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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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국 선수와의 인연
3. 기요하라에게 고개 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
4. NPB 최초 상대 리그 구단 올킬 달성
5. 센트럴리그 유일 6연속 B 클래스 기록 없음
6. 전 세계 유일 같은 팀에게 파이널 시리즈 3번 피스윕
7. 4번 타자
8. 선수명 등록은 반드시 본명으로만
9. 품위 유지 조항
9.1. 뉴욕 양키스 이상의 용모 규정
9.2. 외국인 선수 인터뷰 규정
9.3. SNS 제한
9.4. 사생활에 대한 규제


1. 개요[편집]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각종 여담.


2. 한국 선수와의 인연[편집]


과거에는 이팔룡[1], 장훈, 김경홍, 김일융, 이승엽, 조성민, 정민철, 정민태 등 많은 한국인, 재일 한국인 선수들을 두고 있었다.

여러모로 자매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와 인연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재일 한국인김일융이 삼성에 발을 딛은 게 시초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종훈김한수, 김현욱과 삼성 출신 선수인 황두성은 요미우리 코치 연수에 다녀온 적이 있었고 이승엽도 한때는 치바 롯데에서 뛰다가 2006년 하라 감독 복귀와 요미우리 전력 증강으로 영입하였다. 요미우리 입단 첫 해인 2006년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41홈런을 치는 등[2] 맹활약 덕분에 시즌 후 무려 4년간 총 30억 엔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 이후 잔부상으로 인한 하향세가 이어지자 요미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2010년 계약 만료까지 이승엽을 데리고 있었다. 이승엽은 2011년 오릭스를 거쳐 2012년부터 다시 삼성에 복귀하여 2017 시즌 후 은퇴했다. 삼성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에서 3시즌간 뛴 적이 있던 김기태김기태도 있다. 공교롭게도 사고치는 꼬라지자매 구단과 같이 쌍으로 치고 다니는 중이다.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보다는[3] 스프링캠프지 미야자키와 오키나와를 같이 쓰는 두산 베어스와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고토 코지 코치 부임 이후로 아베 신노스케박세혁 선수가 오프시즌 기간 동안 훈련을 같이 하기도 하고, 고토 코치의 요미우리 컴백 이후 두산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오키나와 연습 경기에 초대받기도 했다. 실제로도 두산과 요미우리는 운영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수도 연고지, 순혈주의(~2000년대)[4], 직업 윤리 중시, 무조건 빅 볼을 추구하고 필요할 때 스몰 볼을 쓰는 방식 등.


3. 기요하라에게 고개 숙인 감독 & 코치들의 굴욕[편집]


위에서 설명한 순혈주의를 완벽하게 무시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기요하라 카즈히로. 요미우리 시절 파리그의 다른 팀 출신임에도 자기를 따르는 선수들을 모은 파벌을 결성했다. 이 파벌은 기요하라 군단으로 불릴 정도로 팀 내에서 위세가 높았으며 실제로 기요하라는 팀에서 왕 노릇을 했다. 감독이고 코치고 그를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요하라가 코치에게 자리 비키라고 반 협박을 해도 코치가 알아서 비켜주기도 했을 정도니...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요미우리에게 있어서는 타 팀 출신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휘둘려버리는 감독, 코치의 모습이 드러났으니 제대로 망신살. 더군다나 방송으로 찍던 말던 오다 코헤이를 대놓고 괴롭히는 기요하라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서 오다가 야구선수로서 기량 발전을 못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4. NPB 최초 상대 리그 구단 올킬 달성[편집]


