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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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네팔 총리는 네팔의 정부수반이다.
현직 총리는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의 푸슈파 카말 다할이 맡고 있다.
2. 역대 총리[편집]
2.1. 네팔 왕국[편집]
2.1.1. 초기[편집]
이 당시 네팔은 전제군주제였고, 아직 정당이 없어서 모든 총리가 무소속이었다.
- 초대: 다모다르 판데 1803년~1804년
- 대행: 라나 바하두르 샤[1] 1804년~1806년
- 2대: 빔센 타파 1806년~1837년
- 3대: 라나 장 판데 1837년
- 4대: 랑가 나트 포우댤 1837년~1838년
- 5대: 초타리야 푸슈카르 샤 1838년~1839년
- (3대): 라나 장 판데 1839년~1840년
- (4대): 랑가 나트 포우댤 1840년
- 6대: 파테 중 샤 1840년~1843년
- 7대: 마타바르 싱 타파 1843년~1845년
- (6대): 파테 중 샤 1845년~1846년
2.1.2. 라나 시대[편집]
1846년 쿠데타로 집권한 라나 가문은 현직 총리가 사망하면 가문의 남자 구성원 중에서 연장자가 자동으로 총리직을 승계하는 법을 제정하여 권력 공백을 원천봉쇄함으로써 100년 이상 장기집권했고, 국왕은 라나 가문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라나 가문 출신 총리들 역시 초기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전원 무소속이었다.
- 8대: 중 바하두르 라나 1846년~1856년
- 9대: 밤 바하두르 쿤와르 1856년~1857년
- 대행: 크리슈나 바하두르 쿤와르 라나 1857년
- (8대): 중 바하두르 라나 1857년~1877년
- 10대: 라노딥 싱 쿤와르[2] 1877년~1885년
- 11대: 비르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885년~1991년
- 12대: 데브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01년
- 13대: 찬드라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01년~1929년
- 14대: 빔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29년~1932년
- 15대: 주다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32년~1945년
- 16대: 파드마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45년~1948년
- 17대: 모한 슘셰르 중 바하두르 라나 1948년~1951년
2.1.3. 과도기[편집]
1951년 라나 가문이 실각하면서 트리부반 왕이 왕권을 회복했고, 이때부터 정당 내각이 등장했다.
- 18대: 마트리카 프라사드 코이랄라[3] 1951년~1952년 (네팔 회의)
- 트리부반 왕의 직접 통치: 1952년~1953년
- (18대): 마트리카 프라사드 코이랄라 1953년~1955년 (라슈트리야 프라자당[4] )
- 대행: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1955년
- 마헨드라 왕의 직접 통치: 1955년~1956년
- 19대: 탄카 프라사드 아차리아 1956년~1957년 (네팔 프라자 파리샤드[5] )
- 20대: 쿤와르 인데르지트 싱 1957년~1958년 (네팔 연합민주당[6] )
- 21대: 수바르나 샴셰르 라나 1958년~1959년 (네팔 회의)
- 22대: 비슈웨슈와르 프라사드 코이랄라[7] 1959년~1960년 (네팔 회의)
2.1.4. 무정당 판차야트 시대[편집]
1960년 마헨드라 왕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네팔의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전제군주제로 회귀했는데, 이 당시 총리들은 정당 공천이 금지되고 왕의 자문회의에 불과한 권한을 가진 판차야트에서 선출되었기에 전원 무소속이었다.
- 마헨드라 왕의 직접 통치: 1960년~1963년
- 23대: 툴시 기리 1963년
- 24대: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1963년~1964년
- (23대): 툴시 기리 1964년~1965년
- (24대):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1965년~1969년
- 25대: 키르티 니디 비스타 1969년~1970년
- 대행: 게헨드라 바하두르 라즈반다리 1970년~1971년
- (25대): 키르티 니디 비스타 1971년~1973년
- 26대: 나겐드라 프라사드 리잘 1973년~1975년
- (23대): 툴시 기리 1975년~1977년
- (25대): 키르티 니디 비스타 1977년~1979년
- (24대):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1979년~1983년
- 27대: 로켄드라 바하두르 찬드 1983년~1986년
- (26대): 나겐드라 프라사드 리잘 1986년
- 28대: 마리치 만 싱 슈레스타 1986년~1990년
- (27대): 로켄드라 바하두르 찬드 1990년
2.1.5. 입헌군주제 시대[편집]
1990년 비렌드라 왕이 민주화 세력과 타협하여 헌법을 제정하면서 입헌군주제가 실시되었다.
