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펠 아드미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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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70 오펠 로고.png

파일:오펠 아드미랄.png

아드미랄 B 후기형 차량
Admiral

1. 개요
2. 상세
2.1. 1세대(1937~1939)
2.2. 아드미랄 A (1964~1968)
2.2.1. 파워트레인
2.3. 아드미랄 B (1969~1977)
2.3.1. 파워트레인
2.3.2. 판매량
3. 둘러보기

Opel Admiral

1. 개요[편집]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인 오펠에서 생산했던 승용차이다. 이름이 '아드미랄'로 표기되어 있으나 좀더 정확한 발음은 '아트미랄'이다.


2. 상세[편집]



2.1. 1세대(1937~1939)[편집]


파일:1937 오펠 아드미랄.png
1937년형 아드미랄

오펠 슈퍼 식스를 대체하는 차종으로 1937년 초 베를린 모터쇼 때 최초로 공개되었지만, 연말까지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생산 첫 해인 1937년에는 총 8대만 생산되었다. 해당 차량은 맞춤 제작으로 제조된 카브리올레 및 '리무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세단/살룬 사양도 존재했으며, 구급차 사양은 섀시, 엔진, 실질적인 장비 등이 적용되었다. 차량의 생산은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 데어 하벨에 위치한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해당 차량은 독일의 첫 아우토반 건설 붐과 겹친 시점에서 출시되었다.

파일:오펠 아드미랄 카브리올레.png
파일:오펠 아드미랄 카브리올레 구조도.png
오펠 아드미랄 카브리올레
오펠 아드미랄 카브리올레 구조도

세단 사양의 출시 당시 가격은 6,500 라이히마르크, 카브리올레 사양은 7,000 라이히마르크에 판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더 고급스럽게 차량을 꾸미고 싶어하던 소비자층을 위해서는 부퍼탈에 위치한 헤브뮐러에서 2+2인승 카브리올레 사양을 제조하기도 했는데 이를 8,450 라이히마르크, 6인승 풀만 세단의 경우에는 8,550 라이히마르크에 판매하기도 했다. 또한 드레스덴에서는 글래서라는 코치빌더가 만든 2+2인승 카브리올레 사양이 있었다.

당시 호르히,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가 차지하던 3.5L 차량 시장에서 오펠이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 출시한 차량이었으며, 이들보다 저렴한 데다 기술적으로 단순한 섀시 구조와 결합하기 용이해 전문 차체 제작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분리형 차체가 적용되었는데, 이는 이듬해 모노코크 방식으로 만들어진 오펠 카피텐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후륜구동 차량으로, 전장은 5,270mm, 전폭은 1,800mm, 전고는 1,710mm(세단)/1,630mm(카브리올레), 휠베이스는 3,155mm, 공차중량은 1,605kg이었다.

해당 차량의 파워트레인으로는 새로 개발한 74마력의 3.6L I6 엔진을 탑재했으며, 당시 쉐보레, 복스홀/베드포드에서 제작하던 I6 엔진과 유사한 것이 특징이었고[1] 오펠 블리츠 트럭과 공유하였다. 차량의 최고 속도는 132km/h였다. 여기에 70리터 연료 탱크와 약 5.6km/L의 연비를 보였으나, 거의 400km 정도 주행이 가능했다. 그로 인해 해당 차량은 편안하고 빠른 아우토반 크루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차체에 부착된 헤드램프를 가진 몇 안 되는 차량이었는데, 이전에 미국 크라이슬러 사에서 산하 브랜드인 드 소토를 통해 판매했던 에어플로우에 적용된 가능이기도 했다. 유선형의 후면부 디자인은 1936년캐딜락 시리즈 85 에어로 쿠페를 연상하는 형태였다고 알려져 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6,404대의 차량을 생산해 냈으며, 리무진 형태의 살롱 차체는 3,500대, 카브리올레 사양은 2,314대, 차량용 섀시는 총 590대 정도가 제작되었으며, 출시 이후 25%의 고급차 시장 점유율을 보였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1939년 10월에 생산을 다른 라인업들보다 빠르게 중단해야 했다. 그 이유는 군에서 해당 차량에 탑재되는 3.6L 엔진을 군용 트럭인 오펠 블리츠 3.5t 차량에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발발 직전에 해당 차량들을 전시 동원하면서 장교 및 참모들의 차량으로 활용하거나 B-필러 바로 뒤에 있는 차체의 뒷부분을 잘라내 구급차나 경트럭으로 개조해 사용한 바 있었다.

전후에는 오펠 카피텐의 2세대 차량이 해당 차량을 대체하였다.


