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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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중구·남구)
제20-21대
곽상도

제21대
임병헌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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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4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임병헌
林炳憲 | Lim Byeong-heon


파일:임병헌2023.png

출생
1953년 10월 10일 (70세)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거주지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보성 대덕맨션 1차 아파트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중구·남구 당협위원장
재임기간
제22-24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2006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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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계성고등학교 (졸업)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 석사[1])
종교
불교
소속 정당

지역구
대구 중구·남구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1
소속 위원회
국방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약력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대구직할시청 지역경제과장
대구직할시청 교통기획담당관
대구광역시청 문화체육국장
대구광역시청 교통국장
대구광역시 남구 부구청장
대구광역시청 상수도사업본부장
대구광역시청 기획관리실장
제22-24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민선4-6기)


1. 개요
2. 생애
3. 논란
4. 선거 이력
5. 소속 정당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종교불교이다. 전직 대구광역시 남구청장으로, 당적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3월 재보궐선거 출마를 하기 위해 국민의힘을 탈당하였다가 2022년 6월 13일부로 다시 복당하였다.


2. 생애[편집]


1953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1]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대봉초등학교, 대구계성중학교, 대구계성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동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 대구광역시청 소속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시청에서는 문화체육국장, 교통국장, 상수도사업본부장, 기획관리실장(2급 / 이사관)을 맡았고, 남구 부구청장도 역임하였으며 공직 일선에서는 기획관리실장을 끝으로 퇴임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현직이었던 이신학이 공천 정책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자,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으며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재선을 노렸던 무소속 이신학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남구청장 선거에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3선 당선 후인 2014년 하반기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3선을 마치고 조재구에게 남구청장 자리를 넘기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남구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현역 곽상도 전 의원이 공천을 계속 받게 되면서 출마하지는 못했다.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의 퇴직금 관련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열린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하였고, 국민의힘 공관위가 무공천을 선언하자 보궐선거 완주를 위해 탈당하였다. 보수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난립한 상황에서 중구에서 다른 후보들에 밀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론조사 1위를 달렸는데, 그 이유는 남구에서 그를 압도적으로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2]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단일화 성사로 인해 국민의당 권영현 후보가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3]가 되어버리면서 본인에겐 매우 크나큰 악재가 되었다. 개표 결과 32,037표를 얻으면서 30,844표를 얻은 국민의당 권영현 후보를 가까스로 꺾고 당선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저득표율(22.39%)로 당선되었으며,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자민련 김종학 의원의 24.19%보다도 낮은 기록이다.

중구에서는 6723표를 얻는데 그쳐 권영현 후보(1만2027표)는 물론 백수범 후보(1만666표), 도태우 후보(9751표)에게도 크게 밀렸다. 대신 지역 기반인 남구에서 2만5314표를 득표해 권영현 후보(1만8817표), 백수범 후보(1만7108표), 도태우 후보(1만6912표)를 압도했다. 선거인 수에서 중구(6만5850명)보다 남구(12만9622명)가 두 배 가량 많다는 점도 당선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70세 초선의원이라는 타이틀[4]도 얻게 되었다. 같은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인 서정숙 의원도 동갑이긴 하지만[5], 이쪽은 21대 총선이 치루어진 2020년에 초선 의원이 되었다.

보궐선거 당선 이후 바로 복당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당내 무공천 방침으로 인한 탈당이다 보니 당 지도부가 여전히 복당 불허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당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공천 불복 탈당자가 당선된 경우 대부분은 시일의 문제지 언젠가는 결국 복당을 받아줬기 때문에[6] 시간이 좀 지나면 복당이 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원외인사인 김재원 최고위원이 이 지역구 당협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풍문이 계속 돌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실현된다면 임 의원의 복당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재원이 아니더라도 최연숙 의원이나 권영현 전 국민의당 대구 중구ㆍ남구 지역위원장[7]이 당협위원장직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되었다.

그러나 6월 1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임병헌 의원의 복당을 의결해 당협위원장직은 임병헌 의원이 가져갈 듯하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논평에서 복당을 의결한 이준석 당시 대표를 겨냥해 '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8]


3. 논란[편집]


국회의원 보좌진 정원의 절반 이상을 지역구인 대구에 배치, 얼마 남지 않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표밭갈이'에 나섰다는 논란이 있다. 아울러 과거 남구청장과 중구 부구청장 재직 때 인연을 맺은 남구체육회 사무국장 등 전직 공무원으로 지역구 보좌진을 구성하면서 '측근 챙기기' 논란도 제기된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 감시'를 도우라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보좌진 5명이 임 의원의 재선을 위한 '표 관리'를 하고 다니는 셈"이라며 "임 의원 본인도 국정 견제는 뒷전인지 국회보다 지역구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임 의원은 "국회에 처음 들어와 전례를 모르고 급하게 보좌진을 짜다 보니 발생한 일"이라며 "보좌진들도 가족이 있는데[9] 3개월 만에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대구 사무소에서 서울을 적극 보완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 남구청장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50,622 (73.30%)
당선 (1위)
초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3,006 (71.34%)
재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무투표 당선
3선
2022
3월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대구 중·남

[[무소속|
무소속
]]

32,037 (22.39%)
초선[10][11]

  • 모든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대구 남구청장은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던 탓에 큰 득표율로 무난하게 당선되었으며, 2022년 3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경우 여러 범보수 후보들이 난립한 상태에서 직선제 개헌 이후 최저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며 가까스로 이겨 100% 당선 타이틀이 유지되었다.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06 - 2012
정계 입문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7
당명 변경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12]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2022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22
탈당[1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2 - 현재
복당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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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6년까지는 대구 땅이었다.[2] 중구에 비해 남구가 인구가 좀 더 많기도 하고, 임병헌이 3선 남구청장 출신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친숙한 것으로 보인다.[3] 단일화 후 국민의당 권영현 후보는 TV토론회도 불참하고 대구 유세에 나선 윤석열 후보의 유세장에 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4] 참고로 최고령 초선의원은 당선 당시 만 84세였던 문창모이다.[5] 이쪽도 대구 출신이다.[6] 예외는 18대 국회 4년 내도록 민주당 복당이 허용되지 않았던 유성엽 의원 정돈데, 그는 19대 총선에서 또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나서는 결국 복당에 성공했다.[7] 재보궐 선거때 임병헌에게 0.83% 차이로 패배하였다.[8] 앞서 이준석 당시 대표는 무공천 방침에 반발해 탈당한 경우 당선되더라도 복당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9] 비수도권 지역의 다선 의원들은 지역구 보좌진과 서울 보좌진을 따로 두기도 한다. 그러나 임병헌 의원은 갓 초선으로서 그동안의 보좌진들도 모두 대구에 집과 가족을 둔 대구 사람들일 텐데 거기에 정규 총선으로 당선되어 당선인 신분 한 달간 보좌진을 짤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궐선거로 당선되어 다음날 즉시 국회로 출근해야 하다보니 급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10] 전임자 곽상도의 아들 퇴직금 문제로 인한 의원직 사퇴(21.10.2.)
직선제 개편 이후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최저 득표율.
[11] 2022.06.13 국민의힘 복당[12]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3] 무공천 방침 불복에 의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