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성

덤프버전 :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 전라북도의 기념물
10호[1]

12호

13호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
익산 미륵산성
익산 낭산산성

파일:전라북도 휘장.svg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2호
익산 미륵산성
益山 彌勒山城 | Mireuksanseong Fortress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124-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 / 면적
일곽
지정연도
1973년 6월 23일
건축시기
고조선[2],통일신라[3]


파일:익산시의 미륵산성.jpg

미륵산성

1. 개요
2. 역사
3. 문화재청 소개글



1. 개요[편집]


미륵산성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124-1번지 미륵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2. 역사[편집]


고조선 시대 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 기준산성이라고도 불렸고, 혹은 용화산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4] 혹은 마한의 여러 나라 가운데, 익산 지역에서 유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쌓았다는 설도 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와유록, 익산군지 등에 산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려 초기 태조후백제 신검견훤을 쫓을 때, 여기서 이들을 토벌하고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에 따르면 둘레 3900척, 높이 8척이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미륵산성에 군창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조 14년(1738) 강후진이 쓴 '와유록(臥遊錄)'에 미륵산성이 버러졌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성곽으로서 기능을 상실된 듯하다.

미륵산성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3. 문화재청 소개글[편집]



문화재청 소개글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이 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으로 불리는데,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했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기준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8 23:08:20에 나무위키 미륵산성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11호 〈무장남문과 토성〉은 1991년 2월 26일 해제되고 사적 제346호로 승격했다.[2] 문헌기록 한정.[3]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미륵산성은 운용시기가 최소 통일신라 이후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제 초축설에 대한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조사성과로는 백제시대 유구가 발견되고 있지 않고 있다.[4] 미륵산의 옛날 명칭은 용화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