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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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낭중.jpg
자링강과 시가지 전경
파일:랑중 장비.jpg
장비의 사묘인 환후사

1. 개요
2. 역사
2.1. 파군 & 파서군
2.2. 융주 & 낭주
2.3. 보녕부 : 천북의 중심지
2.4. 근현대
3. 교통



1. 개요[편집]


阆中 (閬中)
영어 Langzhong

중국 쓰촨성 난충시의 현급시. 관할 인구는 약 88만명이고, 그중 25만명이 시가지에 거주한다. 쓰촨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삼국지장비가 주둔했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3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구도심 (낭중고성)은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로, 무려 후한 대부터 청나라 대까지 쓰촨 북부의 중심지였다. 다만 20세기 들어 난충과 다저우 등이 발전하며 현급시로 남아있다.

시가지는 자링강 (가릉강)이 U자로 굽는 반도 형태의 분지에 위치하며, 최근에는 강남의 평지가 신도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삼국지 덕후들이 즐겨 찾는 도시로, 장비 맥주나 장비 우육 등의 삼국지 마케팅이 활발하다. 관광 수요의 증가로 현급시임에도 공항 건설이 1994년부터 추진되었고, 20여년 간의 중단 끝에 2018년 재개되어 2023년 6월 개장 예정이다. 여행기

2. 역사[편집]


파일:황광루.jpg
파일:중천각.jpg
구도심의 황광루와 중천루

2.1. 파군 & 파서군[편집]


파일:장비 1.jpg
파일:환후사 2.jpg
환후사 내에 있는 장비 무덤과 기념각

기원전 314년 진나라에 의해 파군 낭중현 (閬中縣)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지명 자체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고대의 난중은 현재의 난충, 바중, 다저우, 광위안 일대를 포괄하는 거대한 현이었다. 다만 한고조기신을 기리며 난중의 남부를 떼어 안한현 (安漢縣)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난중의 규모는 점차 축소되었다.[1] 194년 익주유장의 행정 개편 당시 낭중은 안한현을 치소로 하는 파군 (巴郡)에 소속되었다. 201년 유장은 영녕군을 파군으로 고치며 파군을 파서군이라 명명하였고, 난중을 치소로 삼았다. 이때부터 낭중은 사천 북부 (천북)의 정치, 군사, 경제 중심지로 유지되었다.

유비의 입촉장비는 파군 태수에 봉해져 낭중에 약 10년간 주둔하다가, 221년 손오 정벌을 준비하던 중 암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당시 낭중현은 난충 북부와 바중, 다저우 일대를 포괄하였고 남중, 안한현과 남충국, 서충국과 함께 파서군을 이루었다. 서진 대에 더 많은 지역을 관장하게 되었던 파서군의 영역은 성한 대에 축소되었고, 347년 동진이 촉을 정복한 후 폐지되었다. 파서군의 치소였던 낭중은 이후 유송남제 시대에 남량북파주 (南梁北巴州)와 그의 6군 중 하나인 북파서군 (北巴西郡)의 치소가 되었다. 북파서군은 다시 낭중, 한창, 호원 3현을 관장하였다.

2.2. 융주 & 낭주[편집]


파일:랑중 백탑.jpg
파일:대상산 중국.jpg
송대에 세워진 백탑 (바이타)
당대에 조성된 대상산 석굴

554년 남조의 혼란을 틈타 촉을 정복한 서위의 지배 하에 낭중은 융주 (隆州)와 그의 6군 중 하나인 반룡군 (盤龍郡)의 치소였다. 북위 대에 들어 융주의 관할은 4군으로 축소되었고, 수문제 대에 군이 폐지된 후 융주는 10개 현을 통솔하였다. 607년 수양제가 재차 군현제를 실시하자 융주는 재차 파서군이 되었다가, 618년 당고조 대에 융주로 복귀하여 12현을 통솔하였다. 동시에 수양제에 의해 낭내 (閬内)로 바뀌었던 지명 역시 낭중으로 환원되었다. 621년 융주에서 남충현 등지가 과주와 봉주로 분리되었고, 3년 후 두 현이 더해져 융주는 8개 현을 통솔하게 되었다.