여기서 올킬이라 하면 모든 상대 리그 팀을 일본시리즈에 만나 격파한 것이다. 일본시리즈 우승이 22회로 많은 데다 퍼시픽 리그 팀이 나름 골고루 올라와서 가능한 것이다. 반대편 사이타마 세이부도 13회 우승이 있고, 모든 팀을 만났지만 한신과 디엔에이에게 져서 2킬이 부족한 상황이다. 소프트뱅크와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승패를 주고받았고(당시는 난카이, 다이에였다), 그 후 세이부, 오릭스, 롯데, 닛폰햄, 긴테츠를 꺾으며 올킬 달성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후 오사카 긴테츠가 오릭스 버팔로즈로 합병되면서 사라지고, 도호쿠 라쿠텐이 들어왔기에 올킬이 박탈되었다. 그렇기에 라쿠텐 하나만 이기면 라쿠텐 들어오고 올킬로 회복할 수 있었으나, 2013년 일본시리즈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5]에게 지는 바람에 올킬 달성은 후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게다가 킨테츠가 오릭스 버팔로즈로 합병되고, 난카이, 다이에가 소프트뱅크로 바뀌면서, 진정한 올킬을 위해선 소프트뱅크, 오릭스 버팔로즈까지 격파를 해야 된다.

그 사이 2010년대에 퍼시픽 리그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무서운 기세로 센트럴 리그 팀들을 9년 만에 올킬해버리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2번째이자 현존하는 팀들 상대로는 유일하게 전 구단 격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와중에 요미우리는 2019년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에게 4:0 참패를 당하면서, 1959년 난카이와 대결해서 스윕패를 당한 것을 포함하여 일본시리즈에서 같은 팀에게 두 번 스윕패를 당한 유일한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다. 2020년 다시 한번 소프트뱅크에게 일본시리즈 스윕패를 당하며 이 기록을 하나 더 늘렸다.


5. 센트럴리그 유일 6연속 B 클래스 기록 없음[편집]


비밀번호란 나무위키 자체 기준, 6년 연속 하위권이다. 워낙 명문 구단 이미지도 있고, 실력도 크게 나쁜 적이 별로 없기에 비밀번호를 찍은 적이 없다. 이전엔 길어봐야 3년이었던 주니치와 둘이 자존심을 지켰으나 2013년 이후 주니치가 침체에 빠지며 기어코 비밀번호를 생성. 유일하게 비밀번호를 만들지 않은 센트럴 구단이 되었다.

한편 퍼시픽 구단에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여기에 해당하는 유일한 팀이다. 6자리 채우기 전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간간히 끊어냈다.


6. 전 세계 유일 같은 팀에게 파이널 시리즈 3번 피스윕[편집]


1959년 난카이 호크스에게 스윕으로 패한 후, 2019년 이름이 바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일본시리즈에서 같은 팀에게 두 번 스윕당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일본시리즈에서 또 다시 만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2019년보다 더 처참하게 털리며 스윕을 당하면서 자국리그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특정 팀에게 3번 스윕패를 당한 팀이라는 오점을 떠안게 되었다. 반대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특정 팀을 3번 스윕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7. 4번 타자[편집]


일본프로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4번 타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4번 타자들을 '제oo대 4번 타자'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 다만 1시합만 4번타자로 나섰어도 무조건 역대 목록에 포함되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가지기보단 이런 선수도 4번에 있었다 정도로만 봐 두는게 좋다. 당장 초대 4번 타자인 나가사와 후지오부터가 이러한 사례에 포함되며 요미우리 역사상 1시합 한정 4번타자는 15명이나 있다. 그 중 투수빅토르 스타르핀[6]이 11대 4번타자로 목록에 기재된 점도 특이점. 스타르핀의 경우는 당시 쓰던 일본식 이름인 스다 히로시(須田博)로 등록되어 있다.

