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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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orward Unification logo.png 선진통일당 원내대표
제5대
김낙성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제6대
성완종

해당
,(새누리당에 흡수합당),
파일:external/sstatic.naver.net/201402141757577501.jpg
이름
성완종(成完鍾)
출생
1951년 8월 20일,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사망
2015년 4월 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
가족
배우자, 슬하 2남, 동생 성우종, 성석종, 성일종
학력
퍼시픽웨스턴대학 경영학 학사[1]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목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명예박사
병역
면제
종교
개신교(감리회)
의원선수
1
의원대수
19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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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정치인 생활
5. 선거이력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정치인.

2. 생애


1951년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계모의 폭력을 피하여 돈을 벌겠다며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서울특별시로 올라간 친모를 찾아 동생들과 상경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온갖 일을 하며 고생하였다. 1970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화물영업소를 차려 단돈 1000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77년 서산토건에 입사하였다. 이후 서산토건, 대아건설, 경남기업 등을 인수하여 현재의 경남기업을 이루었다. 경남기업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는데 이게 다름아닌 홍준표의 지역구였다. 한편 1990년 그의 고향에서 딴 서산장학재단도 만들었다.

3. 정치인 생활


성완종이 정치를 시작한 것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로, 당시 지역정당인 자유민주연합에 비례대표 2번을 받았으나, 당시 탄핵여파로 자민련이 비례대표 지지율 3%를 못 넘기면서 원내입성에 실패했다.[2]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후인 2007년 12월 31일 이명박 당선인에 의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 자문위원에 임명되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법제처 정부입법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선진당이 선진통일당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선진통일당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전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되자 새누리당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2014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한편 이명박 정부자원외교와 관련하여 비리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5년 4월 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북한산 형제봉에서 자살하였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일들은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 문서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이완구국무총리 등이 연루되어 논란이 되었다.
그의 막냇동생이자 환경설비 전문 업체 (주)엔바이오컨스 창업자 성일종은 형의 명예회복을 기치로 내걸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고, 형의 지역구인 충남 서산-태안에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되어 더불어민주당 조한기 후보를 1.8%차로 겨우 이기고[3] 당선에 성공했다.[4] 여담으로 조한기는 성완종에게도 2012년 패한 적이 있다. 형제가 쌍으로 다구리

4. 성완종 리스트


성완종은 자살하면서 자신이 로비했던 사람들의 리스트로 김기춘(10만 달러), 허태열(7억 원), 유정복(3억 원), 홍문종(2억 원), 홍준표(1억 원), 부산시장(서병수? 혹은 허남식?)(2억 원), 이완구(3천만 원), 이병기(2천만 원)의 이름을 남겼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 문서로.

5. 선거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2번)[5]
자유민주연합
-
낙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서산/태안)
자유선진당
39,615 (42.55%)
당선 (1위)
2012년 흡수합당으로 새누리당 합류
2014. 6. 26. 의원직 상실(공직선거법 위반)

[1] 성완종 자서전 <새벽빛>에서 1991년 PWU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기술했으나, 퍼시픽웨스턴대학(PWU)은 일반적인 대학이 아닌 미국의 대표적인 학위공장으로 현재는 폐교된 상태다.[2] 당시 자민련 비례후보는 1번 김종필 총재, 2번 성완종 회장, 3번 조희욱 등이 있었는데, 지지율 미달로 김종필 총재의 10선은 좌절되었다.[3]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출마로 여권 표가 분산되었다.[4]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가 있는 그 당이다.[5] 비례대표 1번이 바로 김종필이었으니 비례대표로는 가장 좋은 번호를 받은 셈이었지만 당세가 몰락해서 김종필마저 낙선한 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