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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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상원사 관대걸이.jpg

상원사 행궁의 유일한 흔적인 관대걸이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윤3월 17일 무자 2번째기사 1466년 명 성화(成化) 2년 상원사에 거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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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上院寺)에 거둥하니, 왕세자(王世子)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사산군(蛇山君) 이호(李灝)·영의정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좌의정 구치관(具致寬)·인산군(仁山君) 홍윤성(洪允成),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김수온(金守溫)·김국광(金國光), 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 등과 더불어 수가(隨駕)하였다. 임금이 행궁(行宮)에 돌아와서 신숙주·한계희·노사신에게 명하여 문과 시장(文科試場)에 나아가서 참시(參試)하게 하였다.

조선 세조 시기의 행궁. 강원도 오대산에 위치했다. 지금은 없다.


2. 상세[편집]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 올 때마다 사용했던 세조의 초수행궁이다. 현재 그 터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관대걸이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행궁의 유적이다. 행궁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는 현재까지 확인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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