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네이션즈/역사적 배경/병력/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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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비아 궁수
2. 히타이트족 전사
3. 아시리아 기마 돌격대
4. 그리스 투창병
5. 페르시아 중장갑 기병
6. 훈족 전사
7. 대초원 기마 돌격대
8. 전투 코끼리
9. 중국 수포
10. 성전 기사
11. 로닌
12. 이탈리아 용병 돌격대
13. 코끼리 사육사
14. 테르시오
15. 헤센 기병
16. 구르카족
17. 베두인 돌격대
18. 화염방사 전차
19. 외인부대원
20. 야크트판처
21. 자유의 전사
22. BRDM-1
23. 전차 파괴 용병
24. 아일랜드 평화 유지군
25. T-62 전차
26. 직업 군인
27. 2K12 Kub
28. 중장갑 구축전차
29. 에티오피아 평화유지군
30. EE-T1 오소리오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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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비아 궁수[편집]


누비아는 이집트와 수단 공화국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나일 강 지역이었습니다. 누비아인 들은 당시 최고의 궁수였습니다. 당시 획기적인 엄지 반지를 사용해 손가락을 다치지 않고도 활시위를 끝까지 당길 수 있어서 상당히 먼 거리까지 활을 쏠 수 있었습니다. 고대 역사 동안 누비아와 이집트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누비아인과 이집트의 파라오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로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수 년 동안 누비아 용병들은 이집트 도시의 경비대와 경찰로 일했습니다. 이는 두 나라가 서로 얼마나 가까웠는지, 누비아 전사들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2. 히타이트족 전사[편집]


히타이트족은 기원전 1600년에서 1100년까지 지금의 터키와 비슷한 제국을 소아시아에 건설했던 고대 전사 부족입니다. 권력의 절정기에 히타이트족은 시리아를 관통하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위대한 이집트와 경쟁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제국은 주변에서 힘을 기르던 아시리아에 의해 패망하였습니다.



3. 아시리아 기마 돌격대[편집]


아시리아는 기원전 9세기에 이미 원거리 경기병을 파견하였습니다. 아시리아 궁수들은 단순하고 짧은 활을 사용하며, 말 등에 안장이나 등자 없이 담요 한 장만 걸치고 말을 탔습니다. 사거리는 짧았지만 무장이 얇았던 보병을 상대로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카르카르 전투(기원전 853년)에서 아시리아 왕 샬마네세르 3세는 왕 12명의 연합군(아랍과 이스라엘 포함)을 격파하고 적군 사상자는 25,000명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고 샬마네세르 3세의 증언뿐이라 역사학자들 대부분은 사상자 수를 크게 부풀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 투창병[편집]


'펠타스트'로 알려진 투창병은 그리스 군대의 척후병이었습니다. 이들은 적군을 방해하고, 아군의 이동 흔적을 감추며, 통제하기 어려운 그리스 팔랑크스의 측면을 보호했습니다. 펠타스트는 여러 개의 투창, 고리버들/가죽 방패, 비상용 근접전 무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스 투창병은 장갑 보병보다 무장이 저렴하였고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페르시아 인이나 동료 그리스 군인들을 상대로 싸우기도 하는 인기 있는 용병대였습니다.



5. 페르시아 중장갑 기병[편집]


페르시아는 멀리서 활을 쏘는 것이 아니라 적군과 직접 맞서 싸우면서 활을 사용하는 '중장갑' 기병을 최초로 만든 민족입니다. 아케네메스 제국(기원전 550~330년)에서 선보인 페르시아 기병은 판금 갑옷을 입었고 말도 가죽을 둘렀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두 세기 동안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상당한 부분을 지배했었습니다.



6. 훈족 전사[편집]


훈족은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동유럽으로 유입된 유목 부족이었습니다. 훈족 전사는 땅 위에서와 말 위에서 활과 투창, 철검을 사용해 싸웠습니다. 이들은 동서유럽, 로마 제국, 그리스에서부터 갈리아, 이탈리아 북부까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수년 동안 대륙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위대한 아틸라가 로마를 손에 넣지 못했던 유일한 이유는 굶주림 때문이었습니다. 훈족은 굶주림 때문에 철수해야 했습니다.