나무위키 문서 등록 선수 기준



8. 선수명 등록은 반드시 본명으로만[편집]


이 팀 선수가 되면 오타 타이세이 이전까지 오직 본명으로만 선수 등록이 가능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 물을 수 있지만, 어느 리그든 굳이 본명을 등록명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예를 들어 등록명을 성씨를 안 쓰고 이름만 쓰는 경우도 꽤 있고[7] 심지어 아주 난해하지 않은 이상은 별명을 등록명으로 쓰는 것까지 허가해 준다. 미국은 대부분 본명이 워낙 길다 보니 적당한 별명이 있는 경우 별명을 등록명으로 쓰는 경우가 아주 흔하고, 한국도 이름이 너무 길어 이시온이란 이름으로 등록한 마리오 엔카르네이시온이나 이케빈이란 미국명으로 등록한 이헌주, 현역으로는 본명 대신 장빈이란 한국명으로 등록한 히로나카 시히로 등 아예 없지는 않다. 축구야 브라질 선수들 덕에 예시가 차고 넘치고, 농구도 가능은 하다. 거기다 일본은 로마자 등록이 가능하다 보니 구단이 작정하고 프로게임단처럼 ID 비스무리하게 등록명을 꽉 채우는 것도 규칙상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요미우리에서는 구단에서 막아서 등판엔 성씨를 써야 하고,[8] 등록명은 본명으로만 해준다. 단, 서양 선수인 경우 퍼스트 네임 부분을 약칭으로 등록하는 건 가능하며[9] 한자권 선수가 한자를 일본 음독이나 훈독으로 하는 건 된다.


9. 품위 유지 조항[편집]


구단도 '요미우리는 일본 야구를 대표한다'라는, 명문 구단의 자부심이 강하다. 선수들에게 대접을 잘 해주는 대신 타 구단에는 없는 품위 유지 규정이 존재한다.

이승엽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수염 못 길러.", "옆머리가 귀를 덮게 하지 마."[10]와 같은 용모 규정 부터 "껌 씹지 마.", "경기 중에 침 뱉지 마.", "귀걸이 하지 마.", "원정 경기 이동 시에는 정장을 착용할 것." 등 경기 외적인 행동에 대한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이 품위 유지 조항은 본래 명문화된 것은 아니었고, 요미우리 신문 초대 사주인 쇼리키 마쓰타로 회장과 구단주 와타나베 쓰네오 사장이 장발과 수염 등을 기르고 시합 중에 껌 씹거나 하는 불량해 보이는 태도를 싫어했기에 선수들이 알아서 자제했던 것으로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었고, 공식적인 룰은 아니었기에 무시할 선수는 무시하고 수염 잘만 기르고 다녔다. 무시하는 선수라고 해도 코칭 스태프가 어느 정도 눈치 좀 줘도 쌩깔 수 있는 베테랑급, 특히 선수 생활 말년에 잠시 들르는 타 팀 출신 베테랑[11], 외국인 선수들[12] 정도였지만 대표적으로 타 팀 출신이었던 야시키 카나메나 타카하시 나오키, 교진 원 클럽 맨이지만 나가시마 시게오의 허락으로 콧수염을 길렀던 포수 무라타 신이치.[13] 외국인 선수들은 더해서 삼성에서도 뛰었던 갈베스나 스킨헤드에 중국인 수염 스타일을 하고 나왔던 외야수 헨리 코토, 조니 데이먼처럼 갈기머리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다녔던 용병 타자 댄 글라덴 등등 많았다.

이게 품위 유지 규정으로 명문화된 것은 90년대 후반. 이때부터 아예 팀 내 규율로 못을 박아 버리며 우리가 아는 교진의 품위 유지 규정이 생겨났다. 이른바 "교진군은 항상 신사여야 한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규율이다.


9.1. 뉴욕 양키스 이상의 용모 규정[편집]


뉴욕 양키스가 수염 못 기르는 구단으로 유명하지만 요미우리는 이보다 한 수 위다. 양키스는 콧수염은 깔끔하게만 다듬으면 허용하지만 요미우리는 그것도 안 된다. 본래 60년대까지는 모든 프로야구 구단이 암묵적으로 수염을 금지했으나, 60년대 일본-미국 친선 시합에서 LA 다저스의 선수들이 수염을 기른 것을 보고 한신의 츠지 요시노리가 구단주를 설득, 콧수염을 허가받았고 츠지가 '수염 츠지'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아 상품이 잘 나가게 되자 구단들도 점차 규제를 풀었는데, 교진만은 수염 금지를 풀지 않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상술 했듯 요미우리 신문 사주 쇼리키 마쓰타로와 구단주 와타나베 쓰네오의 단정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취향 때문에 생긴 규정이다. 양키스의 그것도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보수적인 취향 때문에 생긴 것임을 생각하면 통하는 것이 있는 부분.

