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티 1세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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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배치도와 중앙 매장실의 모습.

1. 개요
2. 역사
3. 구조




1. 개요[편집]


고대 이집트파라오 세티 1세의 무덤. 룩소르나일 강 서쪽에 있는 왕가의 계곡에 있으며, KV17 무덤이라고도 한다.

물론 무덤 자체는 고대에 도굴당해 부장품이고 뭐고 아무 것도 남은 것도 없다. 하지만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무덤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가치는 대단히 높다. 내부의 벽화와 채색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장식들도 거의 파손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데, 벽화의 훼손을 우려해서 관광객들의 출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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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당하기 이전 무덤의 추정 상상화.

세티 1세의 재위기에 지어졌고 당시 왕가의 계곡에 있던 모든 무덤들을 통틀어 가장 깊고 거대한 무덤이었다. 허나 세티 1세가 죽고 나서 몇 십년 정도도 되지 않아 도굴당한 걸로 추정된다. 세티 1세의 미라는 신관들이 수습해 다른 파라오들의 미라와 함께 데이르 엘 바하리의 DB320 묘지에 합장했고, 미라가 이장된 이후 세티 1세의 무덤은 완전히 버려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된다.

무덤은 1817년 10월 16일에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이자 탐험가 지오반니 벨조니가 다시 발견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출입하지 않은 덕에 그가 발견했을 당시에도 벽화 상태가 끝내줬다고 하며, 심지어 당시 고대 이집트 화가들의 붓질 자국마저도 그대로 볼 수 있을만큼 색감이 생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무덤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벨조니의 무덤'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 무덤을 발굴할 당시 매장실 옆 곁방에서 미라화된 황소 시체가 함께 발견되어서 '황소의 무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굴 이후 무덤은 상당히 수난을 겪는다. 고대 이집트 유물에 환장했던 백인 탐험가들이 벽화를 연구하겠답시고 벽화들을 마구 뜯어서 유럽으로 가져갔던 것. 로제타석으로 유명한 샹폴리옹도 2m x 1m 정도의 벽화를 통째로 뜯어갔고, 다른 학자들도 연구 명목으로 벽 한켠을 아예 들어 외국으로 반출하는 등 세티 1세의 무덤은 이 시기에 상당히 파손되고야 만다. 백인 학자들의 욕심이 아까운 문화재를 훼손시켰던 것. 현재 이 뜯어낸 벽화들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 등에 함께 전시 중이다.

이후 이집트 유물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이상 벽화를 들어내가는 짓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1950년대와 60년대 부근의 굴착 작업으로 벽에 금이 가거나 벽화가 통째로 떨어지는 등 손상을 입었고, 이후 대대적으로 복구 작업을 실시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2017년에는 무덤 내부를 모두 3D 구현도로 저장해 보존하기도 했다. 현재는 벽화 보존을 위해 관광객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중이다. 관광객들의 입김에서 나오는 습기가 벽화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


3. 구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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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모습.

세티 1세의 무덤은 그 길이만 137.19m로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1] 총 11개의 방이 있으며 뒷쪽 2개의 방을 제외하면 모든 방들이 아름다운 벽화로 치장되어있다.

입구를 통해 들어와 26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첫 번째 복도가 나온다. 에게 바치는 기도문들이 새겨졌고 천장은 독수리 모양으로 장식됐다. 볼만한 건 라 신 앞에 서있는 세티 1세의 부조. 라 앞에서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파라오의 모습인데, 이런 형식의 부조를 새겨놓은 건 세티 1세의 무덤이 처음이다. 역시 비슷하게 만들어진 두 번째 복도를 지나가면 움푹 파여있는 상당한 깊이의 구덩이가 나오는데, 함정은 아니고 제례용 우물이다. 사후세계로 향하는 길을 형상화했던 것. 무덤을 만들 당시에는 물이 있었을지 몰라도 발견 당시에는 그냥 자갈이 가득한 텅 빈 구덩이에 가까웠다. 현재는 이 위에 나무 판자를 깔아 건너갈 수 있다.

