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네이션즈/역사적 배경/이벤트 병력/지상

덤프버전 : r20200302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도미네이션즈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도미네이션즈/이벤트 병력/지상

도미네이션즈 역사적 배경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건물
유니버시티 · 불가사의 · 부두 · 도서관 · 대사관
병력
훈련소 · 공장 · 비행장 · 고유 유닛 · 용병 · 영웅 · 연맹 병력
이벤트 병력
지상 · 공중 · 영웅
전설 유물
주요 전당 · 월드워 전당
싱글 플레이어 캠페인
싱글 플레이어 캠페인





1. 닌자
2. 시노비
3. 오니 닌자
4. 개척자
5. 임피 전사
6. 예니체리
7. 화궁 사무라이
8. 해적
9. 암살자
10. 마스터 암살자
11. 쉴드메이든
12. 바이킹
13. 몽골족 올록
14. 하토 중박격포
15. 도약병
16. 레티아리우스 검투사
17. 중장갑 낙타병
18. 재규어 전사
19. AVRE 전차
20. 핀란드 스키 보병
21. 이고 전차
22. 셔먼 크랩 전차
23. 이모탈
24. 도적
25. 켈트 전차
26. Medjay Warrior
27. M50 온토스
28. 한국 전쟁 대대
29. 버팔로 병사 부대
30. Walloon Guard
31. 그리스의 불 투척병
32. 화염방사기
33. M67 화염방사 전차
34. 볼 전차
35. Ka-25 강습 헬리콥터
36. 밀 Mi-24
37. AH-1 슈퍼 코브라
38. CH-53E 슈퍼 스탤리온
39. 무법자
40. 사형집행인
41. 역병 의사
42. 역병 공성기
43. 프랑스 석궁사수
44. 블랙 밴드 용병
45. 철벽 기병
46. 라즈푸트 전사
47. 전우
48. 네덜란드 민병대
49. 켄세이
50. 도펠졸트너
51. Scottish Highlander
52. 할렘 헬파이터
53. 빅 버사
54. A7V 전차
55. 휘펫 전차
56. 오데사 전차
57. M109 곡사포
58. 식민시대 레인저
59. 민병대원
60. 세포이
61. 소림사 수도승
62. 첩보원
63. 화승총 사무라이
64. 쉐리던 전차
65. 판터 전차
66. T28 슈퍼 중전차
67. 샤르 2C 슈퍼 중전차
68. 전쟁 코뿔소
69. 사이드카 기관총 군단
70. M46 판터
71. 공성 코끼리
72. 코끼리 궁수
73. 코끼리 궁수?
74. 화차
75. 쌍권총 흉갑기병
76. 빅 레드 원 산탄총 사수
77. 카로 벨로체 화염방사기 전차
78. 불을 뿜는 토끼
79. 워 마스토돈
80. 윙드 후사르
81. 험비
82. 해병 바주카
83. 스파르타인
84. 더스터 전차



1. 닌자[편집]


오랜 세월 베일에 싸여 무수한 전설과 소문을 낳은 닌자는 봉건시대의 일본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정찰 대원이었으며, 스파이였고, 파괴 공작원이었으며, 잔인한 암살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닌자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충신, 핫토리 한조입니다.



2. 시노비[편집]


시노비 또는 닌자는 근대 이전의 일본에서 영주가 고용한 스파이이자 암살자입니다. 이들의 고용주인 사무라이는 일반적으로 무사의 도를 중시했던 계급이었지만, 시노비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잠입, 독살, 변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시노비들은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전문 양성 기관에서 '인술'이라 불리는 다양한 특수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쿠노이치'라는, 간첩 활동과 암살 임무를 맡은 여성 시노비도 있었습니다.



3. 오니 닌자[편집]


닌자는 일본 봉건 시대에 잠입 임무를 수행하도록 다이묘가 고용한 병사와 용병 이였습니다. 일본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닌자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까마귀인 요괴에서 계승되었다고 합니다. 요괴는 살아 있는 것의 모양을 바꾸고 공포에 떨게 하는 것으로 알려진 초인적인 괴물이나 악마입니다. 오니 마스크와 같은 요괴 마스크를 착용하는 관습은 죠몽 시대부터의 일본의 전통입니다. 오늘날에는 보통 축제 시 아이들을 놀라게 하거나 악마의 정령을 물리치기 위해 오니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4. 개척자[편집]


대영제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넌 생존자들에게도, 초기 개척 시기의 삶은 힘겨웠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고향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강한 정착민들은 더 좋은 사냥과 무역 기회를 찾아 미 대륙 안쪽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개척 정신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모이칸족의 최후>와 <길을 여는 사람>에도 묘사되었습니다.



5. 임피 전사[편집]


임피는 줄루족 전사들의 연대를 나타냅니다. 줄루족 지도자 샤카는 '이클와'라는 긴 창을 도입한 후 직접 고안한 '물소' 대형으로 병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부대를 물소의 가슴(중앙 전역), 두 개의 뿔(측면부), 그리고 허리(예비 병력), 네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가슴'에 해당하는 병사들이 적을 직접 공격하고 '뿔'에 해당하는 병사들은 측면에서 적을 포위합니다. 이 공격 후에도 적을 격파할 수 없으면 '허리' 부분의 남은 병사들이 탈진한 적을 처치합니다.



6. 예니체리[편집]


예니체리는 전성기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군대 중 하나였습니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만 투입되는 정예 보병으로서, 오스만 장군들은 방어가 뚫린 요새로 돌격할 때나 교전 죽인 적에게 결정적인 측면 공격을 감행해야 할 때만 예니체리를 투입했습니다.

결국 예니체리의 전투 효율은 점차 떨어졌고 이들은 전투 업적보다 궁정 반란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전통을 바꾸지도, 오스만 제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싶지도 않았던 예니체리는 여러 차례 개혁 시도에 격렬히 반대했는데, 이들의 권력은 1826년 마흐무드 2세의 현대식 군데 창설에 맞서 예니체리가 반란을 일으킨 '위대한 사건'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습니다. 술탄의 군대가 예니체리의 막사를 포위한 후 포격으로 학살했고 결국 예니체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7. 화궁 사무라이[편집]


사무라이 계급이 막 신흥 세력으로 떠올랐을 때, 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무기는 카타나 검이 아니라 화궁이었습니다. 화궁은 엄청난 길이와 비대칭적인 모양이 특징으로, 궁수의 키보다 길어 세계에서 가장 긴 활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잡이가 중간에 있는 일반적인 활과 달리 화궁의 손잡이는 활의 아랫부분으로 3분의 1 지점에 있습니다. 이런 기이한 구조의 정확한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초기 사무라이들이 그랬듯 말을 타면서 활의 짧은 아랫부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8. 해적[편집]


해적의 역사는 아주 깊으며, 그것은 상선의 등장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1650년부터 해적들의 '황금기'가 10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해적들은 신세계의 바다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군림하였습니다. 하인들과 농노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이들에게 해적의 길은 매우 매력적인 삶으로 비춰졌습니다. 적어도 바다에는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해적들은 투표제도로 우두머리를 선출했으며, 그것은 유럽의 군주제도와 상이한 초기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바솔로뮤 로버츠, 에드워드 '검은 수염' 티치, 앤 보니, 메리 리드 등이 해적의 길에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



9. 암살자[편집]


중세 시대 하슈샤신, 즉 암살자 집단은 전장에서 적군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그 수가 많이 않았지만,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특수한 방식으로 반대 세력의 지도자를 제거했습니다.

