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페르티티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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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모습
4. 여담
5. 매체에서



1. 개요[편집]


파일:Nofretete_Neues_Museum.jpg

고대 이집트의 왕비 네페르티티흉상. 3,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아름다움 덕분에 투탕카멘의 가면과 함께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왼쪽 눈이 그려져 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 참조.


2. 역사[편집]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투트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예술가가 기원전 1345년에 제작했다.[1] 당시 파라오였던 아케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모습을 그대로 본따서 만들었다. 당시 아케나톤의 시대는 옛 종교를 부정한 채 아텐 신앙을 도입한 엄청난 격동기였는데, 이 격랑의 시기 동안 '아마르나 예술'이라고 해서 새로운 예술 사조가 나타났다.[2] 아마르나 예술의 특징이라면 이전의 작품들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 묘사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제외하고도 다른 아마르나 시대의 작품들을 봐도 일반적인 이집트 작품보다 훨씬 섬세하고 여성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마르나 예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네페르티티의 흉상 역시 이 영향을 받아 극도로 사실적인 모습을 자랑한다.

파일:csm_AEMP_Nofretete_Fund_prinz_sachsen_c7b96f6b21.jpg
파일:루드비히보르하르트.jpg
파일:nefertiti-bust-2-1024x682.jpg
발굴 모습
보르하르트
현재 노이에스 박물관에 전시된 흉상의 모습
흉상 자체는 제작 이후 몇 천년 간 알 수 없는 이유로 투트모세의 작업장에 그대로 묻혀있다가 1912년 12월 6일 독일의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발견해냈다. 한눈에 봐도 흉상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자 루트비히는 몰래 이집트 밖으로 유물을 가지고 나가기로 결심한다. 당시 이집트는 유물 불법 반출에 불을 켜고 단속하고 있었는데, 이집트 유물국이 이 흉상을 본다면 단번에 반출을 거절할 것이었기에 보르하르트는 몰래몰래 흉상을 잡동사니 속에 숨겨서 밀반출했다. 이 과정에서 흉상을 제대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거나 이집트 관리에게 흉상이 석고로 만든 싸구려라고 사기를 치는 등 꽤나 치졸한 방법을 썼기에 이집트 당국으로부터 두고두고 욕을 먹기도 했다.

어쨌든 보르하르트는 기를 쓰고 1913년 흉상을 독일로 반출하는데 성공했다. 흉상은 베를린으로 운송되어 보르하르트의 아마르나 발굴 작업 후원자이자 수집가였던 제임스 시몬에게 넘어갔고, 이후 1913년에 베를린 박물관에 대여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베를린 박물관은 보르하르트가 아마르나에서 발굴한 다른 유물들과 함께 흉상도 전시하고 싶어했지만 보르하르트가 결사반대하면서 흉상 공개 전시는 뒤로 미뤄졌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흐른 1924년에야 대중들에게 공개됐고, 순식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이집트 유물들 중 하나로 떠올랐다. 워낙 그 세련미와 현대미가 당시 기준으로도 범상치 않았기 때문.

흉상은 1939년까지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안전한 벙커로 옮겨졌다. 맨 처음에는 프로이센 중앙은행 금고에, 나중에는 베를린의 동물원 대공포탑으로, 종전 직전인 1945년에는 튀링겐의 소금 광산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흉상은 독일 전역이 망해가는 와중에도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45년 3월에 미군이 광산에서 흉상을 발견했고, 1956년에 서베를린으로 옮겨져 달렘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동독 측에서는 동베를린에 있는 노이에스 박물관으로 다시 흉상을 돌려놓아야 한다며 서독 측에 끊임없이 흉상을 내놓으라 요구했지만 당연히 서독은 씹었다. 이후 독일 통일이 된 후 2009년 10월에 70년 만에 끝내 노이에스 박물관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쭉 노이에스 박물관에서 핵심 유물들 중 하나로 전시 중이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물을 빼앗긴 이집트 측에서는 몇 십년동안 줄기차게 독일에 협박과 애원을 번갈아가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독일 정부에서는 워낙 흉상이 유명하고 국민적으로도 인기가 많은지라 씹고 있는 중이다.