이러한 이유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14]알렉스 라미레스 등 원래 팀에서 수염을 길렀던 선수들도 자이언츠에 들어간 이후에는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수염 외에도 다음과 같은 용모 규정들이 있다.
  • 장발 금지: 단, 흑인 선수의 드레드록스는 허용. 흑인은 아프로 머리가 두피 안쪽으로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드레드록스로 땋아 내리는 것이라 건강상 허용한다.
  • 염색 금지: 알록달록하게 하는 게 금지고 새치나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는 것은 된다.
  • 스킨헤드 금지: 원래 대머리거나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불쌍한 선수나 외국인, 특히 흑인 선수는 예외. 흑인은 역시 드레드록스와 같이 아프로 머리가 두피 안쪽으로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예 밀어버리는 것이라 건강상 허용한다. 그 외 나카타 쇼처럼 물의를 일으킨 선수가 반성의 의미로, 혹은 부진한 선수들이 기합을 넣고자 할 때 종종 하는 1mm 정도의 고교 야구식 빡빡머리는 허용한다.
  • 문신 금지: 정확히는 문신이 보이지 않도록 할 것. 하는 것까지는 자유이지만 훈련이나 시합시에는 긴팔 언더셔츠로 가려야 한다.
  • 귀걸이나 목걸이 등 장신구 금지: 과거 키요하라가 스킨헤드에 귀걸이를 하고 나와서 논란이 되었고 구단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15]
  • 카메라 잡히는 곳에서 껌이랑 침 뱉기 금지: 원래 명목상으론 완전 금지인데, 실제로는 카메라에 안 잡히게 조심조심 뱉도록 한다. 플레이를 하다 보면 입에 흙이 들어가서 침을 안 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이동 중엔 반드시 정장 착용: 다만, 홈경기 출근 시에는 편한 사복을 입고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 유니폼을 입을 때 모자를 삐딱하게 쓰거나 윗단추 풀지 말고 단정하게 입을 것
  • 외인 선수는 구단의 허락 없이 일본어 인터뷰 금지(반드시 통역사 경유) : 터피 로즈가 쌍욕을 써가며 구단 전체를 싸잡아 디스한 사건 때문에 생겨났다.
  • 선수 등록은 반드시 본명으로만 할 것: 미들네임 제거 혹은 이니셜+성을 쓰거나 중화권이나 한국이나 북한 선수가 한자를 다르게 읽는 정도는 허용한다. 다만 오타 타이세이의 경우 이미 요미우리에 오오타 류라는 선수가 있어서 혼동이 우려돼 예외적으로 이름 타이세이로 등록했다. 이것도 구단 사상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건 기상천외한 별명이나 가타가나가 아닌 본명을 등록한 것이고, 엄연히 사정이 있기에 넘어간 것.

하지만 에릭 테임즈 영입 당시, 문신에 대해선 어쩔 방법이 없었기에[16] 요미우리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문신을 허용했다. 정작 테임즈는 1경기 만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당해버렸다. 사실 이전까지는 문신도 절대 금지였고[17] 문신한 선수는 긴팔 언더웨어를 입어 가리도록 했으나, 그나마 외국인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전통을 깬 것. 테임즈의 사례 이외에도 그 전에는 이적생인 마루 요시히로, 급기야 교진 팜 출신인 오카모토 카즈마 등이 목걸이를 하고 나오는 것을 허용하는 등 2010년대 들어서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러한 용모 규정 때문인지, 비시즌에도 FINEBOYS 등 패션잡지,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선수들의 사복 차림을 보면 어두운 색 계열을 선호하고 깔끔하게 잘 입고 다니는 편이다. 다만 코치의 경우 카메이 요시유키의 사례를 보면 비시즌 중 콧수염 기르는 건 살짝 봐주는 듯하다.


