어와 주요 정치권력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군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 제국기 동안 주로 반란군을 진압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8.5. 집정관의 수발총병[편집]


화승식 무기로 무장한 집정관의 친위대입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화기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로마 제국이 멸망했지만, 만약 당시에 화기가 있었다면 집정관의 친위대에서는 틀림없이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8.6. 이탈리아 산악 특수 부대[편집]


로마의 중무장 보병인 알피니는 험준한 알프스 산맥의 지행과 날씨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특수 훈련을 받은 전투 전문가들입니다. 자신들을 정통 로마 군대의 후예라고 자부하며 훈련해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산악 부대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카이저예거에 맞서 싸웠는데 이 전투는 '눈과 얼음의 전쟁'으로 불리는 유명한 전투입니다.



8.7. 왕립 이탈리아 산악 특수부대[편집]


1940년 6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탈리아 왕립 군대는 알프스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첫 전투를 치렀습니다. 또한 이집트, 케냐, 수단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영국군에 맞서기 위한 한정적인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 왕립 군대가 거둔 유일한 승리는 영국령 소말릴란드 점령뿐이었습니다.



8.8. 프리울리 보병[편집]


프리울리는 오스트리아 및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입니다.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군대에는 '프리울리'라는 이름을 딴 여러 부대가 있었습니다. 프리울리 보병 여단은 1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을 위해 참전했으며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에는 동맹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오늘날 프리울리 강습 공군 여단은 이탈리아의 공습 보병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8.9. 트리에스테 보병[편집]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UK vz. 59로 무장한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들은 독일군이 점령한 이탈리아 북동부의 트리에스테를 침략했습니다. 이들은 트리에스테에서 지원한 두 곳의 수용소에 대한 보복으로 수백 명의 파시스트 수용자들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냉전 시대의 어두운 전조가 된 이 사건은 훗날 "트리에스테의 40일"로 알려지게 됩니다.



8.10. 정예 트리에스테 보병[편집]


트리에스테 보병과 동일



8.11. 명예 트리에스테 보병[편집]


명예 보병과 동일



8.12.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