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히로카즈

덤프버전 :


}}} ||


사와무라 히로카즈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2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와무라 히로카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유스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15번


사와무라 히로카즈
(2011~2020)


앙헬 산체스
(2021)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57번
카츠키 카즈야
(2015~2020)

사와무라 히로카즈
(2020)


오가와 류세이
(2021~)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9번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
(2016~2020)

사와무라 히로카즈
(2021)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
(2022)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8번
카일 슈와버
(2021)

사와무라 히로카즈
(2022)


애덤 듀발
(2023)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54번
브랜든 레어드
(2019~2022)

사와무라 히로카즈
(2023~)


현역



치바 롯데 마린즈 No.54
사와무라 히로카즈
澤村拓一 / Hirokazu Sawamura

출생
1988년 4월 3일 (36세)
도치기현 도치기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185cm, 90kg
포지션
중간계투
투타
우투우타
학력
사노니혼대학고교 - 츄오대학
프로입단
201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요미우리)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1~2020)
치바 롯데 마린즈 (2020)
보스턴 레드삭스 (2021~2022)
치바 롯데 마린즈 (2023~)
연봉
2024 / ¥200,000,000
등장곡
DJ Darude - Sandstorm[1]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1. 2011 시즌
2.2.2. 2012 시즌
2.2.3. 2013 시즌
2.2.4. 2014 시즌
2.2.5. 2015 시즌
2.2.6. 2016 시즌
2.2.7. 2017 시즌
2.2.8. 2018 시즌
2.2.9. 2019 시즌
2.3.1. 2020 시즌
2.4.1. 2021 시즌
2.4.2. 2022 시즌
2.5.1. 2023 시즌
3. 피칭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 이모저모



1. 개요[편집]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우완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6학년 때부터 투수를 맡았다. 중학교때부터 현 대회에 출전,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팀내 No.3 투수로 현 대회에 출전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팀은 결승에서 분세이예대 부속 고교한테 패하면서, 고시엔 대회 출장은 이루지 못했다. 이 때 고시엔 대회에서 활약한 사이토 유키와는 드래프트 당시 '양대 신인'으로 꼽히게 되는데 뒷날 프로에 들어오며 운명이 갈리게 된다.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굳히고 츄오대학토카이대학 두 곳에 시험을 보고 두 대학 모두 합격했으나 합격 통지서가 먼저 온 츄오대학에 입학한다.[2] 2학년 가을 대회에서 첫선발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팀내 에이스로 자리잡게 되고 같은 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bsa1010200506000-p1.jpg


3학년 가을 리그전에서 일본대학 리그 최고 구속을 156km/h로 경신했다. 2011년 졸업시까지 대학리그 통산성적은 41시합 등판 19승 14패 방어율 1.31 266탈삼진.

대학리그에선 직구를 고집하여 2학년 시점에서 직구 구속이 150km/h를 넘게 되었으나 당시 대학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너는 투수가 아니라 그냥 공을 던지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듣고 제구와 변화구를 지도받았다고 한다. 이후 변화구를 습득하여 피칭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2010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대학 선배인 아베 신노스케, 카메이 요시유키 등이 소속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을 희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도 사와무라를 1차 단독지명했다. 들어가고 싶었던 구단의 지명을 받은 사와무라는 기자 회견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asahi.com/g001.jpg

[3]

입단 당시 사와무라는 등번호 18번을 희망했지만, 구단 대표는 "사와무라 에이지(사와무라 에이지의 14번은 영구 결번)를 한 단계 넘어달라는 의미에서 15번을 달았으면 좋겠다. 18번은 본인의 힘으로 쟁취하길 바란다" 라고 하여 15번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4]


2.2. 요미우리 자이언츠[편집]



2.2.1. 2011 시즌[편집]


스프링캠프부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여 1군으로 첫 시즌을 맞았다. 4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첫 등판이자 첫 선발을 맡게 되어 7회 교체 될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이후 불펜진이 역전을 허용하며 첫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 4월 2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승리를 거두게 된다. 5월 31일 세이부 라이온즈 전에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비교적 좋은 내용의 피칭에도 타선의 지원을 못받았지만 최종성적은 29경기 등판 200이닝 11승 11패 174 탈삼진으로 NPB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2.2.2. 2012 시즌[편집]