당고종 대에 황족인 노왕 이령기, 등왕 이원영이 차례로 융주 자사를 역임하였다. 이원영은 낭중의 관아 (자사부)가 작다고 여겨 장안의 궁전을 본따 화려하게 증축하고는 융원 (隆苑)이라 불렀다. 713년 당현종 이융기의 피휘를 위해 융주와 융원은 각각 낭주 (閬州)와 낭원 (閬苑)으로 개칭되었다. 742년 주현제가 다시 군현제로 개정되며 낭주는 낭중군 (閬中郡)으로 개칭되었다가, 758년 낭주로 환원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낭중은 낭주의 치소로 유지되었고, 이는 무려 원나라 대까지 변함 없이 5세기간 이어졌다. 특히 713 ~ 1057년간 낭주 혹은 낭주군은 그대로 9개 현을 통솔하였다.

2.3. 보녕부 : 천북의 중심지[편집]


파일:천북도서.jpg
청대의 관아였던 천북도서

후당 대인 929년 낭주에는 군정 기관인 보녕군 (保寧軍)이 설치되었고, 이는 북송 대에 안덕군 (安德軍)으로 바뀌었다. 송신종 대에 낭주는 축소되어 7개 현을 통솔하였고, 원나라 대인 1276년 낭주는 광원로 (廣元路) 하의 보녕부 (保寧軍)로 승격되어 3개 현을 통솔하였다. 1371년 명나라의 사천 정복 후 보녕부의 관할은 8개 현으로 확대되었고, 낭중을 치소로 한 사천성 북천도 (川北道)에 귀속되어 청대까지 이어진다. 또한 명대에 낭중에는 군사적 하부 조직인 천북분순도 (川北分巡道)가, 청대에는 천북병비도 (川北兵備道)와 천북진총병서 (川北镇总兵署)가 설치되었다.

한편 명청교체기의 1644 ~ 1651년간 순치제는 낭중을 사천성의 임시 성도로 삼았고, 그동안 총독과 순무사 감찰어사 등이 낭중에 거처하였다. 또한 이때 낭중에서는 과거제의 첫 단계인 향시 4과가 거행되었는데, 이후로도 사천 지방의 과거 응시자 중 절반 가까이가 낭중 출신이 될 정도로 학구적인 고장이 되었다. 25개 현을 통솔하던 북천도는 신해혁명 후인 1913년 가릉도 (嘉陵道)로 개칭되었고, 보녕부는 폐지되었다. 26개 현을 통솔하던 가릉도는 1916년 폐지되었고, 이후 남쪽의 난충이 천북의 새로운 중심이 되며 낭중은 점차 쇠퇴하였다.

2.4. 근현대[편집]


파일:낭중 1913.jpg
1913년에 세워진 성 요한 성당
파일:랑중시 1.jpg
랑중의 아파트 주거 단지

1차 국공내전 시기인 1933 ~ 1935년간 홍군의 제4방면군이 낭중에 진주하였고, 현성 내에 방면군총정치부와 33군 군부가 설치되었다. 국민혁명군과 전투를 벌이던 홍군은 대장정과 함께 이주하였다. 중일전쟁중화민국은 낭중에 천섬악변부수정공서와 파산경비사령부를 두었다. 1949년 12월의 해방 후 랑중은 현으로 남았다. 1984년 쓰촨성 인민정부는 랑중을 역사고성으로 지정하였고, 뒤이어 1986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은 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하였다. 1991년 1월, 랑중은 현급시로 승격되었고 1993년 8월에는 성직할시가 되었다.

3. 교통[편집]


도시 동남쪽 외곽, 자링강 동안에 랑중 공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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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낭중의 중요도가 하락해서가 아니라 파촉 지방이 점차 발전하며 수반하는 필연적인 행정 분할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