특수 훈련을 받은 암살자들은 '피다인'이라 불렸으며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변장을 한 채 수년을 기다리다 때가 됐을 때 가까이 다가가 목표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목표 제거 후 달아나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조직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적대 세력이 더 이상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10. 마스터 암살자[편집]


니자리 이스마일리스는 하슈샤신 또는 암살자로 더 잘 알려진 11세기 페르시아 종파였습니다. 그 중 가장 기술이 뛰어난 이들은 피다인이라고 불렸으며 일생 동안 단 한 번의 암살을 수행하도록 특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피다인은 술탄, 칼리프 또는 니자리의 이익에 반대하는 다른 지도자의 궁에 잠입할 기회가 올 때까지 암살 대상의 언어와 문화를 깊게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궁중에 잠입한 후에는 적에게 신뢰받는 이루언이 되어 대상을 제거할 완벽한 순간을 노리며 때로는 몇 년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11. 쉴드메이든[편집]


노르웨이 전설과 신화에서는 여성 전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는 쉴드메이든을 비롯하여 전장에서 전사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반신녀인 발키리가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볼숭가 전설에서는 브륀힐트가 인간 쉴드메이든과 신적 존재인 발키리로 동시에 등장합니다. 쉴드메이든은 무기로 검과 방패를 사용하여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스인들처럼 바이킹들은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투석병이나 궁수 같은 원거리 전사가 아닌, 근접전 전사라고 생각했습니다.



12. 바이킹[편집]


바이킹은 AD 8세기에 유럽에서 정복을 시작한 해양 전사들이었습니다.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이지만 인구 과잉과 천연 자원 부족으로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부를 찾기 위해 바이킹은 좁고 긴 바이킹선을 제작했고 덕분에 유럽과 대서양 전역을 신속히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킹은 발전된 바이킹선 기술을 사용해 유럽 해안을 따라 무방비의 희생자들을 빠르게 습격해 약탈했습니다. 이들의 무자비함으로 유럽 대륙 전역에 공포가 퍼졌고, 프랑크의 통치자들은 이들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두둑한 돈을 지불했습니다. 삼세기 동안 바이킹은 영국과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AD 1066년에 바이킹 시대는 막을 내렸고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인 들은 가톨릭교로 전향하여 가톨릭이 지배하는 유럽으로 흡수되었습니다.



13. 몽골족 올록[편집]


칭기스칸 휘하의 몽골제국은 장비, 기술, 지구력, 전술, 기만술, 총솔력, 조직력 등, 전쟁의 모든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 갔습니다. 위대한 칸은 군사 계급의 정점에 서 있었으며 그보다 한 단계 아래 지위의 장수인 올록이 각 부대를 지휘했습니다.

그 중 전설적인 올록, 수부타이는 가장 뛰어난 사령관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원정 중 수백 마일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전술 작전을 동시에 지휘한 것으로 유명한데, 1246년 레그니파에서 폴란드 군대를 격파하고 이틀 후 모히에서 헝가리 왕을 몰아냈습니다. 이 기록으로 그는 중앙 유럽으로의 진출로를 한 번에 연 뛰어난 병참술의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4. 하토 중박격포[편집]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무거운 박격포의 기동성을 높일 방법을 연구했던 일본 제국군은 치토 중형전차의 개량형 차대에 300mm 중박격포를 장착한 4식 하토 중박격포의 시제 차량을 개발했습니다. 하토 중박격포는 유효 사거리가 약 3km에 달했지만, 포신이 무거워 50도 이상 포각을 올리면 차체가 전복되었으며 비용이 비싸고 일본 군부가 당시 개발 중인 다연장로켓으로 관심을 돌린 탓에 단 4대의 시제 차량만 생산되었습니다.



15. 도약병[편집]


1803년, 나폴레옹 황제는 도약병이라는 이름의 보병 부대를 창설했습니다. 도약병은 원래 기병의 말에 함께 올라타 전장을 빠르게 이동하는 보병을 의미했으나, 이는 실제 전투에서 불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정예 척후 보병인 도약병 부대에는 최고의 명사수들이 배치되었습니다.



16. 레티아리우스 검투사[편집]


로마 검투사들은 사용하는 장비에 따라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중 레티아리우스는 고기잡이 그물을 사용하는 '투망 검투사'입니다. 로마 신 넵튠처럼 삼지창을 주로 사용한 이들은 투망으로 적의 발을 묶어 단검으로 해치우기도 했으며, 다른 검투사들과 달리 왼쪽 팔과 어깨에만 최소한의 갑옷을 착용했습니다. 레티아리우스의 상대는 주로 세쿠토르, "추적자"로 불리는 검투사였는데, 이들은 물고기 머리 모양의 지느러미가 달린 투구를 썼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전투는 물고기와 어부의 싸움을 연상케 하기도 했습니다.



17. 중장갑 낙타병[편집]


중무장한 낙타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지만, 과거에는 강력한 병력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중기병의 파괴적인 힘은 물론, 말에게 공포감을 주고 가혹한 사막 기후를 견딜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력으로서 낙타는 여러 이유로 널리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말에 비해 다양한 기후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발에 편자를 달 수 없어 마름쇠에 취약했습니다. 또한, 낙타의 높이나 혹, 걸음걸이 때문에 전장에서 타기 어려웠고 말보다 영리한 탓에 적군을 향해 돌격하는 것을 겁내기도 했습니다.



18. 재규어 전사[편집]


힘과 용맹을 나타내는 재규어는 미대륙 발견 이전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재규어 가죽을 입은 재규어 전사는 군부 중심의 아즈텍 문명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대표했습니다. 당시 평민들의 신분 상승 수단 중 하나는 전투에서 적군을 생포에 뛰어난 무용을 떨치는 것으로, 잡힌 포로들은 대부분 신성한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천국으로 가는 사자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재규어 전사들은 나무와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칼과 깃털로 장식된 방패로 무장했는데, 여기에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19. AVRE 전차[편집]


공병 전차는 1942년 8월 디에프 기습이 실패한 후 캐나다 공학자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AVRE(Assult Vehicle Royal Engineers)라는 포괄적 용어로 분류되는 공병 전차는 전장에서 인프라 건설 또는 장애물 파괴 임무를 담당하는 전투 공병을 보호했습니다. 이 전차에는 일반적으로 폭약 20kg을 최대 100m 거리까지 발사할 수 있는 290mm 피타드 박격포와 같은 폭파 무기가 탑재되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AVER 전차 모델로는 처질 AVRE, 센터리온 MK5 AVRE, 치프틴 AVRE가 있습니다.



20. 핀란드 스키 보병[편집]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40만 명이 넘는 병력으로 핀란드를 침략했는데, 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보다 약 3배나 많은 숫자였습니다. 당시 붉은 군대는 핀란드 수비군이 보유한 병사의 3배, 비행기의 30배, 전차의 100배 이상에 달하는 전력을 보유했지만, 핀란드군은 열세에도 부룩하고 석 달 넘게 지속된 겨울 전쟁에서 소련군을 격퇴하게 됩니다. 핀란드군의 게릴라 전수로가 지형지물에 대한 뛰어난 지식은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고 결국 모든 예상을 뒤엎은 것입니다. 소련군 병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핀란드 군 병사들은 스키나 무장 차량을 타고 침투해 폭발물을 설치한 후 숲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21. 이고 전차[편집]


89식 이고 전차는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제국군이 주력 탱크로 운용한 경전차입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최초의 디젤 엔진을 탑재하여 화재 안전성과 토크가 우수했습니다. 무엇보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전차보다 연료 효율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일본이 중국을 침공함에 따라 미국이 모든 석유 수출을 금지한 이후, 일본의 전쟁 물자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22. 셔먼 크랩 전차[편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령 A.S.J. 뒤투아가 개발안 지뢰 제거 장비의 설계를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뢰 제거 시스템은 전차 차체에 장착된 길도 무거운 체인으로 지뢰를 강제로 폭파했는데, 영국의 엔지니어들은 이를 약간 개조하여 약 43개의 체인 가닥을 활용하는 크랩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크랩 설계는 미국의 M4 셔먼 중형전차에 주로 탑재되었으며, 수 천대 단위로 생산된 셔먼 크랩 전차는 공격보다는 전투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기 전에 지뢰밭은 처리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지뢰 제거 전차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23. 이모탈[편집]


하이다네스 2세는 기원전 5세기 크세르크세스 1세가 통치하던 아케메네스 제국의 이모탈 지휘관이었습니다. 그의 형제 시삼네스는 아리아 부대의 지휘관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다리우스 1세가 가우마타의 권자를 빼앗고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왔던 몇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24. 도적[편집]


19세기 미국에서 도적단은 대범한 강도 행위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들의 강도 행위는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종종 낭만적으로 그려지지만, 은행과 열차 강도로 매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삶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몇몇 강도단은 폭력적이고 정렬적인 모습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1889년 부치 캐시디와 그의 동료 몇 명은 은행 출납직원을 총으로 위협해 현찰 20,000달러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또 다른 높은 범죄자인 제시 제임스는 은밀히 수송중인 대량의 금괴를 훔치기 위해 열차를 탈선시켰습니다. 하지만 금괴 수송이 연기된 상태였고 제시 제임스와 그 무리가 발견한 금고 안에는 단 2,000달러밖에 없었습니다.