"상대를 압도하는 피칭"을 목표로 하여 오프시즌부터 웨이트에 전념하여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맞이하여 시즌 초반에는 방어율 1점대를 유지했으나 여름 교류전이 시작되면서 컨디션 난조로 방어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등판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겨우 10승을 달성하며 2년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27경기 등판 169⅔이닝 10승 10패 방어율 2.86 138탈삼진.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팀이 3연패하여 탈락 직전의 벼랑 끝인 상황인 4차전에 등판, 무자책으로 승리 투수가 된다. 이후 팀은 3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진출[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등판, 1회부터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포수의 견제 사인을 놓치는 바람에 당시 주전포수였던 주장 아베 신노스케에게 시합중에 뒤통수를 한대 맞는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파일:external/blogimg.goo.ne.jp/5ab95f5540b9528f700cc935e199c73f.jpg

하지만 이 일로 정신을 차린 사와무라는 1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8이닝 무실점으로 일본 시리즈 첫 선발 첫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후, 6차전에도 등판했으나 6회 닛폰햄의 나카타 쇼에게 동점 쓰리런을 맞으며 강판, 하지만 팀은 결국 승리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이후, 대한민국 부산 광역시 사직 야구장에서 개최된 아시아 시리즈에도 참가, 개최지 팀인 부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팀은 결승에서 대만 프로야구 우승팀 라미고 몽키스에게 승리하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번외 대회 우승까지 모두 휩쓰는 위업을 달성했다.

오프 시즌엔 쿠바와의 국가대표 시합에 소집되어 국가대표 데뷔, 12월 4일에는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뽑히게 된다.


2.2.3. 2013 시즌[편집]



파일:external/p.npb.or.jp/20130308_12.jpg


2월 20일부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참가. 불펜 투수로 등판하여 4경기 3⅓이닝 1실점이란 성적을 거둔다

시즌 초반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6] 4승 6패 방어율 2.46으로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게 된다.
후반기부터는 선발로서의 경기 내용이 안좋아지면서 후반부터는 아예 중계 투수로 등판하게 되고 불펜 투수로 1승 1패 6홀드 방어율 0.63 이란 성적을 거둔다.
선발, 불펜 합쳐서 최종성적은 158이닝 5승 10패 방어율 3.13 148탈삼진. 포스트 시즌에선 줄곧 중계 투수로 총 5시합을 등판하였다.


2.2.4. 2014 시즌[편집]


스프링 캠프에서 어깨 부상을 입어 데뷔 이래 처음으로 2군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 중반부터 1군 승격 선발로 12경기에 등판해 72이닝 5승 3패 방어율 3.72 66탈삼진을 거두며 시즌을 끝냈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와의 2014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2차전에 등판에 선발 등판했지만 한신의 우에모토 히로키에게 빈볼성 사구를 던지면서 위험구 퇴장을 당하게 되고, 이 시점부터 한신의 타격이 폭발하여, 그 시합을 포함아여 팀은 4연패를 당하며[7]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하게 된다.

오프 시즌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불펜 강화를 위해 사와무라를 앞으로 불펜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2.2.5. 2015 시즌[편집]


기존의 마무리인 스캇 매티슨이 중계로 이동하고 사와무라가 새 마무리가 되었다. 3월 2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개막전에서 9회에 등판, 피홈런을 허용하면서도 첫 세이브를 올리게 된다. 이 후에도 안정적으로 세이브를 쌓으며 전반기에 20세이브를 달성했다. 7월 16일에는 프리미어 12 일본대표 1차 후보로 뽑히게 된다. 최종 성적은 7승 3패 36세이브 평균자책점 1.32.


2.2.6. 2016 시즌[편집]


마무리로 꾸준히 등판하며 6승 4패 37세이브 평균자책점 2.66의 성적을 기록, 센트럴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프로 데뷔 이후 첫 타이틀. 다만 불안한 제구와 더불어 후반기에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안정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즌 후 팀이 최고구속 164km/h의 우완 불펜투수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를 영입하면서 입지가 다소 미묘해졌다.