9.2. 외국인 선수 인터뷰 규정[편집]


그 외 외국인 선수들의 경우 자기가 아무리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통역을 통해서만 인터뷰를 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본어로는 인터뷰를 할 수 없다. 이는 터피 로즈가 공식 인터뷰에서 일본어로 요미우리를 대놓고 디스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 2005년 4월 26일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서 알렉스 라미레스가 친 큼직한 타구를 쫓아가다 잡지 못했다. 당시 요미우리 수비 주루 코치였던 히로타 스미오가 이 점을 두고 "수비는 발로 하냐?"라고 깠고, 여기에 화가 난 로즈가 히로타 코치의 멱살까지 잡으며 격한 언쟁을 펼쳤다. 경기 후 로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말리는 통역을 제압하고 기자들에게 일본어로 직접 "이거 기사로 내라. 오늘 경기 진 게 내 탓이라고 히로타 씨가 그랬다. 일본에서 10년이나 뛰었는데도 나에 대한 존경심이 전혀 없다. 투수가 저렇게 얻어터진 것도 내 탓인가? 투수도 나쁘다. 다 나쁘다. 자이언츠 이 좆 같은 새끼들. 난 자이언츠가 아주 싫다. 난 도쿄로 돌아갈 거다."란 폭언을 했다.

이후 이승엽은 인터뷰를 듣고 바로 한국어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통역사가 졸지에 출력전용이 되었고(...) 젤러스 휠러는 스프링캠프에서 일본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3. SNS 제한[편집]


2019년 하라 타츠노리 감독 취임 이후 SNS 관련 규정도 강화되어 고참 선수들을 제외하고 상당수 선수들이 시즌 중 SNS 업데이트를 중지하고 있었으나, 2021년부터 SNS 관련 규정이 완화되어 현역 선수들도 시즌 중 SNS 업데이트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외야수 시게노부 신노스케 선수는 자동차 유튜브[18], 투수 타카나시 유헤이 선수는 요리 유튜브를 개설하여 인기를 얻고 있다.

SNS 제한 해제의 효과는 엄청났는데, 선수들이 팬 서비스[19]로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이용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아주기도 하고, WBC에서도 대표선수들이 SNS를 업데이트하면서 팀에 잘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편. 오카모토 카즈마가 WBC 기간 중 인스타를 열었을 때는 개그 캐릭터답게 동료 선수들마저 사칭으로 의심했다(...).


9.4. 사생활에 대한 규제[편집]