25. 켈트 전차[편집]


켈트 전차는 구조적으로 뛰어난 다용도 전투 병기였습니다. 바퀴 두 개 달린 경량 마차의 형태로, 기수와 전사 두 명이 선 자세로 탑승했습니다. 적군을 향해 돌진하면서 전사가 투창을 던질 때 전차의 안정성을 위해 차대를 밧줄로 묶어 고정했습니다. 적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적을 죽이면 전차에서 내려 지상에서 근접전을 벌였고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전차를 이용해 빠르게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26. Medjay Warrior[편집]




27. M50 온토스[편집]


'물건'이라고도 알려진 M50 온토스는 베트남 전쟁 중 1956년에 출현한 놀라운 모습의 경전차입니다. 온토스는 구축전차로 설계되었지만 북 베트남 군에서 투입한 전차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개 보병을 상대하는 유닛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목표물이 파괴되도록 빠른 속도의 연사로 발사 될 수 있는 여섯 대의 M40 무반동포가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온토스는 잠복 중인 적군 보병을 처리하는데 특히 더 유용했습니다. 가벼운 무게로 설계되어 이동성이 뛰어났고 더 큰 전차가 이동할 수 없는 제한된 공간에도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항공기와 기동차로 쉽게 수송할 수 있었습니다.

M50 온토스는 전쟁터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으나 눈에 띄는 결함도 있었습니다. 장갑력이 약해서 숨겨진 지뢰와 로켓 추진식 수류탄에 취약했습니다. 또한, 외부에서 포를 재장전해야 해서 운전병을 위험에 노출시켰습니다. 결국 온토스 함대는 1969년에 임무 해제되어 미국으로 반송되었습니다.



28. 한국 전쟁 대대[편집]


분단 전 한국은 1910년 일본과 한국이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면서 20세기 초부터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항복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따라 한반도를 분단시켰고, 북은 공산 세력이, 남은 민주 세력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 두개의 한국은 작은 충돌을 여러 번 겪었고 38선을 따라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전쟁은 공식적으로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었으며, 훈련 받은 북한의 병사들이 남한을 침공했고, 남한의 경찰 지구대를 제압했습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을 남한으로 파병했습니다. 이는 냉전 시대의 첫 번째 주요 충돌로 기록되었습니다. 1953년 6월 27일에 휴전이 체결되었고 38선을 따라 비무장 지대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한국 간에 평화 조약이 아직 공식적으로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29. 버팔로 병사 부대[편집]


버팔로 병사는 의회에서 미군의 일부로 발족한 최초의 미국 흑인 평시 연대이었습니다. 제9기병, 제10기병이 먼저 만들어졌고, 향후에 제24연대, 제25연대로 확장되었습니다. 버팔로 병사의 경우, 인종 차별로 병사들이 부적절한 무기와 보급품, 나이든 말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도로를 깔고, 우편 소송차를 보호하고, 역마차와 마차 행렬을 호위하며, 도둑도 잡았습니다. 1867년부터 1869년까지는 주로 북미 원주민과 서쪽 전선에서 싸웠습니다. 버팔로 병사들은 판초 비야를 수색했고,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싸웠으며, 요세미티와 세쿼이야 국립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했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8년에 군의 인종 분리를 철폐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버팔로 용사들은 해체되었습니다. 모든 미국 흑인 연대는 1950년대에 마지막으로 해체되었습니다. 많은 버팔로 용사들은 미국 최고의 무공 훈장인 명예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30. Walloon Guard[편집]




31. 그리스의 불 투척병[편집]


오늘날 '그리스의 불'이라고 알려진 물질은 비잔틴 군대에서 사용한 방화용 액체였습니다. 함대나 성벽에서 발사할 때 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다른 부대도 유사한 무기가 있었지만 물로 끌 수 없는 것은 헬리오폴리스의 칼리니쿠스가 완성한 비잔틴식 액체뿐이었습니다. 바다 표면에서도 타올랐기 때문에 비잔틴 함대는 전투에서 독보적이고 강력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불은 제조법이 철저히 기밀로 유지되어 현재까지도 제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2. 화염방사기[편집]


고전 시대, 그리스 해군 함대는 '그리스의 불'이라는 액체 화약을 펌프로 분사하는 형태의 화염방사기를 사용했습니다. 사람이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최초의 화염방사기가 발명된 때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01년경입니다. 이때의 화염방사기는 인화성 기름과 압축가스가 각각 들어 있는 2개의 탱크와 점화용 장치가 달린 고무 튜브, 그리고 분사량을 조절하는 레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화염방사기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벙커와 같이 참호로 둘러싸인 지대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33. M67 화염방사 전차[편집]


M67 화염방사 전차는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미군에 도입되었습니다. 유명 라이터 브랜드인 "지포"라고도 불린 이 전차는 M48 패튼 전차에 M7-6 전차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모델이었습니다. 구멍과 누유 차단 장치가 달린 90mm 위장용 포신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하여 연소를 용이하게 하고 일반 전차로 보이도록 위장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육군과 해병대는 예외적으로 약 256m에 달하는 넓은 범위까지 공격할 수 있었던 밀림 지대에서 M67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34. 볼 전차[편집]


쿠겔판처는 불가사의입니다. 이 구 모양 전차의 유일하게 알려진 예는 러시아의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전시된 아이템 37번입니다. 이 이상한 물체는 일본에서 독일 나치로 수송되는 과정에서 1945년 공산군이 만주에서 포획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러시아인들은 추가적인 상세 사항을 기밀로 유지했고 야금 샘플 채취조차 금지했습니다.

이 전차의 앞에는 시야 확보를 위한 틈새와 기관총이 발사될 수 있는 작은 구멍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뒤에는 운전자 출입용 해치가 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설에 따르면, 쿠겔판처는 장갑 정찰이나 보병 지원 역할을 맡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최고 속도가 안쓰러울 정도라 무리가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나치가 이상한 무기를 많이 설계하기는 했지만, 지루함을 느낀 소련의 기계공이 아이템 37번을 농담이나 장난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박물관에서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35. Ka-25 강습 헬리콥터[편집]


카모프 Ka-25는 1967년 소련 해군에 도입된 강습 헬리콥터로, 본래 대잠수함전을 비롯한 수색 구조용으로 설계된 기체입니다. 이에 따라 Ka-25에는 동축 반전 로터 2개와 자동 접이식 날개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꼬리 로터 대신 동축 반전 로터를 채택함으로써 해군 함정에 탑재하기 쉽다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강습용 변종 모델에는 23mm 이중 총열 기관포 1문과 대전차 유도 미사일 6발이 무장됩니다.



36. 밀 Mi-24[편집]


밀 Mi-24는 독특하게 장갑 병력 수송뿐만 아니라 공격용 헬리콥터로도 사용된 러시아의 무장 헬리콥터입니다. 밀 Mi-24는 '날으는 전차' 등, 여러 별명을 얻었으나, NATO에서 공식적으로 '하인드'로 명명했습니다. 밀 Mi-24는 중장갑력과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습니다. 이는 당대 가장 장갑력이 뛰어난 공격용 헬리콥터 중 하나로, 6개의 외부 무기 장착점과 조종사와 탑승병 모두가 사용하는 여러 대의 개틀링 건을 보유했습니다. 거포가 장착되어 있으면서도 전쟁터로 무장 병력을 수송하는 점 때문에 밀 Mi-24는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헬리콥터가 되었습니다.

밀 Mi-24로 수송되는 러시아 공수 부대는 소련군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의 병사로 꼽힙니다. 이 낙하산병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았으며 이들을 상징하는 푸른색의 베레모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푸른색 베레모를 착용하고 기본 AK-74 공격용 소총부터 저격용 소총, 화염 방사기, 운반 가능한 지대공 미사일, 로켓 런처 등의 다양한 무기를 들고 가끔은 무장 차량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전쟁터에 투입됐습니다.