2.2.7. 2017 시즌[편집]


3월 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시범경기에서 상대타자인 시미즈 유시에게 후두부를 직격하는 투구로 퇴장명령을 받았고, 3월 18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시즌 개막 이후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3군, 2군에서 조정중이고, 카토리 요시타카 GM은 8월로 복귀시즌을 예상했다. 사와무라가 1군에서 없어지면서 요미우리의 불펜투수들[8]이 죄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요미우리 팬들이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

그리고 8월 6일 2군 경기에 실전등판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비췄다. 9월 1일 처음 1군에 등록했으나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4일 말소되었다. 허나 사정을 들여다보니 구단 트레이너가 2017년 2월에 침술 시술을 잘못하여 오른쪽 어깨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드러나[9] 결국 구단 사장과 GM이 9월 10일 사와무라 본인에게 사과하였으며 해당 트레이너를 해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중. 기사


2.2.8. 2018 시즌[편집]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49경기 등판 52⅓이닝 1승 6패 24홀드(25홀드포인트) 방어율 4.64를 기록했다. 탈삼진 54개, 여4구 27개로 K/BB 2.00, 탈삼진율은 9.29를 기록했다.


2.2.9. 2019 시즌[편집]


선발투수로 다시 전향함을 밝혔다. 그러나 딱 2경기 나오고 중간계투로 재전향. 중간계투로는 41경기에서 13홀드를 올리고 ERA 2점대를 찍으며 괜찮게 뛰었다.


2.3. 치바 롯데 마린즈[편집]



2.3.1. 2020 시즌[편집]


1군에서 13경기에 나와 1승 1패 1홀드 ERA 6.08로 부진하다가 시즌 중인 9월 7일 치바 롯데 마린즈로 트레이드됐다. 상대는 카츠키 카즈야.

2010년 이후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올해 정말 우승을 노리는 것인지 꽤 큰 출혈을 해가면서 데려왔다.[10] 2019년만큼만 해줘도 롯데에서는 바로 7회 셋업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 올 시즌 초반의 부진이 일시적인 것인지 하락세인지에 따라 운명이 갈릴 상황.

트레이드 다음날 바로 1군으로 승격되어 1이닝 무실점 3탈삼진을 기록하며 홀드를 추가했다. 이날 유니폼도 없어서 배팅볼 투수 후쿠시마 아키히로의 유니폼을 빌려입고 나왔다.

9월 11일 시즌 두번째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추가했다.

9월 20일 임시 마무리로 나와 2사만루까지 허용했지만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25일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4호 홀드를 기록.

10월 2일 에르네스토 메히아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롯데 이적 이후 13경기에서 0승 1패 1세이브 8홀드 ERA 1.42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실 트레이드 직전에 3군까지 내려가면서 투구폼 교정을 받고 다시 폼이 올라온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을 보면 쿄진 팀내에서 투수 대체자가 많다는 이유로 빠르게 포기했던 듯.

10월 21일 1:1 동점상황에 등판하여 1사 주자 3루 상황의 위기에서 3루수 직선타 병살을 잡아내었다.

시즌 후 메이저리그 도전 가능성이 점쳐진다고 한다. 요미우리 프런트는 3군에 박혀 있던 사와무라가 퍼시픽리그 정상급 셋업맨이 되고 메이저리거까지 되면서 그대로 흑우가 되었다.[11]

11월 23일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기사


2.4. 보스턴 레드삭스[편집]



파일:보스턴 사와무라.webp


2.4.1. 2021 시즌[편집]


2월 1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에 합의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기사

계약 내용은 2+1년 총액 675만 달러. 2년 240만 달러와 3년차 바이아웃 60만 달러는 보장으로 총 300만 달러는 보장인데, 3년차 계약은 사와무라 측에서 옵션발동시 60만 달러 or 구단측 발동 시 연봉 300만 달러를 기본으로 2년차까지 등판경기수에 따라 3년째의 연봉과 바이아웃 금액에도 변동이 있는 꽤 복잡한 계약내용이다.

만약 3년차 계약을 구단에서 발동하게 되면 300만 달러의 고액연봉+2년차까지의 등판과 이닝수에 따라 옵션까지 받지만 사와무라가 발동시 60만달러 염가봉사로 바이아웃 금액과 같고 일본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의 절반 정도를 받고 뛰게 된다.

