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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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아들이자 하시모토 료고 전 후생대신의 손자이다. 현재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2. 생애[편집]
1974년 2월 5일, 일본 효고현 소자시에서 부친 하시모토 류타로 전 내각총리대신과 모친 하시모토 쿠미코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96년 게이오기주쿠대학 환경정보학부 인간환경코스를 졸업, 1998년 3월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정책·미디어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같은 해 4월 미쓰비시 종합연구소에 입사했고, 2004년에는 시즈오카대학 정보학부 정보학연구추진실 객원조교수에 취임했다.
2005년 8월 미쓰비시 종합연구소를 퇴사하고, 아버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의 정계 은퇴로 같은 해 9월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카야마 4구에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민주당 유노키 미치요시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석패율제으로 부활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2009년 제45회 중원선에서는 석패율제 부활 없이 완전 낙선했다.
2012년 제46회 중원선부터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현재까지 역임하고 있다.
2014년 9월, 제2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의 발족에 따라 후생노동대신 정무관에 취임, 2015년에는 자민당 외교부 회장을 역임했다. 2016년 8월엔 제3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의 출범에 따라 후생노동부대신을, 2017년에는 자민당 후생노동부 회장을 역임했다. 2019년 9월에 제4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의 출범에 따라 후생노동부대신에 재취임했다.
2021년,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의 여당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제49회 중원선 이후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3. 정치 성향[편집]
우익 성향으로 헌법 개정 찬성과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 또한 외국인 참정권과 여성 덴노의 취임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수정을 반대하고 일중우호연맹 소속으로 있으며 극우 세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아버지인 하시모토 류타로의 정치 성향을 이어받은 듯 하다.[7]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여담[편집]
- 현 배우자인 지미 하나코와는 당시 후생노동부대신과 대신정무관으로 코로나 대응을 함께하며 친분을 쌓다가 결혼한 것이다. 참고로 불륜이다.# 전처와의 사이에 아이를 4명 두었지만 소문이 좋지 않은데 가쿠의 가정폭력이 불화의 원인이라고 한다.
- 가와이 안리와 대학 동기여서 그 인연으로 아버지 하시모토 류타로가 가와이 안리와 가와이 가쓰유키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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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6~1962, 중의원 의원, 후생대신, 문부대신, 행정관리청 장관 역임.[2] 1976~,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내각 지방참생, 만국박람회,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대신, 재선 참의원 의원으로, 아버지인 지미 쇼자부로는 자민당 탈당 후 국민신당에 입당해 민주당 정권 시기(간 제1차, 제2차 개조내각 및 노다 내각, 제1차 개조)에 금융담당대신을 맡았다.[3] 하시모토 가쿠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로 지미 하나코가 입양했다.[4] 1869~1938, 일본 제국의 기업인.[5] 1945~, 중·참의원 의원, 제2차 하시모토 개조내각에서 우정대신을 맡았으며, 민주당 정권 시기(간 내각, 제1차, 제2차 개조내각 및 노다 내각, 제1차 개조)에 금융담당대신을 역임했다.[6] 석패율제 비례당선.[7] 아버지인 하시모토 류타로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한 적이 있지만, 과거사 문제에 있어 온건한 성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