교진에서 뛰기 위해서는 야구 외적으로도 사생활에 잡음이 없어야 한다는 건 덤이다. 이러한 룰을 지키지 않을 경우엔 아무리 성적이 좋고 인기 스타라 해도 용서가 없다. 3할 타율에 20홈런을 때릴 수 있는 유격수에다 교진 성골 스타였던 니오카 토모히로(二岡智宏)가 불륜 스캔들 한 번에 내쫓기듯 투수 하야시 마사노리와 묶여 닛폰햄으로 트레이드 당한 사례가 좋은 예. 당시 닛폰햄 팬들 사이에선 사고친 선수를 왜 데려오냐면서 꽤뉴 험악한 반응이 나왔고 실제 안타 갯수도 닛폰햄 이적 이후 전성기의 반으로 깎였다.[20] 단 예외도 있어서 야구 사설토토[21]로 문제가 되었던 타카기 쿄스케를 1년 자격 정지 후 다시 기용하여 요미우리 팬들에게도 이게 무슨 스포츠맨십을 중시하는 구단이냐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참고로 2013년에 불륜으로 인해 난리가 났던 스기우치 도시야는 성골도 아닌데도 트레이드 되지 않았는데, 스기우치는 트레이드를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에 가깝다. 10억 엔 이상의 초고액 잔여 계약이 남아 있는 외부 영입 FA + 어지간한 팀은 그냥 준대도 부담되는 선수인 데다 당해 성적이 좋은 선발투수여서 바꾸는 팀도 기둥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스기우치는 당시 나이 32세로 딱 전성기가 지나 앞으로 성적이 하락세일 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런 연봉은 초고액인데 앞으로 하락세가 예상되는 선수를 위해 코어 자원을 내주겠다고 나서는 팀이 없으니 트레이드를 못 한 것. 니오카는 트레이드되던 해 연봉은 2억 엔으로 스기우치의 절반 이하였고 닛폰햄에서 가서도 저 불륜을 빌미로 또 깎여서 주전 야수치고는 꽤나 저렴한 선수였다. 게다가 니오카는 불륜뿐 아니라 후배 이지메가 워낙 큰 건이라 스케일부터 달랐다. 사실 일본사회가 불륜문제에 관해 어느정도 관대한 분위기도 있고 이 룰을 만든 쇼리키 회장이나 나베쓰네 구단주나 둘다 옛날 사람인지라 ‘잘 나가는 남자에겐 여자가 여럿 따르는 게 당연한 것’이라 여겨 “여자 놀음”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털을 라이터로 태우는 건 걸면 형사로 처벌되는 범죄이지만 불륜은 민사의 영역이기도 하고.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품위에 어긋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불법 도박 논란으로 1년간 자격 정지를 당하고 돌아온 다카키를 다시 영입하거나 후배 선수를 폭행한 나카타 쇼를 무상 트레이드로 영입했다고는 하는데, 사실 교진이 이런 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공백의 1일 사건이나 기타 이런저런 불륜 등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를 입맛에 맞게 기용하는 등의 모습을 많이 보였고, 사실 이게 교진이 안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애초에 처음부터 대놓고 이미지 쌩까면 모르겠는데, 겉으로는 신사인 척 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더러운 짓 많이 한다고 까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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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프로야구 수많은 감독들 중 유일한 한국 태생 감독이자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다.[2] 홈런왕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고쿠보 히로키와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드러누운 뒤부터 집중 견제에 시달리다가 태평양 같은 나고야 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타이론 우즈에게 빼앗겼다.[3] 삼성은 오치아이 에이지 2군 감독, 세리자와 유지 전 배터리 코치 부임 이후로 오히려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교류가 늘어났다.[4] 요미우리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라는 조건이 추가되고(선수시절 성적까지 월등한 정도가 돼야한다.), 코치 경력만 긴 지도자는 1군 감독이 되는 게 어렵다.[5] 당장 스가노부터 라쿠텐에게 드라마틱하게 진 경험이 있다.[6] 다만 스타르핀의 타격성적투수 역대 2위인 446안타를 기록하고 은퇴시즌인 1955년에도 100타석 넘게 들어서서 .250대를 기록하는 등 꽤나 준수한 편이었다.[7] 가타카나로 써도 된다. 스즈키 이치로, 오무라 사부로(자이언츠 시절 제외)가 그랬다.