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데리아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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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cuderia ferrari.png

스쿠데리아 페라리
Scuderia Ferrari
법인명
Ferrari S.p.A.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모기업
페라리
타이틀 스폰서
없음
프리미엄 파트너
쉘 plc | 산탄데르 은행 | VGW 홀딩스
창단
1929년 (94주년)
경기 참가 횟수
1076 경기[1](1073 경기 출발[2])
설립자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초 페라리 (Enzo Ferrari)
본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데나 현 마라넬로
CEO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베네데토 비냐 (Benedetto Vigna)
감독
팀장 & 총괄 매니저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레데릭 바수르 (Frédéric Vasseur)
스포팅 디렉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디에고 로베르노 (Diego Ioverno)
섀시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카르딜레 (Enrico Cardile)
PU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구알티에리 (Enrico Gualtieri)
전략 총괄
파일:인도 국기.svg 라빈 자인 (Ravin Jain)
물류 공급 & 제조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라카 (Enrico Racca)
드라이버
16. 파일:monaco-flag-round-icon-256.png 샤를 르클레르 (Charles Leclerc)[3]
55. 파일:UEFA ESP.png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 (Carlos Sainz Jr.)[4]
테스트 드라이버
39. 파일:UEFA ISR.png 로버트 슈워츠만 (Robert Shwartzman)리저브
99. 파일:UEFA ITA.png 안토니오 지오비나치 (Antonio Giovinazzi)리저브
-. 파일:UEFA ITA.png 다비데 리곤 (Davide Rigon)개발
-. 파일:UEFA ITA.png 안토니오 푸오코 (Antonio Fuoco)개발
링크
파일:페라리 로고.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차량
섀시
SF-23
엔진
페라리 066/10
경기 기록
드라이버 챔피언 (15회)
1952, 1953, 1956, 1958, 1961, 1964, 1975, 1977, 197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컨스트럭터 챔피언 (16회)
1961, 1964, 1975, 1976, 1977, 1979, 1982, 1983,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2008
레이스 우승
242회
포디움
802회
폴 포지션
249회
패스티스트 랩
258회
최근 시즌 성적 (2023)
3위(406 pts)

페라리의 포뮬러 1 엔진 컨스트럭터 참가 기록
파일:148824FB-52B1-4DA3-90A2-F5E1B4C3C959.png
첫 참가
1950 모나코 GP
레이스 참가 횟수
1080 경기(1076 경기 출발)
사용된 섀시
커티스 크래프트, 쿠퍼, 드 토마소, 미나르디,
달라라, 롤라, 레드불, 토로 로쏘,
스파이커, 포스 인디아, 자우버, 마러시아,
하스, 알파 로메오
레이스 우승
244회
포디움
813회
폴 포지션
251회
패스티스트 랩
267회
챔피언십 횟수
드라이버
16회
컨스트럭터
15회

1. 개요
2. 상세
3.1. 2023 시즌 경기 성적
3.2. 역대 스쿠데리아 페라리 차량
3.3. 역대 출전 드라이버 및 기록
4. 여담


1. 개요[편집]


파일:scuderia ferrari.png
파일:23페라리.jpg}}}
#EssereFerrari | #ForzaFerrari
포뮬러 1에 참가 중인 이탈리아 국적의 레이싱 팀. F1에서 알파 로메오 다음으로 가장 오래 된 레이싱 팀이며, '스쿠데리아' 는 이탈리아어로 '마구간'을 뜻한다. 1958 시즌부터 시행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이래 최다 챔피언 타이틀과 최다 그랑프리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문 팀이다.

2. 상세[편집]


1950년 포뮬러 1 탄생 이래 74년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살아있는 역사이자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력한 브랜드 가치와 헤리티지, 팬덤[5]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레이싱의 대명사로도 불리는 팀이다. 1929년 창립 이후 미하엘 슈마허, 니키 라우다, 키미 래이쾨넨, 질 빌르너브, 후안 마누엘 판지오 등 수많은 유명 드라이버들이 페라리를 거쳐갔고,[6] 현재도 F1 드라이버들이 페라리의 시트를 따는 것을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 페라리가 자동차 생산업체인 페라리를 만들기 전에 레이싱 팀을 만들었고 이후 레이싱 팀의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로드카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스쿠데리아 페라리 역사의 시작이다.[7] 페라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량의 앞 휀더에 부착된 방패 모양 엠블럼[8]에 새겨진 S.F가 바로 이 레이싱팀의 약자로, 이 팀의 존재 자체가 페라리에게 있어서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페라리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때문에 페라리는 본디 레이싱 팀에서 출발한 만큼 포뮬러 1을 비롯한 다른 레이싱 카테고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포뮬러 1에서 가장 많은 우승수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모든 해를 빠지지 않은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9] 위에서도 기술했듯이 다른 메이커와 달리 양산차나 슈퍼카를 팔기 위해 포뮬러 1에 출전하는 게 아니라 포뮬러 1에 출전하기 위해 차를 팔기 시작한 회사이니 당연한 것일지도.[10] 지금은 양산차 사업의 크기가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져 대기업이 되었지만 여전히 페라리라는 자동차 회사에 F1의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기 덕분인지, 한때 포브스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 2010년부터 2015년[11]까지 6년 연속으로 등재되었던 적도 있었고, 현재도 F1 팀들 중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12] 2010년대에 들어서 레드불이나 메르세데스 같은 팀이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어도 여전히 일반 사람들은 F1 하면 미하엘 슈마허와 빨간색의 페라리 레이스카를 떠올리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2023 시즌 기준으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로열 더치 쉘, 산탄데르 은행[13], VGW 홀딩스를 프리미엄 스폰서로 두고 있다. 2023 시즌 들어 하만, 뱅앤올룹슨, DXC 테크놀로지[14], 마리나 베이 샌즈 등 새로운 스폰서들도 많이 영입했다.