7. 대초원 기마 돌격대[편집]


역사상 최고의 경기병 궁수는 칭기즈칸을 따라 아시아의 대부분과 유럽 및 북아프리카의 상당 부분을 정복한 대초원의 기마병일 것입니다. 궁수들의 말들도 기병들처럼 얇은 갑옷을 입었고, 안장과 등자가 있어 사격하기에 안정적이었습니다. 기마병의 궁술은 최고 수준이었고 현존하는 그 어떤 기마병도 이들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8. 전투 코끼리[편집]


전투 코끼리는 무자비한 힘을 가진 무기입니다. 이들의 임무는 적에게 돌격해 병사들을 짓밟고 말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었습니다(말들은 흔히 코끼리를 보자마자 두려워합니다.). 코끼리들이 취약했던 대포와 기관총이 개발되기 전인 19세기까지 인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이 거대한 짐승을 처음 만난 유럽인은 알렉산더 대왕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을 파괴하던 도중 전투 코끼리 부대와 마주쳤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자신의 군대에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인도로 진군하지 못한 이유는 수천 마리의 전투 코끼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9. 중국 수포[편집]


10세기 중국에서 처음 선보인 화창은 가장 최초로 발명된 화약 무기 중 하나입니다. 화창은 화약을 넣은 대나무 통과 창에 걸어놓은 발사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속으로 발사하는 화창은 다수의 공격군이 수비병에게 근접하였을 때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치명적인 발사체들이 개발되면서 화창은 화승총과 같이 긴 무기들로 변화하였습니다.



10. 성전 기사[편집]


기독교 전사의 수도회인 성전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동안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유럽의 재력 있는 후원자를 많이 갖고 있던 기사단은 좋은 무기와 갑옷을 사용하였으며 세계 최고의 중장갑 기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습부대로 활약했던 기사단은 적진으로 돌격하고 보병대를 박살냈습니다. 몽기사르 전투에서 375명의 성전기사단과 2,000명의 보병은 10배가 넘는 위대한 살라딘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살라딘은 겨우 목숨을 건져 탈출했습니다.



11. 로닌[편집]


로닌은 지도자가 없는 사무라이 전사였습니다. 자신의 스승이 죽으면 사무라이들은 자살을 해야만 했습니다. 자살에 실패한 사무라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명망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로닌들은 보수를 받고 싸우거나 노상강도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로닌들이 상인들과 마차의 경호원이 되어 다른 로닌들에 맞서 자신의 보수를 지켜야 했습니다. 비록 사무라이처럼 무장하진 못했지만, 로닌 또한 검과 창을 사용하는 훌륭한 전사였습니다.



12. 이탈리아 용병 돌격대[편집]


콘도티에리(이탈리아 용병)는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고용되어 투입된 용병입니다. 이 중 '화이트 컴퍼니'는 존 호크우드 경이 이끌었던 유명한 용병대였습니다. 이들은 30년 동안 이탈리아 주변에서 싸웠는데요, 가장 유명한 승리는 1387년 베로나와 파두아 사이의 카스타그나로 전투일 것입니다. 파두아를 위해 싸웠던 호크우드는 대담한 기병 돌격대를 이끌고 숲을 가로질러 베로나의 측면을 잔인하게 공격하였습니다. 그 날 호크우드의 전쟁 슬로건은 카르네(살코기)였다고 전해집니다.



13. 코끼리 사육사[편집]


전투 코끼리와 동일



14. 테르시오[편집]


테르시오는 16세기에 처음 나타난 스페인 군대입니다. 창기병과 검사의 지원을 받는 화승총사(후에는 총사)로 구성된 이 연합 부대는 기병과 일반 병사를 모두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함께 효율적으로 일하고 다양한 무기를 편성해야 하는 복잡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테르시오의 병사들은 상당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17세기에 스페인 전군(보병 포함)은 모두 테르시오 부대로 조직되었습니다.



15. 헤센 기병[편집]


헤센은 독일의 지역입니다. 18세기 동안 많은 헤센 병사들이 지도자 프레드릭 2세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으며 미국 독립혁명 중에는 영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머스킷 총아 철갑옷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헤센 기병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은 '경기병'으로서 적진을 정찰하고 척후병과 포병대를 방해하며 혼돈에 빠진 보병대를 완전히 무찔렀습니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 영국은 헤센 군대를 북아일랜드에서 사용하였는데, 역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16. 구르카족[편집]


구르카는 네팔 소수 산악부족 출신의 전투 용병입니다. 강력한 힌두 전사들로 전통 무기인 쿠크리를 사용하여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용맹함으로 19세기 서양 열강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 네팔을 수호한 이래 영국, 인도, 싱가포르 등의 용병으로 현재까지 고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군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며 각종 전투에서 엄청난 기세를 보여 왔습니다.