[8] 2023년엔 유니폼에서 이름을 제거하여 사실상 무의미해졌다.[9] 이름이 긴 외국인 선수는 따로 약칭을 정해서 등록한다. 현재도 C.C. 메르세데스(크리스토퍼 크리스토모 메르세데스)나 데라로사(루비 데 라 로사)같이 이름이 길면 따로 약칭을 쓰거나 줄인다.[10] 최근엔 시게노부 신노스케같이 머리를 기르는 선수들도 나와 두발규정 관련해선 제한이 약간 풀린 듯하다.[11] 선수 생활 말년에 잠깐 영입되어서 1~2년 뛰다 가는 선수들은 어느 팀이나 대놓고 손님 취급이다. 어차피 타 팀에서 와서 팀내 사정이나 문화도 잘 모르고, 가르쳐 주기엔 연차도 최고참인 데다 한 1년~2년 하고 어차피 은퇴할 선수이기 때문이다. 타 중대 말년 병장이 사정상 1달 정도 같이 생활한다고 생각해보자.[12] 외국인들 역시 전성기 지난 베테랑들이 대다수고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왔기에 에초에 팀 내 문화나 사정을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어지간하면 1~2년, 길어도 4~5년 안엔 떠날 선수라 에릭 테임즈처럼 정말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규정을 안 지켜도 크게 개의친 않는 편이다.[13] 나가시마의 기행 중 하나로, 초년병 시절 무라타에게 "얼굴에 박력이 없으니 수염을 기르라"라는 조언을 해서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 당연히 일본 야구 그 자체인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가 한 말이니 구단주조차 어쩔 수가 없었다.[14] 오가사와라는 자이언츠가 수염 길러도 좋다고 한 엄청나게 드문 사람인데 자기가 알아서 깎고 다닌다. 이러한 규정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정돈된 콧수염까지는 봐주는데 그 이상은 금지다. 예를 들면 조니 데이먼은 보스턴에서 뛸 때에 길렀던 수염을 양키스 이적 후에 밀어버렸다. 무엇보다 수염 기르기가 의외로 귀찮아서 아예 밀어버린다.[15] 키요하라 본인은 이 일에 대해 자서전에서 2004년에 구단에서 나가시마 시게오의 아들+구단 OB라는 것 외엔 요미우리와 일절 관계없는 나가시마 카즈시게를 시켜 자신에게 요미우리 퇴단을 종용한 건에 분노하여 문신을 그리는 것으로 분함을 표출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스킨헤드+귀걸이를 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밝혔다.[16] 문신은 지우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기도하고 지우면 흔적이 남아 보기 흉하다.[17] 일본에서 문신에 대한 인식은 한국보다 훨씬 안 좋다. 깡패나 하는 것이라는 취급으로 대부분의 목욕탕은 문신한 사람은 출입 금지고 동네 허름한 목욕탕 등에서나 문신한 사람을 받아줘서 물어물어 찾아가야 한다. 또한 문신을 작게 해도 웬만하면 테이프 등으로 가리고 들어가야 하는데, 무한도전 오호츠크 해 특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홍철도 테이프와 수건으로 문신을 가리고 온천에서 녹화를 했다.[18] 요미우리 선수들도 자주 나오는데, 심지어 자기 남편이 시게노부를 닮았다는 히로시마 팬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19] 요미우리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팬 서비스가 좋은 구단으로 유명하다.[20] 사실 니오카는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 하나로 문책성 트레이드가 된 건 아니고, 그 전에 후배 선수인 야노 겐지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의 털을 라이터로 태우면서 그 후배 선수는 고통스러워하는데 낄낄 웃은 게 걸려서 구단이 발칵 뒤집어진 후 불륜까지 걸려 쫓겨난 것이다. 그 전까지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한 선수였기에 이 2연타 사고로 두 얼굴의 사나이&모나오카 등등으로 불리며 엄청나게 까였다. 닛폰햄으로 하야시 마사노리와 같이 트레이드됐을 때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울먹거리면서 인터뷰를 할 정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지만... 그리고 니오카는 닛폰햄에서 그저 그런 활약을 펼치다가 은퇴 후 2016년 요미우리에 2군 타격 코치로 복귀했다. 이때 니오카 다음 3순위로 뽑혔던 카토 켄은 백업 포수로 2군과 1군을 왔다갔다하며 니오카가 코치로 돌아온 2016년에도 선수로 뛰고 있었다. 참고로 니오카의 동기 중 1순위로 뽑혔던 건 우에하라 코지고 2018년에 요미우리로 10년 만에 복귀했다.[21] 야구 도박의 경우 KBO 리그도 방출 등의 강경한 징계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