현재 페라리의 드라이버는 모나코 국적의 샤를 르클레르스페인 국적의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이다.


3.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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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역사에 대한 내용은 스쿠데리아 페라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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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23 시즌 경기 성적[편집]


<rowcolor#fff> 라운드
지역
드라이버 종합 순위 및 레이스 결과
컨스트럭터 순위 및 획득 포인트
샤를 르클레르
카를로스 사인츠 jr.
5위 206pt
7위 200pt
3위 406pt
1R
바레인 GP
P19 | DNF
P4
12pt +12pt
2R
사우디아라비아 GP
P7
P6
26pt +14pt
3R
오스트레일리아 GP
P20 | DNF
P12
26pt +0pt
4R
아제르바이잔 GP
P3 | 스프린트 P2
P5 | 스프린트 P5
62pt +25pt, 스프린트 +11pt
5R
마이애미 GP
P7
P5
78pt +16pt
6R
에밀리아 로마냐 GP 경기 취소
-
-
78pt
7R
모나코 GP
P6
P8
90pt +12pt
8R
스페인 GP
P11
P5
100pt +10pt
9R
캐나다 GP
P4
P5
122pt +22pt
10R
오스트리아 GP
P2 | 스프린트 P12
P4 | 스프린트 P3
154pt +30pt, 스프린트 +15pt
11R
영국 GP
P9
P10
157pt +3pt
12R
헝가리 GP
P7
P8
167pt +10pt
13R
벨기에 GP
P3 | 스프린트 P5
DNF | 스프린트 P4
191pt +15pt, 스프린트 +9pt
14R
네덜란드 GP
DNF
P5
201pt +10pt
15R
이탈리아 GP
P4
P3
228pt +27pt
16R
싱가포르 GP
P4
P1
265pt +37pt
17R
일본 GP
P4
P6
285pt +20pt
18R
카타르 GP
P5 | 스프린트 P12
DNS | 스프린트 P6
298pt +13pt, 스프린트 +3pt
19R
미국 GP
실격 | 스프린트 P3
P3 | 스프린트 P6
322pt +24pt, 스프린트 +9pt
20R
멕시코 GP
P3
P4
349pt +27pt
21R
브라질 GP
DNS[15] | 스프린트 P5
P6 | 스프린트 P8
362pt +8pt, 스프린트 +5pt
22R
라스베가스 GP
P2
P6
388pt +26pt
23R
아부다비 GP
P2
P18
406pt +18pt


3.2. 역대 스쿠데리아 페라리 차량[편집]


파일:ferrari-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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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차량 목록
1950년대
125 | 166F2-50 | 275 | 375 | 375S | 500 | 553 | 625 | D50 | 555 | 801 | 246 | D156
1960년대
156 | 158 | 1512 | 246 | 246P | 312 B2 | 1512 | 246 F1-66 | 312
1970년대
312 B | 312 B2 | 312 B3 | 312 B3-74 | 312 T | 312 T2 | 312 T2B | 312 T3 | 312 T4 | 312 T4B
1980년대
312 T5 | 126 C | 126 C2 | 126C2B | 126 C3 | 126 C4 | 156/85 | F1-86 | F1-87 | F1-87/88C | 640
1990년대
641 | 642 | F92A | F93A | 412 T1 | 412 T1B | 412 T2 | F310 | F310B | F300 | F399
2000년대
F1-2000 | F2001 | F2001B | F2002 | F2002B | F2003-GA | F2004 | F2004M | F2005 | 248 F1 | F2007 | F2008 | F60
2010년대
F10 | F150 | F2012 | F138 | F14 T | SF15-T | SF16-H | SF70H | SF71H | SF90
2020년대
SF1000 | * SF21
굵은 글씨 - 드라이버 챔피언 차량
기울어진 글씨 - 컨스트럭터 챔피언 차량
* 표시는 현역 차량


[각주]



3.3. 역대 출전 드라이버 및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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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시즌
드라이버
레이스 엔트리
레이스 스타트
우승

포지션

패스티스트 랩
포디움
포인트
월드 챔피언
1950~195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루이지 빌로레시
21
20
0
0
1
8
40
0
1950~195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알베르토 아스카리
28
27
13
13
10
17
106.5
2(1952, 1953)
1950
파일:프랑스 국기.svg 레이몬드 소머
2
2
0
0
0
0
3
0
195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도리노 세라피니
1
1
0
0
0
1
3
0
1951~1952, 1954~195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로 타루피
14
13
1
0
1
4
32
0
1951,
1954~1955, 1957, 196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호세 프로일란 곤잘레스
15
15
2
3
3
11
52[math(\dfrac17)]
0
1952~195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주세페 파리나
22
20
1
3
0
12
66[math(\dfrac13)]
0
1952
파일:프랑스 국기.svg 안드레 시몬
2
2
0
0
0
0
0
0
1953~1955,
1957~1958