37. AH-1 슈퍼 코브라[편집]


AH-1 슈퍼 코브라는 미국 해병대가 수 십 년 간 선택한 헬리콥터입니다. 베트남 전쟁 코브라 헬리콥터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세계 최초의 전용 공격용 헬리콥터인 슈퍼 코브라의 새로운 설계로 특히 힘과 무기 측면에서의 코브라의 많은 결점이 해결되었습니다.

특히 슈퍼 코브라는 단발 엔진 대신 쌍발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이 추가적인 엔진의 힘 덕분에 공대공, 장거리 대전차, 레이더를 피하는 미사일 등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을 전례 없는 양으로 실을 수 있었습니다. 향후 업그레이드도 처음 시도된 헬리콥터 설계를 사용했으며, 야시 장비를 갖춘 최초의 헬리콥터이었습니다.

뛰어난 무기와 기능 덕분에 이 헬리콥터는 전쟁터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적합했습니다. 또한, 공중의 위협에 대해 공격하는 최초의 헬리콥터로 헬리콥터 대 헬리콥터 전투에 적합했습니다. 1983년 미국이 레바논으로 평화유지군을 보냈을 당시 슈퍼 코브라는 경비행기를 비행하는 잠재적인 자살 폭격기에 대한 방어를 위해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했었습니다.



38. CH-53E 슈퍼 스탤리온[편집]


시코르스키사의 CH-53E 슈퍼 스탤리온은 미 해병대에서 주로 사용하며 이륙 중량이 높은 초대형 헬리콥터입니다. 화물을 싣지 않는 경우 1.600 킬로미터를 단, 5시간 만에 이동할 수 있으며, 16톤의 화물을 실은 경우 80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프로브형 급유기 덕분에 비행 중간에 재급유하여 이동 거리도 늘릴 수 있습니다.

주로 수송을 위해 사용되기는 하지만 슈퍼 스탤리온에는 자기 방어를 위한 기관총과 채프-플래어 디스펜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보통은 2명의 조종사와 3명의 사수가 승무원으로 탑승하며, 37명의 병사들을 전투 지대로 이송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보통 군수품, 무거운 중량의 무기, 항공기나 경량 자동차까지도 실을 수 있습니다.

시코르스키 사는 10년을 넘은 시간을 들여 슈퍼 스탤리온을 개발했습니다. 해병대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강습상륙함에서 투입할 수 있는 대형 헬리콥터를 처음으로 요청했고, 1981년이 되어서야 그 모델이 준비되었습니다. 이후 이 헬리콥터는 소말리아,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그 가치를 입증했으며, 현재는 킹 스탤리온이 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해병대와 별도로 일본과 미 해군은 이 헬리콥터의 변형 모델인 MH-53E 시드래곤을 사용했습니다.



39. 무법자[편집]


사회의 법적 테두리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개념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무법자는 법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떠한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무법자를 죽이거나 박해해도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19세기에는 아메리카의 개척지에서 무법자들이 강도, 폭력, 도박을 저지르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제시 제임스, 밴디트 퀸벨 스타, 펄 하트, 빌리 더 키드 등 많은 남녀 무법자들이 살았던 이 시기를 와일드 웨스트라고 부릅니다.



40. 사형집행인[편집]


중세 유럽에서 사형 집행인은 사형 및 여타 신체적인 벌을 수행한 관료이었습니다. 사형 집행인의 역할은 가문의 장손에서 장손으로 계승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대중은 이들이 접촉하는 것은 뭐든 저주가 걸린다고 생각해 이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유럽 전역에 걸쳐서 주인공이 사형 집행인과 식사를 하거나 잘못해서 사형 집행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공포 이야기가 횡행했습니다. 이러한 악명 때문에 사형 집행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사형 집행인은 사형 이외에 다른 의무도 맡았습니다. 이들은 교수대와 변소를 관리하고, 시체를 닦으며, 가축 관련 규정을 집행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고문과 공개 처형이 비판 받기 시작했고, 사형 집행인에게서 권력도 빼앗았습니다. 사형 집행인은 그들의 유적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1. 역병 의사[편집]


유럽 전역에서 선페스트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면서 전염병을 진단하고 사망자를 기록하는 역병 의사가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돈을 받고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환자의 피를 뽑는 방혈과 같은 중세의 치료법은 치료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역병 의사의 상징적인 복장인 어두운 색 긴 외투와 부리 모양 가면은 17세기에 유명한 의사였던 샤를 들로른이 고안했습니다. 부리에는 향이 나는 약초를 채웠는데, 이를 흑사병을 일으킨다고 생각되던 '나쁜 공기'로부터 역병 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2. 역병 공성기[편집]


흑사병으로도 알려진 선페스트로 14세기 유럽과 아시아 각지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감염된 벼룩과 지만으로도 쉽게 확산되는 질병이지만, 1346년 카파 공성전 중에 사용된 생물학전의 병원균으로서 유럽에 처음 전파되었습니다. 한 제노바 상인에 따르면, 공격 당시 황금 군단은 투석기를 사용해 페스트에 감염된 시체를 도시 안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전투 후 이 도시에서 도망친 이탈리아 무역상들이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페스트균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43. 프랑스 석궁사수[편집]


프랑스 중세 시대에 석궁은 병사, 용병, 평민 사이에 꽤 흔했습니다. 이후 석궁의 '중장갑' 모델은 더 커졌고, 강철로 된 프로도를 사용해 발사력이 증가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이러한 종류의 석궁을 아버리스트라고 불렀으며, 이 말은 활과 발리스타를 뜻하는 로마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석궁은 종종 화살을 준비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기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잘 훈련된 석궁 사수라도 1분에 2개의 화살만 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재장전하는 동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땅에 큰 방패를 세워 놓고는 했습니다.

동일한 기술을 보유한 사수에게 수십 년의 훈련이 필요했던 것에 비하면 보병 부대는 몇 주 안에 능숙한 석궁 사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사의 판금 및 쇠사슬 갑옷을 멀리에서도 관통할 수 있는 힘 때문에 기사와 귀족은 중장갑 성궁을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44. 블랙 밴드 용병[편집]


블랙 밴드는 16세기에 프랑스 부대와 싸운 독일의 란츠크네히트 용병이었습니다. 이들은 1521년부터 1526년까지 지속된 마리냐노 전투와 파비아 전투 등, 많은 교전에서 복무했습니다. 블랙 밴드는 색슨의 반목 기간 동안 에른스트 1세에 저항하여 이스트 프리지아에서 싸우기 위해 1514년에 블랙 가드로 결성된 최초의 부대이었습니다. 이들은 1515년에 이탈리아로 가서 마리냐노 전투에서 프란시스 1세와 함께 스위스에 맞서 싸웠습니다.

블랙 밴드에는 츠바이한터로 알려진 거대한 양손 검을 사용해 훈련된 2,000명의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검은 중세 시대 후반에 개발되었으며 독일 란츠크네히트에게 있어 기본적인 무기였습니다. 츠바이한터가 검으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그 길이와 칼집 없이 어깨에 옮기는 방법 때문에 폴암의 특징도 많았습니다.



45. 철벽 기병[편집]


철벽 기병은 17세기 영국 대내란 중 올리버 크롬웰이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화승총으로 무장했으며, 이는 서부 유럽의 기병에게 흔했습니다. 더 가벼운 장갑 기병으로서 이들은 군수품의 호송과 징발대를 호위함으로써 군 전쟁에서 포위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철벽 기병의 경우 말굴레 쪽 팔은 말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에, 왼쪽 팔로 검을 꺼내야 했고, 말 위에서 검을 쓰려면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기병의 말은 귀의 일부를 잃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46. 라즈푸트 전사[편집]


라즈푸트 종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이들이 자랑스럽고 고귀한 전사로 오랫동안 활약한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많은 라즈푸트 종족들이 떠돌이 용병 무리에서 발전해 왕국을 건설하기에 이루었으며, 이 왕국은 수 세기 동안 존재했습니다. 향후 라즈푸트 연대는 영국의 인도 부대에서 복무하며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을 위해 싸웠습니다.

