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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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35년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 천곡리(現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에서 서포 김재식(金在植)과 해주 오씨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농서국민학교, 울산제일중학교, 울산농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기도 인천시장 등의 관료로 근무하였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대통령비서실 정무제2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심완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6년 민주정의당 사무차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국민당 차화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2] 1993년부터 1995년까지 BBS불교방송 사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송철호를 꺾고 당선되었다. 임기 중 1998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호남 출신이 울산시장에 당선되어서는 안된다"고 연설하여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후보자 비방죄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고 위법성도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7년 강삼재의 후임으로 신한국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을 흡수하여 한나라당이 되고서도 1998년까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사무총장으로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이끌면서 안기부장 권영해에게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등 공기업에서 대선 자금을 걷어줄 것을 부탁한 혐의로 불구속됐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송철호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2002년 7월 10일, 지병인 골수암으로 별세하였다. 사망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 역시 종결됐다.
아내 이연숙 여사와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뒀는데, 그 중에 장남이 김영세 연세대 교수이며, 맏며느리는 미래통합당 이혜훈 전 국회의원이다.
3.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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