3. 모습[편집]


파일:d95c2bbf3035c793b09d41f0752cda489a45a024.jpg
파일:네페르티티흉상뒷모습.jpg
파일:AEMP_Nofretete_Bueste_Mund.jpg
앞서도 언급했지만 네페르티티 흉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극도의 사실성이다. 흉상은 '베를린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높게 추어올린 머리 아래로 길고 매끈하게 뻗은 목선, 짙은 눈썹과 흔들림 없는 시선, 날렵한 턱선과 도드라진 목빗근[3] 등이 특징이다. 현대에 제작했다고 해도 믿을만큼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골동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정교함이다.

흉상은 석회암을 통째로 깎아낸 뒤 치장 벽토를 발라 만들었다. 높이는 48cm, 무게는 약 20kg 정도이며 왼쪽 눈이 완성되지 않은 걸 제외하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높은 푸른색 왕관을 쓰고 있으며[4] 왕관에는 금빛 띠가 뒤에서부터 한바퀴 둘러졌고 가운데에는 우라에우스가 붙어있다. 목에는 꽃무늬가 상감된 넓은 목걸이를 착용했다.

흉상의 색료를 분석해본 결과, 푸른색은 산화구리로 만들었고 피부색은 산화철이 들어간 미세한 석회암 가루로 색을 냈다. 노란색은 황화비소로, 녹색은 구리와 산화철로 색을 냈다. 검은색은 왁스를 섞은 석탄으로 칠한 것이고 흰색은 그냥 원래 석회암의 색이다. 눈은 백색 석영을 따로 박아 만들었으며 그 위에 검은색 물감으로 눈동자를 그려넣었다.

흉상을 딱 보면 한눈에 왼쪽 눈이 칠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보르하르트도 처음에 흉상을 발굴했을 당시 왼쪽 눈이 사라진 걸 보고 무려 1,000파운드의 상금[5]을 내걸고 왼쪽 눈동자를 찾으려 들었는데, 인부들을 굴려서 인근을 이잡듯이 뒤졌지만 결국 눈동자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맨 처음에는 네페르티티가 실제로 눈병 때문에 왼쪽 눈이 실명된게 아닐까 추측했지만 그녀를 묘사한 다른 조각에는 왼쪽 눈도 멀쩡히 그려져 있었기에 폐기됐다. 또다른 의견은 이 흉상이 공식 초상화를 그리기 전 미리 만든 예시 작품이고, 제자들에게 눈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칠 때 쓰던 견본 조각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왼눈을 그리지 않았다는 설이다. 하지만 아직 어떤 가설도 확실한 건 아니고, 네페르티티 흉상이 왼눈이 없는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4. 여담[편집]


  • 파일:_84090255_nefirtitia.jpg

    2015년 이집트의 도시 사말루트에서 네페르티티 흉상을 본따 조각상을 세웠는데, 그 외형이 중학생 미술숙제만도(...) 못한 수준이라 국민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어떤 이집트 네티즌은 '네페르티티가 죽고 4일 정도 방치하면 저렇게 생겼을 것 같다'라고 비꼬기도 했고 '프랑켄슈타인 엄마처럼 생겼다'라는 말도 있었다. BBC에서도 보도했다.#

  • 오히려 왼쪽 눈이 미완되어 있어 더 아름다움이 극대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밀로의 비너스가 팔이 없어 더 아름다워보인다는 평가와 비슷한 느낌.

  • 파일:historical-figures-recreated-becca-saladin-1-5fa12c3dbfd9f__880.jpg

    인터넷에 보면 네페르티티 흉상을 토대로 실제 네페르티티의 얼굴을 재구현한 이미지가 많다. 위의 사진은 네페르티티가 현대에 살았다면 어땠을지를 가정해 복원한 3D 사진이다. 참고로 네페르티티의 얼굴을 복원할 때 화이트워싱 논란이 불거질 때가 많은데, 흉상의 모습은 누가 봐도 완연한 중동계 백인이지만 흑인 내셔널리즘 관련 단체들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흑인이었다는 역사 왜곡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집트에선 이 흉상 모형 기념품도 유명하다.


5. 매체에서[편집]



5.1. 게임[편집]



5.1.1. 도미네이션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설 유물/네페르티티 흉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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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라오 투트모세 1세투트모세 2세, 투트모세 3세, 투트모세 4세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다.[2] 아케나톤이 건설한 신도시 아마르나에서 이름을 따왔다.[3] 목에 V자 모양으로 도드라지게 표현된 근육 부분.[4] 이걸 '네페르티티 왕관'이라고 부른다.[5]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