16세기 라즈푸트 전사의 갑옷은 특별히 내구성이 좋으면서도 아주 가볍게 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주 카타르 단검을 사용했으며, 덕분에 전투에서 놀랍도록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라즈푸트 귀족은 두 개의 카타르 단검으로만 호랑이를 사냥해 전투에서의 용맹함과 실력을 뽐내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47. 전우[편집]


전우 협약에 대해서 문서로 잘 남아있지는 않지만, 많은 문학 학자들의 이 의로운 맹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우가 되려면 두 명의 고위급 기사가 왕위와 관련된 의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에 서로를 돕겠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이 맹세는 상호 협약이었습니다. 기사 간에 얻는 것과 짐이 되는 것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이 둘은 필요한 시기에 서로를 부를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48. 네덜란드 민병대[편집]


스튜터리로 알려진 네덜란드 민병대는 16세기에 시작된 네덜란드의 자발전인 민병대이었습니다. 이 민병대는 스스로 무기와 제복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에 부유한 현지의 시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민병대의 장교와 캡틴은 네덜란드 개혁 교회의 일원이어야 했습니다.

스튜터리는 근거리 미늘창과 플랑베르주 장검뿐만 아니라 석궁과 화승총 등의 원거리 무기도 사용했습니다. 스튜터리는 전문 경찰 병력이 만들어진 1901년에 해체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민병대의 오랜 전통을 지키기 위해 관련 역사를 재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49. 켄세이[편집]


일본 봉건 시대의 사무라이는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중 오다치라는 길이가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검도 있었습니다.

오다치가 다른 검처럼 허리에 차기에는 너무 길었기 때문에 사무라이는 손에 들거나 등에 달고 전투에 나가야 했습니다. 의식을 치루거나 보병의 검으로도 자주 사용된 오다치는 보병이나 기병을 상대할 때 유용했습니다.



50. 도펠졸트너[편집]


도펠졸트너는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고용되었던 독일 용병인 란츠크네흐트의 정예 병사였습니다. 이들은 두 배의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 '두 배의 병사'를 뜻하는 도펠졸트너라 불렸습니다. 란츠크네흐트는 주로 창을 사용했지만 도펠졸트너는 오늘날 츠바이핸더로 알려진 도펠핸더 또는 비덴핸더라는 이름의 거대한 양손검을 사용했습니다. 최전선의 병사들은 이 놀랍도록 가벼운 대검으로 적군의 폴 암을 옆으로 쳐내거나 저급한 무기의 상대적으로 약한 윗부분을 쳐내어 창병 진형을 돌파했습니다. 많은 비덴핸더에는 날밑 위에 두 번째 손잡이가 있어 찌르거나 내려찍는 동작을 쉽게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51. Scottish Highlander[편집]




52. 할렘 헬파이터[편집]


할렘 헬파이터는 세계 1차 대전 당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흑인 보병 유닛이었습니다. 이 유닛은 전쟁 당시 적이었던 독일군으로부터 헬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대부분은 할렘 지역에서 모집되었으나, 일부는 브루클린,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로니아 출신도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 이 유닛은 369 보병 연대로 재 명명되었고, 강제 노역을 하게 되었으나, 곧 전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 병사들에게 대폭 줄어든 자국의 병력을 요청했습니다. 존 퍼싱 사령관은 병사들을 보내기 꺼려했으나 예외적으로 헬파이터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1918년 4월 15일에 전투 참호로 들어갔습니다.

수개월 간 헬파이터들은 독일군을 상대로 전선에서 싸웠습니다. 헬파이터 중 유명했던 헨리 존슨은 24명의 독일군과의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독일군이 공격했을 당시 존슨은 관측소에 있었습니다. 그는 수류탄 폭발로 부상을 입었지만 계속 싸웠습니다. 소총이 고장 나면서 존슨은 칼을 들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한 손에 여러 독일인을 쓰러뜨리고 나머지를 막아냈습니다. 며칠 뒤 존슨을 프랑스 무공훈장을 받는 최초의 미국 군인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이외에도 여러 훈장이 헬파이터에게 수여되었습니다.



53. 빅 버사[편집]


보통 1차 세계대전이라 하면, 적의 기관총 사격에 싹쓸이 된 무인지대를 공격하기 위해 참호에서 뛰어나와 돌격하는 보병의 물결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전쟁 사상자의 거의 3분의 2는 포격으로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거의 개입되지 않는 무작위 포격은 사람을 가루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모든 포 중에서 특히 독일의 42cm 지뢰발사기가 가장 큰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쟁 초기에 투입되어 이 포가 맨 처음 맡은 역할은 독일의 진군을 막고 있는 벨기에의 요새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1916년 치열했던 솜 전투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독일군들은 지뢰발사기를 제작한 이의 딸인 버사 크룹의 이름을 본따 빅 버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 별명은 신문에 실렸으며, 이 새로운 곡사포가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54. A7V 전차[편집]


A7V 전투전차는 1차 세계 대전에 투입된 유일한 독일에서 생산된 전차이었습니다. A7V는 홀트 트랙터의 트랙과 벨기에, 영국, 러시아의 57mm 야전포의 화력을 결합해 제작되었습니다. 추가로 6대의 MG08 기관총이 장착되었습니다. 전차에 장착된 각각의 야전포와 기관총을 조작하려면 최소 2명의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무기 담당 병력 이외에 조종 및 엔지니어링 담당 병력도 따로 있어서, 이 거대한 전차 안에 25명의 병사들이 필요했습니다.

독일은 1917년 말에 100대의 A7V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20대만이 생산되었습니다. 독일 부대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전차를 포획해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A7V의 많은 탑승 병력, 매우 무거운 설계, 지나친 장갑, 좁은 트랙, 느린 속도는 설계상의 매우 큰 결점이었습니다. 빌레르-브르토뇌 전투에서 역사 상 최초의 전차-대-전차 전투 중 버려진 메피스토는 오늘날 온전히 보존된 유일한 A7V입니다. 영국과 호주 병력이 이를 회수했으며 이는 현재 호주의 퀸즈랜드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55. 휘펫 전차[편집]


중형 Mk. A 휘펫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중전차의 느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한 영국 전차입니다. 윌리엄 트리튼 경은 더 저렴하고, 더 빠르며, 느림보 중전차의 갭을 매울 수 있는 두 개의 엔진이 장착된 전차를 아이디어로 제안했습니다. 휘펫은 달리기가 빠른 견종에서 이름이 유래됐으며 15톤 밖에 무게가 나가지 않아서 최고 8.3 mph의 속도를 낼 수 있었고 128킬로미터의 공격 범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휘펫의 4개의 호치키스 기관총은 전차의 측면, 뒷면, 앞면에 장착되어 360도를 커버했습니다. 탑승 인원은 전통적인 중전차에 필요한 8명의 병사가 아닌 3명의 병사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휘펫은 1918년 4월 24일 세 대의 독일의 A7V 전차를 상대로 역사상 최초의 전차 대 전차 전투를 치러냈습니다. 휘펫 전차의 궤도 바닥에 병사들이 뭉개지고, 남은 군사들은 기관총으로 쓰러지면서, 약 400명의 독일군이 사망했습니다. 동일한 전투의 두 번째 전차 대 전차 충돌에서 휘펫은 독일군의 전차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C.B. 중위가 지휘한 휘펫 전차인 뮤지컬 박스 아놀드는 아미엥 전투에서 더 느린 Mk. V 휘펫 중전차를 추월하여 약 11시간동안 독일군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결국 독일군의 총알이 휘펫의 장갑을 꿰뚫어 연로가 전차의 내부로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휘펫의 탑승병들은 가스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전차 밖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한 명은 총을 맞아 즉사했고 아놀드 중위를 포함한 나머지 두 명의 군인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56. 오데사 전차[편집]


소련제 오데사 전차는 1941년 오데사 포위 공격 당시 재주가 뛰어난 공장 노동자들이 급조하여 만든 무장 차량입니다. 오데사 전차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트랙터 차체에 포탑이나 포를 장착했고 금속이나 나무로 만든 대형 장갑을 씌운 형태였습니다. 이상한 모양새에 엔진마저 시끄러운 오데사 전차는 독일 병사들을 혼란에 빠트렸고 덕분에 대담한 공격을 강행하기도 했는데, 오데사 전차 부대가 한 차례 급습으로 독일이 점령한 마을로 돌진하여 적의 포화를 받으면서도 24문의 독일군 포를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57. M109 곡사포[편집]


M109는 역사 상 널리 사용된 자주포 중 하나입니다. 1963년에 생산되기 시작한 이 무기는 베트남, 제4차 중동전쟁, 이란-이라크전, 걸프전, 이라크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델의 경우 이동성이 좋아서 '사격 후 이탈' 전술이 가능해, 발포 후 자리에서 벗어나 응사를 피할 수 있습니다. M109 디자인은 여러 번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지금도 수십 개국 부대에 남아 있습니다.