- 29대: 크리슈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1990년~1991년 (네팔 회의)
- 30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 1991년~1994년 (네팔 회의)
- 31대: 만 모한 아디카리 1994년~1995년 (CPN-UML[9] )
- 32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1995년~1997년 (네팔 회의)
- (27대): 로켄드라 바하두르 찬드 1997년 (국민민주당-찬드)
- (24대):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1997년~1998년 (국민민주당[10] )
- (30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1998년~1999년 (네팔 회의)
- (29대): 크리슈나 프라사드 바타라이 1999년~2000년 (네팔 회의)
- (30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2000년~2001년 (네팔 회의)
- (32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2001년~2002년 (네팔 회의)
- 갸넨드라 왕의 직접 통치: 2002년
- (27대): 로켄드라 바하두르 찬드 2002년~2003년 (국민민주당)
- (24대):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2003년~2004년 (국민민주당)
- (32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11] 2004년~2005년 (NC-D[12][13] )
- 갸넨드라 왕의 직접 통치[14] : 2005년~2006년
- (30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15] 2006년~2008년 (네팔 회의)
2.2. 네팔 연방민주공화국[편집]
2008년 국민투표에서 왕정 폐지가 확정되면서, 네팔은 공화국이 되었다.
- (30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16] 2008년 (네팔 회의)
- 33대: 푸슈파 카말 다할[17] 2008년~2009년 (UCPN-M[18] )
- 34대: 마다브 쿠마르 네팔 2009년~2011년 (CPN-UML)
- 35대: 잘라 나트 카날 2011년 (CPN-UML)
- 36대: 바부람 바타라이 2011년~2013년 (UCPN-M)
- 대행: 킬 라즈 레그미 2013년~2014년 (무소속)
- 37대: 수실 코이랄라 2014년~2015년 (네팔 회의)
- 38대: 카드가 프라사드 올리 2015년~2016년 (CPN-UML)
- (33대): 푸슈파 카말 다할 2016년~2017년 (CPN-MC)
- (32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19] 2017년~2018년 (네팔 회의)
- (38대): 카드가 프라사드 올리 2018년~2021년 (네팔 공산당[20] )
- (32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2021년~2022년 (네팔 회의)
- (33대): 푸슈파 카말 다할 2022년~현재 (CPN-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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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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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왕전임 국왕이자 당시 국왕 기르반 유다 비크람 샤의 아버지[2] 임기 중에 암살당했다.[3] 네팔 최초로 정당 내각을 구성한 총리[4] Rashtriya Praja Party[5] Nepal Praja Parishad[6] United Democratic Party Nepal[7] 1959년에 실시된 네팔 최초의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네팔 최초의 의원내각제 총리가 되었으나, 1960년에 마헨드라 왕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전제군주제로 회귀하는 바람에 실각했다.[8] 1959년 총선 이후 최초로 실시된 자유선거인 199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했다.[9] 공산당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입헌군주국에서 실시된 민주적인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1920년대 몽골과 2차 대전 직후 발칸 반도 입헌군주국에서 공산당들이 집권한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 사례들은 모두 폭력 혁명 또는 소련이 파병한 점령군의 지원을 받아 집권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하기 이전의 과도기에만 입헌군주제를 유지한 반면, CPN-UML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10] 국민민주당-찬드와는 별개의 정당이다.[11] 2005년 갸넨드라 왕의 친위 쿠데타로 인해 실각했다.[12] 네팔 회의(민주). 영문 명칭은 Nepali Congress (Democratic).[13] 2002년에 네팔 회의 탈당파가 창당한 당으로, 2007년에 네팔 회의에 다시 흡수되었다.[14]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를 해산한 후, 헌법까지 정지시키며 전제군주제로 회귀하려 했으나, 마오이스트 반군이 수도 카트만두까지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정당들마저 왕정 폐지를 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15] 마오이스트 반군과 민주화 세력의 협공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갸넨드라 왕이 항복을 선언한 후, 왕정 존속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과도내각을 이끌었다.[16] 왕정 폐지가 확정된 후,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기 전까지 과도내각을 이끌었다.[17] 마오이스트 반군 지도자였으나,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언하고 2008년 총선에 참가하여 승리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마오주의 정권을 수립했다.[18] 네팔 통합공산당(마오주의). 영문 명칭은 Unified Communist Party of Nepal (Maoist).[19] 2005년 갸넨드라 왕의 친위 쿠데타로 인해 실각한 후 12년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20] 2021년에 해산되었고, 올리 총리는 CPN-UML을 재창당하여, 해당 정당 소속으로 소수정부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