제례용 우물을 건너 무덤 안쪽으로 들어가면 4개의 기둥이 서있는 거대한 방이 나온다. 이 방을 'F번 방'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관문의 서 내용들이 벽화로 새겨져있다. 독특한 점이라면 F번 방은 무덤의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부의 벽화에는 인류의 4개 인종을 구분해서 정교하게 그려넣었고, 관문의 서 5장의 내용, 그리고 오시리스하토르 여신 앞에 선 세티 1세의 모습이 새겨졌다.

F번 방 뒷쪽에는 'Jb번 방'이라고 방이 하나 더 있다. 2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상인방이 벽과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다만 F번 방과는 달리 훼손이 심각한 상태인데, 기둥에 새겨진 오시리스의 모습도 잘려나갔고 벽화들도 약간씩 색이 지워진 부분들이 있다. Jb번 방 벽화의 주요 내용도 비슷하게 관문의 서의 내용, 그리고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사당, 동물 머리 침대, 궤짝 등이 그려져있다. 이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세티 1세의 왕명이 와제트와 네크베트로 감싸진 채 쓰였고 이시스의 상징들이 그 주변을 수호하고 있다. 벽화의 내용을 보아 아마 사후세계에 쓸 부장품과 보물들을 보관하던 장소로 추정된다.

F번 방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세 번째 복도로 이어진 다음 작은 대기실과 6개의 기둥이 있는 매장실로 이어지게 된다. 매장실로 내려가는 낮은 세 번째 복도에는 세티 1세의 입을 열고 그의 영혼을 개방하는 내용을 담은 의식의 장면이 있다. 한편 대기실의 경우 세티 1세가 아누비스, 이시스, 호루스, 하토르, 오시리스 등 수많은 신들 앞에서 신성(神性)을 획득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체 무덤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화들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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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번 방의 모습.
F번 방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모습.
매장실은 6개의 기둥이 있는 방과, 뒤쪽의 약간 더 층계가 낮은 방 이렇게 두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6개의 기둥들 중 하나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다. 게다가 서양인들이 이집트 유물을 마구잡이로 떼어가는 과정에서 이 매장실에 있는 기둥의 장식 중 일부를 통째로 떼어갔고, 이 기둥 부조는 현재 베를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2] 중심축을 향한 기둥의 6면 모두에는 부토와 히에라콘폴리스의 자칼 머리와 매 머리가 그려졌고, 매장실의 천장은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색에 오각 별을 그려넣었다. 짙은 푸른색에 황금빛 오각 별의 조화가 뛰어나 실제로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효과를 준다.

이 매장실의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왕가의 계곡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세티 1세 이전까지는 밋밋하게 평평한 천장을 사용했다고. 뿐만 아니라 천장에 고대 이집트의 달력 단위와 함께 밤하늘의 특정 별자리를 기록했기에 천문학 쪽으로도 가치도 있다. 매장실의 장식 주제는 관문의 서(Book of Gates)와 암두아트(Amduat), 그리고 사자의 서 등으로 다른 방들의 벽화와 비슷비슷하다. 매장실 양쪽에 전면을 향한 별관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작은 벽감들이 있다. 매장실의 왼쪽 방은 관문의 서 제4장의 내용으로 장식되어 있고, 오른쪽 작은 방은 '성스러운 소의 서'의 전체 사본을 새겨놨다. 매장실 뒷편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이를 통해 'Corridor K'라는 명칭의 터널형 지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원래는 이 지하 공간에 관을 안치했던 듯한데, 발굴 조사 결과 놀라울 정도로 깊은 터널임이 밝혀졌다.[3] 이 터널 구역은 1960년에 처음 발굴 조사가 진행됐었는데, 이때는 지하 130m까지 들어갔지만 터널이 돌조각들로 차있어 굴착 작업에 어려움이 있을 뿐더러 그 정확한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기에 일단 중단 되었다. 이후 터널 탐사가 재개된 것은 2001년경으로 이집트 당국의 허가를 받아 시작됐으며, 2010년에는 발굴팀이 지하 174m 지점까지 도달했음을 발표하기도 했다.[4] 이후로도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나, 추가로 공개된 발굴 결과는 아직 없는 상태다.