쉽게 말해 2년차까지 성적을 보고 특급불펜이면 고액연봉+성과급으로 3년차는 연봉대박, 특급이 아니면 일본에 돌아가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낫되, 염가로 한해 더 도전해볼 수 있는 선택지를 넣어놓은 계약.

보스턴에서는 추격조와 필승조를 오가며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7월 18일 양키스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게리 산체스글레이버 토레스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는 등 최악의 투구를 시전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시즌 성적은 55경기 53이닝 61삼진 5승 1패 방어율 3.06, ERA+ 155를 기록하며 하며 그럭저럭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냈다. 다만 특급 불펜급 뛰어난 성적은 아니기에 3년차 계약 발동을 위해서는 다음 시즌에 좀 더 잘 해야 할 것이다.[12]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2021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로스터에서 제외되었으나, 2021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다시 로스터에 합류하였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차전 1점 뒤지는 8회에 등판하였으나 첫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이라서 긴장이라도 했는지 전혀 제구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안타와 몸에 맞는 공을 연달아 내주고 추가점을 허용하고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3차전에서는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9회초에 등판에 삼자범퇴로 팀승리를 도왔다. 4차전에도 등판하여 ⅔이닝 무실점 투구를 했지만 결국 팀이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2승 4패로 탈락하면서 추가 등판은 없었다.

2.4.2. 2022 시즌[편집]


팀의 중요 불펜 자원으로 등판하고 있다. 특히 리그 적응에 성공했는지 전년도 대비 피안타율이 1푼 이상, 피장타율이 1할 이상 감소하면서 FIP과 평균자책점 간의 격차도 많이 줄었다.

7월 11일에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구원 등판하여 2이닝 2K 무실점으로 막는 동안 팀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하지만 이후 제구 난조로 인한 볼 남발 문제 때문에 마이너리그에 한번 내려가기도 하는 등 고전하다 8월 28일 경기 직후 DFA되었다.

당일 경기에서 1이닝 4피안타 2볼넷 3자책점으로 부진했기는 하나 이 경기를 포함해도 평자가 3.73에 ERA+는 114 정도로 작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투수 정도로 방출감 정도는 아니었는데, 옵션의 영향이 컸다. 8월 28일 등판까지 딱 49경기 등판으로 50경기를 등판하면 옵션 5만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 5만달러가 큰 돈은 아니라 뭐 그거 내고 쓸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쓰고 싶은 성적도 또 아닌지라...

이후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플릿 계약 정도라면 긁어볼 팀이 있을 정도의 성적이지만, 마이너 생활을 하느니 일본 복귀가 금전적으로나 생활환경으로서나 더 낫기 때문에 계약이 쉽지 않고,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시절부터 시작해 폭행사건을 3건이나 저질렀고, 야수가 실수를 하면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등 팀워크에도 방해되는 안좋은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에 요주의 선수로 찍혀있어 계약이 쉽지 않은 모양.

다만 사와무라가 메이저리그 잔류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고 인터뷰했고, 메이저 어느 팀과도 계약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치바 롯데 마린즈와 교섭중이라는 뉴스가 2023년 1월 초에 나오면서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2.5. 치바 롯데 마린즈 2기[편집]


2023년 1월 28일, 치바 롯데 마린즈 복귀가 발표되었다. 수염을 기르고 장발이 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2년 동안 완전히 역변하여 돌아왔다.

2.5.1. 2023 시즌[편집]


주로 셋업으로 나오지만 요시이 마사토 감독이 투수를 매우 아끼는 성향이라 마스다 나오야 대신 마무리로도 종종 나오고 있다.

시즌 내내 주자를 득점권에 보내면서 극장투구를 하며 에이징 커브가 의심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5월 6일 ⅓이닝 4실점으로 블론하면서 신나게 털렸다. ERA도 5.11로 폭등. 이 날 8회에 나와 3: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6명 중 단 한명만 희생번트로 잡고 나머지는 전부 출루시켰다.[13] 즉 스스로 잡은 타자가 없었다는 것. 결국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21일 라쿠텐전 4점차로 이기던 8회에 등판하여 1이닝 2실점으로 털리며 마무리 마스다 나오야까지 등판시키고 말았다.