2.2. 아드미랄 A (1964~1968)[편집]


파일:1964 아드미랄 A.png
아드미랄 A 초기형 차량

1964년에 2월에 첫 공개 후 5월에 생산되기 시작되었으며, 오펠의 KAD[2] 라인업 중 중간 포지션을 담당했다. 4.6L 쉐보레 V8 엔진을 탑재한 디플라마트 차량이 생산 3개월 후인 같은 해 8월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파일:후기형 아드미랄 A.png
아드미랄 A 후기형 차량

1967년 9월, 해당 라인업에 대한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으며, 모든 KAD 라인업에 문 아랫쪽 측면부에 펜더가 적용되었으며, 전면 윙 패널 아래에 차량명 배지를 재배치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여기에 ZF 사의 재순환 볼 조향 장치가 적용되었는데, 조향 칼럼 끝 부분에 재설계를 거친 '세이프티' 스티어링 휠과 함께 장착되었다. 차량의 전장은 4,948mm, 전폭은 1,902mm, 전고는 1,630mm, 휠베이스는 2,845mm, 공차중량은 1,445kg이었다.

총 55,876대가 생산된 후 1968년에 단종되었다. KAD A 시리즈의 총 생산 차량 수는 89,277대였는데, 상당량을 차지했을 정도로 셋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차량이었다.


2.2.1. 파워트레인[편집]


파워트레인으로는 2.6L 가솔린 OHV I6 엔진이 탑재되어 99마력의 최고 출력과 158km/h의 최고 속도를 낸 바 있다. 특이점으로는 자동 조정 유압식 철자가 적용되었다. 아드미럴 한정으로는 출시 첫 해에만 적용되었다. 1965년 9월부터는 새로 개발된 2.8L CIH형[3] 가솔린 I6 엔진을 탑재했으며, 최고 123마력과 170km/h의 속도를 냈다. 해당 엔진은 오펠 레코드와 같은 시기에 첫 선을 보인 4기통 CIH 엔진과 함께 병행 개발되었다. 이 시기는 전쟁 전부터 사용하던 사이드 밸브 엔진을 새로운 오버헤드 캠축 엔진으로 대체하고 있었으며. 체인 방식의 캠축은 여전히 로커 암을 사용하여 밸브를 구동시켰는데, 캠축 자체가 실린더 위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밸브에서 캠축이 직접 작동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4]

이 엔진이 탑재된 배경에는 외관 디자인 때문일 수도 있는데, 1962년에 출시된 1500 사양의 BMW 뉴 클래스NSU에서 만든 1970년폭스바겐 K70과 같이 엔진 베이를 비스듬히 구성하면서 엔진의 높이를 어느 정도 낮추었으며, 오펠 역시 유행에 민감했던 제품 개발 부서의 낮은 본네트/후드 라인 선호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965년 3월에는 전년도 8월부터 오펠 디플로마트의 기본 탑재된 4.6L 쉐보레 V8 엔진의 탑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해당 엔진에는 GM의 파워글라이드 2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이후 1967년 9월부터는 I6 엔진에도 파워글라이드 변속기가 옵션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1967년 9월에는 2.8L I6 엔진 사양에 새로운 이중 카뷰레터가 탑재된 HL 사양이 등장하면서 495 마르크[5] 추가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해당 사양은 최고 138마력의 출력을 냈다. [7]

오스트리아 시장 한정으로 1966년1967년 즈음에 2.4L I6 엔진을 탑재한 소수의 차량의 제조되기도 했다. 총 377대만 해당 엔진을 적용하였다. 이외에 쉐보레의 V8 엔진은 623대, 나머지 2.6L 및 2.8L 엔진의 구매는 31,318대/23,558대로 라인업의 98% 이상이 해당 엔진들을 구매했던 것으로 아려졌다.


2.3. 아드미랄 B (1969~1977)[편집]


파일:1969 아드미랄 B.png
아드미랄 B 초기형 차량

1969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다른 KAD 라인업인 카피텐디플로매트와 함께 공개되었다. 이 중 카피텐1970년 5월을 끝으로 단종되었지만, 아드미랄은 디플로마트 라인업과 함께 1977년까지 판매되었다. 미국 승용차와 같은 멋진 차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운전자와 마주하는 대시보드의 기능성은 상당부 희생이 이루어졌다. 당시 화려하고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차라고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오일 쇼크가 닥치면서 이루어진 1970년대 독일의 절제된 분위기와는 동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전 세대의 2,845mm 휠베이스를 공유했지만, 아드미랄 A 사양에 비해 41mm 가량 줄어든 4,907mm의 전장을 가졌다. 전폭은 1,852mm, 전고는 1,450mm, 공차중량은 1,475kg이었다. 서스펜션은 드 디옹 차축을 적용해 노면 유지 성능을 높였지만, 이전 세대 차량의 서스펜션 배치와 비교했을 때 제조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트렁크 공간 역시 줄어들었는데, 이는 시승 전 고객이 요청을 하기 전부터 알아차릴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제독 "B"가 더 저렴한 카피텐과 디플로머 범위의 최상단을 포함하는 비슷한 차체의 3개 차종의 일부로 도입되었지만, 카피텐이 1970년 5월에 철수하면서 사거리가 재구성되었다. 대신 제독의 장비가 덜 갖춰진 두 가지 버전이 사거리에 추가되었다.[9]

