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레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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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79년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 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ممفيس ومقبرتها منطقة: الأهرام من الجيزة إلى دهشور

1979년

고대 테베와 네크로폴리스
مدينة طيبة القديمة ومقبرته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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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대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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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피라미드
제2피라미드
제3피라미드
쿠푸의 대피라미드
카프레의 피라미드
[[기자의 대스핑크스|

대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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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카우레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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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gypt.Giza.Sphinx.02.jpg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멤피스와 네크로폴리스
―기자에서 다슈르까지의 피라미드 지역
영어
Memphis and its Necropolis
– the Pyramid Fields from Giza to Dahshur
아랍어
ممفيس ومقبرتها منطقة الأهرام من الجيزة إلى دهشور
프랑스어
Memphis et sa nécropole
– les zones des pyramides de Guizeh à Dahchour
상형문자
𓉴 (Mer, 메르)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
등재기준
(i)[1], (iii)[2], (vi)[3]
지정번호
86

هرم خفرع
Pyramid of Khafre or of Chephren


1. 개요
2. 내부
3. 기타





1. 개요[편집]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파라오카프레의 무덤이자 기자의 피라미드들 중 2번째로 높은 피라미드. 높이는 136.4m 정도로 138.5m인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는 높이가 2.1m 가량 낮다.[4] 쿠푸의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재질의 석회암으로 지어져 있으며, 외벽의 경사는 53° 13'로 쿠푸의 51°50'24"보다 약간 더 가파르다. 앞에는 그 유명한 기자의 대스핑크스가 있다.

카프레가 살았던 이집트 고왕국 시기인 기원전 2570년 경에 지어졌고,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완공 당시만 해도 겉을 아예 백색 석회암으로 칠하고 꼭대기의 캡스톤은 황금으로 끼운 후 광을 내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미 혼란스러운 시대였던 제1중간기도굴당해 비어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역대 파라오들의 석재 공급장으로 전락하면서 끊임없이 외벽의 석회암이나 대리암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한때 매끈했던 외관이 조금씩 헐어져나갔다. 특히 건축광이었던 람세스 2세헬리오폴리스에 제 신전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피라미드의 벽을 헐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지금의 모습은 외벽이 거의 사라져버린 황량한 뼈대 모습. 파라오가 사라지고 이슬람 칼리파국들이 이집트에 들어선 이후에도 카프레의 피라미드의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아랍 정복자들은 요새나 궁전을 짓기 위해 피라미드의 외벽과 석재를 끌어썼고,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갈수록 상태가 안좋아졌다. 아랍 시대인 1372년에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내부를 조사, 도굴발굴했다고 한다.[5]

근현대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발굴에 나선 것은 1818년에 외벽 북쪽 면에서 정식 입구가 발견된 이후부터였다. 3월 2일에 유명한 고고학자 지오반니 벨조니[6]가 발굴을 진두지휘했고, 그는 아직 피라미드 내부가 도굴이 되지 않기를 바랐으나 이미 오래전에 털려나간 매장실과 깨진 관뚜껑만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이후 1837년 존 페링이 완전히 카프레 피라미드 내부를 샅샅이 훑었고, 1853년에는 아우구스테 마리에테가 카프레의 계곡 장제전을 추가 발굴, 5년 후에는 그의 화강암 석상을 발견했다.[7]


2. 내부[편집]


파일:800px-Chephren-Pyramide.svg.png
파일:khafre_pyramid_481.jpg
피라미드의 단면도
카프레의 매장실[8]
카프레의 피라미드에는 입구가 2개 있다. 하나는 바닥으로부터 11.54m 정도 위의 피라미드 사면에 뚫려있는 입구이고, 나머지 하나는 피라미드 기단 바로 아래로 들어가 지하 통로를 통해 들어가는 지하 입구이다. 입구들이 정확히 피라미드 사면과 수직이거나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피라미드 벽면에 나있는 입구는 오히려 동쪽으로 12m 정도 치우쳐져 있다. 벽에 난 입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기반암을 깎아 만든 기나긴 수평 통로가 나온다. 이 수평 통로를 따라 쭉이동하다 보면 피라미드 지하에 있는 매장실로 들어갈 수 있다. 의외로 기단 아래로 들어가는 또하나의 입구는 피라미드가 건축될 때에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왜 굳이 통로를 2개씩이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공사 도중 설계 도안이 바뀌면서 입구를 어쩔 수 없이 2개 팠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기단에 난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벽쪽 통로와 만나게 된다. 이 벽쪽 통로와 기단쪽 통로가 만나는 곳에 상당한 크기의 방이 하나 있는데, 비록 매장실만한 사이즈는 아니지만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왕의 방에 맞먹을 정도로 꽤나 큼직한 방이다. 고고학자들이 1800년대에 발견할 때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나 학자들은 아마 이 곳에 샤브티나 부장품, 제물들이 바쳐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 방에서 수평 통로를 통해 길게 이동하면 마침내 관이 있는 매장실이 나온다. 카프레의 매장실은 기반암을 깎아 만들었으며, 천장은 2개의 거대한 석회암석이 경사져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매장실의 면적은 14.15m x 5m의 크기이며 중앙에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깎은 관이 있다. 관은 반쯤 지반에 가라앉아 있고, 발굴 당시 안에는 황소의 뼛조각이 발견되었다. 매장실의 서로 마주보는 벽에 구멍이 한개씩 뚫려있는데, 쿠푸의 피라미드에 있는 환기구와 그 모습과 생김새가 대단히 유사하다.[9]


3.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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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프레의 피라미드를 훨씬 더 크고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10m씩이나 더 높은 고지대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시각적인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프레의 피라미드 위에는 석회암 외벽이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높아보이는 느낌이 든다.[5] 카프레 피라미드 내부의 관 안치실에는 아랍어로 된 낙서가 남아있다. 아마 이 낙서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추측에 하면 이 낙서조차 무려 700년된 낙서다.[6] 왕가의 계곡 발굴에도 참여했다.[7] 현재는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중이다.[8] 저편에 카프레의 관이 있다. 벽면에 쓰여진 낙서는 지오반니 벨조니가 1818년에 써놓은 것. 무려 200년이나 된 낙서라 이집트 정부에서도 차마 지우지는 않았다.[9] 물론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