5월 31일 친정팀 쿄진전에서 4:4 동점 상황에 올라와 노아웃 상황에서 백투백 홈런을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런 일만 올해 벌써 3번째. ERA는 순간 6점대까지 올라갔다가 1이닝을 더 던져 5점대 후반으로 내려갔다.

끝내 6월 3일 한신전에서 보크 포함 2실점으로 사고를 치면서 팀의 3연패에 일등공신을 하고 본인 ERA는 6점대로 폭등했다. 그 요시이 감독이 하루만에 2군으로 쫓아내버릴 정도.

그 후 1군에 복귀했지만 끝내기 패를 허용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8월 10일 가역성 뇌혈관 경련 증후군을 진단받고 이탈했다. 사실상 시즌 아웃.[14]

그런데 파리그 3위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고, 막판 롯데의 가용투수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결국 콜업을 선언, 10월 6일 경기에 오프너로 등판이 예고되었다. 일단 1이닝 무실점으로 임무는 다 했는데, CS에 등록될지는 알 수 없다. 퍼스트스테이지는 14일~16일이기에 내일 말소된다면 등록될 수 없다.

시즌 성적은 34경기 33이닝 4승 3패 3세이브 14홀드 ERA 4.91 WAR -0.6으로 2023년 퍼시픽리그 전체 투수 WAR 꼴등을 기록했다.

그리고 기어코 CS 엔트리에 등록 됐는데, 팀이 1승 1패 이후 3차전 정규이닝까지 0:0으로 팽팽히 맟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10회초 등판하여 소프트뱅크 타자들에게 말그대로 탈탈 털리며 3실점을 하여 팀의 시즌을 그대로 끝낼 뻔했으나 천만다행으로 이어진 10회말에서 팀타선이 일본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극을 이뤄내며 패전을 면했다. 후지오카 유다이가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치자 덕아웃 앞에서 다소 뻘쭘하게 박수를 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3. 피칭 스타일[편집]


2022 시즌 기준 평균 구속 95.9마일, 최고 구속 98.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종횡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고, 슬라이드 스텝은 1.0초대로 빠른 편이다.

포크볼은 스플리터처럼 낙차가 적은 대신 130km 후반대에서 140km 초반대로 빠르기에 사와무라의 결정구 역할을 하는 구종이다. 2012년 일본 시리즈부터는 투심도 던지기 시작했다. NPB 통산 K/9은 8.18개로 준수하고 불펜으로 전업한 2015 시즌부터 2020 시즌까지 K/9도 10.18개로 불펜 투수로써 삼진을 잡는 능력도 뛰어나다.


4. 연도별 성적[편집]



4.1. NPB[편집]


통산 기록
년도
소속
경기
선발
완투
완봉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1
요미우리
29
29
5
1
200
11
11
0
0
2.03
149
50
174
0.97
2012
27
26
2
1
169⅔
10
10
0
0
2.86
172
58
138
1.33
2013
34
22
3
1
158⅓
5
10
0
6
3.13
138
48
148
1.14
2014
12
11
2
1
72⅔
5
3
0
0
3.72
69
16
66
1.14
2015
60
0
0
0
68⅓
7
3
36
3
1.32
58
24
60
1.16
2016
63
0
0
0
64⅓
6
4
37
4
2.66
60
23
55
1.27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49
0
0
0
52⅓
1
6
0
24
4.64
55
30
54
1.57
2019
43
2
0
0
48⅓
2
2
1
13
2.61
40
20
55
1.19
년도
소속
경기
선발
완투
완봉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20
요미우리/롯데
35
1
0
0
34⅓
1
3
1
14
3.41
24
20
40
1.29
NPB 통산
(9시즌)
352
91
12
4
868⅓
48
52
75
64
2.77
765
289
790
1.18

4.2. MLB[편집]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21
BOS
55
5
1
0
10
53
3.06
45
9
32
2
61
1.45
154
-0.2
0.8
2022
49
1
1
0
3
50⅔
3.73
45
4
27
0
40
1.42
113
0.0
0.7
MLB 통산
(2시즌)
104
6
2
0
13
103⅔
3.39
90
13
59
2
101
1.44
132
-0.2
1.4

5. 이모저모[편집]


파일:external/www.officiallyjd.com/20130418_sawamura_04.jpg
  • 2011년 오프 시즌 중 7살 연상의 닛테레 아나운서 모리 마키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결혼 1년 5개월만인 2013년 3월 말에 이혼했다.