58. 식민시대 레인저[편집]


레인저는 17세기와 18세기에 식민지 이주자와 북미 원주민 부족 간 전쟁을 위해 복무한 유능한 국경 지방의 주민이었습니다. 이들은 직업 군인으로 미국의 국경을 순찰하도록 식민지 정부로부터 급여를 받았습니다. 공격 임무를 부여 받은 동안에는 레인저는 정찰, 안내, 돌격을 담당했습니다.

1675년에 벤자민 처치 대령은 식민지 이주자와 북미 원주민을 혼합해 레인저 유닛을 구성했습니다. 식민지 이주자들은 북미 원주민의 전투 전술을 사용한 덕분에 전통적인 민병대가 감당할 수 없는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군 통치자들은 자유로운 용병 기준과 색다른 전투 방식 때문에 레인저들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레인저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레인저는 미국 국경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노련해 질 수 있었습니다.

1755년에 캡틴 로버트 로저스는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영국군을 지원하도록 레인저를 모집했습니다. 이 레인저들은 황무지에서 순찰을 하고, 정보를 모으고, 프랑스 전초 기지를 돌격하는 역할을 하며 영국인들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명사수였던 덕분에 1858년에 스노우슈즈 전투에서 훨씬 많은 수의 적대적인 원주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독립전쟁이 1775년에 시작한 당시 로저스의 레인저 중 일부 고참병은 민병대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59. 민병대원[편집]


영국인 정착지였던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서 16~60세의 신체 건강한 모든 남자는 지역 민병대에 징집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복이나 무기는 전혀 지급되지 않아 자신이 직접 옷과 무기를 준비하여 전장에 나가야 했습니다. 민병대에 동원된 인원 중 일부는 비상 시 특수한 긴급 배치에도 차출되었습니다. 1분 내 전추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미니트맨'이라는 칭호를 얻은 이들은 미국독립전쟁에서 가장 먼저 투입된 병력이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진 민병대원 중 한 명인 폴 리비어는 영국군의 이동을 감시하는 경보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60. 세포이[편집]


세포이는 유럽 식민지 군대가 고용한 인도 병사들이며, 그 중 영국 동인도 회사가 고용한 병사들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1857년 세포이는 자신들이 입으로 물어야 했던 실탄이 각각 힌두교와 이슬람교에서 신성시하는 소나 돼지의 지방으로 칠해져 있었다는 소문이 일어나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항쟁은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동인도 회사가 해체되고 인도는 영국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포이는 2차 세계대전까지 영국 용병으로 계속 활동했으며, 현대 인도 아대륙의 군대에서는 이등병 계급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61. 소림사 수도승[편집]


달마라는 이름의 인도의 스님은 5세기에 소림사로 가서 명상을 강조하는 불교 종파 중 하나인 선종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소림사 수도승에게 기본적인 명상을 수행할 힘이 부족하다는 점을 관찰했습니다. 이 수도승들을 훈련하기 위해 달마는 소림사 쿵푸의 기원이 되는 일련의 운동을 소개했습니다. 이 수도승들은 향후에 소림사 쿵푸를 사용해 절을 지키고 미래의 당나라 황제인 태종은 618년에 구출했습니다. 소림사는 전사 수도승들의 위대한 업적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소림사 수도승들이 무술에 뛰어 났지만, 무력을 보여 주는 것 보다는 자비와 평화를 강조한 윤리 강령의 제약을 받았습니다.



62. 첩보원[편집]


최첨단 감시 장비가 발명되기 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적의 활동 정보를 수집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사람이었습니다. 두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유명한 맨해튼 계획 이후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냉전 시기 동안 첩보 활동은 주로 대사관, 관공서 또는 기밀 정보에 접근 가능한 지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비밀 네트워크인 첩보 조직의 형태로 행해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첩보 조직으로는 포틀랜드 스파이 링, 웨어 그룹, 캠브리지 파이브 등이 있습니다.



63. 화승총 사무라이[편집]


화승총은 포르투갈 무역상들이 1543년 일본에 최초로 들여온 무기입니다. 당시 사무라이는 검을 사용했지만, 총은 전장에서 높은 효율을 발휘했습니다. 최초로 총을 들여온 섬 이름을 따서 '타네가시마'라고 불렸던 화승총은 전국시대 말 무렵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다케다 기병도 나가시노 전투에서 도쿠가와의 사수들과 창병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정도로 화승총은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평화롭고 고립된 상태였던 에도 시대에는 화승총의 위력을 발휘할 만한 전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다시 검이 사용되었습니다.



64. 쉐리던 전차[편집]


M551 쉐리던은 1960년대 말부터 1996년까지 미군을 위해 생산된 경전차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낙하가 가능하며 물을 천천히 건널 수 있습니다. 거대한 152mm의 포탄이나 실레일리 유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주포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무게는 가벼워도 적군 병사와 중전차 모두에게 파괴적 영향을 미칩니다.

쉐리던은 인기가 많았지만 주요한 결함도 있었습니다. 주포가 너무 강력해서 전차가 땅 위로 들어 올려지면서 아군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전자 작동 부분이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또한 장갑력이 부족해 베트남 RPG와 지뢰에 취약합니다. 결국 대체할 무기 없이 쉐리던은 사라졌습니다. 미군이 주력 전차를 선호해 경전차를 포기한 결과이었습니다.



65. 판터 전차[편집]


2차 세계대전의 전반부에 독일과 소련은 동맹을 맺어 많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완벽히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그들의 장비의 일부 중요 기능에 대해 독일인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1941년 독일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에 일환으로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이들은 소련의 가장 강력한 전찬인 T-34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운명적인 조우로 전투를 시작한 지 1년이 안 되어 독일의 중형 판터 전차가 설계되어 제작되었습니다. 두꺼운 장갑, 장갑을 뚫는 탄약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주포, 크로리 컨트리 이동성이 독특하게 조합되어 판터 전차는 2차 세계 대전의 최고의 전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연합군의 독일 공장에 대한 끊임없는 공수 공격으로 독일 국방군은 양 보다는 질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 대의 판터 전차를 제작하는데 2,000 시간이 넘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판터 전차는 하나하나는 강력했지만, 종국에는 더 저렴한 대량 생산된 소련의 장갑력에 압도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6,000대의 판터 전차만 생산되었으며 이는 소련이 제작한 57,000대의 T-34에 비하면 극소량에 불과합니다.



66. T28 슈퍼 중전차[편집]


연합군의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을 패배시키려는 계획을 개발할 때 이들은 베틀린으로 가는 마지막 장애물은 지크프리트 방어선으로 알려진 644 킬로미터에 달하는 요새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18,000개가 넘는 강화 콘크리트로 된 벙커를 보유한 지크프리트 방어선을 뚫으려면 거대한 총이 달려 있으며, 반격을 막아낼 전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T18 슈퍼 중전차로 알려진 100톤의 거대한 것이 개발되었습니다. 105밀리미터 총이 매우 컸기 때문에 설계자들은 회전 포탑을 생략했습니다. 총열이 전차 전면에 구축되어, 전차 전체를 움직이지 않고 조준하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전차가 공격하는 모든 것은 한 방에 전멸되었습니다. 12인치 두께의 장갑이 적용되어 전쟁 기간 최고의 독일 전차에 장착된 88밀리미터 총까지 멈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프로토타입이 완료될 무렵에는 연합군이 재래 무기를 사용해 이미 지그리트 방어선을 뚫은 상태이었습니다. 해군이 이 헐크 전차를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 수송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원자 폭탄이 일본에 투하되면서 전쟁은 종료되었습니다.