파일:영국 국기.svg 마이크 호손
35
34
3
4
6
16
98[math(\dfrac9{14})]
1(1958)
1953~195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움베르토 마그리올리
6
6
0
0
0
2
4
0
195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피에로 카리니
1
1
0
0
0
0
0
0
1954~1955, 1957
파일:프랑스 국기.svg 모리스 트린티냥
16
16
1
0
0
4
30[math(\dfrac13)]
0
1954
파일:프랑스 국기.svg 로버트 만존
1
0
0
0
0
0
0
0
1955
파일:미국 국기.svg 해리 쉘
2
1
0
0
0
0
0
0
1955~1956
파일:벨기에 국기.svg 폴 프레레
3
3
0
0
0
1
9
0
1955~1956,
1958~1959,
1961
파일:벨기에 국기.svg 올리비에 겐드비엔
10
8
0
0
0
0
8
0
1955~195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
11
11
0
0
0
2
13.5
0
1956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후안 마누엘 판지오
7
7
3
6
5
5
30
1(1956)
1956~195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루이지 무소
15
15
1
0
1
5
32
0
1956~1958
파일:영국 국기.svg 피터 콜린스
20
20
4
0
0
9
47
0
1956
파일:벨기에 국기.svg 안드레 필레
1
1
0
0
0
0
0
0
1956~1957
파일:스페인국 국기(1945–1977).svg 알폰소 데 포르타고
5
5
0
0
0
1
4
0
1956~1961
파일:독일 국기.svg 볼프강 폰 트립스
26
25
2
1
0
6
56
0
195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체사레 페르디사
1
1
0
0
0
0
0
0
1958~1962
파일:미국 국기.svg 필 힐
31
31
3
6
6
16
92
1(1961)
1959~1960
파일:영국 국기.svg 클리프 앨리슨
7
6
0
0
0
1
8
0
1959
파일:영국 국기.svg 토니 브룩스
7
7
2
2
1
4
27
0
1959
파일:프랑스 국기.svg 장 베라
3
3
0
0
0
0
2
0
1959
파일:미국 국기.svg 댄 거니
4
4
0
0
0
2
13
0
1960~1961
파일:미국 국기.svg 리치 긴서
9
9
0
0
2
4
24
0
1960~1963
파일:벨기에 국기.svg 윌리 메어세
10
10
0
0
0
1
7
0
1961~1962
파일:멕시코 국기.svg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6
5
0
0
0
0
4
0
196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지안카를로 바게티
4
4
0
0
0
0
5
0
1962~196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로렌초 반디니
35
35
1
1
2
8
52
0
1963~1966
파일:영국 국기.svg 존 서티스
30
29
4
4
6
13
76
1(1964)
1963~196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루도비코 스카피오티
9
6
1
0
1
1
11
0
1964~1965, 1969
파일:멕시코 국기.svg 페드로 로드리게스
8
8
0
0
0
0
6
0
196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노 바카렐라
1
1
0
0
0
0
0
0
1965
파일:미국 국기.svg 밥 본두란트
1
1
0
0
0
0
0
0
1966~1967
파일:영국 국기.svg 마이크 파크스
6
6
0
1
0
2
14
0
1967~1969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크리스 에이먼
27
27
0
3
0
6
34
0
1967
파일:영국 국기.svg 조나단 윌리엄스
1
1
0
0
0
0
0
0
1968,
1970~1973
파일:벨기에 국기.svg 재키 익스
56
55
6
11
11
16
121
0
196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안드레아 드 아다미치
1
1
0
0
0
0
0
0
1968
파일:영국 국기.svg 데릭 벨
2
2
0
0
0
0
0
0
196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에르네스토 브람빌라
1
0
0
0
0
0
0
0
197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그나치오 기운티
4
4
0
0
0
0
3
0
1970~1972,
1974~1976
파일:스위스 국기.svg 클레이 레가조니
73
72
4
4
13
23
169
0
1971~1972,
1982
파일:미국 국기.svg 마리오 안드레티
14
12
1
1
1
2
16
0
197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난니 갈리
1
1
0
0
0
0
0
0
1972~197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아르투로 메르차리오
11
11
0
0
0
0
7
0
1974~1977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니키 라우다
58
57
15
22
12
32
242.5
2(1975, 1977)
1976~1978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카를로스 로이테만
34
33
5
2
2
13
90
0
1977~1982
파일:캐나다 국기.svg 질 빌르너브
67
64
6
2
8
11
107
0
1979~1980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조디 셱터
29
28
3
1
0
6
53
1(1979)
1981~1982
파일:프랑스 국기.svg 디디에 피로니
27
25
2
2
3
6
48
0
1982~1983
파일:프랑스 국기.svg 패트릭 톰베이
23
21
2
4
1
8
65
0
1983~1985
파일:프랑스 국기.svg 르네 아르누
32
32
3
5
3
11
79
0
1984~1988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미켈레 알보레토
80
80
3
2
4
19
138.5
0
1985~1986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테판 요한손
31
31
0
0
0
6
49
0
1987~1989,
1993~1995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게르하르트 베르거
96
96
5
6
9
24
182
0
1989~1990
파일:영국 국기.svg 나이젤 만셀
31
29
3
3
6
11
75
0
1990~1991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프로스트
31
30
5
0
3
14
105
0
199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지안니 모비델리
1
1
0
0
0
0
1
0
1991~1995
파일:프랑스 국기.svg 장 알레시
79
79
1
1
2
16
121
0
199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반 카펠리
14
14
0
0
0
0
3
0
1992, 199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니콜라 라리니
4
4
0
0
0
1
6
0
1996~2006
파일:독일 국기.svg 미하엘 슈마허
181
179
76
58
53
116
1066
5(2000, 2001,
2002, 2003, 2004)

