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삼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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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삼탁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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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9대 병무청장
엄삼탁
嚴三鐸 | Eom Sam-tack


파일:엄삼탁 병무청장.jpg

출생
1940년 5월 24일
경상북도 달성군
(現 대구광역시 달성군)
사망
2008년 2월 22일 (향년 67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본관
영월 엄씨 (寧越 嚴氏)[1]
재임 기간
제9대 병무청장
1993년 3월 4일~1993년 5월 20일
부모
아버지 엄기주(嚴基周), 어머니 성무호(成武鎬)
형제자매
3남 1녀 중 셋째
배우자
정용자
자녀
2남
학력
대륜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사회학 / 학사)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무역학 / 석사[2])
약력
국가안전기획부장 보좌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대통령비서실 국방담당보좌관
초대 재경 대구·경북 시도민회 회장
제9대 병무청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
제12대 한국씨름연맹 총재
새천년민주당 고문
새천년민주당 체육특별위원회 위원장
제9대 ROTC중앙회 회장
군사 경력
임관
학군사관 (3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65년~1990년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군인, 정치인.


2. 생애[편집]


1940년 5월 24일 경상북도 달성군(現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아버지 엄기주(嚴基周)와 어머니 창녕 성씨 성무호(成武鎬)의 딸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무역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북대학교 재학 중 학생군사교육단 제3기생으로 입교하여 196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하였다. 1969년부터 1972년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에 근무할 때 연대장이던 노태우와 인연을 맺었다. 전두환 정권 후기와 노태우 정권 초기 국군체육부대 제2대 부대장을 역임하였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노태우 정권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서동권 부장 보좌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고 한국민속씨름협회 회장을 겸임하며 비 하나회, 비 육군사관학교 출신임에도 승승장구했다.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있으면서 전국의 조직폭력배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우익단체를 결성했다고 한다.기사1,기사2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에 노력하였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1993년 초 병무청장에 임명되었으나 슬롯머신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경질되었다.# 이 당시 수사를 맡은 주임검사가 바로 홍준표였으며 재판 결과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5년 광복절 특사로 피선거권을 회복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3] 김대중 후보의 당선 직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진운이 좋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상대 후보가 바로 박근혜였기 때문. 박근혜가 측은한 눈빛으로 좌중을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은 감격하여 펑펑 울거나 심지어 이고 가던 나물 그릇을 엎어버린 뒤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향후 20년 간 한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할 '선거의 여왕'의 화려한 데뷔전이었고 엄삼탁은 20% 가까이의 차이로 패배했다. 청와대를 경비하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에서 근무하면서 박근혜와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보궐선거 당시 돈봉투를 뿌렸다는 여러 증언과 선거 과정에서 300억여원을 쓰고도 낙선했다는 증언이 줄줄이 나왔지만,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나 검찰은 수사 자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편 박근혜 후보 역시도 돈봉투 살포 증언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대구정치권의 초 거물인 박근혜를 건드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박근혜는 가만히 놔두고 엄삼탁만 수사하자니 형평성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두 후보 다 묻고 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으며 이후 새천년민주당 고문을 역임하였다.

2002년 사면 청탁을 대가로 8천만원을 받았다가 2005년 구속되었고# 2006년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2008년 2월 2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병인 당뇨로 별세하였다. 향년 68세.

사망한 후 유족들이 명의신탁 재산 반환청구 소송을 하면서 또다시 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3.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 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1998년 4월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대구 달성)[4]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20,563 (37.50%)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달성)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3,774 (38.60%)
낙선 (2위)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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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야공파-사직공계 30세 탁(鐸) 항렬. 엄홍길, 자전차왕 엄복동등과 본관이 같다. 사실 엄씨는 영월 엄씨 단본이다.[2] 석사 학위 논문: 우리나라 수출 Claim 의 실태와 그 대책에 관한 연구.[3] 엄삼탁은 DJ계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하던 사람이었기에 입당 당시 언론과 재야인사들 심지어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경악했다.1997.9.27 동아일보 사실 김대중은 박근혜도 화합의 차원에서 영입하려고 했다. 현재의 박근혜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박근혜가 거절한 것이 당시 민주당계에는 악재였어도, 장기적으론 호재가 되었다.[4] 전임자 김석원 의원직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