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시오 에이이치로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공인회계사 출신 정치인.
2. 생애[편집]
1977년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태어났다. 친가는 생선 가게를 하고 할아버지는 주판 학원을 하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다. 그래도 공부를 잘했는지 니가타시립 사카이히가시 초등학교와 니가타시립 사카이와 중학교를 거쳐 현내 최고 명문인 니가타현립 니가타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당 학교는 편차치 71-73이다.
이어 도쿄대학에 진학하여 재학중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하고 2001년 9월 도쿄대학 경제학부 졸업후 10월 일본 최대 회계법인인 신일본감사법인에 합류하여 4년간 근무하였다. 일본은 수습기간을 한국보다 더 긴 기간 근무해야 자격이 인정된다.
2005년 독립하여 고향에서 공인회계사, 세무사, 행정서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2005년 치러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민주당 공천으로 니가타현 제2구에 출마한 그는 지역의 터줏대감인 자유민주당 곤도 모토히코에게 패했지만 10만표 이상을 받아 비례부활했다.
그리고 민주당세가 매우 강했던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압승하여 곤도를 낙선시키고 당선되었다. 이후 노다 요시히코 3차 개조내각에서 2012년 농림수산대신 정무관에 취임했다.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지만 이 선거는 민주당에 역풍이 불었기 때문에 자민당 신인 호소다 겐이치에 밀려 낙선하지만 비례부활하였다.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호소다에 밀려 낙선하지만 비례부활하였다. 이때 표차는 겨우 102표로 석패율이 99.85%로 역대 최대였다. 2015년 1월 치러진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호소노 고시의 추천인 명부에 이름 올렸다.
2016년 민진당에 합류, 2017년 4월부터 민진당 니가타현 총지부연합회 대표를 맡는다. 같은 해 치러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가 민진당을 사실상 해산하고 희망의 당에서 출마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였지만 와시오는 희망의 당 합류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자민당 호소다 겐이치를 제치고 당선된다.
선거 후 11월 중의원에서 치러진 수반 지명 선거에선 자기 자신에게 투표하였으며 이후 탈당 신고서가 수리되고 자민당에 가깝게 활동한다. 2018년 치러진 니가타 시장선거에서도 자민당 참의원 출신 후보를 응원했고 결국 2019년 3월 자민당에 입당을 신청하였고, 호소다 겐이치가 니가타현 제2구 지부장을 계속 맡는 조건으로 입당이 수리되었다. 2019년 9월 민주당 - 민진당 출신자들에 온건한 편인 지수회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10월 중의원 환경위원장에 취임했다.
2020년 6월 갑자기 입당때 받아들인 조건을 통수치고 차기 총선 니가타현 제2구 출마를 선언했으며 9월 스가 내각이 들어서자 외무부대신에 취임했다. 이후 1년 뒤 기시다 내각 성립시 스즈키 다카코에게 인계하고 외무부대신직을 물러난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호소다 겐이치가 니가타현 제2구에서 출마하고 와시오는 비례 호쿠리쿠 블럭 단독 출마로 결정되었다. 선거 후 당선 확실이 떴다.
이후 자민당 부간사장으로 취임했다. 젊은 나이에 6선의 선수를 쌓았지만 자민당에 들어오며 지역구도 뺏기고 당내에 기반이 없으니 짬 인정도 잘 못받아 신진 의원이 맡는 부간사장을 맡게 되었다.
10증 10감법으로 인해 니가타현 의석 수가 하나 줄어들었는데, 기존 2구의 남부 지역이 신 4구로 획정되면서 신 2구의 호소다 겐이치 의원과의 지역구가 엇갈리게 되었다. 대신 기존 5구에서 석패율 당선된 이즈미다 히로히코 의원과 경쟁하게 됐는데, 이즈미다 의원이 현의원으로부터 현금청탁을 요청받는 사건이 발생하며 자연스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니가타현 제4구 지부장으로 선임되었다.
3. 선거 이력[편집]
4. 여담[편집]
5.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14:53:29에 나무위키 와시오 에이이치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