  • 2012년 한 방송에서 "일본 시리즈 우승하면 뭘 할껀가" 란 질문에 같이 출연한 같은 팀의 아베 신노스케, 우츠미 테츠야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라고 대답한데 반해 사와무라는 "트레이닝"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연습벌레라고 한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줄곧 해온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우 열심히여서 2011년에 스쿼트로 240킬로 중량을 10번 들어올렸다. 최근엔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올리질 못해서 그만뒀다고 한다.

  • 동경하는 선수는 사이토 가즈미. 좌우명은 "저돌맹진(猪突猛進)". 취미는 가전 제품, 몇시간이고 계속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 일본에서는 트러블메이커로 찍혀 있는 선수인 모양이다. 요미우리 시절인 12년 10월에는 인명사고로 부모와 자식 3명에게 부상을 입혔고 2014년에는 롯본기에서, 2016년에는 신주쿠 가부키쵸에서 일반인과 폭행 트러블을 일으켜서 일본 구계에서는 요주의 선수로 찍혀있다고 한다.

[1] 일본 복귀할 때 롯데 공식 인스타에서 스토리 Bgm으로 이 노래를 사용하였다. 요미우리와 레드삭스의 선배인 우에하라 코지도 이 등장곡을 사용.[2] 애초에 전자는 MARCH로 묶이는 상당한 명문사립대고 후자는 야구부는 꽤 강호지만 학교 자체는 대동아제국과 비슷한 급으로 한참 수준이 다르다. 한국으로 치자면 고려대학교원광대학교에 모두 합격하고 고대로 간 문승원 같은 케이스.(원광대학교의 경우 학비가 전액면제였다고 하나 학교 급의 차이가 워낙 커서 부모님이 고려대학교로 진학하라고 했다고 한다.)[3] 저 당시 나이가 22살인데 전혀 대학생 느낌나지 않고 운동해서 그러는지 폭삭 늙었다.[4] 이후 18번은 FA로 이적해온 스기우치 토시야에 이어서 스가노 도모유키가 달게 된다.[5] 당시 2013년 한국시리즈처럼 1승 3패로 몰렸다가 3연승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돌파했었다.[6] 당시 센트럴리그 선발 투수 중 득점 지원이 가장 낮았다.[7] 사실 결정타는 시리즈 처음으로 리드를 잡은 3차전에서 불펜 붕괴가 벌어진 게 컸다. 3회 이후 교진 타선이 점수를 못 뽑는 동안 3차전 선발 스기우치 도시야가 위기를 만들고 내려간 걸 구원 투수들이 수습을 못 하고 동점과 역전을 허용, 그대로 무너졌고 그 여파는 4차전에서 고야마 유키가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으며 절정에 달했다.[8]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FA로 이적한 모리후쿠 마사히코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받은 돈이 2년 3억엔이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9] 2017년 2월 27일 침술 시술을 받은 이후 회복되지 못하고 통증 증세가 지속되어 의사에게 진단결과 장흉신경마비로 드러났다.[10] 카츠키가 지금이야 볼넷을 하나도 못 고르는(1군 통산 볼넷이 하나도 없다.) 공갈포에 불과하지만 잠재력은 이노우에 세이야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아서, 만약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해낸다면 오카모토 카즈마와 함께 좌우 슬러거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평가.[11] 다만 3군에서 투구폼을 바꾸면서 다시 폼이 좋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내 준 것이라서 쿄진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롯데에서 해줄 것은 예상했을 것이다. 물론 사와무라가 예상보다 훨씬 잘 하긴 했지만.[12] 특히 첫 해 중간에 코로나에 걸려 장기 결장한 것 때문에 풀타임을 못 뛴 것도 아쉬웠던 부분[13] 그 와중에 야나기타 유키 상대로는 홈런을 허용했다. 이날 야나기타는 연타석 홈런을 기록.[14] 며칠 전에는 사사키 로키가 부상으로 이탈해서 롯데 입장에선 더욱 뼈아프게 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06:28:55에 나무위키 사와무라 히로카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