1996~1999
파일:영국 국기.svg 에디 어바인
75
75
4
0
1
23
156
0
1999
파일:핀란드 국기.svg 미카 살로
6
6
0
0
0
2
10
0
2000~2005
파일:브라질 국기.svg 루벤스 바리첼로
104
102
9
11
15
55
382
0
2006~2013
파일:브라질 국기.svg 펠리페 마싸
140
138
11
15
14
36
789
0
2007~2009, 2014~2018
파일:핀란드 국기.svg 키미 래이쾨넨
162
161
11
10
7
23
1080
1(2007)
200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루카 바도어
2
2
0
0
0
0
0
0
200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5
5
0
0
0
0
0
0
2010~2014
파일:스페인 국기.svg 페르난도 알론소
96
96
11
4
8
44
1190
0
2015~2020
파일:독일 국기.svg 제바스티안 페텔
119
118
14
12
14
55
1400
0
2019~
파일:모나코 국기.svg 샤를 르클레르
104
102
5
23
7
30
1035
0
2021~
파일:스페인 국기.svg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
66
65
2
5
2
16
610.5
0





4. 여담[편집]


  • 섀시 코드 네임이 상당히 불규칙한 편이다. 이리저리 튀긴 해도 2000년대에는 'F2004' 같은 식으로 F 뒤에 해당 년도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나름대로 새 규칙을 만들어서 그것대로 잘 적용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마저도 2010년대 이후로는 그냥 자기네들 마음대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섀시 코드 네임 명이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 타 팀들[19]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 포뮬러 원 초창기였던 1960년대까지는 D50 등의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275 F1, 512 F1처럼 양산차 작명법처럼 세 자릿수 숫자에 F1을 붙이는 방식을 고수하였고 1970년대부터 한 숫자를 고정적으로 적용하여 312 B, 312 T, 312 T2, ... 식으로 뒤에 붙는 알파벳과 숫자로 모델을 구별하는 등 나름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물론 이마저도 양산차처럼 숫자들의 유래가 중구난방이다, 1985년 156/85, 1986년 F1-86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작명을 제멋대로 하기 시작한다.
    • 2000년대의 작명법이 깨진 후로 섀시명은 매번 달라지는데, 2009년엔 F60, 2010년엔 F10, 2011년엔 150° 이탈리아[16], 2012년엔 갑자기 예전의 작명법으로 회귀해 F2012, 2013년엔 F138, 2014년엔 F14 T였다. 2015년부터 SF로 시작하는 작명법이 자리잡았으나 이마저도 뒤에 붙는 숫자는 매번 다른 곳에서 따온다.
    • 2018년의 섀시 코드 네임은 SF71H로, 그냥 작년의 SF70H[17]에서 1을 더한 이름이다.
    • 2019년엔 SF90으로 점프했으며, 2020년에는 2018년처럼 SF90에 1을 더한 SF91이 되지 않을까하고 예상했었으나 SF1000으로 백의 자리도 아니고 천의 자리로 숫자를 점프시켜 버렸다.
    • 2021년에도 이를 이어받아 SF1000에서 SF21로 바꾸었다. F1 전문 유튜브 채널인 WTF1에서는 "네이밍 시스템을 매번 바꾸는 페라리 전통의 네이밍 시스템을 따랐다"고 평했다.
    • 이제서야 좀 년도를 섀시 네이밍에 붙이는가 싶더니, 2022년엔 F1-75로 바뀌면서 이젠 SF을 없애버리고 다시 과거에 F1이 앞에 붙던 때로 돌아가버렸다. 1947년에 125S의 엔진을 처음으로 점화한지 75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음 년도에는 SF-23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번엔 SF과 번호 사이에 하이픈이 들어가며 이번엔 2015년/2016년의 작명법으로 돌아가버렸다.
    • 사실 페라리가 생산하는 차량들의 코드 네임도 상당히 직관적이지 않은 편이다. 다른 회사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일관적인 이름을 붙이는데 비해, 페라리의 코드 네임은 그 나름의 규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봤을 땐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288 GTO-F40-F50-Enzo Ferrari-LaFerrari로 이어지는 미드쉽 하이퍼카 라인업의 네이밍도 중구난방.[18]
  • 자신들의 차량에 대해 자부심이 높기 때문에, 페라리 드라이버는 차가 구려도 차가 구리다고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알랭 프로스트가 그랬듯이[23] 차가 구리다고 대놓고 욕하면 아무리 레전드급 레이서라 해도 쫒겨나는 경우가 많다.니키 라우다는 제외[24]
    • 하지만 재미있게도, 역사적으로 보면 페라리의 경주차는 경쟁팀에 비해 구렸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엔진성능을 우선시하던 엔초의 고집[20]때문에 로터스를 필두로 한 영국 백야드 빌더 팀들에 미드십, 모노코크 섀시, 다운포스 등 기술의 도입에 모조리 뒤쳐졌던 1960년대 - 70년대도 있었고, 당장 2000년대 초중반의 전성기가 끝나고 2007년에 키미 래이쾨넨이 마지막으로 챔피언을 차지한 이후로는 매년 경쟁팀들에 비해 묘하게 나사빠진 차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시즌처럼 초반 똥구데기를 만들었으나 말미에 가선 끝까지 챔피언쉽 경쟁을 할 정도로 차 성능을 끌어올린 경우도 있다. 이런 딜레마는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인 <그랑프리>[22]에도 나오며, 론 하워드의 러시 : 더 라이벌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 전반적으로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의 구분을 철저하게 했다. 한 팀이지만 독립된 선수로써 경쟁을 하는 F1 안에서는 잔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 실제로 쫒기고 있거나 우승을 노리고 있을 때에 더 빠른 드라이버를 위해 다른 드라이버를 서포트 역할로 돌려 놓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슈마허-바리첼로, 알론소-마싸 시절에 이런 게 심했고 그만큼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최근엔 오히려 다른 팀들의 팀 오더가 더 심해지고 페라리는 두 드라이버를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는 입장이 되었다.
