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다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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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자영업자 출신 정치인.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금융담당대신으로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으로선 최초로 각료직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61년 도쿄도의 평범한 집안에서 출생한다. 어린 시절을 후추시에서 보내다 쵸후시로 옮긴 듯하다. 후추시 시라유리 유치원, 후추시립 제1초등학교에서 쵸후시립 제1초등학교로 전학, 쵸후시립 쵸후중학교 졸업후 게이오기주쿠대학 내부진학이 가능한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편차치가 76에 달하는 학교이니 상당히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고교 시절 어머니가 루푸스를 3년간 앓다 사망한 일이 국가 복지에 의문을 느끼고 정치를 지향한 계기가 되었다.
이어 내부진학으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에 진학하고 1984년 졸업하자마자 마쓰시타 정경숙 5기로 입소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파나소닉에서 일한 터라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당시 정경숙 동기가 다카이치 사나에로 첫 당선 시기도 똑같다.
1987년 정경숙 4학년이 다들 가듯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행정연수생으로 다녀오고 1988년 정경숙을 수료한다. 이후 정치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내와 함께 피자가게를 운영한, 자영업자 출신 정치인이다.
1993년 정경숙 출신이 제40회 총선에서 대거 정계에 진출할 때[1] 이토 역시 舊 도쿄도 제11구에 일본신당 소속으로 출마해 무려 20만표 이상을 득표하며 5명 선출자 중 1위로 첫 당선된다. 당시 32세였다.
1996년 제41회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후 도쿄도 제22구에 신진당 공천으로 출마, 일본사회당의 세습 2세 정치인인 야마하나 사다오를 격파하고 당선된다. 1997년 신진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을 거쳐 1998년 7월 자유민주당 입당 후 헤이세이 연구회에 가입했다.
2000년 제42회 총선에서는 자민당으로 이적한 뒤 비례 도쿄 블럭으로 단독 출마하고 지역구를 비운다. 2000년 통상산업 정무차관에 임명됐다. 2001년엔 자민당 e-Japan 특명위원회 사무총장, 경제산업부회장을 맡았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중용되기 시작했다. 2002년 10월 제1차 고이즈미 제1차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부대신 (금융담당)에 임명되었다.
2003년 제43회 총선에서 도쿄도 제22구에 출마하지만 야마하나 사다오의 아들 야마하나 이쿠오가 저번 총선부터 지역구를 굳히고 있던 터라 낙선하고 비례대표로 부활한다. 총선 후 내각부 부대신에 유임되는데 금융담당에 더해 경제정책담당까지 맡는다. 그리고 2004년 9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담당)에 임명되며 43세의 나이로 첫 입각을 한다. 정경숙 출신 첫 각료 배출이었다. 1986년 국회에 입성한 정경숙 선배 아이사와 이치로(오카야마현 제1구)도 못한 입각을 이뤄낸 것이다. 금융담당대신은 2005년 9월까지 역임한다. 대신 재임중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세계에 선포했다고 한다.
2005년 제44회 총선에서는 야마하나 이쿠오를 비례 부활도 못하게 깨부수고 당선된다. 당시 이토는 겨우 4선에 금융담당대신을 맡는등 주가가 한창 오른 상태인데다 44회 총선은 고이즈미의 혁신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 자민당이 압승한 선거였다. 당선 이후 중의원 재무금융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자민당 간사장보좌관 및 지역재생조사회장에 취임하여 나카가와 히데나오를 보좌했고 이후 2008년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사회보장담당)을 맡았다. 자유민주당 중소기업조사회장을 겸했다. 총리 보좌관으로서 연금, 의료 · 개호, 육아지원의 종합적인 미래상을 제시하고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추진했다. 2008년 자민당 총재선에서 이시바 시게루의 추천인을 맡았다
2009년 제45회 총선에서 수도권에 불어닥친 민주당 바람으로 낙선했다. 이후 간세이가쿠인대학 경영전략연구과 교수를 지냈다.
2012년 제46회 총선에서 야마하나 이쿠오에게 압승하며 복귀했다. 2013년 자유민주당 국제국장을 맡았다. 이후 2014년 9월 이시바 시게루 지방창생담당대신의 부탁으로 그의 보좌관을 맡는등 이시바 측근의 행보를 보인다. 그리고 그 탓에 아베 내각에선 내내 중용되지 못하였다.
2014년 제47회 총선에서도 야마하나 이쿠오를 낙선시켰다. 2016년 개각에 따라 대신보좌관 퇴임 후 자유민주당 2020년대회준비실행본부장 대리를 맡았다.
2017년 제48회 총선에서는 야마하나에게 비례 부활을 허용하며 당선되었다. 수월회이기 때문에 이후로도 역시 중용되지 못하였다. 2018년 자유민주당 경쟁정책조사회장, 2019년 중의원 동일본대지진부흥특별위원장을 맡는다.
2018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2020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모두 이시바 시게루의 추천인을 맡았다. 하지만 2021년 초에 수월회를 탈퇴하고 무소속으로 돌아갔다.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의 추천인으로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2021년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야마하나 이쿠오를 낙선시키고 당선되어 9선에 성공했다.
3. 선거 이력[편집]
4. 여담[편집]
- 취미는 테니스, 축구, 야구, 영화감상.
- 이시바 시게루와 친하다. 그와 똑같이 게이오고교-게이오 법학부 출신이기도 하고 이토 역시 한일의원연맹에 소속된 상당히 온건한 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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