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늬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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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반도 일본어설과의 관계
4. 사용 용도
5. 여담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청동기시대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입니다. 토기 바닥에 편평한 굽이 붙고 바리, 대접, 접시, 항아리, 독, 굽 달린 접시, 시루 등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사용되는 토기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선무늬나 구멍무늬가 있거나, 토기 표면에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칠한 토기도 있습니다.

민무늬토기는 굵은 모래나 돌가루를 섞은 다소 거친 흙으로 빚어 한뎃가마(露天窯: 천장 구조가 없는 노출된 가마)에서 구운 토기입니다. 보통 갈색이나 적갈색 계통으로,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독특한 특징을 보입니다.

국립김해박물관 공식 소개 문구

민무늬 토기 또는 무문토기()는 청동기 시대한반도랴오닝성 일대에서 등장한 토기이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빗살무늬 토기의 뒤를 잇는 유물이다. 민무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토기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역사[편집]


민무늬토기는 기원전 15-13세기경 한반도 청동기시대(무문토기시대)에 등장한 토기이다. 기원전 300년경까지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한국사의 시기를 민무늬토기 시대라고 하며 한국의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쓰인다. 민무늬토기는 일본의 야요이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3. 반도 일본어설과의 관계[편집]


최근 한반도 선사시대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 청동기시대 집단들이 원시 일본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로 존 휘트먼(John Whitman)이 있다. 그는 기원전 1500년경 요동반도에서 한반도로 논농사가 도입되면서 원시 일본어가 들어오고, 기원전 300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입하면서 수많은 유이민들이 발생하고 이들이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원시 한국어가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원시 일본어족의 경우 논농사를 기반으로 해서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기원전 300년경 이들 집단이 일본 규슈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일본 열도로 원시 일본어가 확산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한반도의 원시 일본어의 경우 기원전 300년경에 도입된 원시 한국어로 인해 소멸된다고 보았다.

휘트먼은 이러한 원시 일본어족 문화의 지표 유물을 바로 이 항목의 민무늬 토기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야요이인들의 문화는 대체로 송국리식 토기의 유적 문화와 일치하는데, 송국리식 토기는 이 민무늬 토기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고조선과 그에서 파생된 삼한 등 고대 한국인들의 문화는 십이대영자 문화로 대표되는 이중구연토기, 점토대토기가 지배적으로, 민무늬 토기와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를 정리해보면 한반도 청동기시대 = 원시 일본어 / 초기철기시대 이후 = 원시 한국어로 정리해 볼 수 있다.


4. 사용 용도[편집]


  • 주로 곡식을 담거나 저장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5. 여담[편집]


  • 현재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1단원에서 빗살무늬 토기 이후의 토기로 나온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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