    • 그 중 유명하면서 욕을 엄청 먹고 있는 경우가 그 유명한 알론소-마싸의 페르난도 이즈 패스터 댄 유. 당시 마싸는 알론소보다 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랩 타임도 빠른 편이었지만, 알론소가 우승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팀은 교신으로 마싸에게 "알론소가 너보다 빠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라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팀 오더가 금지됐었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니 알론소가 뒤에 왔을 때 방어하지 말고 포지션을 내 주라고 돌려 말한 것이다. 물론 마싸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당시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자매품으로 과거 슈마허-바리첼로 시절 오스트리아 GP에서 챔피언십을 위해 미하엘을 보내 줘라라고 당시 팀 보스(장 토드)가 대놓고 요구한 경우가 있었다.
    • 공교롭게도 2018년 시즌에서도 독일 GP에서 앞서가던 키미에게 페텔에게 양보하라는 팀 오더가 있었다. 중계진들도 여기에 대해서 '2018년 버전 페르난도 이스 패스터 댄 유'라고 언급할 정도. 다만 여기선 래이쾨넨이 다음 번에는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요점만 말하라고 떽떽거린 것 빼고는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지만, 정작 자리를 비켜줬더니 1등으로 달리고 있던 페텔은 얼마 못 가서 방호벽에 부딪히고 리타이어, 독일 GP 우승은 해밀턴에게 돌아갔다(...).
    • 이와 가장 대조적인 팀이 레드불 레이싱으로, 레드불은 강팀 반열에 올라선 이래로 매년 팀메이트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매년 최소 한 번씩은 팀킬이 발생한다.그리곤 팀킬이 발생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음 그랑프리부터 팀오더를 연발한다 베르스타펜과 리카도가 드라이버로 있던 시절까진 그랬지만, 가슬리, 알본, 페레즈로 이어지는 세컨드 드라이버 라인업부터는 베르스타펜이 팀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퍼스트로 올라섰다. 가슬리와 알본은 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슬리는 알파 타우리로, 알본은 테스트 드라이버로 강등당했고[25]
    •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미하엘 슈마허의 전성기 시절 루벤스 바리첼로로, 상당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누가 봐도 슈마허의 서포터였다.[26] 사실 이런 서열 구분은 월드 챔피언을 다투는 팀들은 자주 쓰는 방법이긴 하다. 특히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은 팀당 2명의 선수가 있어도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이기 때문에 팀의 입장에선 둘 사이에 완전 자유 경쟁을 허락하거나 아니면 단 한 명에게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거나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유 경쟁의 경우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타이틀에 도전하는 팀들은 대체로 팀킬을 막기 위해 두 드라이버 사이의 경쟁의 여지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2007, 2008 시즌 때도 페라리는 2007년에는 키미를, 2008년에는 마싸에게 월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미카 해키넨이 챔피언이 되던 시절의 맥라렌도 데이빗 쿨싸드를 서포터 역할로 두었었다. 이는 쿨사드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부분. 그리고 해밀턴-보타스 체제의 메르세데스나 베르스타펜-페레즈 체제의 레드불에서도 팀 오더가 나온 바가 있었다. 특히 2021년 실로 오랜만에 승기를 잡았던 레드불은 페레즈를 예선부터 레이스까지 내내 윙맨으로 부려먹기도 했을 정도.
    • 어쨌든, 언제나 이런 팀 오더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F1이기 때문에[27] 페라리의 이런 확고한 철학(?)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보통 드라이버와 계약할 때도 미리 퍼스트 드라이버인지 세컨드 드라이버인지 정해놓고 싸인을 하거나[28] 빠르면 1~2년 사이에 두 드라이버 사이의 서열을 정리시키려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페텔을 영입하고 나서는 키미와 페텔이 배드민턴 친구(...)이기 때문인지, 혹은 페라리가 공식적으로는 퍼스트 세컨드 드라이버 체제를 버리겠다고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키미에게 세컨드 드라이버로서의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고 지원도 잘해주었다.
  • 페라리는 F1이 공식적으로 열린 1950 시즌부터 섀시 컨스트럭터로도 활동했는데, 당시 이탈리아 국적의 드라이버였던 클레멘테 비온데티(Clemente Biondetti)는 페라리의 V12 엔진이 아닌 재규어의 XK 3.4L 직렬 6기통 엔진을 페라리 166S 섀시에 얹고 참가한 적이 있었다.[29]