17. 베두인 돌격대[편집]


베두인은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입니다. 전통적으로 낙타나 말을 타고 사막을 이동하며, 염소와 소를 목축하거나 대상이나 교역에 종사하거나 약탈을 생계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들 또한 말 위에서 칼과 소총을 쉽게 다루는 최강의 기마 전사들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모험가인 T. E. 로렌스는 1차 세계대전 중 베두인 부대를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18. 화염방사 전차[편집]


'플램판처'는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전차입니다. 이 불지옥 전차는 공격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개방된 공간이나 차량에는 취약하지만, 요새나 건물, 좁은 공간에 있는 적군에게 화력이 미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전장에서 엄청난 심리적인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19. 외인부대원[편집]


프랑스 외인부대는 그 작전 기록이 1831년 알제 점령서부터 최근 아프가니스탄이나 말리에서 있었던 분쟁에까지 이르는 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부대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보 제스트' 등의 유명한 소설이나 창작물에서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외인부대원은 'Français par le sang versé' 즉 '피를 흘린 프랑스인'의 원칙에 따라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20. 야크트판처[편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러 군대 가운데 독일군은 가장 발전된 기갑전 기술과 전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야크트판처는 구축전차, 즉 적 전차를 격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차였습니다. 구축전차는 회전 포탑을 없애 더 강력한 주포를 탑재 할 수 있었고, 매복에 적합한 낮은 차체 높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발전된 장갑기술과 제공권 장악에 힘입은 독일군은 브로디나 쿠르스크 등 동부 전선에서 벌어진 큰 전차전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었습니다.



21. 자유의 전사[편집]


자유의 전사는 외세에 맞서 싸우는 이를 가리킵니다. 이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탈 식민지화 시기, 제국 지배에 저항하는 봉기가 확산되던 수십 년간 사용되었습니다. 자유의 전사는 지배 세력에 대항하여 불리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릴라 전술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22. BRDM-1[편집]


1957 BRDM-1은 소련에서 개발한 수륙양용 정찰차로서 전 세계 동맹국에게 수출되었습니다. 이 모델에는 섀시 중앙에 차축 한 쌍을 접어 탑재하는 등 다양한 혁신적인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차축을 내리면 4개의 휠이 더 생겨 험한 지형을 운전할 수 있습니다. 수륙양용 기능을 위해 전면이 보트처럼 가늘게 설계되었고 프로펠러가 내장되어 있으며 완벽한 방수 기능을 제공합니다. 무장은 가볍지만 다양한 무기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1959년부터는 중기관총을 탑재했습니다. 변형 모델인 '대전차자주포' 일부에는 대전차 미사일 런처가 탑재되기도 했습니다.



23. 전차 파괴 용병[편집]


전차는 보병과의 교전, 기동력이 뛰어난 공격력 제공 등 근대 이전의 기병과 유사하게 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구축전차는 겉으로는 전차와 유사하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적군의 전차를 파괴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차에 야포나 미사일 발사기 등이 장착된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독특한 구축전차 중 하나는 영국의 1944 아처였습니다. 주포가 차체 후방을 향하여 전차를 돌리지 않고도 더 유리한 위치로 매복하거나 철수할 수 있습니다.



24. 아일랜드 평화 유지군[편집]


콩고 공화국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지 수년 만에 내전에 휘말렸습니다. "콩고 위기"가 한창 고조될 때, 카탕가 주는 콩고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고 콩고군은 UN에 '공정한' 군사 원조로써 평화 유지군을 요청하게 됩니다. 카탕가인 들은 이에 대응하여 자도빌의 광산 마을에 주둔한 UN군을 기습했는데, '알파 중대'로 알려진 155명의 아일랜드 평화 유지군은 박격포와 야전 화포로 무장한 5,000명가량의 적군을 상대로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6일 동안 항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5. T-62 전차[편집]


1960년대 초, 소련은 NATO의 혁신적인 장갑과 화력에 비해 T-55 전차가 구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신속하게 T-62 주력 전투 전차를 도입하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활강포를 채용한 T-62는 NATO의 신형 장갑을 관통할 정도의 운동 에너지탄을 발사할 수 있으며, 최신 버전의 T-62에는 피격 시 장갑의 작은 폭발물이 폭발하여 피해를 상쇄하는 폭발 반응 장갑(ERA)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현역으로 운용되어 온 T-62는 4차 중동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및 걸프 전쟁에서도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였으며, 아직도 많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군대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26. 직업 군인[편집]


