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타파 2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오스만 제국의 22대 술탄이자 16대 파디샤.
메흐메트 4세의 아들이며, 마지막으로 원정을 떠난 오스만 제국의 황제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시절[편집]
그는 1664년 2월 6일 에디르네 궁전에서 태어났다. 그는 메흐메트 4세 술탄과 본래 그리스 크레타 혈통의 에브메니아라고 이름 지어진 귈누시 술탄의 아들이었다. 무스타파 2세는 1703년 그의 동생 아흐메트 3세의 편으로 퇴위했다.
에디르네에서 태어난 무스타파의 어린 시절은 이곳에서 지났다. 그가 1669년에 아버지와 함께 모라 예니셰히리에 있는 동안, 그는 베드 아이 베시넬 의식에서 메흐메트 에펜디로부터 첫 수업을 받았다. 글쓰기 선생님은 유명한 서예가 하피즈 오스만이었다. 1675년, 그와 그의 형제 아흐메트는 할례를 받았고 그의 자매 하티스 술탄과 파트마 술탄은 결혼했다. 그 기념 행사는 20일 동안 지속되었다.
2.2. 재위[편집]
1695년 즉위 당시 오스만 제국은 오스트리아, 폴란드-리투아니아, 루스 차르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 기독교 신성동맹과 대튀르크 전쟁 중에 있었다.
그동안의 열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1696년 무스타파 2세는 오스트리아 친정에 나섰고, 두 차례 승리를 거두어 성과를 보였다. 자신에 찬 무스타파는 이듬해인 1697년 다시 원정에 나서 오스트리아군 총사령관 사부아 공자 외젠과 젠타에서 대회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은 대패하고 총사령관인 재상 엘마스 메흐메트 파샤마저 전사하면서 전세가 완전히 기울게 되었다.
이 결정적 패배로 오스만은 헝가리를 완전히 잃고 전쟁을 지속할 힘을 상실했으며, 결국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을 체결하여 오스트리아에게는 헝가리,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는 포돌리아[1] , 베네치아에게는 달마티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루스 차르국에게는 아조프를 양도하며 대튀르크 전쟁을 뼈아픈 패배로 마무리하였다.
2.3. 사망[편집]
오스만 제국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카를로비츠 조약 이후, 무스타파 2세는 군제 개혁을 통해 내적으로는 시파히에게 힘을 실어주며 예니체리의 권한을 억제하고 외적으로는 유럽 열강들에게 복수하기를 꾀했다.
하지만 1703년, 이 개혁에 불만을 품은 예니체리들이 '에디르네 사건'이라고 불리는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8월 22일 무스타파 2세는 퇴위당했으며, 그 해 12월에 죽었다. 그의 동복 동생인 아흐메트 3세가 다음 파디샤로 즉위하였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8 10:14:57에 나무위키 무스타파 2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