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리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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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190대 교황.
2. 생애[편집]
호노리오 4세에게는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임 교황 마르티노 4세 때, 시칠리아 왕국 시민들이 기존의 군주였던 카를루 1세의 통치를 거부하고 교황의 동의 없이 시칠리아 왕국에 접근한 아라곤 왕국의 국왕 페드로 3세를 자신들의 군주로 내세운 사건이었다. 페드로 3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두 아들인 알폰소 3세와 하이메 2세가 각각 아라곤 왕국의 국왕과 시칠리아의 군주로 즉위해 왕가가 분열됨으로써 시칠리아의 상황이 변했다. 호노리오 4세는 일단 1286년 4월, 하이메 2세와 시칠리아 군주 즉위식을 주재한 주교들을 모두 파문하는 강경한 대응을 취했으나, 알폰소 3세에게는 온화한 자세를 취했다. 이후 우선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중재로 호노리오 4세와 알폰소 3세 간의 평화 협상이 개시되었는데, 당시 이미 고령이었던 교황은 협상이 끝날 때까지 오래 살지 못하고 결국 1302년 후임 교황 보니파시오 8세 때에 와서야 아라곤 왕국과 시칠리아 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호노리오 4세는 또한 당시 불안정했던 이탈리아 지역 정세를 안정화시키는 데에 주력했는데, 교황은 수년 동안 교황권에 맞선 몬테펠트로 백작 귀도를 물리쳐 교황권을 굳건하게 다지고 교황령 전역에 평화를 가져왔다. 교황은 또한 세금 징수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의 유력 은행 가문 출신의 인물들을 고용했다.
1285년 호노리오 4세는 일 칸국의 제4대 칸인 아르군 칸으로부터 사절단과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는 몽골군과 교회군이 서로 힘을 합쳐 무슬림이 득세하는 중동 지역을 토벌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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