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장씨(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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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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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장씨 | 貴人 張氏


파일:서삼릉후궁묘역.jpg

서삼릉 빈·귀인 묘역 전경
출생
1619년 4월 29일
사망
1671년 3월 4일 (향년 53세)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숙의
1635년 9월 26일 ~ 1639년 1월 24일
조선 소의
1639년 1월 24일 ~ 1640년 10월 12일
조선 귀인
1640년 10월 12일 ~ 1671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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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덕수 장씨[1]
부모
부친 장류
모친 한산 이씨
배우자
인조
봉작
숙의(淑儀) → 소의(昭儀) → 귀인(貴人)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 매체



1. 개요[편집]


조선 인조의 간택 후궁. 인조의 며느리이자 효종의 왕비인 인선왕후 장씨와는 같은 덕수 장씨 집안으로써 먼 친척 관계이다.


2. 생애[편집]


1619년(광해군 11) 3월 16일 아버지 정9품 선공감(繕工監)[1] 부봉사(副奉事)를 지낸 장류(張留)[2]와 어머니 한산 이씨 이준(李畯)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장류의 증조할머니 신씨는 신사임당의 언니이자 율곡 이이의 이모이다.

1635년(인조 13) 8월 16일 숙의로 선발되어 이현궁에서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입궁하였다. 특히 이현궁은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가 머무르던 궁궐로, 후궁으로서는 상당한 수혜를 입은 것이다. 이 당시, 장씨의 간택과 가례 절차는 하나의 전례가 되어 훗날 숙종이 영빈 김씨를 맞이할 때에도 절차에 참고하게 된다.

1638년(인조 16) 인조가 장렬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을 때, 관례상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책봉되고, 1640년(인조 18)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3] 그러나 당시 가장 총애 받는 후궁은 귀인 조씨였으므로 장씨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


3. 여담[편집]


  • 연려실기술》 인조조 고사본말에 따르면, 하루는 인조가 꿈에서 한 여자를 보았는데 스스로 장류의 딸이라 말하고, '태평(太平)'이란 글자를 써서 올렸다. 잠에서 깬 인조가 수소문하여 찾아보니, 진사 장류라는 사람에게 과연 딸이 있었다. 이에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한 다음 시험 삼아 글씨를 써보게 하였더니,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이라는 다섯 자를 써 올렸다고 한다.


4. 대중 매체[편집]


인조의 간택후궁이지만 총애받지 못하고 나이 든 후궁. 인열왕후 생전에는 인열왕후에게 잡혀 꼼짝도 못하고 살다가 조 귀인(김현주 분)이 들어오자 조 귀인 눈치를 살피고, 어린 중전(고원희 분)과 세자빈(송선미 분)의 눈치까지 보는 그야말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 이렇다보니 그때 그때 우세한 인물한테 빌붙어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등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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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축물의 조성 및 왕실 및 중앙에 필요한 땔감 연료인 시탄(柴炭)을 조달하는 등의 일을 하는 부서.[2] 1624년(인조 2) 식년시 생원시에 1등 4위로 급제하였다.#[3] 보통 새로운 왕이 즉위하거나 왕비나 세자가 책봉되는 등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품계를 높여주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명빈 박씨영빈 김씨인원왕후가 새 왕비로 들어온 기념으로 정1품 빈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