파일:후기형 아드미랄 B.png
아드미랄 B 후기형 차량 (후면부)

1972년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모델명이 전면 그릴에서 제거되고 오펠의 앰블럼이 확장되어 그릴 중앙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2.3.1. 파워트레인[편집]


1세대 차량의 2.8L CIH 가솔린 I6 엔진만 이월되었으며, 최고 130마력의 출력과 이중 다운 드래프트 카뷰레터가 장착된 사양 한정으로 최고 143마력까지 낼 수 있었다. 여기에 보쉬 사의 D-제트로닉 연료 분사 방식이 적용된 차량은 출력이 163마력까지 오르게 되었다. 오펠에서 제공된 최초의 연료 분사 엔진이 탑재된 차량이었으며, 당시 추세를 반영한 것이지만 가격이 이중 카뷰레터 사양에 비해 상당히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여기에 1세대 때 탑재된 쉐보레의 V8 엔진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제공되는 4단 수동변속기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미국 스타일의 자동차를 위해 제작되었던 파워글라이드 2단 자동변속기는 현지 사양에 맞는 3단 '스트라스부르크'(터보 하이드라매틱 180형 계열) 자동변속기로 대체되었다. 이후 1972년 1월부터는 연료 분사 방식의 차량 구매 고객에 대해서 자동변속기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두는 변경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당시 독일에서는 차량 연료에서 나오는 납을 억제하는 일반적인 추세를 따르던 상황이 잇따르다 보니 주유소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정상 및 고급 연료의 옥탄 수치 감소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제조사에서 모든 엔진 3종에 대해 압축비를 줄임으로써 3~5마력의 출력 감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2.3.2. 판매량[편집]


출시 첫 해인 1969년형은 9,399대 생산되었는데, 이는 KAD 라인업 중에서 과반을 차지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1964년에 출시된 아드미랄 A의 19,904대보다 절반 가량 감소한 수치였다. 그럼에도 당시 고급차 제조사에서 만든 고급 승용차들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바 있다.[8]

1970년1973년까지의 판매량은 연간 약 5,000대 수준으로 안정이 이루어졌으나,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한 타격이 크게 터지면서 판매가 급격히 감소했고, 1974년 오펠은 총 1,754대의 KAD 라인업을 생산한 상황 속에서 거의 대부분인 1,168대를 생산하였다. 1975년에 약간의 회복세를 거치긴 했지만, 판매량은 현저히 감소하게 되었고 새로운 투자도 아드미랄보다 아스코나와 같은 차량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976년부터는 해당 차량에 대한 수요가 점차 감소함으로 인해 적용 가능한 사양 및 적용 장비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말에 결국 아드미랄의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 잠시 동안 고급 사양인 오펠 디플로마트가 이어받긴 했지만, 1977년에 253대가 생산되었다는 기록 역시 존재한다. 1978년부터는 후속 차종으로 오펠 제나토어가 등장하면서 단종되었다. KAD B 시리즈 라인업 중에서 아드미랄은 36,522대가 제조되었으며, 그 다음은 오펠 디플로마트의 21,021대, 먼저 단종된 카피텐은 4,976대가 제작되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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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사실은 전쟁 도중 연합군과 추축국이 서로의 차량을 노획했을 때 알아낸 것이라고 한다.[2] 오펠 카피텐, 아드미랄, 그리고 오펠 디플로마트 라인업[3] 캠 인 헤드 엔진의 약자[4] 이러한 방식은 모기업인 미국 제너럴 모터스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앞서 말한 CIH로 알려져 있다.[5] 현재 가치 환산 시 약 105만원[6] 현재 가치 환산 시 약 710만원[7] 물론 이는 V8 엔진+자동변속기에 3,300마르크[6]를 내는 것보다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기는 했다.[8] 일례로, 2500/2800/3.0 라인업이 있었던 BMW1968년이 되어서야 6기통 세단 시장에 복귀했고, 1977년까지 6기통 엔진 차량은 총 222,001대의 생산한 바 있었다. 또 다른 6기통 엔진 탑재 차량이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280S/280SE/280SE/280SEL 사양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280,473대의 6기통 엔진 차량이 생산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