매장실 뒷편에도 방들은 있다. 4개의 기둥이 서있는 큼직한 방 1개와 2개의 기둥이 서있는 중간 규모의 방 1개가 만들어져 있는데, 2개의 기둥이 있는 방은 오시리스의 모습들이 그득그득 새겨져 있다. 다만 맨 뒷편 4개의 기둥이 있는 방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혀 아무런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2개의 기둥이 있는 방에는 관문의 서 4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들이 벽화로 그려졌고 다양한 자세를 한 오시리스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히 이 방에 무덤의 부장품 목록이 벽에 새겨져 있어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이 파손되어 알아보기가 힘들다.

세티 1세의 무덤은 오래 전에 도굴당해서 황금은 눈을 씻고봐도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발굴 당시 몇몇 조각들이 발견되기는 했다. 방부처리된 황소의 사체, 나무와 색채 도자기로 만든 여러 점의 샤브티, 여러 나무 조각상, 무덤 입구에서 발견된 물감 항아리, 항아리 속에 들어있던 그림용 붓, 깨진 항아리 파편, 카노푸스 단지의 모서리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치가 높은 유물이나 보석 같은 것들은 도굴꾼들이 진작에 훔쳐가서 딱히 볼만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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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실의 모습.
옆에서 본 매장실의 모습.
매장실 천장을 그대로 찍은 모습이다.
세티 1세의 관은 1817년에 이탈리아의 탐험가 지오반니 벨조니가 매장실의 계단 아래 지하공간에서 발견했다. 황금도 아니고 돌로 만들었기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데, 통짜로 반투명한 알라배스터를 깎아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에 알라배스터가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귀중한 취급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상당한 호화품이다. 길이는 3m, 두께는 약 5cm 정도로 내부와 외부에는 파라오가 사후세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관문의 서 내용이 새겨졌고, 특히 관 하단에는 하늘의 여신 누트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누트가 망자를 도와 사후세계에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수호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 관은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하는 매우 아름다운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용케도 망가지지 않아 1824년에 존 소안(John Soane)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당시 런던의 엄청난 공해와 습기 때문에 결국 색이 변색되어 칙칙한 검은색으로 변하며 훼손되고 말았다. 관 안쪽의 회반죽은 모조리 떨어져 나갔고 푸른빛 염료는 어두운 검은색으로 변했다.

세티 1세의 미라는 유난히 보존이 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자들의 부검 결과 파라오는 죽었을 시점 약 40대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며, 상당히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 한다. 그가 전대의 호렘헤브람세스 1세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짧은 생을 살다간 건 확실하지만 그의 미라에서 별다른 외상이나 상처가 발견되지 않은 걸 보아 그냥 자연사한 것으로 추측된다.[5] 참고로 그의 미라는 목을 포함해 사지가 절단된 적도 있다. 이집트인들은 미라의 붕대 속까지 황금 부장품과 보물들을 곳곳에 끼워넣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던 도굴꾼들이 마구잡이로 미라를 파헤치면서 오체분시를 당한 것. 후일 파라오의 미라가 절단당한 것을 보고 경악한 아문 신관들은 미라를 정성스레 다시 이어붙이고 붕대를 새로 감아 재안장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가슴 왼쪽에 있어야 할 파라오의 심장이 오른쪽에 놓여졌는데, 이유는 모른다. 학자들은 세티 1세가 살아있었을 당시 그의 키가 대략 170cm, 고대인의 기준으로서는 상당한 장신이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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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큰 무덤'은 아니다. 크기로만 따지면 람세스 2세의 무덤이 더 크다.[2] 떼어간 부조들은 모두 오시리스의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서양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부조들을 골라 훔쳐간 탓에 무덤의 모습이 상당히 훼손되고야 말았다.[3] 전체 단면도를 보면 이 터널이 얼마나 깊게 파들어갔는지 확인 가능하다. 참조: Theban Mapping Project - KV 17 평면도, 단면 및 축척[4] 출처: KOFICE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문화소식 해외통신원 통신원리포트 - 세티 1세의 무덤 통로 발견[5] 심장 질환으로 죽었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