(이 팀의 마지막 전성기 시절)
  • 어느 팀이나 전성기와 침체기를 겪지만 특히 페라리는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상당히 오랜 기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단일 시즌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이다. F1은 1년에 20경기 안팎의 그랑프리를 치르게 되며, 매 경기마다 조금씩 피드백을 거치며 시즌 막판까지 업데이트를 한다. 이 과정에서 페라리는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버벅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07년에는 키미가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극적으로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는 [30]이러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유의 고집으로 인해 차량 개발이 망한 적도 있고, 차량이 잘 개발되어도 경기에서의 거대한 삽질로(...)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1976년 라우다, 1999년 슈마허, 2008년 마싸, 2017-18년 페텔 등 연속되는 불운으로 뒷심이 약해져 챔피언이 날아간 경우도 많았다. 최대 전성기였던 슈마허 시절도 슈마허와 로스 브론, 장 토드 등이 힘을 합쳐 몇 년간 팀을 싹 뜯어고친 결과물이었다. 물론 프론트 엔진에서 미드십 구조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1961년에 대단히 잘 적응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고, 라우다나 슈마허 시대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전성기도 있었던 만큼 이 팀이 절대 수준 떨어지는 팀은 아니다. 사인츠도 "페라리는 생각보다 훨씬 멋진 팀"이라고 칭찬한 바가 있다.티포시가 페라리를 욕하면서도 페라리를 못 끊는 이유
    • 2017, 2018년에도 시즌 중반까지 메르세데스와 대등하거나 다소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시즌 막판의 뒷심 싸움에서 메르세데스에 밀리고 말았다.
    • 심지어 이런 모습은 한 그랑프리 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의 아부다비 그랑프리. 단 한 번의 선택 미스로 한 시즌의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유독 다른 강팀들에 비해서도 이런 모습이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냥 팀의 특성(...)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축구를보다 F1으로 입문했다면 F1계의 맨유라고 봐도 좋을듯하다...
  • 또한 이 팀의 치명적인 고질병 중 하나는 중요한 상황에서 전략부의 대삽질로 말아먹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탑 3팀 중에서도 유독 페라리만 이런 일이 많다.2023년 현재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 위에서 말한 2010년 아부다비는 말할 것도 없고, 2017년 싱가포르에서 더블 리타이어를 하며 페텔의 챔프 가능성을 날려 버린 사건[31]이라든가, 2018년 일본 그랑프리 Q3에서 마른 노면에 인터미디어트[32]로 페텔을 9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다.
    • 2020 헝가리 GP에서 갑자기 타이어를 소프트로 바꾸라는[33] 오더를 페텔과 르클레르 둘 다에게 했는데, 경험도 많고 노련한 페텔은 미디움을 고집해서 미디움을 끼고 P6으로 경기를 마무리했으나[34] 신예 르클레르는 피트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인지 소프트를 장착해[35] 포인트 권 밖인 11등으로 떨어졌다(...). 왜 소프트를 고집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은데, 페라리는 잊을 만 하면 오더로 말아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
    • 2020 바르셀로나 GP에서도 페텔이 현재 끼우고 있는 소프트로 마지막까지 가자는 전략을 냈으나 피트월에서 묵살하였다. 페텔은 계속해서 푸시하라는 오더를 듣고 타이어 매니지먼트 없이 3랩을 소화했다. 하지만 오더를 번복하며 페텔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페텔은 당연하게도 극대노. 결국 예선때 사용한 것까지 포함하여 40랩을 소프트 타이어로 소화해내며 P7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였다.[36]페텔이 전략가를 해야 한다는 밈이 속출하고 있다
    • 2023 시즌의 마지막 레이스였던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는 메르세데스와 단 4포인트 차이로 컨스트럭터 챔피언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는데,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의 차를 세이프티 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피트인시켜 타이어를 교체하려는 도박수를 두었다. 그러나 결국 세이프티 카는 나오지 않았고, 의무 피트 스탑 타이밍도 놓쳐버리면서 결국 사인츠는 노포인트로 마무리하는 참극을 맞이했다. 결국 페라리는 전략 실패로 인하여 메르세데스와의 2023 컨스트럭터 챔피언 경쟁에서 2위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 2010년대의 경쟁자인 메르세데스와 비교하면 이 특성이 매우 두드러지는데, 메르세데스의 경우는 실버애로우 전쟁이 벌어졌던 2015년 및 2016년을 제외하면 칼날같이 정확한 작전구상으로 좋은 결과를 거둔 적이 많은 반면, 페라리는 터무니없는 미스로 결과를 날려버린 케이스가 많다. 이것 또한 팀의 특성으로 넘기기엔 고질병 수준.