19세기에 각 국가의 민병의 부상으로 입지가 좁아지기는 했지만, 용병은 전쟁터에서 계속 특정 틈새를 채워 나갔습니다. 특히 이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다수의 아프리카의 전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블랙잭' 슈라머와 롤프 슈나이너와 같은 용병은 콩고 위기, 비아프라 전쟁, 앙골라 내전에서 군을 이끌었습니다. 직업 군인들은 그들의 목표 대상을 군인으로만 한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용병 보브 드나르는 대통령 경호대의 지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모로 정부를 상대로 여러 차례 쿠데타를 이끌었습니다. 1981년에 매드 마이크 호어는 전세 항공기를 이용해 세이셸을 침공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 때문에 용병은 은밀한 거래와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현대 픽션 및 영화에서 수사적 표현으로 애용 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미국은 그 합법성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중동에서의 전투에 할리버튼과 블랙워터와 같은 민간 용병회사를 상당 부분 이용했습니다.



27. 2K12 Kub[편집]


2K12 Kub는 소련에서 개발한 지대공 미사일 방어 시스템입니다. 발사 장비는 자체 추진이며 트랙 위에 탑재되어 이동성이 높습니다. 여기에는 적의 항공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3대의 미사일, 헬리콥터, 고도가 낮거나 중간인 다른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Kub는 여러 발사 장비와 지원 차량으로 이루어진 포대 단위로 운영됩니다. 포대 별 한 개의 유닛에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조준 기능을 제공하는 '스트레이트 플러시' 레이더가 장착됩니다. Kub의 성공적인 투입의의 오랜 역사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시작되는데, 이 때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제공권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원래 새로운 Buk 시스템이 이를 대체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러시아, 이집트, 이란, 북한 등 십 여 개의 국가가 여전히 Kub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8. 중장갑 구축전차[편집]


아마도 20세기 중반에 서부 유럽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는 스페인이었을 것입니다. 해상 제국을 잃으면서 오랫동안 이류 지위로 강등되었던 스페인은 2차 세계 대전에 중립으로 남았으며, 1975년까지 프란시스코 프랑코라는 군 독재자가 군림했습니다. 그 결과 NATO에서 배제되었으며 군 장비를 팔고자 하는 수출업체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따라 AMX-30E 주력 전투 전차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1970년에 입수한 믿을 수 있는 프랑스 모델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한 전차이었습니다. 린시라고 불린 대체 디자인이 1980년대 후반에 제안되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기존 AMX-30E 함대를 현대화하는 전략에 밀려 폐기되었습니다. 이 모델은 결국 스페인 군의 전투에 전혀 투입되지 못하고 이탈리아의 센타우르 대전차 차량으로 대체되었습니다.



29. 에티오피아 평화유지군[편집]


에티오피아의 글로벌 외교에 강한 역사는 하일레 셀라시에가 국제 연맹에서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항의하며 유명한 연설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 전쟁에서 에티오피아인들은 특별히 칵뉴 대대에 소속되어 UN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들의 최초의 평화 유지 시도는 UN의 콩고 평화 유지군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소위 '블루헬맷'은 치안 유지에 제한적으로 성공했습니다. 평화유지군의 참여는 1974년에서 1991년까지 오랜 에티오피아 내전 기간 동안 중지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기간 동안 UN이 많은 평화 유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르완다, 다르푸르, 남수단, 여타 아프리카의 전쟁 지역에서 모두 에티오피아의 블루 헬멧을 목격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평화 유지군은 8,000명이 넘으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에티오피아와 이웃 국가 모두 에티오피아의 리더십과 지역 평화에 대한 의지 덕분에 혜택을 입었습니다.



30. EE-T1 오소리오 전차[편집]


브라질 민간 회사 엥게사는 1980년 대 초 주력 전차 시장의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새로운 전차를 찾고 있었고, 브라질 부대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EE T-1 오소리오는 대부분 기존의 전차와 비슷했으나, 기존 섀시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소리오의 복합 장갑을 가벼우면서도 효과가 높았으며, 기관총과 활강포를 탑재하고, 40 mph 넘는 속도로 이동했습니다. 덕분에 장갑력, 화력, 이동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1989년에 오소리오의 수출 모델인 EE-T2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찰에서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오소리오가 미국의 M1 에이브람스와 영국의 챌린저 1과 같은 성공적인 주력 전차를 이겼다는 점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걸프전에 개입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중에 사우디 정부는 이 주문을 취소하고 M1을 선택했습니다. 주요 바이퍼를 갑자기 잃은 엥게사는 파산했고 오소리오는 생산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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