67. 샤르 2C 슈퍼 중전차[편집]


참호전으로 1차 세계 대전은 교착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1917년에 이 교착 상태를 깨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는 당시 어느 전차와도 다른 샤르 2C 슈퍼 중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군은 참호를 건널 수 있고 독일의 지크프리트 방어선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전차를 원했습니다. 샤르 2C의 설계는 이 요건을 충족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기록을 깼습니다.

69톤의 슈퍼 중전차는 1943년까지 가장 거대한 전차로, 당대 어느 전차보다 더 큰 4.3미터의 너비로 참호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 전차는 유망해 보였으나 전쟁에 배치되기 전에 전쟁이 종료되었습니다.

샤르 2C 전차는 결국 18년 후인 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샤르 2C는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투에서 유용하다고 여겨지며 대부분 방어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수년에 걸쳐 슈퍼 중전차를 설계하고 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으나, 샤르 2C가 역사 상 전쟁터에 배치된 유일한 전차이었습니다.



68. 전쟁 코뿔소[편집]


코뿔소는 무시무시한 전쟁용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코뿔소는 사나운 성질, 위험한 뿔, 두꺼운 피부 덕분에 전쟁터에서 코끼리만큼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뿔소를 길들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코뿔소는 픽션에서만 전쟁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코뿔소를 전투에 배치하려는 생각은 수 백 년 전 독일의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인 알브레히트 뒤로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1515년에 유럽에서 발견된 최초의 코뿔소에 대한 천 년이 넘는 기록을 토대로 환상적인 목판화를 제작했습니다. 실제로 이 동물을 직접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코뿔소가 부정확하게 묘사된 부분이 여럿 있으며, 금속판과 비늘 투구로 덮인 가죽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예술적인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작품은 널리 재현되었으며, 대중의 인기를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69. 사이드카 기관총 군단[편집]


1차 세계 대전 발발 시점에 영국은 기관총을 이동성 있는 공격 무기로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인 사이드카가 완벽한 솔루션임이 입증되었으며 1914년에 영국 육군성은 사이드카 기관총 군단의 발족을 승인했습니다.

전투를 위해 모터사이클을 최적화 하는 과정에 사이드카의 수정도 더해 졌습니다. 장갑판이 덧대어 져서 적군의 포격으로부터 사수를 보호했으며, 빅커스 기관총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마운트도 장착되었습니다. 사이드카의 이동 시 이 마운트를 분리하여, 두 가지 위치에 재장착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적군 공격을 위한 전방에, 다른 하나는 안전한 탈출을 위한 후방이었습니다. 세 번째 위치인 위쪽을 사용하려면 사수가 사이드카 아래에 누워야 했으며, 이로써 기관총은 대공 무기로 변신했습니다.

사이드카 기관총 군단은 거의 모든 부대에 있었으며, 단지 군인이 아닌 모터 사이클 애호자, 기계공, 유명한 모터사이클 레이서까지 독특하고 다채로운 신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1916년에 이들의 전쟁터에서의 역할은 전차가 인계 받게 되었고, 이 실험적인 프로그램에서 초기에 전차에 탑승한 병사들은 사이드카 기관총 군단 출신이 많았습니다.



70. M46 판터[편집]


무자비한 장군이었던 조지 S. 패튼의 이름에서 유래된 M46은 미국의 중형 전차입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개발되었으나 그로부터 6년 뒤인 한국 전쟁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지상 병력에 합류한 순간부터 이 전차는 남한에 배치된 병력에 한 겹의 방어를 더해 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었습니다. 전쟁 이후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이 전차는 전투가 지속되는 와중에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M46은 배치된 동안 적군의 진화하는 전술에 맞서 싸우도록 즉석에서 여러 번 변경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부대가 바주카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가시철사가 전차 회전 포탑 주위에 장착되어 로켓으로부터 전차를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M46의 업데이트된 색상이었습니다. 전투 사이사이 주기적인 점검이 있을 때 병사들은 호랑이와 닮도록 이 전차를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손수 칠했습니다. 이러한 비범한 외향은 심리전에 있어 중국군을 위협하여 전투에서 우위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병사들은 믿었습니다.



71. 공성 코끼리[편집]


코끼리는 고대 전장에서 중장갑 전차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화약 시대인 16세기 후반에는 코끼리 등에 컬버린 화포와 회전식 진걸총을 장착하여 전장에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코끼리를 기계적인 역할에만 한정시켰고 19세기 무렵 공성 코끼리는 결국 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72. 코끼리 궁수[편집]


코끼리는 고대 전장에서 중장갑 탱크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잘 훈련된 전투 코끼리는 남동아시아에서 브리튼 제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장에서 활약했습니다. 현 시대의 한 역사가는 로마의 브리튼 침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저에게는 전투 타워에 궁수와 투석병을 태운 거대한 전투 코끼리가 있었다. 이 미지의 괴수가 강에 발을 내딛자, 브리튼인 들과 그들의 말은 달아나 버렸고 로마 군대는 피를 보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73. 코끼리 궁수?[편집]


팀 여러분, 만우절을 위한 새 병력을 설계해야 합니다. 아이디어 있으세요? 어디 들어 보죠.

'전차 안의 현자!'

'당장이요. 전차 모형 안의 현자요!'

'번개를 휘두르는 마법사 현자요!'

'현자…'

자, 그만하죠. 현자 제안은 그만 해 주시죠. 진심이신가요? 아무도 튜토리얼 담당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아이디어를 들어 보죠.

'박쥐 폭탄!'

뭐라고요? 아무도 실제로 박쥐를 이용해 폭탄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박쥐에 묶인 소위탄을 프로토타입으로 개발했어요.'

네? 아니요. 박쥐 폭탄은 안 합니… 또 다른 아이디어는요? 제발 현자를 전차에 태우게 하지는 마시죠.

'코끼리 궁수요?'

네, 벤, 코끼리 궁수 같은 플레이어 말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만우절 병력이 필요해요. 집중해 보죠.

'아니요. 말 그대로 코끼리 궁수요.'

… 완벽하네요.



74. 화차[편집]


화차는 15세기 조선 왕조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병기입니다. 손수레 형태의 설계와 경량 화살 탄약, 쉽게 분해 가능한 차체 덕분에 화차는 당시의 다른 대포들보다 기동성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문종은 화차의 발사 수를 최대 200개로 높이도록 명하여 더욱 강력한 무기로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문종 화차'는 빠르게 전국에 퍼졌고 발명 후 수백 년 동안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3년, 행주대첩에서는 단 3,400명의 조선 병사와 40대의 화차로 압도적인 숫자의 왜군을 아홉 차례나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75. 쌍권총 흉갑기병[편집]


흉갑기병으로 알려진 이 중무장 기병들은 후기 중세 기사에서 발전했습니다. 잘못된 흔한 선입견 중 하나가 화약 무기가 나오면서 갑옷의 효과가 없어지면서 그 중요성이 떨어졌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후기 르네상스의 정교한 판금 갑옷은 당시 원시적인 수준의 화기로부터 꽤 효과적인 보호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값싼 대형 보병 전형이 전쟁터에서 우세하게 되면서 갑옷의 굉장히 높은 비용이 설득력을 일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중무장 기병은 정교한 팔다리 갑옷을 벗고 몸통만 보호하는 흉갑만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흉갑기병은 적군이 검을 꺼내 다가오기 직전에 회전 휠을 사용하는 휠록이 장착된 총을 적군에 쐈습니다. 기병들이 말 위에서 반회전하여 적의 보병에게 발사하는 카라콜이라는 실험적 전술은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무렵에는 총을 소지하는 흉갑기병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근접 전투에 몰입했는데, 그 이유는 명예와 전투의 효과성 때문이었습니다.