  • 반대로 다른 팀에서 기껏 좋은 드라이버들[37]을 데리고 와서 전략이나 차의 성능으로 발목을 잡아버리는 것을 페라리의 팀컬러로 여기고 좋아하는 마조히스트 티포시들도 존재한다. 명문으로 유명한 맥라렌, 메르세데스, 윌리엄스가 다 그렇지만, 당장 차의 성능이 안 좋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줘도 팀 네임을 믿고 들어와주는 뛰어난 드라이버들이 많은데 그런 드라이버들의 통수를 치는것이 전통...
  • 원래 페라리 레이스카의 도색은 지금보다 훨씬 진한 와인색에 가까운 빨강이었다. 2020년 토스카나 그랑프리에 1000번째 GP 기념으로 들고 나온 리버리가 원래 페라리의 색이다. 컬러 TV 보급 초창기에 채도가 낮아 페라리의 레드가 까맣게 보인다는 것을 이유로 더 연해진 레드를 채택했고 이후 90년대부터 말보로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부터 더 연해진 레드를 사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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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01:26:56에 나무위키 스쿠데리아 페라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NART 참가 포함.[2] NART 참가 포함, 1950시즌 프랑스 GP 미포함.[3] 레이스 엔지니어는 자비에 마르코스 파드로스 (Xavier Marcos Padros)[4] 레이스 엔지니어는 리카르도 아다미 (Riccardo Adami)[5] 티포시라고 불리는 페라리의 팬덤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 중 하나로 불린다.[6] 선술한 드라이버들은 빌르너브를 제외하고 모두 페라리에서 챔피언을 달성한 드라이버들이다.[7] F1에 공식 엔트리된 이름도 심플하게 '팀', '레이싱'이 아닌 'Scuderia Ferrari' 라고 명시된다. 페라리는 F1 이외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모터스포츠에 참가했다. 지금도 참가하지만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이름의 팀은 보통 F1에 참가 중인 페라리 팀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F1 이외의 다른 카테고리 레이스에 참가할 경우엔 다른 이름을 쓴다. 대표적으로 르망 24시가 있는데 1960년대 포드 GT40과 붙을 당시엔 S.p.A Ferrari SEFAC라는 이름으로 출전했었고, 미국의 데이토나 24시 등의 경기에 N.A.R.T (North American Racing Team)라는 이름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실상 페라리의 워크스 팀으로 르망에 참가 중인 GTE 팀의 이름도 AF 코르셰 (AF CORSE)이다.[8] 오더를 넣을때 별도 요청시 엠블럼을 제거 하는것도 가능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9]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100% 참가한 것은 아니다. 모든 해에 참전을 한 건 맞으나, 1976년 시즌 오스트리아 GP 때와 같이 모든 그랑프리에 참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해에 참전을 한 것만으로도 이 팀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10] 이러한 행보는 맥라렌의 창업자 브루스 맥라렌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역시 레이싱을 위해 기타 사업을 시작했고 양산차 사업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11] 2010년은 공동 16위, 11년은 3계단 올라간 공동 13위, 12년은 2계단 하락한 공동 15위, 13년은 6계단 떨어진 21위, 14년 공동 21위, 15년은 14년도보다 11계단이 떨어진 32위로 해가 갈수록 순위가 하락되었는데, 이 다음 해부터 랭킹에서 빠지게 되었다.[12] 현재 대략 1조 4~5천억대로 추산된다.[13] 2010년대 초중반 페라리의 타이틀 스폰서였다. 이후 스폰서쉽을 중단했다가 같은 스페인 국적인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의 이적에 힘입어 2022 시즌부터 다시 후원한다. 사인츠의 개인 스폰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14] 버지니아 주 애쉬번에 본사를 둔 미국의 다국적 정보 기술 서비스 및 컨설팅 회사이다. 프리미어리그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빠르게 눈치챘을 수 있겠지만 다름아닌 맨유의 서브 스폰서이다.[15] Did Not Start[16]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을 기념하는 섀시명인데 원래는 F150이었다가 이거 때문에 포드에게서 고소를 당해 이름을 바꾸었다.[17] 설립 70주년 기념 네이밍[18] 참고로, 엔초 페라리의 정식 명칭은 페라리 엔초가 아닌 페라리 엔초 페라리이다. 그리고 라페라리는 페라리 라페라리이다.이뭐병[19]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 레드불, 윌리엄스 등. 페라리 다음으로 역사가 가장 긴 맥라렌은 설립자가 사망한 뒤로 팀 소유주, 감독이 여러 번 바뀌면서 상당히 혼란한 역사를 보냈는데도 작명법이 4번만 바뀌었고 그 내에서 체계적인 작명법을 유지한 것과는 상반되게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 혼자서 쭉 우두머리로 있었던 시절에도 중구난방이었다(...)[20] 공기역학은 스스로 엔진 하나 못 만드는 것들이나 신경쓰는 것이라는 투의 말을 남긴 적이 있다.지금은 둘 다 못한다 1960년에 한 드라이버가 250 테스타로사의 윈드실드 설계 때문에 최고 속도가 높게 안 나온다고 하자 했던 소리인데, 당시까지만 해도 에어로보다는 엔진이 끼치는 영향이 컸던 시기이긴 했기 때문에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내구 레이스계에서는 페라리의 전성기였어서 '에어로 따위'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됐던 시기이기도 했고. 비슷한 것으로, 재규어 E-타입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신형 엔진 직접 개발해서 쓰는데 쟤네는 구식 엔진 쓰면서 겉만 번지르르하다" 투로 비꼬았는데 이게 '엔초 페라리가 E-타입을 예쁘다고 인정했다'라고 와전된(...) 이야기도 유명하다.[21] 솔 바스가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22] 60년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촬영과 편집[21]을 자랑하는 영화로, 레이싱 팬이 아니라면 좀 지루하지만 레이싱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고전영화이다.[23] 1991년 페라리가 계속 삽질을 하는 상황에서 프로스트는 당시 차량인 642의 저조한 성능을 꾸준히 깠고, 결정타로 서스펜션이 맛이 갔던 일본 GP에서는 642의 끔찍한 성능을 두고 핸들링이 트럭을 타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프로스트는 이 당시에도 이미 3회 챔피언에 달하는 올타임 레전드였는데 비록 한 경기만 남아 있던 시점이긴 했지만 이 발언 때문에 시즌 도중 잘려서 실직자가 됐다.이후에도 페라리의 성능은 개선되지 못했으며 1년 후 프로스트는 윌리엄스로 이적해서 챔피언이 되었고 페라리의 성적은 더 하락했다[24] 차가 쓰레기 같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쫓겨나지는 않았다. 굳이 정정하자면 시즌 1승도 거머쥐지 못했던 1991년의 프로스트와는 달리 라우다는 차가 어떻든 간에 할 말 다하면서 페라리로 챔피언을 따 주었고, 그로 인해 엔초가 부들거렸지만 자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스트가 페라리에 있던 시절은 이미 엔초의 사후이기도 하다. 영화 러시 : 더 라이벌에서도 페라리 차량을 까는 장면이 나온다.[25] 이건 갓 데뷔한 신인에게 주행하기 극도로 어려운 차를 줘 놓고 적응 못한다고 충분한 시간도 없이 바로 내친 레드불의 잘못이 컸고 자신들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레드불조차 이건 인정했다.[26] 물론 실제로 슈마허가 바리첼로의 덕으로 그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것은 아니고, 실제로 바리첼로 덕을 본 경기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둘이 맞붙을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바리첼로에게 팀오더를 내렸다.[27] 팀오더가 순수한 경쟁을 부정한다고 하는 의견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라고 하는 의견으로 나뉜다.[28] 샤를 르클레르도 페라리에 들어올 때 감독 마티아 비노토가 페텔이 퍼스트, 자신이 세컨드라는 것을 확실히 했었다고 했다.[29] 아마도 이 엔진이 당시 양산차 최초로 200 km/h를 기록한 XK120의 엔진이어서 장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30] 2등인 해밀턴과 알론소와는 고작 1점 차이였다. 만약 맥라렌의 불화가 없었다면 챔피언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높다.[31] 물론 이는 팀의 삽질이 아닌 드라이버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성격이 다르다.[32] 초록색 타이어. 악천후용의 푸른색 웻(Wet) 타이어만큼은 아니지만 엄연히 빗길 전용 타이어다. 당연히 마른 노면용 슬릭 타이어들에 비해 느리다.[33] 레이스 시작부터 비가 약간씩 내리던 상태였는데, 비가 그치자 다른 팀들은 전부 미디움으로 타이어를 바꿨다. 왜 페라리만 소프트를 끼우라고 한 건지는 불명(...).[34] 미디움을 껴주지 않으면 레이스고 나발이고 던져버리겠다라는 투로 팀라디오를 던지면서 미디움을 극단적으로 고집했다. 보나마나 결론은 페텔의 경험이 빛을 발했고 트랙터를 이끌고 당당히 포인트권에 들었다.[35] 이후 도저히 안 되겠던지 타이어를 한 번 더 바꾼다.[36] 소프트 타이어의 일반적인 수명은 10~20랩 정도이다.[37] 펠리페 마싸부터 키미 래이쾨넨, 페르난도 알론소, 그리고 제바스티안 페텔, 최근에는 샤를 르클레르도 이들과 같은 절차를 밟는 중이다(...). 2020년에 카를로스 사인츠와 2021년부터 뛰기로 계약을 하면서, 사인츠의 팬들은 페라리에 간다니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사인츠도 이들과 같은 전철을 탈까 봐 페라리행을 싫어한다는 카더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