76. 빅 레드 원 산탄총 사수[편집]


미국 제 1 보병 사단은 우드로 월슨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돕기 위해 사단을 보내기로 약속하면서 1917년에 발족되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실제로 사단이 전혀 없었으며, 4개의 보병 연대와 3개의 포병 연대를 합해 첫 번째 사단이 창단되었습니다. 첫 전투인 캉티니에서 독일군에 대항해 승리를 거두면서 미군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라졌고, 연합군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 사단은 병사들의 제복에 있는 눈에 띄는 숫자로 된 장식 때문에 빅 레드 원이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단은 2차 세계대전에서 2차 시칠리아 수륙양용 침공 및 D-Day 오마하 해안 상륙작전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아헨을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아헨은 독일에게 함락된 첫 번째 주요 도시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 이 사단은 16명의 명예 훈장 수여자가 포함된 가장 명예로운 미군 사단이 되었습니다.

빅 레드 원은 전쟁이 끝난 후 독일에 남은 유일한 미국의 전투 병력 이였습니다. 이 사단의 병사들은 1955년까지는 점령군으로, 이후에는 나토(NATO)의 재훈련 병력으로 독일에 남았습니다. 이 사단은 독일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전쟁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 외에는 창단 이래 모든 주요한 미국의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 빅 레드 원 산탄총 사수
  • 빅 레드 원 기관총 사수
  • 빅 레드 원 소총수
  • 빅 레드 원 박격포


77. 카로 벨로체 화염방사기 전차[편집]


카로 벨로체 CV-33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전차입니다. 이는 전간기동안 널리 사용된 소형 전차 중 하나이었습니다. 경전차보다도 더 작은 이 소형전차에는 움직일 수 있는 회전 포탑과 중장갑은 없었습니다. 대신 최소의 보호 장치와 고정된 기관총이 적용되었습니다. 이동성이 높고 생산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전차를 상대로 한 전투보다는 정찰 및 보병 지원에 더 적합했습니다.

CV-33의 화염방사형 버전에는 화염방사기가 장착되었습니다. 이동성 있는 화염방사기가 두려움을 살만한 것이기는 했지만 펌프라 약해서 운영 거리가 36미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탑승 병사들은 전속력으로 전차가 달릴 시 전차 자체에 불이 붙지 않도록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지 말도록 지시 받았습니다.

CV-33은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처음 활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전차는 1930년 대에 브라질, 중국, 프란시스코 프랑코 하의 스페인 국민군 등, 많은 부대로 수출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될 무렵 소형 전차는 구식으로 여겨졌지만, CV-33은 많은 전역의 전투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1945년 5월 말에 독일군이 항복할 때까지 이탈리아에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78. 불을 뿜는 토끼[편집]


중세 시대에, 웨일스 근처에 사는 유명한 토끼가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매우 포악한 성격을 가진 토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기사들이 단체로 이 괴수를 처치하러 동굴로 향했지만, 토끼의 흉포함을 얕보고 공격하다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결국 기사 한 명이 신성한 폭발물을 동굴 안에 던져놓고서야 마침내 토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79. 워 마스토돈[편집]


마스토돈은 선사시대에 존재했던 톨복숭이 매머드로 현대의 코끼리의 먼 친척이었습니다. 유골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었지만, 마스토돈은 주로 아메리카 북부 및 중부 지역에 살았습니다. 클로비스 민족 등, 초기 아메리카 북부 주민들이 과도한 사냥에 나서면서 마스토돈의 멸종에 기여했습니다. 인간은 마스토돈을 어떤 식으로든 길들이지 않았으며, 전쟁에서 이들의 등을 타고 적과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진짜 그랬더라면 멋졌을지도 모릅니다. 워 마스토돈을 사용해 우리 조상들이 뭘 놓쳤는지 확인해 보세요!



80. 윙드 후사르[편집]


윙드 후사르로 알려진 폴란드 기병은 1500~1625년 전투에서 패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폴란드가 수적으로 훨씬 더 불리했던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윙드 후사르는 원래 경기병 부대로 조직되었지만, 17세기 중에 중기병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형 나무틀에 독수리, 타조, 배꽃 깃털을 장식하여 등에 단 것이 특지이며, 주요 전술인 돌격으로 적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윙드 후사르는 중무장한 전사를 태우고 돌격한 후에도 빠르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특별히 사육된 말을 탔습니다. 이들의 말과 긴 창을 활용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의 전선을 무너뜨렸고 적의 대형이 완전히 붕괴될 때까지 전투 내내 이러한 전술을 여러 차례 감행했습니다. 윙드 후사르는 수많은 전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18세기 총포의 등장으로 전장에서 중기병의 효과가 줄어들어 결국 해체되었습니다.



81. 험비[편집]


1979년 미 육군의 만능 일꾼인 지프를 대체하기 위해 험비로 알려진 고기동성 다목적 차량 (HMMWV)의 개발이 의뢰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1983년에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6년 후인 미국의 파나마 침공 시 처음 전쟁터에 출현했습니다. 걸프전에 대한 언론 취재에서 험비가 눈에 띄게 다뤄지면서 민간 모델에 대한 수요도 생겨났으며, AM 제네럴은 소비자를 위한 허머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군에서는 기존의 지프 대신 사용하기를 주저했으나, 험비의 다용성과 튼튼함 덕분에 험비가 지프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차량은 낙하산으로 투입될 수 있으며, 어떤 지형이든 이동할 수 있으며, 기관총과 대전차 미사일 등, 다양한 무기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험비의 설계는 결국 이라크 전쟁에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애초에 큰 데미지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았던 험비의 경량 장갑은 이라크 반군의 급조폭발장치에 취약했습니다. 이에 따라 육군에서는 공격으로부터 뛰어나게 보호될 수 있도록 설계된 새로운 합동경량전술차량으로 험비 군단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82. 해병 바주카[편집]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동성 있는 대전차 무기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은 실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매우 효과적인 M1 바주카를 개발하여 1942년에 투입했습니다. 이후 여러 개선 모델이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결국 M20 슈퍼 바주카가 그 이름에 걸맞은 성능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1944년 후반에 전투에 투입될 준비가 되었으나, 한국 전쟁에 이르러서야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원래의 바주카와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변화는 2.36인치에서 3.5인치로 커진 튜브 직경 이였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NATO의 적이었던 중국과 북한에서 투입한 소련의 T-34 전차의 두꺼운 장갑을 뚫으려면 더 무거운 탄약이 필요했습니다. 미 해병은 베트남 전쟁 초기까지 슈퍼 바주카를 상용했으며 이후 슈퍼 바주카는 무반동포로 대체되었습니다.



83. 스파르타인[편집]


스파르타의 군사 기술은 고대 그리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모든 다른 도시 국가의 군대는 삶의 대부분을 농사하느라 보내고 전투 훈련은 산발적으로만 받는 시민군으로 이루어졌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파르타의 최상의 계층은 직업 전사이었습니다. 동등한 자라는 뜻의 호모이오이 직업 전사는 스파르타가 정복한 이웃 국가의 헬로트라고 불린 국유 노예가 재배한 식량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호모이오이의 경우, 농업이나 상업 종사가 금지외어서, 이들의 아내나 더 낮은 계급의 남성 스파르타인이 농업이나 상업을 맡았습니다.

이들의 잔인한 교육 시스템은 호모이오이를 공포, 고난, 고통에 단련시키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로써 장갑보병 전쟁에 필요한 기강과 인내가 키워졌고 스파르타 부대는 그리스인들 사이에 천하무적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레오니다스 왕이 이끈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용맹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스파르타는 기원 전 404년에 펠로폰네소 전쟁에서 아테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잠시 동안 패권을 잡았으나, 몇 십 년 내에 인구 감소와 형편없는 외교로 몰락했습니다.



84. 더스터 전차[편집]


m42 더스터 전차는 1953년에 미국 부대에 도입된 대공 자주포이었습니다. 더스터 전차는 대공 목적으로 구축되었으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지상군에 대한 효율성도 입증됐습니다. 그 막대한 화력으로 전쟁터에서 대혼란이 벌어졌으며, 전쟁터에서 예광탄이 용의 입김처럼 보였기에 베트콩은 더스터를 불의 용이라고 일컬었습니다. 1988년에 더스터 전차는 미군에서 제트 추진기의 새로운 시대에 대공포는 실용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퇴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